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밭과 같은 마음, 막4:5-6, 16-17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마음 밭의 4가지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길가와 같은 마음 밭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은 오랜 시간 사람들에 의해서 밟혀 졌기 때문에 상당히 딱딱하게 굳어 있습니다. 이런 곳에 씨앗이 떨어지면 새들이 와서 금방 쪼아 먹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마음이 열려 있지 않으므로 마음이 굳어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함으로 깨닫지 못합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는 성령의 쟁기로 갈아 엎어서 은혜의 소낙비가 내려야 잎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는 두 번 째로 “돌밭에 떨어진 씨앗의 마음” 밭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1) 말씀을 기쁨으로 받습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앗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절에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이 16절에 나와 있습니다.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돌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은 마음 밭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부는 없습니다. 이 사람의 특징은 제일 처음에는 신앙생활, 교회생활에 열심을 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열심히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개인적인 어떤 환난이나 개인적인 어려움이 닥치면 자신이 담갔던 발을 잽싸게 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어떤 영적인 체험이나 하나님을 만난 중생의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자신의 육신적인 기질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베드로와 우레의 아들로 불려진 야고보와 요한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다혈질적인 성격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14:22-33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기 위하여 육지에서 수 리 나 떠나 항해 하는 도중에 갑자기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어 지기 일보 직전 밤 사경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지만 이것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풍랑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그 현장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유령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치 않겠습니까? 밤 사경이면 아주 캄캄한 밤인데 그 모습을 본 대부분의 제자들은 두려움과 놀람 속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유독 베드로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28절에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절에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순식간에 행동이 일어났습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베드로는 즉각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기적을 체험하는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자 베드로는 바다 속으로 빠져 들기를 시작했습니다. 바다 위를 걷는 기쁨도 오래 가지를 못한 것입니다. 곧 바로 바람 앞에 믿음이 약해져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 가는 신앙을 베드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금방 냄비처럼 뜨거웠다고 급속하게 식어지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베드로는 다른 어떤 제자보다도 예수님께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성품은 가이사 빌립보에서도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16:13-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이사 빌립보 지역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중의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라고 대답을 했더니 주님이 이번에는 이렇게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질문의 요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제일 먼저 베드로가 대답을 했습니다. 16절에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다른 제자들보다 언제나 신앙에 있어서 즉각적으로 반응했던 이 베드로가 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 대 제사장 가야바의 법정에서 예수님께서 재판받으려고 할 때 그 바깥 뜰 안에 앉아 있었던 베드로는 조그만 여자 종이 나아와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할 때 자신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으며 또 다른 여종이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라고 말하자 이번에는 맹세하고 부인하면서 자신은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는 나약한 인간의 이중성을 보게 돱니다.
바로 베드로의 이러한 모습은 베드로의 신앙이 성숙치 못했음을 반증해주는 것입니다. 신앙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감정이 좋을 때는 말씀에 은혜도 잘 받고 봉사도 잘하지만 자그마한 어려움이 오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시험이 오면 예배나 봉사나 헌신이 오래 가지 못하는 성숙치 못한 신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2) 마음속에 돌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목회 초년병 시절에 경기도 안성의 어느 농촌의 시골마을에서 6년동안 목회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는 시골이어서 봄철부터 시작해서 밭농사 논농사 과일 농사, 또 거기다가 가축까지 기르는 집은 상당히 바쁩니다.
그런데 봄철이 되어 밭에 씨앗을 뿌리려면 지난 겨우 네 땅에다 거름을 밭에다 뿌립니다. 또 어떤 밭은 채소를 심기 위해서 경운기로 밭을 갈아 엎습니다. 문제는 갈아엎은 밭에 돌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 반드시 돌을 걸러 내어서 바깥에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돌을 걸러내지 않으면 씨앗을 뿌릴 수 없고 뿌려져도 잘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돌이 있으면 반드시 걸러내는 일이 우선입니다.
사람들의 마음 밭도 이와 같습니다. 말씀의 씨앗이 떨어졌지만 마음에 있는 돌들로 인해서 신앙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이 돌들은 무엇일까요? 상담심리학에서는 어른 아이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 상처 받은 일들이 어른이 되어도 그대로 남아 있어 이러한 상처로 몸은 어른이지만 생각이나 인격이 어른이 아닌 아이의 상태로 남아 있어서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아 성숙치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은 사회성이 떨어져 마음속에 있는 상처나 열등감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합니다. 마음속에 있는 상처란 성경적으로 말하면 쓴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쓴 뿌리로 인해서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성숙한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나간 어린 시절이나 살아온 생애 가운데 사람들로 인해서 마음에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까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친한 친구로부터 받은 상처, 학교선생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들이 마음 속 깊이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내 잠재의식 속에 깊은 상처로 자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신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 거기에 대한 상처를 잊어 버렸지만 어느 한 순간 자신의 자존심이나 열등감, 그리고 상처를 건드리는 순간 참지 못하고 폭발하여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쓴 뿌리를 극복하지 않으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고 주님이 바라는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참고 인내 하지 못하므로 삶에 근본적인 변화와 성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사람은 말씀이 자신의 아픔을 건드리면 견디지 못하고, 쉽게 낙심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흙이 얇아서 신앙이 깊이가 얇기 때문에 불평과 감사를 반복하는 생활을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마음 밭은 성령의 쟁기로 마음 밭을 갈아엎을 뿐 아니라 돌들을 골라내어야 합니다.
특별히 자신의 믿음과 인격이 성숙치 못하는 마음의 돌들을 생각하고 골라내야 합니다. 미움과 증오의 돌, 자존심과 열등감의 돌, 교만의 돌, 자만의 돌,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상처의 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요즘 세간에는 힐링 캠프니 하면서 “healing"이란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8일자 국민일보에 50-60대에게 잘 알려진 포크송 가수인 양희은 씨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의 음악으로 쥬크박스 뮤지컬인 ‘아름다운 것들’을 라디오 특별공개방송 형식으로 선을 보인다고 한다. 애청자들이 털어놓는 사연을 그가 무대에서 읽으면 그 사연이 드라마로 전환된다고 한다. “그는 누구나 마음의 상처가 하나씩은 있다. 다른 사람의 사연을 들으면서 공감하고, 내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이어 혼자만 끙끙 앓던 마음속의 상처를 밖으로 드러낼 때 아픔이 치유된다.” 그래서 이 작품을 ‘힐링 뮤직컬’ 이라고” 세상의 음악을 통해서도 마음의 상처들이 치유될 수 있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치료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출16:22-26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마라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물을 구하였으나 먹지 못하여 그곳 이름을 쓴물이라고 하여 ‘마라’라 하였는데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시어 그것을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애굽사람에게 내린 질병의 하나도 내리지 아니 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료해 주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상처의 돌덩어리를 주님 앞에 내 놓아야 합니다. 고백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미움과 분노, 시기와 질투, 열등감과 자존심 그리고 교만의 돌들을 하나씩 부서야겠습니다. 이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운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속에 온유와 겸손과 사랑과 인내와 용서와 화평과 절제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깊이 뿌리를 내려야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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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3:29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3)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돌밭에 뿌려진 마음 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마음에 돌이 많고, 흙이 얇아서 뿌리를 내릴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돌이 많고, 흙이 얇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앙이 성숙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만큼은 은혜를 받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습니다. 문제는 성숙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달콤하고 귀에 익은 말씀만을 골라서 받습니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거스린 다거나 불리하다고 생각 할 때는 가차 없이 교회를 떠나거나 쉽게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교회가 자신에게 경제적으로나, 여러 가지 자신의 삶에 있어서 유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교회가 자신에게 불이익을 준다고 생각하거나 희생을 요구하면 쉽게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즉 신앙생활의 처음은 좋았지만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쉽게 신앙을 포기하고 주님을 떠나는 사람입니다.
바울 서신에 보면 딛후 4:4절에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여기 이 말씀에서 보면 데마는 바울의 선교여행에서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처음에는 같이 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선교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당시 교통이 불편하고 환난과 핍박이 심해지자 데마는 처음 가졌던 초심을 버리고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과감하게 하나님의 일을 털고 세상의 물질과 향락, 그리고, 출세와 성공의 길로 간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희생과 봉사만을 강요하지 자신에게 하나도 유익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신자들 가운데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신자가 청주에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교회에 등록을 하지 않고 다니는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등록을 하면 교역자들이 심방 온다 하지, 구역예배에 참석하라하지, 대심방한다 하지,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라 하지 그러니까 아예 편하게 간섭 없이 다니겠다고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도 일 주일 딱 한번 주일 대 예배만 보면 됬지 바쁜 세상에 할 일 많은 세상에 교회에 가서 시간 보내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 참석하지 않으면 성경을 가까이 하고 기도생활 하냐 하면 그렇 치가 않습니다. 교회예배참석은 덜하고 그 대신 세상의 온갖 일에 바쁘게 돌아다닙니다. 무슨 계모임부터 시작해서 세상일에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이렇게 세상을 사랑하다 보니 사탄의 시험에 빠져서 실족하게 되고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찬송가 336장에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2절에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 되도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이나 한 마디로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그것은 환난이나 핍박이나 고난이 오면 잘 참고 견디면서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금방 낙심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것은 신앙이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7절에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환난이나 핍박을 극복하고 뿌리를 깊이 내려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마음 속 깊은 곳에 많은 상처의 돌들을 꺼내 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치료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성숙한 열매를 주렁주렁 맺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3년4월14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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