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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마음을 아십니까? ( 눅: 19: 41-44, 23: 26-28)

gkffpffndi 2011. 4. 9. 11:32

 

주님의 마음을 아십니까? ( 눅: 19: 41-44, 23: 26-28)

 

유명한 스펄전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른 눈으로 천국에 갈 수 없다." 칼빈은 "기도와 눈물이 우리의 무기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즈라는 사람은 '눈물은 강철을 녹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모습이 세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심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요한복음 11장 35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평소에 사랑했던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고 우신 것입니다. 나사로에 대한 연민의 눈물입니다.

두 번째는 누가복음 19장 41절에 장차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서 무너질 것을 내다보고 우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히브리서 5장 7절에 나오는 대로 겟세마네의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심한 통곡과 눈물로 흘린 것입니다. 이 눈물은 인류구원을 위한 사명의 눈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 때 뒤따르며 슬피 우는 여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간 본문을 중심으로 주님의 마음을 아십니까? 이러한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안병욱 교수는 인생에 3가지 싸움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자연과의 싸움. 두 번째, 타인과의 경쟁. 세 번째,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그 가운데 세 번째의 싸움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힘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장 용서하기 힘든 것,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나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 극복하기 힘든 대상이 누구입니까? 바로 자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배운 것이나 열심, 학식, 로마의 시민권, 규칙적으로 지켰던 종교적인 의무, 청빈한 생활에도 부끄러울 것 없는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핍박하고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일로 생각하고 앞장서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난 이후 그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추악한 죄인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자기가 의인이요, 세상에서 큰 자요, 율법으로나 도덕적으로 흠이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난 이후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사람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진실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선과 악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하지 않는 한 이 싸움에서 항상 패배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자신은 십자가의 죽음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울고 있는 여인을 향해서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네 자신을 위해서 울어라.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네 자신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울어라. 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3장 1-15절에 보면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가 밤중에 자신의 구원의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예수님께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이요, 바리새인 이었음에도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구원은 신비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니고데모와 주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구원은 종교행위나 자신의 의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 찾아온 니고데모는 자신의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무관심 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있는 지 알 지 못합니다.

 

어떤 교인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하늘나라에 올라갔는데 하늘나라의 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새 예루살렘이 아름답게 우뚝 서 있었습니다. 황금보석으로 꾸민 아름다운 집입니다. 이 사람이 새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힘차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안에서 수문장격인 베드로가 고개를 내밀면서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에 들어오려면 믿음의 표를 가지고 와야 하는데 믿음의 표를 가지고 왔는가?.“ 이 사람이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말했습니다. 믿음의 표요?” 그런 것도 있습니까? 그러면서 자기 주머니를 뒤졌지만 믿음이라고 하는 표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가 없으니 베드로에게 사정을 해서 어떻게든지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사정을 했습니다. “제가 미처 표를 준비하지 못했지만 세상에 살 때 수십 년 동안 교회에 출석을 잘 했는데 그래도 못 들어갑니까?” 이렇게 사정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안에서 베드로가 말을 합니다. “그것 가지고는 안 되네. 믿음이 있어야지 수십 년 동안 교회 뜰만 왔다갔다 밟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래도 이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부탁을 했습니다. “제가 성전 뜰만 왔다 갔다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교회에서 집사로 10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안되겠습니다. 또 그 뒤에는 장로로 10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안되겠습니까.? 이 소리를 듣고 갑자기 베드로가 화를 벌컥 내면서 음성을 높였습니다.”아니 그래, 믿음도 없이 20년 동안 제직 생활을 했어?“ 굉장한 말썽꾸러기였겠네 말썽꾸러기는 우리 천국에 들어올 수 없어.” 이렇게 화를 내면서 예루살렘 성의 문이 쾅 닫았습니다. 본래 베들로가 얼마나 성격이 급합니까? “쾅” 하고 문을 닫는 소리에 이 사람이 깜짝 놀라서 깨보니 꿈이었습니다. 꿈이었기에 망정이지 진짜였으면 얼마나 큰일 날 뻔했습니까? 그 뒤에 이 사람이 회개하고 믿음을 키우기 위해 애썼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히 6: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하나님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에서 벗어나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종교적이고 습관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일에 게으른 자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로서 구원의 감격과 간증의 신앙으로 열정을 가지고 주님과 교회를 섬김으로 천국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종교적인 행위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 자신의 영혼구원을 위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가정과 자녀의 영혼구원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조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자녀1명을 4년제 대학 졸업 때까지 드는 양육비가 2억 3천199만원이 들어가며, 고교 졸업까지도 1억 7천334만원으로 추산했습니다. 며칠 전 제 핸드폰의 액정이 깨져서 대리점에 들렸다가 직원과 대화중에 자기의 자녀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영어 학원을 포함해서 음악학원등 사교육비만 월 60만원정도 든다고 했습니다. 그 직원 말이 자기 고향이 시골인데 그 지역에 선교사들이 시골학교를 인수해서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로 만들었는데 한 해 수업료가 2000만원이상 인데도 자리가 없어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녀교육을 위해서 올인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해 대학 등록금이 1000만원 시대로 미국다음에 우리나라가 비싸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 하는 이유는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이 경쟁에 내 몰려 카이스트 대학에서 올해만 4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끊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번 일로 인해서 대학교육의 근본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얼마나 시간과 물질을 투자 하십니까?

 

잠언 22장6절은 말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성경은 자녀교육의 주체는 학교가 아니라, 가정이며 교사는 부모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의 역할은 하나입니다. “자녀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영혼구원을 위해서 부모가 노력하고 눈물로 기도하며 수고하고 애써야 합니다. 요즈음 자녀들이 하나, 아니면 둘이어서 자녀들을 애지중지 키웁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제 멋 대로입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부모의 눈치를 보고 행동이나 말을 조심했는데 요즈음은 반대로 부모들이 아이들의 눈치를 보고 아이들의 심기를 살피게 됩니다. 물론 부모라고 해서 너무 권위적이거나 나무라기만 하면 안 되지만, 자녀들이 신앙적으로 잘못된 길로 가도 무관심 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학문과 교육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 하면서, 자녀의 영혼을 위해서 신앙서적 한권도 사주지 않는 것은 영혼에 대한 소중함을 간과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자녀교육에서 실패한 사람과 성공한 경우를 알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2장 12절 이하에 보면 엘리 제사장 가문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나옵니다. 이들은 제사장 가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습니다. 레위기 7장 14절에 제사드릴 때 제사장 몫의 고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난 이후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막무가내로, 하나님께 드리기도 전에 자신의 몫을 차지 한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성막 안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음행을 하였습니다. 이 소식이 아버지 제사장 엘리 에게 들렸습니다. 아버지가 타일렀으나 이미 아버지의 통제에서 벗어난 이들은 아버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를 죽이기로 하셨습니다. 이 가정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두 아들은 죽고 비느하스의 아내는 해산 중에 죽었으며 엘리제사장은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겨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자녀교육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자식도 손안에 있을 때만 자식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어렸을 때 잘 가르치고 교육해야 합니다.

 

반면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 앞에서 세마포 에봇을 입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는 예복을 입어야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기도가 습관이 된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경건한 생활이 몸에 익혔습니다. 그 까닭에 그는 후에 말하기를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한나의 기도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요 이스라엘의 초대 건국공신이 되었습니다.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내가 이 아이를 길러야 하오리까? 하나님께 묻고 양육했습니다. 부모로서의 책임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으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의 영혼을 위해서 수고하고 애쓰며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신 4:10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대하 20:13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미국의 라이언 화이트(Ryan White)라는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라이언 화이트가 열세 살 때에 혈우병 수술을 받았는데 수혈이 잘못되어 후천성 면역 결핍증인 AIDS에 걸렸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화이트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의사들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밝은 웃음을 보였고 모두에게 친절했습니다. 오히려 염려하는 부모를 위로하며 밝게 지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방송매체를 통하여 전 미국에 전해지자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많은 이들이 화이트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명 인사들이 앞을 다투어서 찾아와 방문했습니다. 대통령이었던 레이건도 방문했고, 유명한 팝 가수인 마이클 잭슨도 찾아와 위로했습니다. 결국 5년을 더 살고 18세에 이 소년은 죽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나눈 대화의 내용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아버지는 죽어 가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나는 아무 것도 너에게 해줄 것이 없구나. 아빠가 더 이상 어떤 것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 다오." 아들은 대답합니다. "아니예요. 전 지금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아빠가 제게 준 것을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빠는 내게 천국 열쇠를 주었잖아요. 예수님을 소개해 주었고, 예수를 믿게 해 주었고, 말씀을 통하여 영생을 얻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보다 더 위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자녀의 영혼 구원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가족의 구원을 위해, 내 자녀의 영혼을 위해서, 그의 앞길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 본적이 있습니까? 혹 물질적적인 혜택이 부모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다른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가족과 자녀의 영혼을 위해 눈물 흘리는 법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 자녀를 위해 지금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3. 이웃과 조국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눅 19장 41-44)

 

눅19장 41-44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평화의 도시”라고 명명된 예루살렘성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이 성은 BC 37년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 된 헤롯 대왕 (Herod the Great)은 위대한 건축가로서 예루살렘을 아름답게 가꾸어 솔로몬 당시의 성전보다도 더 장대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건립하고 성벽을 쌓았습니다. 이 성전은 46년 에 걸쳐서 (요 2:20), "헌물과 미석으로 꾸며졌다고“ (눅 21:5)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이 37년 후 AD70년 로마 티토 장군에 의하여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성은 돌 하나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110만 명이 죽었으며 10만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누가 이 사실을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그들에게 앞으로 닥칠 a멸망을 내다보지 못하는 그들에게 주님은 이웃과 조국을 위해서 울어라. 고 말씀하십니다. 역사학자인 스펭글러는 한 나라의 패망은 외부의 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적에 의해서이다. 라고 말하면서 서구문명의 몰락을 예언했습니다. 로마가 멸망 한 것도 외부의 침입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그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도덕적 윤리적 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시대에 동성연애가 성행한 것 아십니까? 독신주의가 유행병처럼 번졌습니다. 사치와 향락이 만연하고 정치는 실종하고 종교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지 못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남북은 분단되어 긴장과 갈등은 증폭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굶주림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음직전에 있어도 북한 독재정권은 국민의 생명은 관심 없고 오직 자신들의 정권유지와 권력세습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이념과 정당의 편 가르기로 국론이 분열되고 정치는 오직 정권만을 잡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고 경제는 대기업과 부유층 고위층만이 좋고 서민들은 물가폭등으로 삶은 힘들어지고 빈부의 격차가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상하이 스캔들에서 보듯이 오늘날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는 도를 넘어서 타락의 수준입니다. 얼마 전 연예계 성상납에서 보듯이 정치 경제 문화 방송 교육 예술 종교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서 총체적으로 타락하였습니다. 우리는 일본 대지진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최근에 백두산 화산 폭발에 대해서 북한 학자들과 우리나라 학자들이 공동연구하기로 했는데 정부가 2017년 폭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백두산은 지하에 4개의 마그마 방이 10k, 20k, 27k, 32k 지점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마그마 방이 많으면 폭발 할 때 상승작용을 일으켜 엄청난 재앙을 가져 온다고 합니다. 백두산이 폭발 할 경우 천지에 있는 20억 톤의 물과 함께 동북아는 물론 전 지구적 재앙을 가져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웅대하고 아름다운 예루살렘성이 돌 하나 돌 위에 남지 않고 그렇게 무너지리라고 생각을 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나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여러분 ! 하나님께서 이 아름다운 세계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고 범죄한 인간을 심판하셨을 때에 마음이 어떠하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어디 심판이 좋아서 하시는 분입니까? The LORD was grieved that he had made man on the earth, and his heart was filled with pain (창 6장6) 하나님께서 사람 만드신 것을 슬퍼 하셨고 그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 주님의 마음을 아십니까?

 

아모스 6장3-8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7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이 되어 제작된 쉰드러 리스트 영화가 흑백영화로 오래전에 상영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1939년 9월1일 독일의 선전 포고 후 단 2주 만에 독일군이 폴란드를 점령한 이후 폴란드에 거주하던 유태인들을 크라코프 시로 강제 이주 시킵니다. 최종입주가 완료된 후 이들의 대부분은 푸아쇼프 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여기서 많은 유태인들이 병사했으며 남아 있는 유태인은 그 유명한 아우슈비츠로 이주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우슈비츠로 이주할 경우 죽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도시에 유태인을 이용해서 냄비공장을 운영해서 사업을 하는 쉰들러라고 하는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유태인을 이용하였지만 유태인 회계사인 스턴을 통해서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된 일임을 깨닫고 유태인을 빼내기로 계획을 세우고, 노동수용소 장교에게 뇌물을 주어 1100명의 사람들을 수용소로부터 자신의 고향으로 빼내어 살리게 됩니다. 그런데 독일군의 패망으로 연합군의 추격을 피해 도망자로 떠날 때 마지막 장면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서 생명을 구한 1100명의 사람들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쉰들러 에게 반지 하나를 전해 줍니다. 그 반지에는 탈무드에 기록된 유명한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 것이다”. 이 반지를 받아든 쉰들러는 이런 독백을 합니다. “내가 돈을 좀 더 벌었더라면” “너무 많은 돈을 낭비 했어” 자신의 떠날 차를 보면서 이 차를 팔았더라면 10명은 구했을 텐데, 왜 팔지 않았을까? 자신의 금배지를 보면서 2명은 더 구했을 텐데, 최소한 한 사람은, 한생명은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최소한 한 사람은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를 못했어, 충분하지 못했어! 이미 1100명을 구하고도 더 많은 사람을 살려내지 못한 것을 슬퍼하는 장면이 한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 미션 153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주님이 무엇 때문에 오셨습니까?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습니까?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죽어가는 가련한 영혼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대로 내 버려두실 것입니까? 쉰들러의 소리가 귓가에 울리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면서 뒤 따라 오는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먼저는 나 자신을 위해서 울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자녀들을 위해서 울어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2011년4월 10일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