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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을 만난 제자들 /막4:35-41

gkffpffndi 2013. 5. 2. 07:48

 

풍랑을 만난 제자들 /막4:35-41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겨자씨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마치 겨자씨 한 알과 같아서 땅에 심길 때는 다른 모든 씨보다 작지만,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더 커서 큰 가지를 내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비유의 말씀을 마치신 이후 제자들은 갈릴리 건너편으로 예수님과 함께 건너가게 되었는데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도중에 큰 광풍이 일어나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에 물이 들어와 배가 침몰하는 위기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풍랑을 만난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하고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인생바다에는 항상 풍랑이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주변이 산과 언덕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가끔씩 북쪽 헬몬 산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와 갈릴리 바다에 따뜻한 공기가 만나서 이상기류를 형성하게 되고 곧 이것은 갈릴리 바다에 광풍을 만들어 파도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눅8:23을 보면,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 바람이 아주 무서운 속도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사납게 불어 닥쳤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탔던 그 배가 광풍으로 인해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자로 풀으면 ‘미친바람’입니다. 이 광풍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타신 배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협한 이 광풍의 배후가 누구이겠습니까? 사탄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요한복음10: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우리 주님은 절대로 자신의 양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양들을 공격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게 누구 입니까? 벧전5:8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 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바로 마귀요 사탄입니다. 우리가 인생길을 가다가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처럼, 인생에서 큰 풍랑을 만나게 되면 사람들은 낙심과 좌절과 절망에 그냥 주저 않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길에 큰 광풍, 예를 들면 갑자기 병이 들거나, 사업이 부도가 나거나 가정이 깨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고 사탄의 공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두 주 동안 오후 예배 후에 저와 안사람은 강원도 원주 치악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별장에 다녀왔습니다. 그것은 저희 부부가 휴식을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저희 처형님이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았는데 대장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아 로봇 수술로 8시간 수술 하고 난 이후 요양하기 위하여 친구가 빌려 준 별장에서 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동네 작은 병원에서 큰 병원에 가서 진찰하라 하여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술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의사의 말을 듣고서 동서와 처형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항암치료는 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2년 동안은 계속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고 5년 동안은 지켜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행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한 아들에게는 알리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자신이 그런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동서는 저한테 어떻게든 살려내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면서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도여러분! 이번 기회에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생각 날 때 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갈릴리 바다처럼 잔잔한 바다에 갑자기 풍랑이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길에 예기치 않은 광풍이 불어오는 때가 있습니다.

 

고통이 고통으로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변장된 축복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 개봉한 이후 반 기독교적인 사회 분위기와 비판적인 정서에도 불구하고 1280만 명으로 한국영화 흥행 3위를 기록한 ‘7번방의 선물’ 시나리오를 집필한 김황성 작가의 인생반전의 스토리가  4월 30일자 국민일보에 실렸습니다. 저도 그 영화를 친구 목사님하고 같이 가서 보았습니다.  그 영화는 장애인이 억울하게 살인누명을 쓰고 감방에 들어간 이 후 그 방에 같이 있던 죄수들이 감옥에 들어 온 이 장애인이 절대로 죄를 짓고 들어 올 수 없는 선한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그 장애인의 딸이 교도소에 위문 온 성가대 단원으로 오자, 그 딸을 감옥의 같은 방에서 아버지와 생활하는 코믹한 영화이다. 결국 이 죄 없는 장애인은 감방동료들의 적극적인 변호에 힘입어 자유를 얻게 되고 사랑하는 딸과 사는 해피 앤딩 으로 끝을 맺는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입니다. 한데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 김황성씨가 자신의 밑바닥 인생을 체험 하고 난 이후 이 시나리오를 써서 대박을 터뜨리게 되었습니다. 내용인즉 이 분은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에서 PC방 점원, 건설현장 막노동, 아파트 경비, 심지어는 일명 ‘야동’ (음란 영상물) 배달부가지 하다가 결국은 교도소에 4개월 동안 복역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고시원에 전전하고 있을 때 고시원에 한 여전도사님이 전도하러 왔다고 합니다. 교회가자고 권면했지만 하루 일당이 3만원인데 교회가면 벌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거절했더니 그 분이 예배드릴 때마다 3만원을 준다 하여 교회에 나가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헌데 그 즈음 악마의 유혹이 왔습니다. 같은 고시원에 있던 남자가 하루 5만원씩 줄 테니 우체국에서 등기 우편물을 붙여준다고 하더랍니다. 이런 횡재가 있나 싶어서 일당 5만 원짜리로 바꿨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궁금해서 그 남자의 방에 들어 가보니 음란물이 가득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안 되어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너 요즘 무슨 일 하니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 온 것입니다. 이 일로 그는 감옥에서 4개월 동안 복역하였습니다. 그 이후 사업을 했으나 실패하고 그는 경기도 분당에서 월세 방을 살던 중 답답한 나머지 개척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교회 불로그에 올려놓았는데 그 뒤로 재미있다는 예상치 못한 호응으로 연극배우인 자신의 동생을 거쳐 자신의 아이디어 글발이 충무로 영화감독에 까지 전해져 작가의 길에 들어섰고 ‘7번방의 선물’이 흥행하면서 요즈음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작가의 밑바닥 인생에서 빚어진 열매다. “바닥 생활이 없었다면, 아마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그는 말합니다. ”지금가지 제 인생을 이끌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이제 알았거든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네 인생에는 갈릴리 바다처럼 광풍이 불 때가 있습니다. 이 광풍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 고통이 우리에게 때로 변장된 축복으로 온다는 사실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에 물이 가득차서 침몰 위기 직전에 있을 때,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38절에 보니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게를 베고 주무시더니” 아니 예수님은 위급한 상황에서 주무시다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아주 평안하게 말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육체적으로 얼마나 피곤하시면 배의 뒤쪽에서 주무시고 계실 까입니다. 제자들은 물이 배안에 들어오자 당황하기도 하고 해서 서로들 큰 소리로 배가 침몰할 까봐 큰 소리를 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배안에 있는 물들을 퍼냈을 것입니다.

 

그러니 배안은 온통 왁자지껄해서 도저히 평안히 주무실 수 없는 환경이었음에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주무셨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영적인 사역이었기에 상당히 육체적으로 피곤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이란 육체적인 일만이 아니라, 영적인 전투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요 이세상과 정사와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싸움이라고 에베소서6: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싸움이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혹 귀신 들린 자하고 씨름 한 적이 있으신 분은  제가 하는 이 말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믿지 않는 식구들을 전도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왜요?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지만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지를 부러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40절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저는 이 두 가지가 다 적용되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너무 피곤하셔서 너무나 곤히 주무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또한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제자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주무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셨습니다. 38b에서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인생에 위기가 왔을 때 여러분이 취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나를 도와 줄만한 사람을 찾아 갑니까? 아니면 돈을 따라 갑니까? 변호사나 의사를 찾아 갑니까? 물론 법적인 문제가 있으면 변호사를 찾아 가야 합니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 의사를 찾아 가야 합니다.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을 찾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구약성경 열왕기하20:1-6절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되어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죽고 살지 못하리라. 너는 집을 정리하라. 이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히스기야가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그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심히 통곡 하더라” 히스기야 왕이 낯을 벽으로 향하였다고 하는 것은 그가 세상의 용한 의사나, 그 어떤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 회개하고 눈물로 기도한 결과 기쁜소식을 들었습니다. 5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절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며, 너와 이 성을 앗수를 왕의 손에서 구원하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요나서에 보면 요나가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사명을 피해 다시스로 가던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서 제비뽑혀 요나가 바닷가에 던져져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끈쩍끈적한 물고기 배속에 있으니 얼마나 고통이었겠습니까?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면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살아났습니다.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요나서2:2b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7절에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9절에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이렇게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사 물고기가 육지에 요나를 토해 내었습니다.

 

시편 107편 28- 30절에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생에 광풍을 만났을 때 겁내지 마시고 내안에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 이름으로 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부르짖는 소리에 깨어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바람을 꾸짖었다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꾸짖었다고 하는 말은 예수님께서 귀신들에게 자주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자연계에도 사용하셨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자연계에도 사탄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사탄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역, 즉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바다 건너편 마을에 가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사탄의 역사가 잔잔한 바다에 풍랑을 일으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길한 일들이 모두 사탄의 역사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사탄의 역사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이러한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나타나는 현상을 이해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사회적인 범죄나 흉악범, 그리고 자살이나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왕따 현상, 음란한 문화나 음악, 성적인 부도덕함이나 향락주의의 팽배가 결코 우연히 아닌 사탄의 역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탄이 역사해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문제 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큰 풍랑이 일어 위태 했지만 그 배안에 주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 배는 안전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소란하고 풍랑이 강하게 불어도 주님이 내안에 계시다면 염려할 것도 없고 두려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분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 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그분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고 시편121:4절에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5: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예수님께서 바람아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즉시로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고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주하나님이십니다. 마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분이 누구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은 죽기까지 자신을 쳐 하나님께 철저히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 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표준 새 번역은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고, 악마를 물리치십시오. 그러면 악마는 달아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생의 여정에서 큰 광풍이 불 때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광풍을 잔잔케 하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면 악마는 물러나고 광풍은 잔잔해 질 것입니다. 2013년 5월5일청주벧엘성결교회정영진목사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