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5장1-12, 하나님 백성의 표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큰 난관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 제사장에게 언약궤를 매어 앞세우고 나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이 때, 넘치는 요단강물이 그쳐서 제사장들이 요단강을 마른 땅을 걸어가듯이 건너가게 되었고, 그 지역에 열두 돌을 기념하여 기념비를 세웠는데 그곳이 길갈이라고 하는 평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넌 후에 이곳 길갈에 주둔하였습니다. 길갈은 여리고에서 북쪽으로 3.2km 지점에 있습니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서, 여리고 동쪽 약 3.7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 ‘키르벳 엔니틀레’라고 하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길갈은 후에 이스라엘 초대왕인 사울이 왕관을 처음 쓴 장소이기도 합니다.
길갈이라고 하는 말의 뜻은 히, ‘갈랄’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뜻은 ‘굴리다’, ‘없애다’라는 뜻으로, ‘애굽의 수치가 굴러가게 하였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곳에서 두 가지 큰일을 시행하였는데 하나는, ‘할례’이고 다른 하나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유월절 의식’을 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있던 가나안 백성, 수5장 1절에 보면,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요단강이 말랐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의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적군이 정신이 없고 당황 할 때, 곧 공격 앞으로 해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아주 좋은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으나, 여호수아에게 말하기를 5장 2절에서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을 앞에 두고 할례를 명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에 광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행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 어떤 이유로 안 했는지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표지인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아브람이 99세 된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시면서 언약을 세우십니다. 그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꾸어 주시면서 아브라함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겠다고 하시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런데 언약의 표징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셨습니다. 17장,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대대로 이 “할례”를 명하셨는데, 모든 이스라엘 남자 뿐 아니라, 이방사람으로서 돈으로 산자도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도록 하셨습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이든지, 돈으로 산자든지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내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례”란 영적인 상징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할례”는 자신의 신체의 주요부위에 흔적을 내는 것입니다. 오늘날 로 쉽게 말하면, 남자 아이의 성기의 표피를 제거하는 포경수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결의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할례”를 하필이면, 가나안 땅의 적군이 있는 코앞에서 행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할례”를 행할 것이었으면, 조금 더 일찍 행하든지, 아니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나서 행하여도 될 것인데, 바로 적군이 눈앞에 있는 곳에서 하나님은 “할례”를 명하시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할례”에 대한 중요한 영적의미가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출애굽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 처음 아브라함에게 “할례언약”을 맺으실 때, 만약에 이 “할례”를 지키지 아니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할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할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입니다. 즉, “할례”라고 하는 것은 “정결의식”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할례”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표지로서 이방인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구별”하는 표입니다. 그러기에 초기 유대교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는 것만으로 구원 받을 수 없고 반드시 기독교 공동체에 들어오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한 것입니다. 바울은 롬2:29절에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하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뜻은 육신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 즉, 마음이 정결해야, 생활이 정결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할례”란, 하나님의백성과 이방인들과의 “구별”하는 표식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성별의식” 즉, “할례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소리쳤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수3,5절에서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하였습니다.
즉,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표지는 “성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별”이라고 하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별”이라는 말로 표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거룩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마치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할례 없이”그렇게 살아온 삶을 이제 청산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함을 주지시켜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길갈에서 “할례”를 명하신 것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들은 “할례”로 “언약”을 맺은 “언약백성”임을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할례정신”, 혹은 “언약백성”임을 깨닫지 않고서는 절대로 가나안 땅을 정신적으로 정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대부분이 광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은 광야에서 애굽에서 태어난 자신들의 부모들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에 대하여 불순종하고, 거역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이미 상실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길갈”에서 “할례”를 요구하시는 것은 이제 과거 광야 40년 동안의 애굽의 삶에서 벗어나서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거룩성”을 가지고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그 땅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대로, 그 당시 가나안 땅의 주인들은 이스라엘 백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철기 문화와 농경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목민 생활을 하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보다는 훨씬 앞선 문화와 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지 않고서는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을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어서 물질문화를 숭배하고 가나안 우상문화에 젖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함을 지키고 야훼 하나님 신앙을 지키고 언약의 백성으로서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하여 “할례”를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할례”는 무엇인가?입니다. 그것은 바울은 골로새서2.11-1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이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바울이 설명한 바와 같이 이 “할례”는 육적 몸을 벗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할례인 “세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할례가 무엇인가? 세례가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스도 없이 죄 가운데 살아왔던 삶을 청산하고, 그리스도로 옷 입는 삶이 “할례”, “세례”인 것이다. 예수 없이 살아온 삶을 청산하고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영적 “할례”인 것이다. 과거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왔던 삶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주님의 구속의 은총을 깨닫고 감사하면서, 하나님나라의 상속자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주님의 구속의 은총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이다.
두 번 째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표지는 “유월절 의식”입니다. 유월절은 우리가 아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바로 왕으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얻은 날입니다. 무려 400년 동안 종노릇 하고 노예생활을 하였습니다. 사람 대접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과 섭리 속에서 모세라고 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그들을 해방시키고 자유를 얻은 날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와 해방이 누구에게서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었는데,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간섭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의 압제와 고통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은 것입니다.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열가지 재앙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았는데, 마지막 재앙이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처음 난 것을 멸하는 재앙이었습니다. 이 마지막 사망이 지나갈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게 유월절 의식인 것입니다.
출애굽기12장1-14절에 보면, 유월절 의식에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불러 말씀하십니다. 아빕월(3-4월) 10일에, 너희 각자가 어린양을 잡아, 그 어린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 컷으로 하여, 14일 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르고, 그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되, 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고 곧 불사르라. 너희는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의 사자가 임하는 그 밤에 애굽의 바로왕의 장자로부터 모든 처음 난 자들이 죽어 애굽에 통곡소리가 가득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 밤에 430년 만에 노예생활을 끝내고 자유와 구원을 얻는 날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유월절 의식이 상징하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유월절 양은 ‘하나님의 어린양’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양의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름으로 죽음이 넘어간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레위기17:11에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즉, 이 피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애굽에 내렸던 죽음의 재앙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피’는 믿는 이들에게 뿌려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한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애굽인들의 생활풍습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월절이 지켜지는 7일은 절대로 누룩을 넣은 떡을 먹어서는 안 되는데, 그것은 누룩은 죄악된 생활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유월절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날만이 아닌,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구원을 주신 날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유월절을 처음 지키고, 그리고 1년 뒤 시내산 아래서 유월적 의식을 지키고 난 이후, 39년 만에 지키는 이 유월절 의식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자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겠습니까?
가나안 땅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 즉 언약의 백성으로의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서 자신의 조상들이 애굽으로부터 해방과 구원과 자유를 얻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유월절 의식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야웨” 하나님에 대한 구원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유월절 의식은 애굽의 노예로 430년 동안 살아왔던 그 고통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의 역사로 해방되었음을 깨닫게 하고 감사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나안 땅을 목적에 앞두고 있는 것은 결코 우리 자신의 힘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요, 은혜였음을 깨닫게 하고 감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결토 우리자신의 노력이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유월절 어린양 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을 통해서 우리가 구속받은 자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구속받는 자로서 은혜를 잊지 말고, 구원받은 자의 감격과 감사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구원의 감격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 찬양할 때 이러한 뜨거운 구원의 감격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은혜가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할례의식” 즉, 정결함, 거룩함, 성결입니다. 다른 하나는 구원받은 자로서, 세상에서 출애굽한 자로서의 구원의 감격과 감사입니다. 이 두 가지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5년 3월 1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주일 설교.
'.........은혜의 말씀 > ...새믿음의 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5:1-12) (0) | 2015.04.09 |
---|---|
마태복음5,1-1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0) | 2015.03.18 |
복 받는 비결(3) (0) | 2015.01.29 |
우리를 부르신 목적 막1: 16-20 (0) | 2015.01.23 |
복 받는 비결(2) 욥기22:21-28 (0) | 2015.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