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와 같은 마음 밭 막4:1-4,10-15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닷가에서 해변을 걷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타나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모여 들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떠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여러 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그 유명한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먼저는 “들으라” 하십니다. 귀를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씨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갈 새”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씨 뿌리는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또한 “씨”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말씀”입니다. 그리고 어디에다 이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까? 밭에다 뿌립니다. 그런데 이 밭은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씨는 똑같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마음의 밭은 네 가지가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씨뿌리는 비유 중 첫 번 째 마음 밭인 “길가와 같은 마음 밭” 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씨 뿌리는 사람”을 예수님으로 비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로 말하면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을 누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대상은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여러분의 마음 밭에 떨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마음 밭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말씀에 대한 자세가 열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치 어미 제비 새가 새끼 새에게 먹이를 갖다 입에다 넣어 주려고 할 때의 모습을 본적이 있으십니까? 서로 자기 입에다 달라고 자신의 입을 짝 벌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즉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제가 받아먹겠습니다. 이런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이 떨어 질 때마다 아멘 아-멘 으로 화답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느혜미야 8:3,5-6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그런데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은 그렇 치가 못합니다. 내가 오늘 한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먹어서 한 주간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기대치가 없이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배시간에 하품도 나오고 졸기도 하고 딴 생각을 하고 다른 일에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어떤 분은 예배시간에 예배에 집중하지 않고 주보에 집중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보에다 낙서를 하고 철자 잘못된 것 있으면 고치고 주보 가지고 놀다가 한 시간을 보내는 신자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피곤하니까 그러겠지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영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뿌리는 그 시간에 새가 옵니다. 쪼아 먹습니다. 사탄이 사람들이 믿음이 자라지 못하도록 방해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4절에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15절에 보면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여기서 우리는 사탄이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어떻게 해서든지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즉 믿음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전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대신 세상의 잡다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에 가득 차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지식이나 세상의 잡다한 철학이나 문학이나 TV의 드라마에 빠지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 동안 주님과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살다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 하니까 말씀이 잘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쪼개는 시간인데 자신의 귀에 거스리면, 반발하고 거부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반응이 우연이 아니고 사탄의 역사라 이겁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사탄이사람 들의 마음을 차지하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자리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하시지 않습니까?
즉 선과 악이 우리의 마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대립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내 마음 중심의 깊은 곳을 주님께 내 드려야 합니다. 왜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구원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눅8:12에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그렇습니다. 사탄의 전략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는 일입니다. 듣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탄의 계략을 알고 예배시간에 정신을 차리고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사탄을 이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내가 예배시간에 졸면 옆 사람에 전염이 됩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서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아멘 아멘 으로 화답해 보세요.
마13“16절"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말씀이 잘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예배시간에 다른 생각이 자꾸 들어옵니까? 졸음이 자주 옵니까? 사탄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예배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2) 마음이 굳어집니다.
교회생활의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배생활의 중심은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시간입니다.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를 열어야 합니다. 한데 말씀을 듣는 시간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니 감동이 없습니다. 말씀에 감동이 없으니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교회생활을 해 왔어도 신앙생활에 성장이나 변화가 없는 것은 사탄이 말씀을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교회는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나와도 마음에 말씀이 담겨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마음이 메말라 있습니다. 푸석푸석 합니다. 아니 굳어져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한 주간 세상에서 사람들과 일과 부딪치다 보면 우리의 마음이 메말라 있습니다. 부드럽지가 않습니다. 여유가 없고 짜증나기도 하고 지쳐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피곤합니다.
이럴 때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 시간은 우리의 마음에 생수를 마시는 시간입니다. 말씀의 생수를 마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새 힘을 얻고 세파에 단련된 마음이 부드러워 지는 것입니다. 푸석 푸석 마음에 이슬이 맺히고 푸른 싹이 트게 됩니다. 은혜가 소낙비가 내립니다. 생기가 돌아요! 그런데 교회에 나와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생수를 마시지 않고 매번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이 교회의 문을 나선다면 그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 씩 조금 씩 굳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우리의 메마른 마음에 생수를 뿌리는 시간입니다. 마음 밭을 부드럽게 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졸거나 딴 생각을 함으로써 말씀의 생수를 받지 못했으니 마음이 굳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날 연세가 많은 장년층이나 노년층이 예수를 믿기가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지난 인생의 수십 년 동안을 세상의 잡다한 사상이나 지식, 문화나 생활패턴이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딱딱하게 굳어 고정관념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세상에 살면서 세속적이고 세상적인 탐욕과 죄악들이 가득차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의 말씀처럼 육에 속해 있기 때문에 롬 8:7-8"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따라서 생수의 말씀이 자리 잡을 공간이 그들의 마음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1:20-24에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이적과 기적을 행하신 곳이 뱃세 다와 고라신이였습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고 영접지 아니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마음이 굳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굳은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 잡을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호세아 10장 12절에,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야훼를 찾을 때니 마침내 야훼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묵은 땅, 길가와 같은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려면 봄철에 묵은 땅을 쟁기로 갈아엎어서 그 위에 거름을 주고 씨앗을 뿌리듯이 성령의 쟁기로 마음 밭을 기경해야 합니다. 묵은 땅을 기경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하게 말씀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내 굳은 마음, 교만한 마음을 녹여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거부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불순종했던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의 영을 부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믿음 생활 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겔36:25-26 "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이 굳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교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3) 그러므로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마태복음 13:31-32에 보면 겨자 씨 비유가 있습니다. 이 겨자씨는 우리가 아는 대로 씨 가운데서 아주 작은 씨입니다. 아마 제가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깨알 만 하더라구요! 그런데 이 겨자 씨 하나를 심으면 불과 몇 년 사이에 수 십 미터 가지 자라 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새들이 와서 깃들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씨앗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씨앗을 땅에 심으면 반드시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씨앗에 비유 한 것은 말씀의 씨앗 역시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씨앗이 사람들의 마음 밭에 떨어지기만 하면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삶의 변화가 있습니다. 반드시 거듭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새 사람이 됩니다. 충성스런 일꾼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않으니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은혜 받지 못하니 말씀에 대한 감동이 오지 않습니다. 감동이 없으니 깨닫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니 삶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이것이 길가와 같은 마음 밭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은 바울이 말한 대로 “육에 속한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대 부분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불신자들입니다. 하지만 교회 다니는 형식적인 신자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마 13:15절에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길가와 같은 마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마음을 열지 않고 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받는 집회에 가도 빨리 끝나기를 바랍니다. 예배 시간에도 억지로 마지못해서 않아 있지 은혜를 사모해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 가운데 혹 길 가운데 떨어진 씨앗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거스리는 사람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부담스럽고 거부 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제 성령의 쟁기를 통해서 굳은 마음을 기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단비를 통해서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고 교만해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은 지식인이나 고위층들은 얼마나 교만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 잘 믿는 신자들은 다릅니다. 겸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디서든지 어느 위치에 있든지 온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겸손하게 경청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의 양식입니다. 이 말씀을 받아먹을 때 내 영이 건강해지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꿀 송이처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마음에 깨달음과 삶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길가와 같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열려 있기를 바랍니다. 부드러운 마음, 겸손한 마음, 경청하는 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깨닫는 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3년 4월7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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