예수 부활 이후 (사도행전1:1-11)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 하시고 승천 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건은 인류최대의 사건이요, 역사적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즉 그리스도 (메시야) 이심을 증명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수의 확실한 부활 후에도 사람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40일 동안 계시면서 자신을 나타냈습니다. 12제자와 500여 형제들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당시 예수의 제자들의 관심은 자신의 민족을 해방시킬 정치적 메시야로 예수님을 보았음이 틀림없습니다. 본문 6절에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 이이까 라고 물은 것을 보면 부활 이후에도 그들의 생각은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 회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자유케 하고 왕이 된 이 후 자신의 자리에 대하여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따른 목적이었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정치적이었습니다. 그에 대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때와 시기는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될 것 이라는 말씀을 하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었고 예수님의 관심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었습니다. 제자들의 관심과 예수님의 이상이 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이상과 가치, 즉 하나님나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나 자신만의 현실적 성공과 축복, 안일만을 위해서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 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을 통해서 함께 깨닫고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사십일 동안 이 땅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였습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세상에 더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 이유는 3절에 보면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40일 동안 머무신 이유는 자신의 부활을 입증하기 위함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마 28:9, 요 20:16-17). 베드로에게 나타났습니다(눅 24:34, 고전 15:5). 엠마오로 가던 글로바와 그의 친구들에게 나타났습니다(눅 24:13-32). 도마가 없는 제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요 20:19-23). 도마와 제자들이 함께 있을 때에 나타났습니다(눅 24:30-43, 요 20:26-29, 고전 15:5). 오백여 형제에게도 나타났습니다(고전 15:6). 해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베드로와 함께 떡과 고기도 구워 먹었습니다 (요 21:1-26). 야고보에게(고전 15:7)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 사도들에게(고전 15:7, 마 28:16-20, 눅 24:50, 행 1:8-11) 나타났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친히 자신의 사심을 나타냈습니다. 확실한 많은 증거로 자신의 부활을 입증하였습니다. 전인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헛깨비가 아닌 실제로 나타나셨습니다. 무려 40일 동안 여러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의 메시지는 처음부터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죄와 사망가운데 종노릇 하는 인생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 하늘나라,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처음 하신 말씀도 마가복음 1장 14-15절에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전파하는 모든 것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비유, 네 가지 마음 밭에 떨어진 비유,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가라지의 비유, 밭에 감추친 보화, 좋은 고기와 못된 고기등 모두가 천국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8장 36절에서 그는 빌라도 앞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운동은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해방되는 민족적 문제가 아니라 온 인류를 죄의 속박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천국운동 이었습니다. 예수운동은 곧 천국 운동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땅에 것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신령한 세계, 하늘나라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까지 그의 관심과 메시지는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6절에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이야기 했지만 주님은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분명합니다.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에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올라가신 곳이 천국입니다. 그 분은 마가복음 16장 19절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 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 하신 이후 이 예수 운동, 천국운동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탄생하고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운동, 천국운동이 전개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예수님의 천국운동을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세우신 기관입니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요. 교회를 통해서 구원운동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함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결코 정치운동, 경제운동, 사회운동, 문화운동, 교육운동 하러 오신분이 아닙니다. 구원운동, 천국 운동하러 오셨습니다. 예수 부활 후 40일은 하나님의 나라 일, 곧 천국운동인 구원운동을 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합니다. 무수히 공격을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고전 15장 17-19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마귀는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에 대하여 공격하고 의심케 합니다. 그것을 아셨기에 제자들에게 확실히 보여주고 그들로 증거하게 한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인데 그 아들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2. 성령을 받으라 하십니다.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연약한 여인들보다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빌라도의 법정에 서고 십자가에 못 박히자 각기 자신의 사명을 잊은 채 다 흩어졌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4절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기다리라, 그러면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 1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 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 라고 말합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13절에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무덤에 계실 때 다 흩어졌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 하시고 난 이후에는 제자들이 한 곳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자주 모였습니다. 모일 때 하나 되고 하나님에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잘 모입니다. 무슨 회식이니, 계모임이니, 등산모임 바둑모임, 낚시모임, 자모모임, 자동차 같은 차타는 사람들 끼리 모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선한 일을 위해서 자주 모여야 합니다.
둘째는 모여서 잡담한 것이 아닙니다. 부동산이나 당 투기나 주식이나 세상의 정치 이야기 한 것이 아닙니다. 14절에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5절에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하였습니다. 오직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기도하면 평안합니다. 기도하면 기쁨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도하면 응답이 있습니다. 그런데 타 종교인들도 자신들의 신앙의 대상에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신앙의 대상인 God 과 타 종교의 여러 신 (gods) 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이사야 44장에 보면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자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17절에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 도다. 46장 7절에는 그것은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 못하느니라.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아세라 선지 850명과 싸울 때에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오지 않은 땅에 엘리야의 기도에 비를 흡족히 내리셨습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있습니다.
셋째, 성령이 임했습니다.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사도행전 2장 2-3절에 보면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흔히 이것을 바람 같은 성령이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바람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지만 그 흔적은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사용된 '프로에스'라는 단어는 폭풍처럼 강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을 말합니다. 이건 살살 부는 봄바람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불어오는 태풍 같은 바람, 미국의 중앙부에서 부는 토네이도 즉 회오리바람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태풍이나 토네이도가 얼마나 힘이 있습니까? 지난 달 4월 30일 초대형 토네이도가 강타한 앨라배마주를 비롯해 테네시주 미시시피주를 강타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토네이도로 기록될 전망입니다. 대형 트럭이 뒤집혀 있고 아름드리나무가 뿌리 채 뽑혀져 있고 지붕이 날아가고 마을이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바람의 위력이 대단 합니다. 우리나라도 태풍의 피해가 갈수록 커져가고 있습니다. 성령이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바람의 능력을 성령의 역사로 표현 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3절에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불과 같은 성령이라고 표현합니다. 불의 힘도 대단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산불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 중에 2009년 그리스 산불은 2009년 8월 21일에 아테네에서 북동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그람마티코에서 시작하여, 이후 30여일간 마을 14곳을 불태웠다. 불을 끄기 위하여 소방수와 군인 600여명, 소방용 비행기 12대, 헬리콥터 9대가 투입되었다. 2009년 산불은 그리스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최악의 사태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저도 전방에서 GOP 철책선에서 근무했었습니다. 하루는 북한 쪽에서 불이 내려오기를 시작하는데 밤새도록 그 불길이 꺼지지 지도 않고 무섭게 타 내려오는 데 그 때 저는 불이 무서운 걸 알았습니다. 불이 지나가면 모든 것을 다 태웁니다. 성령의 불이 임하면 우리의 죄악을 다 태웁니다. 성령은 우리의 신앙적 게으름을 태우고, 미움을 태웁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죄 사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불은 뜨겁게 하는 역사를 의미합니다. 불은 모든 차가운 것을 뜨겁게 합니다. 냉랭한 심령을 뜨겁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에 성령의 불이 임하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냉정한 사람이 뜨거운 사람으로 변합니다. 나태한 사람이 열심 있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합니다. 한마디로 성령이 임하시면 열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기도하는데 열정적입니다. 찬송하는데 열정적입니다. 봉사하는데 열정적입니다. 사랑하는데 열정적입니다.
무엇보다도 복음을 전하는데 열정적이 됩니다. 오순절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제자들의 가슴이 냉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 오순절 성령이 불로 임하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뜨거워 졌습니다. 이 시간 불같은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죄악을 태우고, 우리의 교만과 불순종을 태워 정결케 하는 역사, 성결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3. 증인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한 사람, 120명 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면, 받으리라. 말씀하신대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열흘 동안 한 곳에서 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더니 성령이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처럼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순종한 자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충만함으로 주어지는 것은 능력이었습니다. 여기서 능력이란 헬라어로 eb나미스인데 이 말은 다이나마이트 라고 하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받기 전에는 뿔뿔히 다 흩어졌습니다. 베드로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작은 여자아이 앞에서 자신의 스승을 배반하고 저주하고 맹세 하였습니다. 비겁했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베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밖에도 나가지 못했던 그가 사도행전 2장 14절 이하에 보면 열한 사도와 함께 공중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에 대하여 담대하게 증거 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36절에 베드로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고 설교 할 때에 마음에 찔림을 받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어찌 할 꼬 하거늘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말씀하십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 받은 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담대해 집니다. 이것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여호수아 갈렙도 40일동안 정탐하고 돌아왔지만 열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고 그들은 신장이 장대 같다는 것입니다. 싸우기도 전에 패배의식에 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리라. 성령충만한 자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 하신 이후에 예수님의 천국운동, 예수운동을 이어서 할 사람은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무장 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을 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복음의 증인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왜 받아야 합니까? 방언이나 예언, 치유나 환상 음성을 듣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예수의 부활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함입니다. 증인이란 “말투스” 순교자란 의미입니다. 적어도 1세기에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주 (Lord) 요 그리스도 (메시야) 라고 전했을 때 그는 순교를 각오해야 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역사적 예수가 단지 우리와 똑 같이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살다간 인간 예수가 아니라,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도그마 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 모두가 이 부활의 소식을 전하다가 순교하거나 섬에 유배 되었습니다.
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먼저는 예루살렘 즉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부터 점점 확대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땅 끝 이러한 순차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동시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그렇게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라고 하신 이유는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 못했거나 성령을 충만하게 받지 못한 것입니다.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에 가면 우리 교단의 순교자인 문준경 전도사님의 기념관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이 분은 17살에 증도로 시집을 왔습니다. 신랑은 이미 딴살림을 차리고 있었고 초야도 치르지 않고 떠나버렸습니다. 남편 없는 시집살이를 약20여년 한 뒤 시부모마저 세상을 뜨자 재봉틀 하나를 들고 오빠가 있던 목포로 나갔습니다. 거기서 유명한 우리교단의 부흥사이신 이성봉 목사님이 개척한 북교동교회 전도대원을 만나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1931년부터는 서울신대의 전신인 경성성서학원에 다니면서 방학이면 고향에 내려가 전도활동에 힘썼습니다.
남편으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예수님을 통해서 받고서 “내가 받은 예수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신안 앞바다의 수많은 섬을 다니면서 전도했습니다. 1933년에 진리교회, 35년에 증도리교회, 36년에 대초리 교회를 세웠으며 방축리 기도소를 짓는 등 10개 교회를 지었다고 합니다.
1950년 10월5일 새벽 모래뻘이었던 곳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총에 의해 숨졌는데 순교당할 때 죄목이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입니다.
김두학 장로(증동리교회, 당시 청년)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고 한다. "공산군은 1950년 10월 5일 새끼줄에 묶은 채 문 전도사님을 이곳으로 끌고 온 후 죽창으로 찌르고, 발길로 차며, 총대로 죽음에 이를 정도로 후려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문 전도사님은 '나는 죽이더라도 백정희 전도사와 성도들은 죽이지 말라'고 간청하였다. 전도사님을 창으로 잔인하게 온몸을 찔렀지만 숨이 끊어지지 않자 숨통을 끊는다고 하며 목에도 총구를 대고 총살하였다."
자녀가 한 명도 없었던 전도사였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했기 때문에 믿음의 암탉이 된 것입니다.
지금 증산도 섬주민들의 90%가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다. CCC 총재인 김준곤 목사님, 정태기, 이만신, 이봉성 목사님등 40여명의 목회자들이 배출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16:15-16절에서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것은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제자들과 500여 형제들에게 부활의 확실성을 확인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예수의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예수가 우리의 주이시며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며 증거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2011년 5월 15일 주일설교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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