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루병 여인의 믿음 /막5:25-34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회당장야이로의 딸을 고쳐 주러 가는 도중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에 대단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에 예수님이 움직이는 곳마다 수많은 인파와 군중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만큼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갈릴리와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예루살렘 전 지역에 편만하게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수많은 군중들이 밀리고 밀치고 하는 가운데 본문의 주인공인 혈루병 여인도 무리 중에 섞여 있었습니다. 이 여인의 병은 혈루병(hemorrhaging) 으로서 일종의 부인병으로 하혈하는 병으로 암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 용하다는 대학병원이나 명의를 다 찾아보았지만 고치지 못하였고 오히려 더 병의 증세가 더 악화 되었고 가진 재산은 다 허비하게 되어 더 이상 병원 치료도 받을 수 없게 되어 자포자기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예수의 소문을 듣게 된 것입니다. 레 15:25-27에 의하면 이 병 은 부정한 병으로 간주되어 그 병을 가진 사람만이 아니라 접촉한 사람까지 부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이 많은 군중들 사이에 끼여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려고 한 행위는 그 만큼 이 여인의 병이 중하고 절박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인생의 절망의 순간에 이 여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희망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의 질병인 ‘혈루병 여인의 믿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1. 말씀을 듣는 믿음입니다.
이 여인의 병은 중한 병으로 무려 12년 동안 앓은 병입니다. 그 결과 재산은 없고 이제 빈 몸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그에게 들려지는 소리는 절망의 소리요, 부정의 소리였습니다. 헌데 그에게 예수의 소문이 들려 왔습니다. 희망의 소식이 전해 진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습니다. 예수는 사람을 편견한 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예수 주변에는 항상 여인들과 아이들 그리고 병자들이 따라 다닌 것은 그 당시 사회 통념을 넘는 파격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여인은 예수님을 소문을 듣고 만나고 싶은 욕망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율법에 의하면 하혈하는 여인은 부정한 여인으로 간주되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하므로 자신의 병을 숨긴 채 병든 몸으로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목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서 군중 속에서 밀리고 밀치면서 예수님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쯤에서 생각해 봅시다. 그 당시 갈릴리와 가버나움에 예수님에게로 사람들이 다 몰렸을 까요? 아닙니다. 이 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더 좋은 구경거리가 있는 곳에, 좀 더 재미가 있는 연극장이나 시장이나 영화관이나 가요무대나 아니면 요즘 같으면 대선 주자들이 육거리에 왔다고 하는데 그런데 갔을 것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경기도 안성에서 농촌 목회를 했는데 그 때도 대통령 선거철이 되어서 안성 시내에 그 당시 김영삼 후보가 왔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그 날이 주일날인데 동네 사람들도 많이 안 보이고, 그런데 교인 하나가 안 보여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글쎄 김영삼 후보가 온다고 하여 거기 갔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 그 분이 집사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 여인은 좋은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어떤 소식입니까? 예수의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세상의 잡다한 소리 가운데서 가장 기쁜 소식이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이 소식을 들을 려면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와야 합니다. 교회에 와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이 생깁니다. 이 말씀을 자꾸 들을 때에 믿음이 자라고 그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혈루병을 앓은 여인이 믿음을 갖게 된 것도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의 소문을 듣지 못했다면 이 여인을 병을 치료 받지 못했을 것이고 비참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 누가 전해 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의 소문이 퍼져서 이 여인의 귀에게 까지 전해 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에게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주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일날 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될 수 있으면 공적 예배에 참석해서 말씀에 귀를 귀 울이고 은혜 받는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고 말씀을 잘 들어야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성령 충만하고 성령 충만해야 만사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 8절 이하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이세벨의 칼날을 피하여 광야로 피신하고 또 거기서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마시고 40주야를 지나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한 굴에 들어가서 거기 머물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여기 왔느냐 물으니 엘리야가 대답하기를 다른 사람은 다 도망가고 자기만 남아 있다고 말할 때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처음에는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고 지나갔습니다.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절에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세상에는 많은 소문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발걸음과 귀를 잡는 크고 작은 소문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공중에는 수많은 보이지 않은 전파가 있습니다. 하지만 채널을 맞추면 그 방송만 들을 수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세상의 잡다한 소문에 귀 기울이지 말고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서 여러분의 육체와 영혼이 치유되고 회복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이 여인의 믿음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 이므로서 그에게 믿음이 생겼으며, 그 믿음이 생산적인 믿음,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여인의 믿음은 생각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이며 생산적인 행동을 낳았습니다.
그리하여 이 여인은 자신의 신분과 병을 숨긴 채 자신의 나약한 몸을 이끌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고 만지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많은 병자들이 그 자리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군중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보았고 예수님의 옷을 만져 보기도 했고 예수님의 옷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이 여인이 예수님의 은총을 누리게 하였겠습니까?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수많은 군중 들 사이에서 12년 동안이나 병을 앓고 재산을 다 허비하고 오히려 병을 더 깊어진 이 여인! 마지막 사력을 다해서 예수님께 나온 이 여인에 대해서 주님은 긍휼의 마음을 가지신 것입니다. 예수 외에는 이 세상에서 그 여인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고 나오는 그 여인을 예수님은 외면하실 수 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여인의 깊은 곳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28절에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나으리라”
그 당시 사회적 편견과 따가운 시선을 뒤로 한 채 그녀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병든 몸을 이끌고 혼신을 다하여 드디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고 하는 것은 그의 믿음이 생각에 머물러 있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음을 의미합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고 생각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그 당시 많은 군중들이 밀고 밀치면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스쳤든지 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직 이 혈루병 여인이 유일하게 치료 받았다고 하는 것은 그의 믿음이 생각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이 혈루병 여인의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티벳에는 ‘내일이면 집 지리’라는 이름의 새가 있다고 합니다. 이 새는 날씨가 따뜻한 낮에는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면서 실컷 놀고먹다가 밤이 되어 기온이 떨어져 추워지면 오들오들 떨면서 ‘날이 새면 꼭 집을 지어야지’ 하고 결심을 합니다. 그러다 날이 밝아 햇볕이 나서 다시 포근해지면 지난 밤 추위에 떨며 했던 결심을 새까맣게 잊고 놀기에 여념이 없다. 또 날이 어두워지고 밤이 되면 그제야 ‘아이고 추워라’ 내일은 날이 새자마자 꼭 집을 지어야지‘ 하고 후회를 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낮에는 놀고 밤엔 후회하며 추위에 덜덜 떠는 생활을 계속한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명품을 만드는 프랑스의루이비통이나 에르메스 샤넬, 이탈리아의 프라다나 스위스의 롤렉스 영국의 버버리 등은 세계적인 회사로 브랜드 가치가 수조원에서 수십조 원을 호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명품은 유명 디자이너 들이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그 밑에 설비나 제작하는 팀들이 가공하고 상품이 생산되어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명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에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에 그친다면 아무런 상품가치를 유발할 수 없고 명품도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행동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생산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이 혈루병 여인의 믿음, 생각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여인이 행동하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혈루근원이 말랐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병의 근원이 치료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12년 동안 고통 속에서 살았던 삶이 끝난 것입니다. 고통이 끝난 것입니다. 새로운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행동하는 믿음은 기적을 창출합니다. 요단강이 어떻게 건너갔습니까? 철철 물이 넘치는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이 강에 발을 내딛는 순간 흐르던 물이 멈추었습니다. 철옹성 여리고성이 어떻게 무너졌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13 바퀴를 도니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이 믿음, 행동하는 믿음이 이 여인을 치료한 것입니다.
3.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본문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에 손을 댄 사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몸에서 능력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제자들이 말합니다. 예수님 사람들이 이렇게 에워싸서 미는데 누가 손을 대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아니다. 분명히 내 옷에 손을 댄 자가 있다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이 여인을 둘러보시자 이 혈루병 여인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두려워 떨며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을 설명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34절에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건강 할지어다.”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여인은 벼랑 끝에 몰린 사람입니다. 12년 동안 큰 병을 앓았으니 몸은 쇠약해 져 못해 죽음을 예약해 놓은 사람입니다. 12년 동안 병원에 다녀서 남아 있는 재산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녀의 정신과 육체는 탈진한 상태로 아무도 그를 도울 자 없습니다. 말벗도 없습니다. 그에게 붙들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마지막 한 가지 불들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여인은 절망적인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습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이 얼마나 절대적 믿음입니까?
외경에 의하면 이 여인의 이름은 베로니카인데, 그녀는 후일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 언덕을 올라갈 때에 위험을 무릅쓰고 다가가서 주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을 수건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 수건으로 땀을 닦으시고 다시 돌려주었는데, 그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이 그려졌다고 합니다. 이것을 ‘성 베로니카의 수건’ 이라고 부르는데 지금가지 유물로 보관하고 있다 합니다. 이 혈루증 여인의 절대 믿음이 후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이 의지할 분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구원할 분은 예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재산도 다 허비하고 자신의 병은 더 중하여지고 아무도 자신을 도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 본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의지할 것이 많은 사람은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보다 세상에 더 화려하고 좋은 옷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력의 옷을 잡기를 원합니다. 명예의 옷을 잡기를 원합니다. 재물의 옷을 잡기를 원합니다. 인기나 명성의 옷을 잡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잡았다 할지라도 주님의 옷을 잡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옷을 잡은 이 여인은 육신의 병만 고침 받은 것만이 아니라 그의 영혼도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옷은 세상의 옷처럼 화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옷은 신비한 옷입니다. 예수님의 옷을 잡는 순간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옷을 잡는 순간 그 어떤 병도 치료받습니다. 예수님을 옷을 잡는 순간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넘칩니다. 삶속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예수님 앞에 나오기는 하지만 이 혈루병 여인처럼 단순한 믿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고 다른 것을 더 의지하고 바라봅니다. 뭐 이런 것 아닙니까? 교회 나가기도 하고 다른 것도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가 전부여야 하는데 그렇 치가 않습니다. 예수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고 예수보다 만나야 할 사람이 아직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지 못하고 주변에서 서성거리면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혈루병 여인처럼 이제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라는 절대적인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은 혈루병 여인의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이 혈루병 여인처럼 궁지에 몰려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먼저는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행동하는 믿음과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의 손을 내 밀어 예수님의 옷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삶속에 기적을 가져 올 것입니다.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2012년 11월 25일 주일설교
'.........은혜의 말씀 > ...새믿음의 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어버린 언약궤 출25:10-22 (0) | 2012.12.11 |
---|---|
하나님의 셰키나 출24: 9-18 (0) | 2012.11.29 |
하나님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15-17 (0) | 2012.11.15 |
예수를 만난 사람들 (2) 한 문둥병자의 감사 눅17:11-19 (0) | 2012.11.07 |
아브라함의 믿음 /롬4:16-24 (0) | 2012.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