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고 행동하라 (Ora et labara) 수3:1-17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눈앞에 둔 여호수아는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로 건너지 아니하고 여호수아는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서 3일을 그곳에서 유숙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요단강은 상당히 긴 강인데 어떤 곳은 그냥 건널 수 있을 만큼 강폭이 좁은 곳이 있는 가하면 보통은 30미터 쯤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는 때는 바야흐로 보리 추수 때인 3.4월경으로 강물이 넘치는 시기였던 것입니다. 잘못 건넜다 하면 거친 물살로 인해 떠내려 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포기 할 수 도 없고 뒤로 물러 설 수도 없습니다.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여정에도 이러한 상황이 다가 올 수 있습니다. 뒤로 물러 설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하겠습니까? 여호수아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갔는지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해답을 얻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자.
여호수아는 곧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3일 동안 그 곳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냥 기다렸을 까요?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갔을 때도 밖에서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여호수아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회막에서 구름기둥 가운데서 하나님과 친구와 같이 대면하여 이야기 하고 있을 때에도, 자기 장막에 들어가서 쉴 때에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사흘을 지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과 주신 약속을 상기하였을 것입니다. 아버지 세대가 실패한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두었다는 설렘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 요단강을 어떻게 건너야할지 하나님께 물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갈 길을 보여주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조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조급하게 하다 보면 일을 망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 도하라는 막중한 사명을 앞두고 3일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서둘러서 일을 망치는 사람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늦게 온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제사장 사역을 대신 함으로써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 될 까지 쉽게 행동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을 때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그것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백성들보다 먼저 요단강을 건너라는 것입니다. 암브로시스는 “교회의 무기는 기도이며 기도는 적을 굴복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난관에 부딪칠 때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여호수아처럼 기도하면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자신을 성결케 하자.
지금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에 앞서서 요단강이라는 예기치 않은 난관을 만난 것입니다. 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광야 40년의 고생이 무로 돌아 갈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 요단강이라는 난관 앞에서 하나님의 군대장관인 여호수아의 지략과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니면 전술이나 전략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이성과 상상을 뛰어 넘은 제안을 하십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전쟁하고는 상관없는 방법을 요구하십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5절에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인데 그게 아니고 “성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전쟁하고 ‘성결’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이죠, 관계가 있습니다. 이 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닌 가나안 족속의 신과 이스라엘의 신 ‘야훼’와의 전쟁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거룩한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전쟁에 임할 용사들은 먼저 ‘거룩’해야 합니다. ‘성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여호와의 산인 호렙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뵈올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요구 했습니다. 제 삼일에 구름이 빽빽한 가운데서 나타 날 것인 즉 백성들은 자신을 성결케 하고 옷을 빨고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에 참여할 군사들은 먼저 거룩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11:4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니라” 베드로 사도는 1장15-16에서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할지어다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전쟁에 나가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은 영적 전장 터에 서 있는 군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엡6:12절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
이렇게 까지 성경이 ‘성결’을 강조하는 것은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고 이 전쟁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도 ‘성결’해야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첫 번째 조건은 ‘성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상2장에 보면 엘리의 제사장 가문에 두 아들이 있는데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불량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한나가 기도하여 얻은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성전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에봇을 입었더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구별된, 성별된 삶을 살았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암울한 시대에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던 것은 그가 어렸을 적부터 구별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던 다니엘과 세 친구도 그곳에서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는 자리에 가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세를 잃지 않고 우상의 제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절하지도 않고 하루에 세 번 씩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루에 세 번 씩 왕의 어인이 찍힌 줄을 알면서도 자신의 조국을 향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욥기서 1:1-5절에 보면 욥은 동방에 큰 부자로서 의인으로서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난 자라고 했습니다. 이 욥에게 열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욥의 생일이 되면 아들들이 아버지를 위해서 생일잔치를 크게 차려 주었습니다. 아버지 생일이니까 이웃과 친척을 불러서 풍악을 울리고 술대접도 했습니다. 그런데 생일잔치가 끝나고 나면 욥이 자기 아들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아들들이 생일에 범죄 하여 하나님을 배반하였을 까 하여 아들들의 수대로 성결케 하는 제사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2장10a에서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첫 번 째 요구 되는 것은 ‘성결’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이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을 ‘성결’케 할 때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앞세우고 말씀을 따르자.
3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현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 두 돌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그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십계명 두 돌판은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에게 호렙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이고, 만나는 광야40년 동안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으로 이것 역시 영의 양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 것이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영적인 권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언약궤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궤를 앞세워 나가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모든 일에 앞세우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2대왕 다윗이 일개 천한 목동에서 왕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기 왕궁에 하나님의 법궤가 오벧 에돔의 집에서 돌아 올 때 어떻게 했습니까? 법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발자국 옮기고 난 이후에 숫 송아지 7, 숫양7으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과 나팔을 불면서 하나님의 법궤, 언약궤가 들어오는 것을 환영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은 백향목 왕궁에 거하는 데 하나님의 궤는 천막에 있다고 하면서 그가 법계를 모실
성전을 짓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세상의 위대한 사람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고 다윗의 왕위가 무너지지 않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을 앞세웠습니다. 하나님을 우선순위의 첫 번 째 였습니다. 시편16:8절에서도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을 앞세운 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 힘과 내 재주와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방법과 지식을 의지한다면 실패 할 수밖에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요단강은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는 하나님께서 다 갈라놓으시고 건너게 하셨지만 여기 요단강은 먼저 제사장들로 하여금 강물이 넘실거리는 물을 믿음으로 밟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입니다.
요단강을 돌파 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의 상징인 법궤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누구를 의지 합니까? 사람이나 권력을 의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죽은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는데 백성들이 모세만큼 따라주지 않습니다.
모세의 능력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를 따랐던 것처럼 여호수아를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 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요단강이 놓여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언제나 앞세우고 하나님을 높여 드리시기 바랍니다.
4. 기도하고 행동하라.
8절“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물이 언덕에 넘칠 정도로 가득한 때, 제사장들로 하여금 요단강에 들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강물이 넘칠 때 강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로 하여금 강물에 들어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명령을 받은 제사장들은 믿음으로 요단강을 밟을 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위에서 내려오던 물이 끊친 것입니다. 발이 물이 닿자마자 요단강 물이 갈라졌고 요단 강물이 둑처럼 쌓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마른 땅을 건너갔습니다. 요단강 들어서고 한 가운데 한 동안 제사장들이 서 있었고 그리고 그 뒤로 백성들이 다 건널 때 까지 서 있다가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필이면 보리를 거두는 때 물이 가장 넘칠 때 건너가라 하셨을 까? 그것은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함인 것이다.
우리에게 요단강 같은 난관에 부딪칠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저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신앙은 행위를 동반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 요구 아닌 요구를 먼저 했습니다. 하나님! 응답 해주시면, 축복해 주시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홍해신앙이 아닌 요단강의 신앙, 성숙한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요단강을 내가 먼저 밟을 때 기적이 일어난 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께 희생하고 헌신 할 때 내 앞에 놓인 요단강은 갈라지는 것입니다. 헌신이 무엇입니까? 라틴어로 “맹세하다”라는 뜻으로 그 분께 자신을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며, 그것은 절대자 되시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의지가 수반되는 것이며, 미덕에 속하며 거룩한 예물이며 향인 것이다.
기독교 2000년 교회사 가운데서 기독교 영성을 대표하는 수도원이 있습니다. 베네딕트 수도원입니다. 베네딕트는 수도 생활에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는데 정주생활, 수도자다운 생활, 아빠스에게 순명함인데 정주란 수도원에 한 번 들어와 서원하면 다른 수도원으로 옮길 수 없다는 것이고 수도자 생활이란 회개의 삶을 약속하고 세속적인 삶과는 이별을 한다는 뜻이고 수도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완덕의 길로 가는 것인데 영적 아버지인 아빠스를 중심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베네딕트 수도원의 중요한 용어는 ‘Ora et labara’인데 이것은 ‘기도하고 행동하라’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루터는 “믿음이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하여 행동하며 사회를 위한 변화이며 사회에 대한 책임과 연관이 되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옛 아담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영과 마음과 생각들을 모조리 바꿉니다. 믿음은 성령의 임재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믿음이야 말로 살아 있고 창조적이며 활동적이며 힘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선한 일들을 계속하도록 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동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선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치 불에서 빛과 열을 분리 할 수 없듯이 믿음과 선행을 분리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기쁨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을 섬기며 모든 일을 감수하고 그와 같은 은총을 보여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께서 믿음이 역사하도록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기적을 창출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 앞에 어떤 어려움이나 난관이 있다 할지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성결케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앞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나가가십시오 요단강은 갈라지고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2022년 11월6일 청주새믿음교회 정영진 목사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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