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ce Homo, 이 사람을 바라보라 요19,1-30
고난 주간은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한 주간을 금식과 기도, 그리고 묵상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과 수난을 깊이 생각하는 절기이다. 특히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날, 즉 성 금요일은 교회력에서 가장 엄숙한 날이다.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그 날을 ‘거룩하고 위대한 금요일’ 이라고 부른다. 영어권에서는 ‘좋은 금요일’ Good Friday 라고 부른다.
사실 이러한 절기는 초대교회부터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간에 세속적인 욕망을 멀리하면서 주님의 수난에 묵상하고 금식과 금욕을 지켜왔습니다.
‘수난’ 이라는 제목에서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걸작이 있습니다. 그것은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바스챤 바하의 마태 수난곡입니다. 이 수난곡은 복음서에 기초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다룬 종교음악입니다, 바하는 모든 복음서 각각에 수난곡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나 현존하는 것은 마태와 요한 수난곡이라고 합니다. 요한 수난곡은 힘차고 내밀하고 격정적인데 반하여 마태수난곡은 서사적이며 명상적이라고 합니다. 바하는 마태복음 26장과 27을 소재로 방대한 3시간 정도의 수난곡을 만들었는데 1부에서는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이야기와 예수를 팔아넘기려는 배반자 유다, 예수와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통스러운 기도이고 2부에서는, 체포된 예수님을 걱정하면서 찾는 시온의 딸들의 슬픈 합창으로 시작하여 이어서 시작된 재판과 예수님을 미워하는 유대인 군중 합창이 무서울 정도로 들려오고 새벽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배신하는 베드로의 슬픔이 바이올린의 울림으로 들려오고. 그리고 배신자 유다의 최후와 빌라도의 우유부단한 모습과 고통스러웠던 골고다 언덕과 십자가 등이 드라마틱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하가 서거 이후 단 한 번도 연주 되지 않은 채 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마태 수난곡이 빛을 보게 된 것은 멘델스죤 덕분이었다. 멘델스죤은 불과 20세 때 마태 수난곡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거의 2년간 리허설에 매달렸으며 이 위대한 초연에 당시 400여명의 합창단, 왕실 관혁악단 등 전원이 기꺼이 무보수로 참여하였고 1829년 3월 11일 베를린에서 청년 멘델스존이 초연한 마태수난곡이 장엄하게 울려 퍼지자 청중들은 뜨겁게 감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마태수난곡은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바흐만이 줄 수 있는 합창의 웅장함과 깊은 신앙심 속에 깃든 경건함, 묵상의 언어가 가슴 깊숙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기쁨은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라 해서 놓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의 수난에 관한 내용으로서 유대 총독 빌라도에게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거짓 증거를 찾으려고 하였으나 거짓 증거를 차지 못하자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자 유대인들은 더 이상 증인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나한테 넘기지 말고 너희 법대로 예수를 처벌하라고 하였지만 자신들은 유대인으로서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다고 말하면서 예수를 처결해 주도록 요청했습니다. 유대인의 성화에 못 이겨 예수를 심문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빌라도가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말은 네가 한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말이냐? 빌라도가 말하기를 네 나라 유대사람들이 너를 나한테 넘겼는데 도대체 네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이 말을 들은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보니 너희들이 죄가 있다고 하는 예수는 나는 아무 죄도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명절이 되면 죄인들을 풀어주는 전례가 있는데 누구를 풀어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예수냐’ 이렇게 빌라도가 말함은 대제사장과 서기관 장로들이 예수가 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시기함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아무 죄가 없음을 알았기에 예수를 놓아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27,19에 빌라도가 재판 석에 않아 있을 때에 총독의 부인이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말합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빌라도는 자신이 판단하기에도 예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더군다나 자신의 부인으로부터 지난밤에 예수로 인하여 힘들었다는 말을 듣고서 빌라도는 자신의 힘으로 예수를 죽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유대인들에게 묻습니다. 명절에는 특별히 특별사면이 있는데 강도인 바라바냐 아니면 예수냐 그랬더니 바라바를 놓아주소서, 바라바를 놓아주소서, 바라바를 놓아 주소서, 이 군중들의 기세에 눌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 주려 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빌라도가 말합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랴? 유대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박아겠나이다. 십자가에 못박아야겠나이다. 빌라도가 다시 묻습니다.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마27,23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박아야하겠나이다. 빌라도는 예수가 죄가 없음을 알고 놓아주려고 하였지만, 유대인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민란이 날 것을 염려하여 그는 무리 앞에서 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하니 거기 있던 유대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25절에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인 죄의 결과로 전 세계에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하나님이 내린 형벌이라고 유명한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유대인을 ‘그리스도의 살해자들’ 이라고 불렀다. 거의 8백 년 동안 기독교 신학에 영향을 미쳤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유대인이 하나님을 살해 했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은 죄 값을 계속 치르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레고리 교황이나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도 같은 견해를 보였다. 유대인들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매일 2만여 명의 유대인 어린이들과 노인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갔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도살장의 동물처럼 죽음으로 내몰렸다. 1941년부터 1944년 사이에 아우슈비츠에서만 2백 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희생이 결코 우연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하였지만 유대인들의 반발로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기 위해서 브라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채찍질 하였습니다. 당시의 채찍은 무서운 고문이었습니다. 가죽 끈에 삼각형으로 된 놋이나 철이 달려 있어서 그것으로 채찍을 가할 경우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보였다고 합니다.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보면 폴리캅 시대의 어떤 순교자는 채찍에 맞아 정맥과 동맥이 보일 정도로 패이고 내장이 다 보였다고 하니 그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을 것입니다. 채찍 후에 군인들이 나무로 가시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옷을 입히고 갈대를 그 오른 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기를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하면서 손으로 때렸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쳤습니다.
여기서 자색 옷은 왕의 옷을 대신 한 것이고, 가시관은 왕관을 대신한 것이고 갈대는 왕의 홀을 대신 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왕권을 조롱한 것입니다. 네가 왕이라고 하는데 왕 노릇 한번 크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말하기를, 너희 유대인들은 나한테 이 예수가 죽을죄를 지었다고 고발하여는데 나는 이 사람에게서 조금도 죄를 찾지 못해서 너희로 하여금 이 예수가 죄가 없음을 알리려고 한다. 이 때 예수가 가시관과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자 빌라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Ecce Homo! 이 사람이로다! 이 말의 뜻의 의미는 무엇일 까요? 너희들이 죄가 있다고 나한테 한 사람 예수를 넘겨 주었는데 이 사람은 즉 예수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 유대인들이 고발한 나사렛 출신 젊은 청년 예수에게서 그를 죽일 만한 죄를 조금도 찾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 없는 젊은이를 죽일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을 알아들은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은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고래 고래 소리 지르자 빌라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요19,6b”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는 그래도 총독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이 사건을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한 결과 예수에게는 전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만한 일을 발견하지를 못했습니다. 자신은 이 불의한 일에 악역을 맡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화가 잔뜩 난 빌라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희들이 예수를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이 일에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는 이 재판에서 손을 떼어서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빌라도는 그래도 정의롭게 처리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유대 법을 가지고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고 하는 것은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나사렛 출신, 시골마을 출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고 하는 것은 신성모독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24장 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신성모독죄에 해당하는 사람을 풀어주게 되면 유대인들에 의해서 엄청난 저항과 봉기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빌라도는 이 말에 두려워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로마 당시에 황제는 ‘신’으로 불리워졌습니다. 따라서 신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황제로서 왕권을 물려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고 하였다고 하는 것은 로마에 반역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 말의 진의를 확인하고 싶어했습니다. 본문9절에 “너는 어디로부터냐” 이 말은 네가 정말로 ‘신의 아들’이냐 물을 때 예수는 대답지 아니하시자 빌라도가 말하기를 나는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데 왜 말하지 않느냐 말하자 주님 말씀하시기를 11절에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고 말하자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 주려고 하였지만 유대인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이 사람을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고 가이사 를 반역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신의 아들’ 이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죄인 동시에 로마에게 있어서는 반역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반역죄를 지은 사람을 놓아준다면 당신도 반역죄로 처벌 받게 될 것이니 알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저항이 예상을 뛰어넘자 빌라도가 예수를 끌고 나아가 재판석에 앉아 있던 빌라도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말하자 유대인들은 소리 지르며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니,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 제사장들이 말하기를 우리에게 왕은 가이사 밖에 없나이다. 이에 빌라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유대인들에게 넘겨 주었다
유대인들에게 넘겨진 예수는 약40키로 정도인 수평 막대기를 지고 약800미터 떨어지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처형 장소까지 이동하게 되는데 골고다 에는 땅에 박아 놓은 기둥이 수직 막대기의 역할을 하게 된다. 마가에 의하면 병사들이 구레네 시몬으로 하여금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다. 마가는 그 이유에 대해서 다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예수가 너무 쇠약하여서 그 나무토막을 스스로 운반 할 수 없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예수는 채찍에 맞으면서 살이 찢기고 옷에 피가 범벅이 되면서 심한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십자가 형틀이 너무 심해서 중간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면 이 십자가 형은 가장 가혹한 끔찍한 형벌이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길을 비아돌로로사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수난의 길이란 뜻이다. 성지 순례를 하게 되면 이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지금은 아랍상인들과 상가들로 시끌법적거려 경건함이나 엄숙함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는 이 비아돌로로사로 올라가는 길에 세 번이나 쓸어지게 된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해골의 곳이라고 불리는 골고다에 이르는데 이곳에는 현재 성묘교회가 세워져 있다.
오전 9시에 예수는 해골의 장소라 불리는 곳에서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혔다. 십자가위에는 ‘유대인의 왕’ 이란 패가 있었다. 히브리어와 로마, 그리고 헬라어로 기록하였다. 이 패는 조롱하는 패였다. 이 사람은 너희들의 왕인데, 로마는 그를 처형할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봉기나 시위를 할 생각을 하지 마라. 하지만 빌라도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예수는 진정한 왕이었음을 선포한 것은 사실상 로마와 헬라어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고 하는 것은 예수가 온 세계에 왕이었음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의 옷을 제비뽑고 사람들은 예수를 조롱하였습니다. 막15,29-32에 “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자기나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려무나!”그들과 함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예수를 모욕했다. “이스라엘 왕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여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을 때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의 죽음을 지켜본 여인들이 있었다. 그 어머니와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였다. 그 자리에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다.
마가에 의하면 낮 12시에 온 땅이 어둠이 임하여 오후 3시 까지 계속되다가 십자가 상에서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 오후 3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큰 소리로 지르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이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마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 그 옆에 서 있던 로마의 백부장은 “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결론적으로,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Ecco, Homo.! 이 사람이로다! 라고 외친 뜻은 예수는 절대 죄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예수의 죽음은 대리 희생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즉 예수는 세상 죄를 대신에 죽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죄를 보상할 만한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이 희생제물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평범한 자신의 죄 값으로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희생제물은 완전한 자여야 한다. 완전한 인간임과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만이 완전히 티가 없고 흠이 없기에 그만이 희생의 제물이 되어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셨으니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예, 내가 거기 있었습니다. 나의 죄 때문에 주님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 즉 불순종에 따른 형벌로 댓가를 요구하셨습니다. 그 댓가가 죄 없으신 예수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고 용서가 없습니다.
둘째는, Ecco,Homo,! 즉 이 사람을 보라!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로마의 백부장은 예수의 죽음을 감시하러 온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운명할 때의 이 모든 주변상황, 즉 12-오후3시 까지 어둠이 온 나라를 덮었으며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사실로 심판을 암시한다, 로마의 백부장은 예수를 죽인 자신의 제국에 대하여 심판을 암시한다. “ 참으로 이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라고 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로마의 제국신학에 따르면 황제는 ‘신의 아들’, 즉 지상에 계시된 신의 능력과 의지였다. 그러므로 황제는 주님이며, 구세주이며 지상에 평화를 가져온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 로마에 처형된 이 사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황제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게 되었다. 예수를 처형할 책임을 진 백부장은 제국을 스스로 부정하고 예수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수난 주간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죽음과 고난에 대하여 깊은 묵상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분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를 위해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시간 구원받은 자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4년 4월 13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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