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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부르신 목적 막1: 16-20

gkffpffndi 2015. 1. 23. 11:44

우리를 부르신 목적 막1: 16-20

 

주님은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는 동안 사탄에게 시험 받으신 이후 승리하셨을 때 천사들이 나타나 예수님을 수종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 세례요한은 헤롯에게 잡혀 감옥에 있을 때입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과 같이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는 복음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그리고 병든 자를 치료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혼자 하실 수 없었습니다. 장차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꾼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모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꾼을 부르는 내용입니다. 주님은 12명의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세계복음화에 대한 귀한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천년 전에 일꾼을 부르신 그 주님은 오늘도 똑같이 일꾼을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우리를 부르신 목적내용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복음의 동역자로 부르십니다.

 

16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님께서 유대나라 갈릴리 지역에 바닷가를 지나가셨습니다. 갈릴리 바닷가라고 하기도 하고. 게네사렛(키네렛) 호수가라고도 하는 곳입니다. 헬몬산에 눈이 내려오면서 갈릴리 호수에 담수호를 이루어 이곳에는 엄청난 양의 민물고기가 많이 있습니다. 담수호인데 바다처럼 넓어서 갈릴리 바다라고도 합니다. 이곳에 유명한 고기가 있는데 베드로 고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도 그곳에 가서 베드로 고기를 기름에 튀긴 것이었는데 상당히 크고 맛이 있었습니다. 2000년 전이나 지금도 그곳에는 어부들이 그곳에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곳에 들르신 것입니다. 그냥 우연히 지나가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자신과 함께 일한 사명자, 즉 동역자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곳에서 첫 번째 동역자인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를 부르셨습니다.

 

누가 부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와대에서 부르면 거절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불러도 영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부르는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3절에서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시며 높은 곳에 계신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분이 지금 부르는 사람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는 많이 배운 지식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자도 아닙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은 부르셨거든요? 뭘 보고 부르셨을 까요?

 

성실함입니다.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하루 종일 일해도 많은 돈을 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서 자신의 가족의 생업을 위해서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 목자들이 들에서 자기의 양 떼를 밤새 이슬을 맞으면서 지킨 것처럼 말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자신의 사명에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이것 하나만을 보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동역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배움이나 사회적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에 신실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주님의 동역 자가 될 수 있습니다. 19절에 세 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뭐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세계복음화를 위한 이 사역이 당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음을 아시고 복음의 동역 자를 찾으신 것입니다. 예수님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후에 베드로가 로마에 복음 전할 때도 베드로 옆에는 바나바와 마가가 항상 있었고 바울도 그 주변에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빌립보서2:19이하에서 바울은 빌립보교회에게 디모데를 보내겠다고 말합니다. 그 뜻은 디모데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신실하고 충성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21절에서 모두가 다 복음을 위해서 산다고 하지만, 자신이 겪은 바로는 복음은 항상 후순위이고 자신의 일을 우선으로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 다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디모데는 복음의 동역자로서 복음을 삶의 최우선으로 삶고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 복음을 위해서 봉사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한 사람을 더 소개합니다. 에바브로디도입니다. 바울은 이 사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의 사역을 위해서 자신이 병들어 죽을 정도로 바울과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라고 칭찬합니다. 아마도 바울이 옥중에 있을 때 에바브로디도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바울을 위해서 수고하였기에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자라고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직원여러분들이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고 봉사하고 협력하는 주의 종의 동역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디모데처럼 복음을 최우선으로 삶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고 헌신하는 에바브로디도 같은 충성스런 일군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꾸려갈 인재가 필요하듯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 6:-8절에 보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환상 중에 천상이 열리면서 하나님이 보좌에 앉으시고 천사들이 그 주변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8절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은 이 시대에 아니 하나님의 교회에 성실한 일꾼, 하나님 나라의 동역 자를 찾으십니다. 혼자 하면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 서너 명만 있어도 힘들지 않습니다. 무엇이 동역하는 것입니까? 성도로서 기본적인 일에 힘쓰면 됩니다. 기도생활에 힘쓰는 일입니다. 예배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올해부터는 주일 낮 예배만 참석하지 않고 오후예배, 수요예배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교회행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관월례회에 꼭 참석해서 교회 일에 함께 참여하고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올해는 이러한 자그마한 일부터 여러분의 교회생활에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고전 3:9에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 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2) 순종하는 제자로 부르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병 고침과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우리는 제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성경 안에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사람들을 구분할 때 크게 제자와 무리로 구분 합니다. 제자에도 12제자가 있고 70인 제자가 있습니다. 그 외 예수님에게 빵과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따라다녔던 사람들을 가리켜 무리들이라고 합니다. 제자와 무리가 어떻게 다릅니까? 제자는 스승의 비젼과 목적을 같이 하는 사람인 반면에 무리는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처음에는 평범한 어부에 불과 했습니다만 예수님과 3년 동안 생활하면서 그들은 단순한 어부가 아니라 주님의 위대한 제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한 번 설교 할 때 3천명, 5천명이 회개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역사상 그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이었겠지만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였기에 2000년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들이 위대한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 까요? 그것은 주님의 부르심에 주저함이 없이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부에게 있어서 배와 그물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은 생업이요, 생계수단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것은 더 크고 위대한 사명인 하늘나라의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시몬 베드로와 형제 안드레는 나를 따라 오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여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또한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도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다가 주님이 부르실 때 주저함 없이 자신의 아버지인 세배대와 품꾼들 그리고 생계수단인 배를 버려두고 즉시 순종하여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소중한 인간관계나 가족 등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순종은 최고의 신앙의 바로미터요, 최고의 미덕입니다. 사도바울은 순종이 영적인 것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그러니까 평상시 누구에게 무엇에게 순종하는 지를 보면 그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방 나라에 가서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했습니다. 이방나라의 문화에 순종하지 아니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어떻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더 순종하십니까? 아니면 내 생각에 복종하십니까? 제자란 교회의 제도와 교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는 자입니다. 주의 종의 말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2008년 허리케인 아이키가 미국의 휴스턴을 집어 삼켰을 때 둘레가 1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떡갈나무들이 수없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더 없이 강해 보이는 이 나무들도 시속 150 킬로미터가 넘는 강풍에는 상대가 못되었습니다. 높이가 40미터가 되는 소나무들이 줄줄이 쓰러졌습니다. 크고 작은 소나무와 떡갈나무, 느룹나무 목련나무가 죄다 허리케인의 위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졌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종류는 이 무시무시한 허리케인 아이키의 피해를 그나마 적게 입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연약해 보이는 종려나무입니다. 하나님은 종려나무가 거센 바람에 부러지는 대신 구부러지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비록 가지가 땅에 닿을 정도로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는 않습니다. 강력한 허리케인이 오면 종려나무는 서너 시간이나 구부러져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금방이라도 툭하고 부러질 것 같지만 종려나무의 탄력은 실로 대단합니다.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허리케인으로 종려나무가 구부러져 있을 때 그 뿌리가 오히려 강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허리케인을 이겨낸 종려나무는 보통 종려나무보다 훨씬 더 크게 자란다고 합니다. 순종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순종이후에는 엄청난 은혜와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내가 아직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은 내가 아직 주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아는 자는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아니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자입니다.

 

사도바울은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주님은 이천년 전 뿐만 아니라 오늘의 이 시대에도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사명과 가치를 위해서 자신의 소중한 것, 시간과 물질, 재능, 지식 ,자신의 몸까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며 순종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여러분이 그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십니다.

 

본문에 갈릴리 바다에서 자신의 생업에 전념한 어부인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 1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 되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사람 낚는 일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로 인하여 영원히 저주아래 있는 인생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전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한 마디로 영혼 구원, 즉 전도하는 일입니다.

 

11:1절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가시니라.” 1:38절에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냐? 영혼구원, 즉 전도하기 위함입니다. 전도하는 일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앉은뱅이와 문둥병자를 고치신 것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것도, 야곱의 우물에 물 길러 온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 한 것도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하나 행동하나 하나는 전도하는 일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51-20 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방에 들르게 되는데 거기에 귀신들려 밤낮 무덤가에서 소리 지르고 쇠고랑을 끊고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보자 앞으로 달려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데 나를 상관하지 마시고 괴롭게 마소서, 이는 예수님이 이미 더러운 귀신에게 명하여 나오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더러운 귀신은 이 지방에서 떠나지 않기를 원하자 예수님은 마침 돼지 떼가 산 곁에 있는지라. 돼지에게 가기를 원하여 그리고 들어가기를 명하자 돼지 떼에 귀신이 들어가고 귀신들린 돼지 데는 비탈길로 몰살하게 됩니다.

 

그 이후 귀신 들린 사람은 깨끗하게 나아서 온전해져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자 주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따르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서 네 가족과 친지들에게 알리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이 사람은 자신이 예수께 고침 받은 사실을 데가볼리에 전파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믿어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백성이 되었습니까?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하셔야 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사람 낚는 어부 입니다.

 

1:3절에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초기 한국교회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그치지 않고 말씀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 선교사인 장로교 존 맥킨타이어와 존 로스가 만주에서 한국인 이응찬, 서상륜을 만나 복음을 전했는데, 이 서상륜 이란 사람이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목판을 일일이 깍아 성경을 번역, 인쇄하여 1882년에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내놓게 되었다. 그런데 이 분이 자기 고향인 황해도 장연의 솔내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1884년 봄 그는 로스 선교사가 부친 6000권의 성서를 당시 만주에서 온 이성하와 함께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해서 그 해 솔내에 한국인의 손으로는 최초로 세워진 교회당을 설립한다. 백남준 박사는 이 솔내를 가르쳐서 한국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잊을 수 없는 요람지라고 부를 만큼 솔내는 한국교회 역사의 발상지요.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던 곳인데 이 교회는 그 지방 사람들의 재정적 뒷받침으로 세워져 58세대 가운데 50세대가 전도되었다. 이 서상륜은 원근 가리지 않고 성서를 가지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1883년 처음 압록강을 건너 입국하려 할 때 성경이 발각되어 생명의 위험에 직면하기도 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늘 위협과 박해가 있었기에 용기와 지략이 필요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 서상륜은 성서를 가지고 다니면서 원근을 가리지 않고 남만주 지역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에게 반포하고 서울을 왕래하면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복음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19099월에 남 감리회 연회에서 선교사를 중심으로 백만인 구령운동이 일어났다. 그 당시에 기독교의 인구가 20만이었다. 각지 유력한 교역자들이 서울에 집합해서 1개월 동안 성내 성외 등에 축호 전도할 뿐 아니라, 후에 전국에서 전도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기간에 날 연보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전도를 하는 것인데 일정기간동안 자신의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편리한 시간에 보수를 받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전도하기로 서원하는 것입니다. 이 때 장로교와 감리교를 중심으로 날 연보가 작정되었는데 남 감리교 선교사 컬리어가 맡고 있던 지역 사경회에서는 400의 참석자들이 2721을 작정하였다. 이는 77개월 5에 해당하는 시간으로 참석자들이 평균 7일을 작정한 수치였다. 어떤 한 상인은 일어나나는 내내 이 일을 할 것이지만 매달 한 주간을 온전히 이 일에 헌신 하겠다고 작정했고, 한 사공은 3개월 중 60일을 이일에 바치겠다고 작정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매일 복음을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재령에서는 무려 10,000일이나 날 연보에 서명했고, 평양에서는 1,800명이 서명한 날 수가 무려 22,000일을 넘어섰다. 부산에서는 연례 사경회에 참석한 400명이 3,500일을 약속했고, 거의 10,000부에 가까운 마가복음서를 팔았고, 사경회가 진행되는 10일 동안 매일 200명의 사람들이 사경회가 열리고 있는 지역 반경 3마일 내에 있는 모든 마을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단순하게 사경회에서 말씀만 배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마을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했던 것이다. “의주 여자 사경회 끝 날에 345명의 여성들이 2,300일의 날 연보를 약속했고, 1,200권의 복음서 낱권을 구입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교회가 부흥의 시절을 맞이하고 오늘의 한국교회의 초석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는데 얼마나 영혼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주님은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을 동역자로, 제자로 그리고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십니다. 이 위대한 미션과 위대한 가치에 모든 것을 던져 일생 사람 낚는 어부로 살기로 작정하십시오. 새해에는 날 연보를 작정 사십시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알고 올 한 해 직원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2015년 1월 25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