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마1:18-25
12월은 1년 중 마지막 달이면서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지 2020년이 되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달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이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대강절’, 혹은 ‘대림절’이라는 절기 이름을 붙여 주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서기 350년 로마의 주교 율리우스에 의해 선포 된 이후로 계속해서 내려 왔습니다. 12세기에 성탄절에 선물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크리스마스트리와 카드는 19세기에 와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20세기에 와서 성탄절이 세계적인 축제일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을 즐기고 있습니다. 거리에는 성탄절 트리와 케롤송들이 울려 퍼지고 성탄절 카드를 주고받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연호 가운데 BC와 AD은 예수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중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로마의 율리우스력에 예수님의 수태가 3월25로 되어 있어서 9월 달 후인 12월25일로 정해진 것인데 오늘날 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탄절은 예수탄생의 진정한 의미는 퇴색하고 젊은이들이 연애하는 시간, 방탕과 타락의 시간으로 변질시켜 거룩한 날을 세속적인 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탄생기사를 마태가 적은 것인데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성령으로 태어나셨다.
본문은 예수님의 탄생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18절에 “예수님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여기에서 마리아는 요셉하고 약혼하였으나 동거는 하지 안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약혼은 결혼하기 전에 1년 동안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얼마 있으면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와서 결혼할 배우자인데 그 사이에 마리아의 배가 불러 온 것입니다. 그 당시 율법에 의하면 배우자가 임신하면 돌로 맞아 죽던지 아니면 이혼증서를 써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의 배우자인 마리아가 배가 불러 온 것을 알면서 두 번 째 방법을 택해서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난리를 쳐서 마리아를 죽음에 내 던져 질 수도 있을 것인데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조용하게 이 일을 처리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조용하게 이 일을 처리 하려 한 것은 마리아에게 불이익을 주려 하지 않고 따지려 하지도 않고 그의 허물을 덮어주고 이 결혼을 포기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20절에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잉태되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남자 없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요셉은 마리아와 동거하기 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안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임신하였습니다. 처녀가 아기를 가질 수가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리아는 아이를 갖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 교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정녀 교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동정녀 탄생을 부인 합니다. 하지만 21세기 최고의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남자의 정자 없이 아이가 태어난 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이 필요한 것인데 그게 “성령의 잉태”입니다. “성령의 잉태”여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질병과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죄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정욕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 “성령의 잉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태초에 만드실 때에도 이 세상은 무주공산의 상태로 흑암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신, 성령이 운행하시므로 혼돈되고 무질서한 세계가 질서가 유지되고 조화로운 세상. 사람이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신인 성령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인 ”성령“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또한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해야 인간을 구원할 구세주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욕으로 태어난 자가 어떻게 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될 수 있습니까? 죄인은 죄인을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정욕으로 태어나지 아니 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만이 인간의 구원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잉태 되고 탄생한 예수만이 인간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데도 오늘날 이러한 기독교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희괴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사상이 나와서 문학. 예술, 건축, 종교 등 다방면에 걸쳐서 기독교가 말하는 절대 진리를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하면서 예수만 구원이 있는 게 아니고 석가모니 공자, 맹자, 마호멧트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치않습니다. 이들은 인간의 정욕으로 죄 가운데 태어 난 자들이기에 인간의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메시야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만이 인간의 구세주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거룩한 신성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이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지진이 나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로다“라고 고백하였다. 요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갈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2.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이 말은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든든하고 위로가 되는 말입니까? 내 주변에 힘이 될 만한 사람이 있으면 든든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은 신이 인간이 되신 사건입니다.
왜,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야 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범죄 하였기 때문에 그로 인해 인간은 가시밭길을 걷고 고통과 질병과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기에 주님은 이러한 죄 짐으로부터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을 이미 예언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9;6절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2천 년 전에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신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3년 동안 하신 사역을 보면 예수님은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니 하나님이심을 그의 사역 가운데 드러내셨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 문이 열리면서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하셨습니다. 또한 손 마른 자를 고치시고 12해 동안 혈루증 앓은 여인을 고치시고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시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를 내 쫓으시고 열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고 풍랑을 만난 제자들에게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무덤을 깨시고 일어나 부활하시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나타내셨는데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이런 말들을 바리새인과 제사장, 서기관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말하다가 신성모독 죄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시어 우리에게 새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는 것만을 위해서 구하고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삶이 최고의 삶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녹은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살 때 하나님과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찬송가 430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걸어가리“
세상적이고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것을 위하여 살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소유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 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히브리서13:5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 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로 오셨다.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5절에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예수님의 탄생기사에서 요셉이 꿈에 천사의 지시를 받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계시를 받는데 하나는 마리아가 낳을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 된 것이고 둘째는 그 아이의 이름이 “예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아이의 이름에 대하여 설명해 줍니다. 그 뜻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라고 하는 이름 속에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하는 것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는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 구세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죄에서 구원 할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 날 사람들은 죄라고 하는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대신 인권이라 말을 듣기 좋아합니다. 사람의 인권만이 아니라 동물의 인권이 더 강화 되는 세상입니다. 물론 사람의 인권도 중요하고 동물의 생명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오늘 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험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이유는 인간의 ‘죄성’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부패하고 도덕적으로 문란한 것은 바로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악의 근원이 ‘죄’인데 어떤 종교나 철학이나 윤리나 도덕도 ‘죄’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 오늘 현대의 문명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양심에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치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불신앙,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 ,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는 것, 주일을 성수하지 않는 것,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 부모를 대적하는 것,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 이루 말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의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구원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면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기쁜 소식 입니다. 예수라고 하는 이름의 뜻이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이천년 전에 오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죄를 해결해야 만이 천국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동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2:10-11에서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유일한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만이 인류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사도행전4:11-12 새 번역에 “이 예수는 너희들이 짓는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은 돌이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주와 많은 종교와 사상과 철학들이 있지만 이것들이 인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영생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 위해서 피흘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어 회개하고 구원받으면 천국 백성이 될 수 있고 영생을 누리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대강절을 맞이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이천년 전에 오신 아기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하셨기에 죄가 없으시고 그러기에 우리를 구원할 구원자되시며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고 예수님과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셔서 영생을 쟁취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년12월6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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