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Resurrection) (마가복음 16장1-15)
토마스 왓슨은 "우리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부활 때에 무덤에서 일어날 것을 더 분명하게 확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반론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개 다음의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도난설이다. 예수님의 시체를 매장하기 위해서 제자들이 시신을 가지고 갈릴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로마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겁이 많은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둘째는 졸도설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2세기의 기독교 반대론자인 셀수스는 예수님은 죽지 않았으며, 막다라 마리아의 간호를 받고 다시 회복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병사들은 그분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확인했다. (요19:33-34)
셋째는 환상설이다. 마리아 등이 예수에 대한 사랑으로 부활을 열망하였기 때문에 환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반기독자 르낭은 “부활은 히스테리증이 있는 보잘것없는 여자의 말에 기초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외에도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잘못 찾아갔다고 하는 오인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 여인만 본 것이 아닙니다. 500여명이 일시에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500명이 다 환상을 볼 수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15:14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의 믿음도 헛것이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기독교 신앙의 초석이요 근간이요, 기둥입니다. 그래서 불트만은 “기독교는 십자가에서가 아니라 부활에서 시작하였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장차 천사들과 함께 재림하셔서 구원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지상최대의 사건은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이해서 부활의 영광과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1.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바울이 헤롯 아그립바 왕에게 부활의 도리를 증언할 때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일이 아니니이다.”고 하였습니다(행 26:26).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시공간을 초월한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최초의 로마황제로서 자신을 신격화 한 아우구스(BC 30-AD14), 티베리우스 (AD14-37) 가 재위하고 빌라도가 유대지역을 관할하는 총독으로 있던 시기에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누가 꾸며낸 이야기나 신화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태어났던 유대나라와 갈릴리,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학설들이 있지만 그것들이 많은 역사적 증거들을 훼손할 만큼 충분치 않습니다. 오히려 부활의 사건을 입증할 자료들이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거 하는 것 중에 빌라도의 보고서가 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황제 티베리우스 가이사 치하에서 유대총독으로 임명된 로마 기사 출신의 군인이었다. 그가 부임하여 거룩한 성에 예루살렘에 로마군을 주둔 시키면서 로마황제의 초상을 걸어놓고 경배하게 하고 이교도의 상징인 주화를 찍어 내다가 유대인의 반발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처형과 관해서 우유부단함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장본인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의 재판에 관한 자세한 보고서를 로마의 황제에게 보냈습니다.
이 보고서는 현재 터키의 성 소피아 박물관에 소장되어있습니다. 1961년도에 가이사랴에서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이 새겨진 돌 판이 하나 발견되었다. 이것은 그 불행한 사람의 생애와 치적에 관한 성경 이외의 몇 안 되는 증거들 중 하나이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빌라도에 의해서 예수님이 처형된 사실을 언급하고 있고 또 유대의 저술가 요세푸스와 필로도 몇몇 사건들을 진술하고 있다.
빌라도 보고서(A Report of Pilate)는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각하께 문안드립니다. 제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최근 수년 동안에 일어난 사건은 나라의 운명까지도 변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각하께 소상히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원치 않았지만 폭동이 두려워서 희생양으로 예수라는 청년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그리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무덤은 비었고 그의 제자들은 용기를 내서 예수가 부활했다고 전파하였습니다. 예수의 생애는,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듯이 모든 것이 그의 손에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바다를 잠들게 하고 폭풍을 멈추게 하고, 고기를 잡아 그 입에서 은전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자신이 메시야라고 하는 주장이 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십자가 옆에서 말커스가 말한 것처럼 이 사람은 하나님에 아들이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각하,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저는 각하의 가장 충실한 신하입니다. 본디오 빌라도" 많은 내용들이 있습니다만 생략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예루살렘에서 나타나셨고, 또한 제자들에게 그리고 여자들에게 나타나셨다고 기록 합니다. (마28:9,눅24:34,36-39.요20:14-17,19=23,24-29) 엠마오 도상에서 나타나셨고 또한 갈릴리에서도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 이 땅에 40일 동안 계시면서 11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와 도마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7곱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6절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500여명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눅24:50-51절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친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그들 옆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이 왜 하늘을 처다 보느냐? 하늘로 들리운 이 예수님 네가 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부활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부활절을 당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될 문제는 부활의 역사성입니다. 부활을 철학적으로 추상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문제가 아닙니다. 혹은 도덕적으로 설명할 문제도 아닙니다.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고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역사의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역사적 부활사건으로부터 기독교는 시작이 되었고 여기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활사건을 믿든지 안 믿든지 이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확실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며 부활은 확실히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습니다. 개혁의 작은 불꽃은 여러 방해로 인해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고 답답하고 암담해질 때마다 루터는 큰 소리로 "예수님은 살아 계시다, 살아 계시 다!(Vivit! Vivit!)"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무덤 속에 갇혀 버린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부활의 기초위에 세워졌습니다. 부활은 환타지 소설이나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 (fact)입니다.
2. 부활은 인류에게 Good News 이다
토요일 저들의 안식일이 끝났습니다.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 새벽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예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하여 향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해가 돋을 때에 도착했습니다. 가면서 생각했습니다. 누가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치워 줄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이미 돌이 굴려져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흰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않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로마병사들은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말을 합니다. 마가복음 16장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 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누가복음 24장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 이었습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누가는 어찌하여 살아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이 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죄와 사망으로 영원히 죽을 인생들에게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 이 소식이야 말로 인류최대의 기쁜 소식입니다. 빈 무덤은 부활이 마음속 생각이 아니라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나타냅니다. 사도행전2:24절에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부활의 복음은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분명하게 전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마음속에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부활의 몸은 영혼이 아니라 몸이다. 그가 부활 하셨을 때 가졌던 몸은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몸이었지 유령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몸은 변형되었지만 그의 몸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몸은 십자가에 달렸던 그 몸이었습니다. 다락방에서 떡을 떼 주시던 것을 상징한 그 몸 이었습니다. 6절에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그러면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라 예수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고 하였습니다.
불교의 창시자 석자모니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무덤은 인도 능수 해안에 묻혀 있습니다. 마호멧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 묻혀 있습니다. 공자는 중국의 장평양에 묻혀 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거기에서 썩었고 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속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 하셨습니다. 그의 무덤은 확실히 빈 무덤이었습니다.
성지 순례 때 예수님의 빈 무덤에 쓰여 있는 ‘He is not here He has risen. 라는 문구를 보고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만약에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죽음으로서 생을 마감했다면 오늘날 기독교와 수많은 기독교 유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로마의 백부장은 그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마태복음 27장 54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우리에게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자들이 무덤에 갔을 때 예수님의 시체를 보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무덤에 갔지만 그를 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 자녀 부모형제들과 영원히 이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옛날 왕들은 불로초를 구하라 다녔다고 하지 않습니까? 현대의학에서도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려고 별의 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죽음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이 끝이 아님을 말씀합니다.
둘째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단순한 종교창시자나 교주나 선지자나 종교지도자나 교사가 아닙니다. 사도행전 5장 31절에 사도들이 백성앞에서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여기서 제자들이 부활하기전과 부활하고 난 이후에 예수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는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를 마감하고 인류에게 책임을 물으실 그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덴사람들에게 행17;31절에서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넷째는,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부활을 믿는 자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살지 못하였을 것이고 주님이 다시 살지 못하였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전파하는 것도 헛되고 우리가 거짓말쟁이로 들어납니다. 한마디로 종교 사기꾼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수 천 년 동안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 사람들이 어떻게 됩니까? 한 마디로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을 멸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고전 15장 57-5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로마서 1:4 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기쁜 부활의 소식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3. 부활의 소식을 전파해야 합니다.
왜 부활이 중요합니까? 그것은 더 이상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시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좋은 정보가 그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에게 신약이나 최첨단 의료기술은 좋은 소식이 될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이러한 지식이나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하려고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7절과 8절에 보면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8절에는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마치 동박박사들이 별을 보고 기뻐하였던 것처럼 큰 기쁨으로 달려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무덤 안에 갇혀 있을 수 없는 소식입니다. 온 세상이 들어야 할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갈릴리로 예루살렘으로 다니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요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알고 증거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만약 1 세기에 이 소식을 들었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들은 이 소식을 거리에서, 돌에 맞으면서도, 감옥 안에서도, 심지어는 죽음앞에서도 담대히 예수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가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였다고 증거 하였습니다. 이 부활의 소식이 거짓이라면 그 당시 들통 났지 수 천년동안 내려오고 부활절이 있겠습니까? 누가 거짓에 자신의 생명을 바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로마의 권력이 두려워서 자신의 스승을 내 팽개치고, 3번씩이나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부인하던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릴 수 있겠습니까?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주님의 제자들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아는 대로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가 자신은 예수님과 죽을 수 없다고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고, 안드레는 헬라에서 전도하다가 아가야성에서 엑스자형(X)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으며,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에게 칼로 목 베어 죽었고, 빌립은 서아시아 부르기아에서 전도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죽었고, 요한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면서 유대 땅에서 전도하다가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 후 에베소에 가서 전도하다가 그곳에서 핍박을 받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지만 기적으로 살아나 다시 밧모섬으로 귀향 보내졌고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받아 기록하고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고, 도마는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창에 맞아 죽었으며, 마태는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목 베임을 받아 죽었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죽임을 당했고, 시몬은 애굽에서 전도한 후 다시 유대에 돌아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야고보의 동생 유다는 바사에 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고,
가룟 유다 대신 선출된 제자 맛디아는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 부활의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소아시아로 소아시아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오늘 이 땅에 전파되었고 우리 민족을 통해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 부활의 소식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전세계에 전파되었듯이 먼저 전해들은 저와 여러분들이 이 기쁜 구원의 소식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옛날 나치 독일에 항거하던 그룹 중에 '복음주의 목사 긴급동맹'(Pfarrer-Notbund) 라는 조직이 있었습니다. 이 조직을 이끌던 지도자는 말틴 니묄러(M.Niemoller) 목사였습니다. 그는 이 운동을 하다가 히틀러에게 체포당하여 1937-1945년까지 강제 노동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감옥에서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히틀러가 마지막 심판을 받는 광경이었습니다. 주께서 그에게 묻습니다. "너에게 전도한 사람이 없었느냐?" "예, 저에게 아부한 사람도 많았고 나에게 저항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전도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대답을 들으시면서 갑자기 니묄러 목사는 주님의 시선이 자신을 쏘아보시는 모습을 보고 식은땀을 흘리다가 잠을 깹니다. 그는 엎드리어 이렇게 결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제가 히틀러를 미워하고 저항은 했지만 저는 그를 사랑한 일도 그를 불쌍히 여겨 그에게 전도하고자 한 적도 없습니다. 제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는 그 다음부터 그를 취조하고 감시하는 자들 재판관, 나치 간부들, 간수, 옥중 동료들에게 전도를 했고 하나님은 한 시대를 밝히는 종으로 그를 전쟁 후까지 귀하게 쓰셨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목사가 예배를 시작하려면 “주님은 살아나셨습니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정말로 살아나셨습니다.”라고 교우들이 화답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도 한번 선포해보겠습니다. “주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은 정말 살아나셨습니다!” 다시한번 하겠습니다. 주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은 정말 살아나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모일 때마다 주님의 부활을 전파하여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은 누가 꾸며낸 이야기나 신화가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입니다. 인류에게 이 보다 더 좋은 기쁜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빈 무덤을 보고서 달려갔던 여자들처럼, 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내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4월24일 부활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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