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함락 작전 (여호수아 6장 1-21)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의 430년 노예생활을 하나님의 은혜로 청산하고 홍해를 건너서 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내고 요단강을 기적으로 건너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거저 주어지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 땅에는 가나안 7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면 첫 번째 관문인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여리고성은 이중벽으로 되어 있는 난공불락의 성 이었습니다. 이 가나안 족속은 견고한 여리고성을 건축할 정도의 대단한 건축기술과 도시문화를 형성한 이스라엘 보다 월등한 문화를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데 있어서 이 여리고성을 함락시키지 않으면 앞으로 전진 할 수 없습니다. 이 여리고성의 점령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장래가 걸린 문제 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도 이러한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때 어떻게 이 성을 함락 시켜야 할 지 본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여리고성은 굳게 닫혀져 있었습니다.
그 당시 여리고성은 최고로 완벽한 성이었습니다. 적들의 공격에 대비해서 이중벽으로 쌓았습니다. 외벽은 5M 높이의 기초성벽위에 두께 2M, 높이 7M의 진흙 벽돌벽을 세워 총 12M나 되는 외벽이었고 내벽은 지상으로부터 14m 정도 되는 높은 둑 위에 높이 솟아오른 내 성벽의 구조로 되어 있을 만큼, 이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의 구조를 가진 이중벽으로 양식만 풍부하면 몇 년이고 버틸수 있는 그러한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기적적으로 건너서 지금 자신의 성으로 진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철저히 문을 닫았습니다. 6장 1절에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수아 5장 1절에 있습니다.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라고 하는 지도자와 함께 수백만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거주하는 그 땅에 곧 도달한다는 소식에 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싸우겠다는 의지를 상실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넋이 나간 상태 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구원의 대 드라마요 대서사시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역사를 단순히 한 나라의 역사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건 이면에 숨겨져 있는 영적인 교훈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해석 방법에는 유형론적(typology) 해석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애굽은 이세상, 애굽의 왕 바로는 이세상의임금인 사탄, 홍해를 건너는 사건은 세례, 광야 40년은 이 세상을 상징하고, 가나안 땅은 천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천국을 가기 위해 첫 번째 우리 앞에 놓여있는 가장 큰 장애물이 여리고성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데 이것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지 않고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입니다. 이 성을 점령해야 합니다. 이 성을 무너뜨려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시간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뭔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우리 앞에 여지없이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나타납니다. 그게 가족일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일 수 있습니다.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물질이나 명예일 수 있습니다. 우리자신 일 수 있습니다. 직장이나 상사 일 수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자랑이나 인기나 편안함 일 수 있습니다. 불순종이나 불신앙 일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부정적 생각이나, 과거에 받았던 마음속 깊은 상처 일 수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불신 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현실적인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포기하고 주저앉고 마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 보면, 신앙생활은 또 하나의 보이지 않은 전쟁입니다. 마귀와 하나님과의 전쟁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전쟁터에 서 있습니다. 벌써 우리교회가 영적인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때부터 마귀는 자기 진영의 사람들을 단속하기 시작합니다. 벧엘 교회에서 이번에 미션 153운동을 한다고 하지, 아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고 언제 쯤 찾아 올 텐데 마음의 빗장을 잠그도록 미리 준비 시킵니다. 그래서 그 날에 찾아오면 헛수고 하고 헛발질 하도록 말입니다. 괜히 바쁘게 하고 짜증나게 합니다. 그래서 전도자가 가면 피합니다. 우리는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시달리는 것과는 달리 그것은 우뚝 버티고 서서 우리를 비웃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려는 선한 일을 포기하게 하려는 사단의 성입니다. 여러분!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왜요?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몇 번 가자고 해서 오지 않습니다. 이걸 아셔야 합니다.
따라서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은 것처럼 이미 전세는 우리에게 기울어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전진해야 합니다. 그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은 약속의 땅으로 행진하는데 있어 이스라엘이 직면한 현실이었으며, 피하거나 지나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2. 외치라 하는 날에 외쳐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 성은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2절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내 손에 넘겨주었으니 라고 말씀하시면서 여리고 정복의 함락작전을 지시 하십니다. 하나님의 작전은 우리의 군사상식을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모든 군사가 그 성을 돌되 매일 하루에 한번 씩 엿새 동안을 도는데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고, 일곱 째 되는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되 길게 불어 그 나팔소리가 들릴 때에는 큰 소리로 외쳐라 그러면 성벽이 무너질 것이니 백성들은 각기 앞으로 올라 갈 것이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를 군대장군인 여호수아는 곧 바로 백성들에게 하달합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니 그들이 지시한대로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가며 언약궤 뒤는 후군이 따르며 행진하게 됩니다. 저는 군대에서 보병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행군대형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법과 거의 유사합니다. 군대에서 훈련할 때 행군시 앞에 적전의 상황을 미리 살피고 보고 하도록 하기 위해서 첨병을 앞에 세우면서 행진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본대가 따릅니다. 10절에 여호수아가 이르기를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행군 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애기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적에게 노출되는 군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만, 영적인 숨은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한 전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난공불락의 성인 여리고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루에 한번 씩 성 주위를 돌다가 마지막 날에 7번을 돌고 한 목소리로 크게 외치라 할 때 외치면 그 철옹성이 무너진다고 하니 이해가 되는 말입니까? 안됩니다. 누가 보아도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전술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달하니까 그 앞에서는 말을 못하지만, 행군하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 이 방법은 아니야! 싸우나 마나 패할 건 뻔 한 일이야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돌기 시작하면, 전체에 영향을 미처 사기가 떨어지고 진짜 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전투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요, 사기입니다. 사기가 저하되면 최첨단 무기도 뛰어난 전술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알고 부정적인 말이 지배하지 못하도록 침묵을 강요한 것입니다. 사실 전투에 있어서 하급병사들 까지 전술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병사들은 지휘관의 명령을 잘 따라 주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행군대열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맨 앞에 무장한 자들, 그리고 일곱 제사장이 일곱 양각 나팔을 불고 행진하며, 그 뒤를 언약궤가 따르고 그 뒤를 백성들이 따르게 됩니다. 이 대형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언약궤와 일곱 제사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하나님은 제사장과 언약궤를 앞세웠습니다. 제사장은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인도자인 목사입니다. 언약궤는 그 안에 말씀을 상징하는 십계명인 두 돌판, 말씀의 떡인 만나, 영적인 질서를 상징하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 즉 세상에서든지, 영적 전쟁에서든지 중요한 것은 영적 지도자와 하나님의 말씀에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실패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권위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군에서 뒤처지지 않고 똑바로 갈 수 있는 길은 앞에서 인도하는 양각나팔을 부는 제사장과 그 뒤의 언약궤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길을 잃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측하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승리하는 길은 영적지도자의 지시를 받고 말씀에 순종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결코 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생각할 때 납득되지 않고 이해가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접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15절에 여섯 째 날까지 돌고 마지막 일곱 째 날에 새벽에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날에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여러분! 수백만의 사람들이 일곱 바퀴를 돌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요? 온 종일 돌고 새벽까지 돌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길게 나팔을 불 때 여호수아가 이렇게 외칩니다. 여호와께서 이 성을 주셨느니라. 그리고 이 성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라고 말하면서 바친 물건에 대해서 손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된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께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리고성은 가나안 땅의 첫 번째 점령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잠 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느 10:35 해마다 우리 토지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첫 번째 성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21절에 그 성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이 성을 멸한 것은 그 안에 있던 것들이 범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난공불락의 성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방법으로 차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있던 은금과 동철은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누리고 있고 소유한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섬김이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말이나 경험이나 지식을 앞세웁니다. 영적 지도자의 말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기도하셔야 합니다. 전도하셔야 합니다. 잘 받아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3.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 세상에 난공불락의 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극복할 수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1930년대 미국에 대공황이 왔을 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두려움 그 자체이다. 라고 했습니다.
본문 20절에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그 성을 점령하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철옹성처럼 견고한 성이 최첨단 무기에 의해서도 아니고 군대에 의해서도 아니고 어떻게 성주위를 하루에 1번씩 6번, 그리고 마지막에 7번, 도합 13번을 돌고 한 소리에 외칠 때에 무너져 내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견고한 성이 무너진 배경이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0절에 이를 증거 하기를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했습니다. 승리의 비결은 바로 믿음입니다. 여리고를 함락시킨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신뢰한 결과입니다. 본문 2절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난 이후에 반드시 그의 믿음을 거론하시고 칭찬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 40-56절에 보면 거기에 두 사람을 치료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치료하러 가는 도중에 혈루 병에 걸린 여인을 치료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의 간절함을 보시고 주님이 치료해 주시는데 치료하시기전에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또한 죽은 회당장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습니다. 성경곳곳에는 큰 믿음 겨자씨만한 믿음 살아있는 믿음을 강조 합니다. 이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것은 여호수아 지도자와 제사장, 그리고 백성들의 하나 된 믿음이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고고학에 따르면 여리고가 무너진 것은 갑작스런 지진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위해 땅의 지각변동이 수단으로 동원된 것입니다. 자연재해는 하나님의 심판도구입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그 당시 지진으로 무너진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보통은 적들이 밖에서 여러 가지 병기, 사다리나 철제무기를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성벽이 안쪽으로 무너져 있는데 이 여리고 성은 성벽이 안에서 바깥쪽으로 기울어져 밖에 있는 사람들이 무너진 벽을 계단으로 사용하여 올라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안쪽으로 무너졌으면 성이 높아서 성안으로 진입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성이 그렇게 함락되는데 여리고성은 바깥으로 무너져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지진에 의해 무너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 지도자의 지시에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13번 성을 도는 동안 하나님은 지진을 준비하시어 심판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6장 24에 보면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라고 되어있습니다. 고고학자에 의하면 1m 정도의 두께나 되는 탄재와 그 흔적들이 나오는 층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가장 특이한 사실은 그 탄것 들 중에 곡식이 가득 담긴 저장 항아리들이 많이 발견되는데 만약 가나안 전쟁을 계속 치러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중요한 군량미를 다 태워 없애 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고 상식적으로 난센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한 해답이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그 바친 어느 것이든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여호수아 6장 17-18 즉 여리고성의 함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믿음의 표현으로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역사적 기록을 남겨 놓으신 것은 여리고 성을 다시 건축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6장 26절에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열왕기상 16장 34절에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하였습니다. 성지 순례 때 여리고 성을 가보았습니다.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여리고 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고 후대에 영영한 교훈을 삼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 앞에 어떤 난공불락의 성이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영적지도자의 지도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2011년 4월 3일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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