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VIP ( 마태복음 18장 1-6, 막 10장 13-16)
하루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 에 대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가이 사랴 빌립보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대답했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셨고, 변화산상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신령한 세계를 체험 하였고, 그리고 많은 환자들을 치유하시고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닐 때 장차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할 것을 예상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앉게 된다면 자신들은 자연스럽게 중요한 요직을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는 어린아이처럼 미성숙하고 불완전하고 무지한 자가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들의 좋은 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가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영국의 유명한 계관 시인인 워즈워드(W. Wordsworth)는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시적 표현을 통해 모든 어른들이 바라보아야 할 모델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천국의 주인공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순수함을 가진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어린이의 지식의 정도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 성품에 있어서 순수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천사와 같은 마음과 같아서 구김살이 없고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의 미소를 보십시오. 얼마나 해맑습니까?
어느 책에 교회학교 어린이들이 쓴 기도문이 있어요. 몇 가지만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 요나와 고래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고래가 요나를 한 입에 삼켜버렸대요.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처음이에요. 그런데 하나님, 우리 아빠는 이 이야기가 뻥이래요. 정말 못 말리는 아빠예요.”
어떤 아이는 이런 기도문을 썼어요. “하나님, 우리 옆집 사람들은 맨날 맨날 소리 지르며 싸움만 해요. 우리 친구들은 사이가 아주 좋은 사람끼리만 결혼하게 해 주세요.” 어떤 아이는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지난주에 뉴욕에 갔었는데, 성 패트릭 성당을 보았어요. 하나님은 아주 으리으리한 집에서 사시던데요.” 이번에는 아마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인 것 같아요. “하나님, 왜 한 번도 텔레비전에 안 나오세요?”
이런 기도를 들으시니까 어떠십니까? 에이 유치하다. 이런 생각이 드십니까? 아니면 나도 저런 기도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그런 기도는 어릴 때에 하는 것이지 하고선 무시해 버리십니까?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다윗도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춤을 추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의 이 모습을 기뻐했지만 그의 부인 미갈은 왕이 체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가 저주를 받아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순수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3살짜리 여자아이와 4살짜리 남자아이가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둘은 서로 함께 놀면서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네 살짜리 남자아이가 세 살짜리 여자아이가 마음에 들어서 손을 덥석 잡았어요. 그러니까 세 살 짜리 여자아이가 깜짝 놀라면서 손을 뿌리칩니다. 그 때에 네 살짜리 남자아이가 태연하게 말합니다. “왜 이래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신앙생활을 보아도 예전이 좋았던 것 같아요. 교회 가는 발걸음이 순수했어요. 교회에서 무슨 행사라도 하면 기다려지고 준비하면서 지냈습니다. 부흥회라도 할 때면 한 달 전부터 은혜를 사모하고 준비했습니다. 은혜받기위해서 시간을 조절했습니다. 눈물도 많았어요. 12월이 되면 성탄절 때문에 흥분했어요. 성탄절 이브를 준비하느라고 밤을 지새가면서 정성을 다 했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뜨겁고 열정적이었던지 모릅니다. 그만큼 순수하고 즐거웠고 감동이 있었고 예수 믿는 기쁨과 행복이 있었습니다.
옛날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제적으로는 어렵기는 했어도 그 때는 사는 모습이 순수했어요. 소박했어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어우러져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맛이 있었어요. 함께 울고 함께 웃고 그야말로 사람 냄새를 맡으면서 살았어요. 사는 모습 자체가 순수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시대가 발전하고 경제적인 것이 중요시 되다 보니 사람들 가운데서 정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3-40년 전만 해도 이웃끼리 정이 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게 별로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 욕심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만족을 몰라요. 끊임없이 더 가질 려고 하고 경쟁하며 삽니다. 그러니까 피곤합니다. 지쳐 있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안성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사람들이 말합니다. 안성이라는 곳이 아주시골도 아니고 도시도 아닙니다. 그래서 예전엔는 밭에서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것이 여유가 있으면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서 먹고 했다는 것입니다. 인심이 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안성 장터에 나가서 물건을 내다 팔면서 돈을 만지게 되면서 인심이 박해졌다는 것입니다. 짜투리도 남기지 않고 내다 팝니다. 순수함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순수하지 않으면 은혜 못 받습니다. 예배드리려면 헌금해야지 부흥회 하면 헌금해야지 절기 돌아오면 헌금해야지 이런 계산을 하고 있으면 순수함이 사라진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도 순수해야 받습니다. 천국의 주인공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2. 자신을 낮추는 자입니다.
마태복음 18장 4절에는 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명예에 관심이 없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먹을 것을 주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잘 듣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사람은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 겸손한 자입니다. 심리학자인 아브라함 머슬로우에 의하면 인간은 5가지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기본적인 생리적인 욕구가 해결되면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습니다. 소위 사람들은 먹고 살만하고 부를 축적하게 되면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기를 원합니다. 자신을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유명인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정치에 뛰어 들어 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어디 존경 받습니까? 그래도 정치인이 되겠다고 나섭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스폿 라이트를 받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집중되면서 부를 움켜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신분에 따라서 위치와 자리가 정해져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우리나라 시간으로 저녁 7시에 영국의 성공회 성당인 웨스트 민스트에서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불리는 윌리암 왕자와 평민인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이 진행 되었습니다. 예배와 강론, 합창대는 신부 입장 때 웨일즈 상징곡인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오, 당신은 위대한 구세주'를 불렀다. 평민 여성과의 결혼은 1660년 이후 350년 만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 20억 명의 사람들이 TV로 지켜 봤습니다. 이 결혼식을 지켜보기 위해서 성당 앞에 텐트촌을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웨스트 미스트 사원 안에 초청된 사람은 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총리 부부를 포함하여 축구스타 베컴 팝스타 엘튼 존 등 1900여명이 초청되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초청되지 않았습니다. 왕족의 전통에 따른 것이라 합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케임 블리지 공작’ 리라는 작위와 왕 자비라는 칭호를 가졌다고 합니다. 옷의 색깔에 따라서 신분을 나타냅니다. 신분에 따라 앉는 자리가 달라집니다. 세상은 높은 사람, 지식이 많은 사람, 경제력이 있는 사람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그런 사람이 VIP입니다. 하지만 하늘나라는 정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낮은 자에 있습니다. 겸손한 자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우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런 분이 하늘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그것도 가장 작은 나라인 이스라엘, 그리고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빌2:5-7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면서도 낮은 자와 함께 하셨습니다. 가난한자, 병든 자, 힘없는 자, 고통당한 자, 힘없는 여자와 어린이와 함께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주시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위에서 버리심으로써 철저히 낮추셨습니다. 주님은 자기비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늘영광의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한 한국교회는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자리싸움에 여념이 없어서 세상 사람들의 질타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국민일보에 광고 난에 보면 목사님들이 얼마나 자리를 탐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무슨 총재니, 무슨 회장이니, 그 얼굴이 그 얼굴인데 도대체 별것도 아닌 명예에 그렇게 욕심을 내는 지 알 수 없습니다.
이번에 한기총 회장 자리를 놓고 다투는 양상은 정치판의 진흙탕 싸움하고 별다를 게 없습니다. 혹자는 한기총회장이 되면 대통령이나, 유명정치인들이 내방을 하거나 초청하는 자리일 뿐 아니라, 높은 사람들과 식사하면서 교제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낮은 자리에 서서 낮은 자와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이 높은 자리만 탐하고 높은 곳만 바라보니 주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가만히 보면, 교회가 크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교만해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배워서 그런지 조금 큰 교회 다니는 직분자 들도 보면 예외가 아닙니다. 직분은 섬기라고 준 것인데 계급장 단 것처럼 행세 합니다. 그러니 불신자에게 어떻게 비치겠습니까?
대게는 심리학적으로 보면, 자신이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을대단한 사람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속이 꽌 찬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이자익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경남 남해 작은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스스로 김제의 부자 집에 찾아가 머슴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사로부터 전도를 받아 그 자신은 물론 주인집까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인 조덕삼과 함께 금산 교회를 설립하게 됩니다. 금산교회에서는 1908년에 주인인 조덕삼과 머슴인 이자익을 사이에 두고 장로 투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투표 결과 이자익이 장로가 되었습니다. 곧 교회 분위기가 서먹서먹해졌습니다.
이때 자기 집 머슴이 장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덕삼은 일어나 “성도 여러분! 참 감사합니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봉사하기가 어려운데, 젊은 이자익 영수를 장로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어 섬겨서 교회를 부흥시킵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에 교인들이 감동을 받아 그 다음해에 조덕삼 영수도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장로를 평양신학교에 보내어 목사가 되게 했습니다. 이자익 장로는 이러한 조덕삼 장로의 후원과 도움으로 장로교 분열 이전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한 큰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큰 교회의 청빙을 거절하고 작고 연약한 시골교회를 지키셨습니다. 친구 목사 함태영 부통령이 장관직을 제의했지만 거절하고 시골 목회자로 한국 장로교회의 건설자로 일했던 존경받는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늘 초심을 잃지 않으며 겸손한 삶을 살았던 두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시대에 높은 자리만 을 탐하고 교회 사이즈 자랑하고, 교인 수 과시하는 이 시대에 귀감이 되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작은 자에게 있습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그 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3.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자입니다.
마가복음 10장 13-16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많은 아이들을 데려 왔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예수님께 나아 왔을 때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피곤한 상태이기 때문에 주님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크게 꾸짖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셨을 당시 주변에 아이들이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리로다. 이 환호 속에도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섬기는 일에 있어서 순수 하지 않습니다. 겸손하지도 않습니다.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일을 하면 나에게 얼마만한 도움이 올 것인지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일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거부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순수합니다. 손익을 따지지 않습니다. 단순 합니다. 그저 전하는 대로 잘 받아들입니다. 아마도 예루살렘성에 입성할 때 길 바닥에 옷을 깔고 종려나무를 깔았던 사람들 가운데 아이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가끔 식 교회행사시 작은 교회에 가보면 아이들이 나와서 안내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렇듯 아이들은 하라는 대로 잘합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사건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도시락을 가지고 온 사람이 어린아이 하나뿐이었겠습니까?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미처 도시락을 내놓을 만한 믿음과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어린아이는 거리낌 없이 예수님 앞에 자신의 먹을 한 끼 식사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이 아이의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반면에 누가복음 18장 17-25절에 보면 어떤 관리가 예수께 나와서 묻습니다. 선한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 때 네가 계명을 지켰느냐 ? 물었더니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잘 지켜 왔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대단히 종교적이고 모범적인 신앙인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후에 네가 한 가지 부족 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런 다음에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이 부자 관리는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준다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지식이든, 물질이든, 재능이든 기술이든지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주변에는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나 가난한 나라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주고 섬길 때, 다시 말하면 봉사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삶이요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을 섬기기보다는 다른 사람들 위에 지배하고 군림하기를 원합니다.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할 뿐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우리나라고 자원봉사 활동이 많아 졌습니다만, 자원봉사 활동, 즉 돈을 받지 않고 하는 봉사할 때 최고의 엔돌핀이 나오고 건강해 진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고 섬기는 삶입니다. 이따금 청주 의료원에 가보면 자원봉사 하시는 권사님이나 집사님들을 만나게 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닙니다.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시는 모습을 볼 때 감동을 받습니다.
지난 4월 29일 금요일 국민일보 미션 광고 난에 히말라야 슈바이처 가난하고 병든 자가 있는 곳은 어디든 간다!! 강원희 의료 선교사의 책 광고가 나와 있었습니다. 이분은 현재 78세인데 자기 부인과 함께 히말라야 네팔에서 의료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6,25때 이북에서 피난 내려와 한국전쟁의 비참함을 경험하고 세브란스 의대에 진학한 강원희 선교사. 슈바이처의 전기를 읽고 감동을 받아 틈만 나면 무의촌(의사가 없는 지역) 진료를 하며 6,25때 전사한 장병과 조선에 와서 순교한 많은 선교사들이 베푼 사랑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병원 개업 후 손님이 차고 넘쳐 엄청난 돈을 벌지만 가슴 한편이 허한 것을 느끼던 중 1982년 49세 되던 해 고 한경직 목사님의 권유로 당시 최빈국이라 할 만큼 의료나 모든 면이 낙후되어 있던 네팔 히말라야로 선교의 첫발을 내디딘다. 자신의 피를 수혈하여 중환자를 살려내고, 환자가 퇴원하면 식료품을 사 들고 가서 섬기는 그를 현지인들은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네팔 에디오피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등 땅 설고 낯설고 물 설은 오지에서 오직 예수 사랑가지고 30년 동안 봉사의 삶을 살았으며 2000년 연세의학대상, 2002년 MBC 사회봉사 대상등을 수상했으며 2011년<소명 히말라야의 슈바이처>에 출연하여 지난 4월7일 개봉한 '소명3-히말라야의 슈바이처'가 개봉 첫 주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4위를 기록하며 선전하고 있다. 강원희 선교사는 히말라야 등 오지를 돌며 ‘어떤 상황이든 환자는 약자다’라는 마음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산비탈을 오늘도 그의 부인과 함께 오르고 있습니다.
돈만 아는 사람이 부유하게 살수는 있으나 남의 존경이나 사랑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섬기고 봉사하는 삶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삶이요, 가장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입니다. 주님은 일평생 가난한 자 병든 자 멸시와 천대 받은 자를 위해서 사셨을 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누가 천국에서 VIP가 될 수 있습니까?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순수한자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면서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식, 지혜, 물질 기술 재능을 가지고 낮은 자세로 하나님과 교회, 이웃과 세계를 섬기므로 하나님나라의 VIP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5월1일>
'.........은혜의 말씀 > ...새믿음의 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 부활 이후 (사도행전1:1-11) (0) | 2011.05.14 |
---|---|
네 부모를 공경하라 ( 엡 6장 1-3) (0) | 2011.05.14 |
부활 (Resurrection) (마가복음 16장1-15) (0) | 2011.04.23 |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 고전 1:18-25) (0) | 2011.04.16 |
주님의 마음을 아십니까? ( 눅: 19: 41-44, 23: 26-28) (0) | 2011.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