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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 고전 1:18-25)

gkffpffndi 2011. 4. 16. 10:32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 고전 1:18-25)

 

홀맨 헌트가 그린 “죽음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그림을 알고 있습니까? 이 그림은 나사렛에 있는 목공소의 내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상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예수님이 목조 작업대 위에 톱을 올려놓고서 그 옆에 서 있습니다. 그 분의 눈은 하늘을 향해 있으며 얼굴에는 고통인지 황홀함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인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두 팔을 들어 머리 위로 쭉 뻗고 있다. 마침 그 때 저녁 햇빛이 열린 문으로 비쳐 들어와서 뒤편 벽에 십자가 모양의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그 곳에는 연장을 두는 선반이 벽에 걸려 있어서 마치 그분의 손이 못 박힌 십자가의 가로 지름 대처럼 보인다. 그리고 연장들은 그 무서운 망치의 못을 생각나게 한다. 왼편 전면에는 한 여인이 대팻밥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습니다. 그녀가 손을 얹은 커다란 상자에는 동방박사들이 주고 간 값진 선물들이 들어 있다.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녀가 마리아임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벽에 드리운 자기아들의 십자가 모양의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현대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에밀 부르너는 십자가는 바로 기독교의 상징이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중심이고,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십자가 이전에는 그리스도인을 상징하는 표시는 물고기였습니다만 대체로 2C이후 신자들은 이마에 십자가를 그렸습니다. 십자가의 상징성은 자신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이마에 표시했습니다.

 

따라서 교회를 상징하는 표시는 십자가입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수치의 십자가.

 

십자가 처형 관습은 고대 사회에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십자가형은 당시 세계의 변방에 살던 야만인들이 고안하여 뒤에 그리스도인과 로마인이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처형 방법 중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람이 극도의 고통을 느낄 때 까지 죽음을 늦추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형벌은 너무나 잔인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로마인이 이 사형방법을 채택 했을 때 그들은 살인 반란 범죄자 노예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사람들에게만 이 사형방법을 시행했습니다.

 

로마법에 의한 십자가 처형은 이런 절차를 따랐다. 먼저 공식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자를 못, 뼈 조각, 납덩어리가 붙은 채찍으로 등을 때린 후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향합니다. 형장으로 행하는 길에 자기 죄목이 적힌 명패를 가슴에 달아 지나가는 통행인들에게 수치와 멸시를 받습니다. 형장에 도착하면 사형수의 옷을 발가벗긴 다음 수평 대에 몸을 고정시킵니다. 그 눕혀놓은 십자가위에 사람을 눕힙니다. 그리고 양손 팔목에 대못을 박습니다. 그리고 두 다리 발을 어긋 맞겨서 그리고 거기에 또 대못을 박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세워놓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몸이 무게중심 때문에 밑으로 흐를 때 그 대못으로 오는 아픔과 진통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절규하는 순간입니다.

 

사람에 따라 하루 때로는 삼일까지 생명이 유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물과 피를 다 흘렸을 때 마지막 진을 뺀 후에 죽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독수리들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잔혹한 사형 방법입니다.

 

신명기 21장 22절에 보면 사람이 만일 죽을죄를 범하므로 나가 그를 죽여 나무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리고 마지막에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이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저주와 수치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죽음일지라도 너무나 수치스러운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키케로는 한 연설에서 “십자가는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형벌” 이라고 하면서 로마시민은 매달려서는 안 된다. 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주의 상징이었던 십자가가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고 기독교의 상징이 된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의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십자가의 형벌로 죽은 예수를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 전했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었겠습니까?

 

고전1장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무슨 말씀입니까?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인데 그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이게 걸림돌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방인이란 헬라인을 가리키는데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는 자들인데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저주와 수치, 혐오의 상징인 십자가에 못 박힌 자를 구세주요, 메시야라고 하니 헬라철학을 아는 그들이 볼 때에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일입니까?

 

그런데 바울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갈6장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 하니라. 바울이 그토록 자랑했던 학문과 가문과 지식을 다 버리고 그 당시 사람들에게 수치와 모욕의 상징인 십자가를 자랑하겠다고 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 대속의 십자가

 

여기에 십자가의 비밀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속의 은총입니다. 인간은 아담 이후에 하나님의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불순종의 죄를 지어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죄를 지은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기 위하여 나뭇잎으로 자신의 수치를 가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가죽옷을 입혔습니다. 가죽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동물을 죽여야 얻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계속해서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속죄의 방법을 계시 하였습니다. 그것은 제사의 방법이었습니다. 소제를 제외한 제사에는 반드시 양이나 소 염소를 제물로 바쳐야 죄인의 죄가 속죄 되었습니다. 레위기 16장에 보면 속죄일에 속죄에 대한 방법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회중의 속죄를 위해서 두 염소를 잡아 한 마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속죄 제물로 드리고, 다른 하나는 산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내집니다. 15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시은좌 곧 은혜의 자리 16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21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즉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서 욤 키푸르 (속죄일) 에 한 마리는 여호와께 드려지고, 또 한 마리는 아사셀 양으로 아론이 백성들의 모든 불의와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광야로 보내지는 데, 여기서 아사셀은 광야에 있는 마귀, 사탄을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양이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희생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그 동물에게 안수함으로 스스로를 동물과 동일시하였으며, “그 제물이 자기를 대신한다는 것”을 표시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리고 양의 피를 뿌림으로써 그 양을 바친자의 생명은 보존되었다. 광야에 버려진 양은 사자나 이리의 밥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백성들의 죄가 용서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이었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 육체의 생명은 피 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 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전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게 되는데 이 광경이 구약성경의 출애굽 당시의 유월절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애굽에 마지막 재앙은 애굽의 짐승과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양을 각 사람의 수대로 잡아 그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밤에 애굽의 모든 가정에서는 죽음이 임하여곡소리가 가득 찼었지만,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가정은 죽음이 지나가게 되고 구원을 얻은 사건이 유월절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전 가진 최후의 만찬을 하신 때가 유월절입니다. 주님은 떡을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해서 준 내 몸이니라. 고 하시면서 받아먹으라. 잔을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신 내 피 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만찬은 유월절 식사로서, 식사 후에는 유월절 양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는 절차가 뒤따릅니다. 금요일 저녁이 되어야 식사를 하는데 이 시각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때이며 바로 유월절 양이 죽음을 당하는 시간이다.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와 골고다의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시기를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의 모습으로 죽게 될 현실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잔 즉, 십자가의 수치와 참혹함이 아닌 속죄의 다른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를 속죄 하는 방법이 왜 십자가 이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아닌 다른 방법, 예를 들면 고행이나 공로, 아니면 삼천 배나 만 배로 아니면 선행을 함으로써 죄가 속죄 할 수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약의 희생 제사를 통해서 속죄의 방법을 정하셨을 뿐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다고 성경은 없다고 말합니다. 피로써 만이 속죄 될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 만큼 죄에 대한 형벌이 크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아시면서도 십자가의 잔만은 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매달리시면서 하신 가상칠언 말씀 중에서 다 이루어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테테레스타이” 인데 다 갚았다. 다 지불했다는 의미입니다. 더 이상의 부채가 남아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벧 전1장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요한일서 4장 10절에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속죄제물이 되셔서 우리대신 세상 죄를 지시고 속죄양으로 피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대속(代贖)이란 말은 Redemption 혹은 Atonement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대신 값을 지불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입니까? 사탄입니다. 성경은 사탄을 “사망권세를 잡은 자” 라고 말합니다. 이 사망권세 잡은 자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속전을 지불하고 죄에서 사망에서 자유케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상의 죽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죄와 사망 아래 있는 인류, 다시 말하면, 나를 위한 죽음이요, 내가 지은 죄로 받을 형벌을 주님이 그 고통과 수치와 비난과 온갖 모욕을 대신 받으시고 사탄의 사망권세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속죄를 드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이런 비밀을 안 사도바울은 고전15장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알고 깨닫는 성도는 십자가를 사랑 합니다.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삽니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바로 주님이 지신 십자가가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받으실 형벌인 것을 아는 자만이 구원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입니다. 즉 2000년 전에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나를 위해, 내 죄를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3. 승리의 십자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이 막 15:38에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휘장 안에는 1년에 한번 씩 대 제사장 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대속의 피로 하나님 앞에 나아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엡 2장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의 장벽을 깨뜨리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을 속죄물로 드림으로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한 승리의 함성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해 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죄 때문에 내가 받을 사망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으므로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죄로부터 승리 하여야 합니다. 이제 십자가는 수치와 모욕의 상징이 아닌 영광과 승리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천국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주후 312년 10월 27일에 있었던 밀비안 다리 전투이다. 로마황제인 콘스탄티누스는 정도가 약했을 뿐, 여느 황제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를 박해했었다. 그런데 밀비안 전투가 이루어질 당시, 콘스탄티누스 진영은 막센티우스보다 수적으로 열세여서 콘스탄티누스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그리스도의 머리글자를 따온 기호를 새기고 전쟁에 임하면 승리한다는 환상을 본 콘스탄티누스는 이를 신의 계시라 믿고 병사들의 투구와 방패에 이 기호를 새기고 전투를 하였고 그 결과 승리하였다고 한다.

 

이 승리가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 믿은 콘스탄티누스는 다음해인 313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게 되었으며 자신 역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로마제국이 인정하는 타 종교와 같이 기독교 역시 인정받게 되었다.

 

십자가는 승리를 상징합니다. 질병과 싸워 이겨야 하고 가난·저주와 싸워 이겨야 하고, 죄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승리합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또는 환경적으로 이미 승리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사랑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는 41세의 젊은 나이에 백혈병에 걸리게 됩니다. 오페라 '라보엠(La Boheme)' 의 주연을 맡아 연습하던 중 갑자기 쓰러집니다. 병원에 실려 가서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호세 카레라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십자가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나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면, 남은 평생 주를 위해 충성하겠습니다." 이어 골수 이식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힘겹고 어려운 일들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빠지고 손톱과 발톱도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이제 그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기적같이 새 생명을 얻은 그는 새로운 사명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전 재산을 팔아 바르셀로나에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을 세웠습니다. 공연 수익금은 모두 이곳으로 보내어 졌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때로는 질병도 은혜가 될 때가 있습니다. 백혈병과의 싸움을 통해서 나보다 남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호세 카레라스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인해 변화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가는 곳곳마다 변화된 자신의 삶을 간증하고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브라질의 국가 대표선수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AC 밀란의 카카 선수가 있습니다. 이 선수는 독실한 크리스챤으로서 골 세레머니를 할 때 자신의 상의를 한 겹 벗으면 그 속에 I belong to Jesus 라고 쓰여져있다. 나는 그리스도께 소속되어 있다. 나는 그리스도의 소유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이기를 나타내면 혹시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업장에서 동네에서 따돌림을 당할까봐, 불이익을 당할 까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십자가를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과는 얼마나 다릅니까? 과연 여러분들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대속하신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이제부터 주님을 자랑하십시오. 십자가를 자랑하십시오. 바울은 주님의 십자가를 알고 난 이후 세상의 것은 배설물로 여겼다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면 가치관이 바뀝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간은 고난 주간입니다.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시고 고통당하시고 나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는 한 주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았으면 일상생활에서 십자가를 부끄러워 말고 십자가를 증거하고 자랑하는 일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4월 17일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