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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인 보화와 진주비유 (마13,44-46)

gkffpffndi 2014. 4. 4. 18:55

 

감추인 보화와 진주비유 (13,44-46)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여러 가지 비유(Parable) 가운데 마태복음 13장은 비유의 장으로 7가지의 비유가 들어 있다. 씨 뿌리는 비유, 가라지의 비유, 그물의 비유등 누룩의 비유 등 본문의 감춰진 보화와 진주의 비유 등이다. 이 비유라고 하는 말의 뜻은 옆 에 두고 비교해서 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러 가지 의미가 아니라 짧은 이야기를 가지고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빗대어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해석 방법 중에 알레고리 (allegory) , 풍유라고 하는 해석 방법이 있는데 이것은 흔히 옛날 목사님들이 많이 사용하셨는데 이것을 소위 영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방법이 좋은 해석 방법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먼저는 숨겨진 보화의 비유입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귀한 보물들을 땅속에 숨겨 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은행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가장 안전한 금고가 아마도 땅속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땅속에 묻어 두면 언제 가는 자손들이 그것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쟁이나 난리가 나서 그 주인이 포로로 끌려가거나 죽게 되면 그 보물은 사람들이 발견하기 까지 수년 내지는 수십 년 동안 땅속에 숨겨 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일본 사람들이 멸망하자 그들이 갑작스럽게 한국을 떠나면서 한국의 어느 산에다 값진 물건을 숨겨 놓았다는 소문이 나돌고 또 그 자손들이 한국을 방문해서 자기 조상들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아다닌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아뭏튼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기까지에는 땅속에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 번쩍 하는 여름밤에 큰 장대비가 솟아졌습니다. 이 여름철 장마 비에 의해서 논과 밭에 있던 흙이 휩쓸려 가면서 그 옛날 땅속에 깊이 묻혀 있던 보물 항아리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마침 지난밤에 온 장마 비로 인해 걱정이 돼서 밭에 여름에 논과 밭에 물을 대기 위해서 나온 한 농부가 보니 자신의 논과 밭은 이상이 없는데 남의 밭에 고랑이 파이면서 웬 항아리가 나와 있는 게 아닌가? 가까이 가서 보니 예사로운 항아리가 아니예요! 그 항아리를 열어보니 금은 보화가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얼른 그 보물 항아리를 다시 밭에 묻어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감추인 보물을 발견했다 할지라도 자신의 밭이 아니어서그 보화를 가져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서 어쩔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기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여 이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생각을 밤새 연구했습니다. 저 보화를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는 길은 내가 값을 주고 그 밭을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먼저는 밭주인에게 땅을 팔도록 설득해야 하겠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돈을 빌릴 궁리를 했습니다. 일가 친척집에 부탁을 하고, 값나가는 세간을 팔아서 겨우 그 밭을 살 수 있는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보물 밭을 샀습니다. 이제 그는 그 밭의 주인이 되었고 감추인 보화를 캐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스토리입니다. 이 비유에서 몇 가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이 비유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사람의 행동이 합법적이고 도덕적이냐 하는 질문이다.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도덕적인 것이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행동이 도덕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한 행동은 그 당시 사회법으로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회 속에서 합법적인 것이 반드시 도덕적이거나 기독교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레트(Derrett) 라고 하는 학자는 탈무드 법에 의하면 숨겨진 보화와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먼저 집어서 올리는사람이 자신의 소유로 삼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유사한 일이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얼마 전 우리나라에 운석이 떨어졌는데 경상남도 진주와 전북고창에서 많이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운석의 가치에 대해서 수억에서 수십억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러시아 소치 올림픽의 금메달에 운석이 들어갔는데 금값의 40배라고 합니다. 이 운석을 별에서 온 그대라고 하던데요. 이 운석의 소유주는 밭이나 산 임자가 아니라 운석은 하늘에서 떨어진 주인 없는 물건이므로 맨 처음 발견한자가 소유자 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즈음 운석 사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그러기에 그 당시 탈무드 법으로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두 번 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보화가 오랜 동안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에 대하여 막4,11-12에서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그러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열려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똑같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은혜 받고 기쁨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은혜는커녕 시험받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이 말입니다. 왜 이런 일 이 일어납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시험받지 마시고 천국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숨겨진 보화를 발견한 사람에게는 큰 기쁨이 있습니다.

 

1947년 봄, 무하마드 앗디브(Muhamad Adhdhib) 라는 소년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서 여리고 남쪽 13.6 km 지점의 사해 서쪽 해안을 돌아다녔습니다. 그곳은 석회암 동굴 지대로 눈앞에 보이는 게 다 동굴이었는데 심심풀이로 그 수많은 굴 중에 한 군데다가 돌멩이를 던졌지요. 그런데 던진 돌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더니 쨍그랑 소리를 냈습니다. 소년이 궁금해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보니, 여러 개의 항아리가 있었는데 그 중 한 항아리에서 가죽으로 만들어진 두루마리들을 발견합니다. 거기엔 글이 써져 있었는데 그 소년은 글을 몰랐기 때문에 그게 뭔지 알 수 없었고, 다만 집으로 그 두루마리들을 가지고 와서 집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그 소년은 그 가죽으로 신발 끈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2년쯤 그냥 두었지요. 그런데 이 두루마리가 입 소문을 통해서 알려지게 됐는데, 이것이 처음에는 20파운드에도 팔리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이들 두루마리 중 5개를 시리아의 예루살렘 정교회(正敎會)의 대주교 마르아타나시우스 사무엘이 샀으며, 나머지 3개는 예루살렘의 헤브라이대학교 E.수케닉 교수가 매수하였다. 1954년 수케닉의 아들 Y.야딘이 25만 달러를 지불하고 사무엘 대주교로부터 5개의 두루마리도 사들여 현재는 이들 두루마리 전부가 이스라엘 국가의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이 두루마리가 뭐였을까요?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성경사본 중에 가장 권위 있는 사해사본이었던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 가운데 하나인 사해사본이 2000년 가까이 동굴에 감추어져 있다가 그 모습을 들어 낸 것입니다. 양치기 목동소년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 뿐 아니라. 인류에게 엄청난 보물 인 것입니다. 이렇듯 보물은 아무에게나 발견되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위대한 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것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 이 사람이 밭에 감추인 보화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았다고 했습니다. 왜요? 숨겨진 보화나 진주가 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세간을 다 팔았을 때 뭐라 했겠습니까? 미쳤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귀한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팔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는 마가복음 10:28절에서 스스로 고백하기를,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는 결단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안드레와 베드로, 그리고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은 자신의 직업인 어부와 생계수단이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예수를 쫒았습니다. 자신의 집과 가족과 그리고 일신상의 편안함과 부와 명예를 버리고 예수를 따랐기에 주님의 지상명령인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어 세계복음화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제자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처음 복음이 전해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 수용 주도층이 양반이 아닌 중인 계층이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백령도에 세워진 중화동 교회인데 이 교회는 양천 허씨가 주도층이 되어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1900년에 허간, 허권, 허륜, 그리고 최형우, 김홍보 등이 세례를 받았고 이들은 자신의 전 재산으로 학교와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또한 감리교회인 강화도의 교황교회도 김상임이란 훈장이 인천 내리교회를 세운 존 로스 선교사와 함께 강화도교회을 시작하였는데 15, 1칸이 4평이라고 할 때 60평을 바쳐서 교회를 시작하였다, 또한 부여임천에 칠산교회는 장기영이라는 사람이 1899년 침례교 선교사로부터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배를 바칠 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다고 하면 문중산에 묻힐 수가 없게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묘지를 구입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최초 한국의 교회도 이런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교회와 학교가 세워지고 이로 인해 많은 영혼이 구원받게 되어 진 것입니다.

 

두 소녀가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눈앞에 예쁜 조개가 나타났습니다. 두 소녀의 손이 동시에 그 조개를 집었습니다. 서로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결국 고집이 세고 힘이 쌘 아이가 그것을 차지했습니다. 그것을 빼앗긴 아이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언짢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말도 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가면서 조개를 주웠습니다.

 

그런데 조개를 빼앗긴 아이의 눈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뜻밖에도 진주를 발견한 것입니다. 얼른 자기의 품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기뻤겠습니까? 그는 친구에게로 다시금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친구에게 다정스럽게 말을 걸면서 다시금 같이 조개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또 예쁜 조개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두 소녀는 다투지 않았습니다. 진주를 발견한 소녀가 기꺼이 예쁜 조개를 자기 친구에게 양보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마음에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세상적인 가치 때문에 하늘에 가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니 포기하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직 세상적인 가치를 붙잡고 있다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귀한 보화를 갖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붙잡고 있었던 세상적인 가치를 포기해야만 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이후에 자신이 자랑하던 학벌이나 가문이나 출신 등 자신이 자랑했던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알고 난 이후에 가치관이 달라진 것입니다. 전에 귀하게 보여 지던 것이 이제는 값없이 보이고, 전에는 소중하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소중한 것으로 보여 지기 때문입니다.

 

두 번 째 진주의 비유에서는 45절에는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진주비유가 밭에 숨겨진 보화비유와 다른 것은 전자는 보화가 숨겨져 있다고 하는 것이고, 후자는 숨겨져 있지 않고 진주장사가 찾아 나섰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 좋은 진주를 찾아 나섰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감추인 보화의 경우, 어떤 사람에게는 숨겨져 있지만 우연히 발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주의 비유에서는 좋은 진주를 찾기 위해서 계속해서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진주 장사가 좋은 진주를 구하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합니다. 좋은 진주를 찾기 위해서는 안가는 곳이 없습니다. 세상 어느 곳이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진주를 구하기 위해서 찾아 갑니다. 이 두 비유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숨어 있다가 나타난 보물처럼 우연히 발견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진주 장사가 좋은 진주를 구하기 위해서 찾아나서는 것처럼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위에서 죽은 오른 편 강도처럼 쉽게 우연히 예수를 발견해서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주장사처럼 열심히 노력하고 찾아야 좋은 진주를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천국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진주장사처럼 이런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비유가 주는 교훈은 이렇습니다. 천국을 소유하려면,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먼저는 세속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을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희생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를 결코 들어갈 수 없고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아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고 천국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두 비유에서 사람들 각자가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을 팔아 보물과 진주를 샀다고 하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최고의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보다 덜 가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러한 자기희생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하지 않으면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는 막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즉 감춰진 보물과 진주의 비유에서 강조점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의 헌신에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히10,23에서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을 것”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죽도록 충성하라”(2,10) 말씀하십니다.

 

둘째는,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진주장사처럼 의도적으로 끝까지 노력하고 애써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이 보장되었다고 말하지만 그 구원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를 빌리면 ‘already not yet’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그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 성화에 이르고 더 나아가 영화의 단계에 이를 때 우리는 비로소 구원받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다 바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천국을 소유한 자는 세상이 알지 못하고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분명 천국을 소유한 자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최고의 가치를 누리는데 대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셨습니다.

 

박영효와 함께 일본에 파견된 이수정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일본에서 기독교이며 농학자인 쯔다센이라는 사람을 만남으로 기독교에 입문하게 됩니다. 쯔다센 집에 걸려 있는 산상수훈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고서 성서와 기독교교리를 듣고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세례를 받고, 성서를 연구하고 18835월에 동경 유수의 상에이 교회에서 한국말로 당당히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이수정은 512일 한문으로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데 자신의 신앙고백의 핵심은 요14장이라고 고백한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안에 계시다.”는 말씀과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 속에서 한 말에 그는 넘치는 은혜와 감격의 위로를 받은 것이다. 그는 신인 상감지리가 그의 심정이라고 했다. 이 말은 성령과 하나 된다는 뜻이다. 성령님과 교통하고 있다. 그는 믿음과 사죄의 차원에 이르러 은총과 성령의 지도 없이 성도는 할 일을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속에서 그는 致感明驗의 깊은 사랑과 확신으로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탄성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는 이 감격으로 성서를 번역하여 마침내 한문에 토를 단 현토 신약성서1885년에는 신약성경 마가복음을 일 천부 간행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께서 이 비유를 주시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하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버릴 수 있는 자기 결단과 희생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완전한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고 헌신, 충성하는 자에게 큰 기쁨과 희열을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14년 4월 6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