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는 비결(2)
지난 시간에 이어서 복 받는 비결 두 번 째로 엘리바스의 대답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숨겨진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네가 하나님과 먼저 화목하고 평안하면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복이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로 “아슈레”인데 그 말의 뜻은 “행복”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행복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엘리바스는 말합니다. 화목이란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로 가까이 하고 예배로 가까이 할 때 인간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 번 째로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마음에 잘 간직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치 보물 상자를 간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 깊은 곳에 잘 간직하고 새길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치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그렇게 사랑하고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시고 복을 주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세 번 째 엘리바스의 말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우리의 인생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면 23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보면 이렇게 해석되어 있습니다. “전능하신 분에게로 겸손히 돌아가면 너는 다시 회복될 것이다.”
욥이 동방의 의인이요, 동방의 큰 부자였지만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고 자녀를 다 잃고 자신은 질병에 걸려 자신의 몸을 기와로 긁는 거지와 같은 신세가 된 것입니다. 욥기서 1장 1-3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이런 욥이었지만 하루아침에 집안이 풍지박살이 난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욥의 자녀들이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데 스바 사람들이 칼로 종들을 죽여 한 사람이 피하여 자신만 겨우 목숨만 건져 달려 왔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달려와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들을 다 살라버렸다고 보고 합니다. 또 말하는 동안에 갈대아 사람들이 습격하여 낙타를 죽여 자신만 피해 왔다고 보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동안에 맏아들의 집에서 포도주와 음식을 먹는데 태풍이 불어서 청년들이 죽고 자신만 홀로 피해 왔다고 보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뭐라고 말합니까? 엎친데 덮친 격이다. 그야 말로 재앙이 하루아침에 임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순식간에 가정에 이런 불행이 닥치게 되면 낙심할 수밖에 없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욥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21절에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 사온 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사탄이 욥을 시험하여 욥의 몸에 정수리부터 발바닥 까지 종기가 나게 해서 그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때 아내가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언제가지 하나님에 대하여 온전함을 지킬 수가 있느냐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합니다.
이때까지도 욥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2:10절에서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하나님을 범죄 하지 아니하리라.
하지만, 욥기서 3장에 들어서면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한탄하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기를 시작합니다. 그는 현재의 육체적인 고통과 번민에 시달린 나머지 차라리 낙태 되었다면, 나지 않았으면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했을 것이라고 비탄하기를 시작합니다. 이러한 욥의 비탄에 대해서 친구들은 원망을 그치고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 설 것을 요구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마지막으로 엘리바스가 욥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엘리바스의 교훈을 통해서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엘리바스는 네가 예전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다시 회복하려면 첫째로 하나님을 원망하던 자리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도 어느 정도 까지는 자신의 고난과 고통에 대해서 감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통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자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욥기19장에 와서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철저하게 소외시키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앞길을 막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희망을 나무 뽑듯 하신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원망하는 욥에게 엘리바스는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설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하면 너는 예전처럼 회복될 것이다. 회개라고 하는 것은 돌아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생활하고 믿었던 곳에서부터 180도로 돌아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향했던 발걸음을 되돌려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교회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할 때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가나안 성도가 100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가나안 성도란 거꾸로 말하면 “안나가” 교회에 안 나간다고 선언한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자신들은 스스로 말씀묵상을 하고 봉사생활을 하지만,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무교회주의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의나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가 여전히 불합리하고 문제투성이지만,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셨습니다. 그래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위로받고 힘 얻고 안식을 누리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새해에는 교회 공동체 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19:1-10절에 보면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구원받은 사건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삭개오는 그 당시 사람들이 멸시하는 세리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 직업을 매개로 하여 세금을 많이 거두어 자신의 부를 쌓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멸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어떻게 회개 했습니까? 주머니를 회개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진정한 회개는 주머니를 회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물질에 대한 회개말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자 양심의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착복한 것이 있으면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나누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예수님은 이 사람도 오늘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시면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가 1907년 평양 대 부흥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우리가 아는 유명한 길선주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이 나가서 간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은 아주 악한 자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친구가 죽으면서 자신의 부인을 잘 관리 해달라고 하면서 그 당시 상당한 돈을 주었는데 자신이 그것을 자신의 개인용도로 사용했다고 하는 회개를 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평양 대 부흥회가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고 전국적으로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해서 첩가진 사람도 회개하고 도둑질하고 남의 돈 떼먹은 것 들 별의 별 것등을 회개함으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대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그 유명한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둘째 아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하여 먼 나라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가지고 간 물질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마침내 돈을 다 떨어지고 흉년이 들자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생각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풍족한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버지 집에 가고 싶지만 차마 아버지 얼굴을 볼 낯이 없어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아버지 아들이 아니라, 품군으로 써 달라고 해야 하겠다 하고 결심하고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하고 일어섭니다. 20절에 보면,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 아버지가 계신 집에 이를 때 아버지는 아들이 나간 이후로 아버지는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먼 곳에서 오는 아들을 한 눈에 알아보고 달려와서 그 둘째 아들을 얼싸안고 입을 맞추고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이렇게 말합니다. 24절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품군이 아니라, 상속자로 맞아 주신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옴으로써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다시 회복된 것입니다.
삼하 24장에 보면 다윗이 승승장구하면서 마음에 교만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자신이 점령한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인구조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구조사는 은근히 하나님보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기에 하나님은 싫어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군 사령관 요압에게 너는 이스라엘 모든 곳에 다니면서 북쪽 단에서부터 남쪽 브엘세바 까지 인구를 조사하러 시킨 것입니다. 요압이 인구조사 하는 것을 말렸으나 다윗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시켜서 인구조사를 시킵니다. 그런데 이 일로 다윗이 양심에 가책을 받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 가지 재앙 가운데서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칠년 기근. 둘째는 왕이 세달 동안 원수에게 쫓겨 다닐 것인지. 마지막으로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인데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택하라고 합니다. 이 때 다윗은 세 번 째 전염병을 택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사흘 동안 전염병으로 죽은 작 7만 명이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니까 다윗이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다 죄 잘못입니다. 죄가 교만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내 백성으로 착각하여 인구조사를 한 것이 잘못입니다. 그러면서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의 집을 대신 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재앙을 하나님께서 거두시기 위하여 선견자 갓에게 이르기를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가르켜 줍니다. 이에 아라우나는 자신이 왕에게 번제할 소와 땔감으로 소의 멍에가 있으니 왕이 사용하도록 하였지만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치않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드리는데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않겠다 하고, 다윗이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잡고 그곳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에게 임한 재앙을 그치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3절 상반 절에 “전능하신 분에게로 겸손하게 돌아가면, 너는 다시 회복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멀리 떠났던 마음이 겸손히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났던 것이 무엇입니까? 새해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두 번 재는,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불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옳치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떳떳치 못한 삶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그 이전 34장에 보면 야곱이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은 세겜이라고 하는 곳에 오래 머물러 있다가 자신의 딸 디나가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당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야곱은 이 일로 크게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너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벧엘에 올라가지 못하고 세겜이라고 하는 이방사람들이 사는 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세겜이라고 하는 지역은 이방문화가 범람하는 곳으로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방탕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오랜 동안 생활하고 그들의 문화의 동화되다 보니 자신의 딸 디나가 그곳의 사교문화에 물들어 나갔다고 거기에서 강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곳의 이방문화에 이슬비에 옷 젖듯이 동화되어가는 것도 모르고 결국 자신의 딸이 겁간을 당하는 일은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크게 깨달은 야곱은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가게 되는데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이런 의식을 같습니다. 그것은 세겜에 물들었던 이방문화를 그곳에 다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35:2절에 “야곱이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절에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야곱이 자신의 가정에 있었던 불의를 땅속에 묻고 새 출발 할 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축복하시고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가다 보면 예수님을 믿는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별 생각 없이 세상의 그림을 걸어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호랑이 그림이라든지, 무슨 유교적인 교훈이 담겨 있는 한자액자 등, 예수님 사진이나 말씀은 찾을 수 없고 어떤 가정은 세상 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수집하고 집에 가득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새해를 출발하면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습관이나 문화, 생활태도를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을 우리 삶에 가정 중심에 모시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새해에 복을 주시고 행복한 인생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2015년 한 해 행복한 인생이 되시기 원하십니까? 복받기를 원하십니까? 먼저는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겸손히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장막에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불의를 멀리하실 때 여러분을 행복한 인생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2015년 1월 18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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