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사람 (빌3:3-14)
초기 기독교가 예수 부활로 인하여 큰 부흥과 성장이 있자, 위협을 느낀 유대인들은 기도교인들을 핍박하기를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 바로 사울이라는 사람이라는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울이 위협과 살기가 충만하여 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오기 위하여 대 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올 즈음에 하늘에서부터 빛이 둘러 비치는 지라. 엎드려 있을 때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 하느냐” 하시거늘 그가 대답하기를 “주여 누구시오니이까” 하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할 때, 그는 엄청난 충격에 쌓였고 빛에 의해서 눈은 멀어 사흘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먹지 못한 채 있다가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아나니아 라는 사람에 의해서 안수하니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다시 보게 되었고 세례를 받고 이 다메섹의 예수 만남의 사건을 통해서 그는 유대교에서 기도교로, 예수 핍박자가 예수 증인으로 바꿔진 결정적 사건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대 전환이 오늘날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는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그 당시 세계 중심인 로마에 까지 복음을 전하고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하였습니다. 기독교를 유대 땅에 국한 시키지 않고 주님의 선교명령대로 땅 끝까지 전파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 이런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육체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은근히 자기 가문이나 가족,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바울 당시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육체를 자랑하였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본문 내용을 보면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육체를 자랑하는 자들에 대하여 너희들이 육체에 대하여 자랑한다고 하면 나도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정통 유대인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신은 하나님이 선택한 야곱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 중의 유대인은 바리새인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율법을 준수하는 자입니다.
또한 자신은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 없는 자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그 당시 최고의 율법학자인 가마리엘 문하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즈음 말로 하면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최고의 수준의 오른 사람인 것입니다.
지난 9월 19일 유력한 대권 후보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자신이 국민의 변화의 열망을 확인하였기에 자신이 대통령 후보자로 출마 하겠다고 하면서 강력한 대권의지를 표명하였습니다. 의대시절에 V3백신 개발로 명성을 얻고 난 이후 교수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벤처성공신화’ 주인공으로, 유학 뒤에 경영학 교수에서 작년 ‘청춘 콘서트’로 돌풍을 일으켜 유력한 대권 후보자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안철수 후보를 보면 소위 스펙이 대단합니다. 그의 육체적 이력이 대단히 화려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러한 이력을 동원하여 자신을 나타내려 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랑할 만하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은 학문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최고의 반열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는 히브리인이었지만 헬라어를 구사하였고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 당시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지고 있었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 그 사회에서 바라고 원하는 것을 다 얻은 사람이었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다 버렸다고 말합니다. 7절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 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길 뿐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이전에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세상적인 명성이나 인기, 세상적인 스펙이나 학위, 재물이나 사회적인 신분을 귀하게 여겼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고 난 이후 이 모든 것이 무가치한, 쓰레기와 같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육체를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고귀한 가치인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외모, 즉 자신의 이력이나 육체만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더 귀한 예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많이 배운 학자가 배를 타고 가다가 사공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철학에 대해서 아시오?” 사공이 자기 같은 사람이 무슨 철학에 대해서 알겠느냐고 대답하자, 그 학자는 “그러면 당신은 인생의 3분의 1을 잃어버린 것이오.” 하고 조롱하였습니다. 그 학자가 이어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문학에 대해서 아십니까?” 사공이 또 잘 모른다고 대답하자 학자는 “그러면 당신은 인생의 3분의 2를 잃어버린 것이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한참 가다 갑자기 배에 물이 들어와 배가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사공이 급히 그 학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수영할 줄 아시오?” 학자가 수영할 줄 모른다고 대답하자 사공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인생의 전부를 잃어버리게 되었소.”
저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지식이나 학문입니까? 재물입니까? 아니면 가문이나 자신의 업적입니까? 사회적 신분입니까? 이 모든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고상한 가치 최고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2) 삶의 목표가 분명합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 그의 삶의 목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기 이전에 그의 삶의 목표는 세상적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 놓음으로써 출세하는 것이요, 성공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와 명성과 재물이 그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부활 하신 주님을 만난 이 후 그의 삶의 목표는 180도로 달라졌습니다.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삶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었습니다. 삶의 목표가 분명해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8절에 보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나니까 이전에 내가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겼던 것은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거듭난 사람들이라면 세상적인 즐거움이나 쾌락,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즉 그리스도를 얻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세상적인 즐거움이나 인기나 인간적인 관계를 과감하게 버렸다는 것입니다. 마치 배설물을 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를 얻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서는 내가 전에 귀하게 여겼던 세상적인 즐거움이나 쾌락, 오락이나 게임이나 드라마 혹은 세상적인 친구와의 만남 등을 포기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제자들이 다 그러했습니다. 야고보 요한 베드로도 자신의 가족과 생업을 뒤로하고 주님을 따랐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고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메섹 사건 이후에 바울의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갈 2:20에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것이 그리스도를 만난 자의 삶의 목표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난 이후에는 세상적인 즐거움이나 명예나 인기나 권세나 재물에 우리의 관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13절에 뒤에 것은 이제 완전히 잊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앞에 있는 것, 즉 그리스를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9월 20일자 국민일보에 이런 기사가 떴습니다. “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 곁으로 왔으면 좋겠어요” 내용을 보니 뮤직 비디오로 처음 음반을 낸 싱어 송라이터 나얼 (본명 유나얼)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데뷔 13년차 뮤지션이고 소울(브아솔) 멤버로 TV나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이런 그가 취재진에 선 것은 20일 발매될 첫 솔로 음반 (Principle Of Soul) 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그는 이번 음반을 통해서 “사람을 살리는 소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좀 영적인 내용인데···“ 라고 말한 되 잠깐 뜸들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산다고 하잖아요? 밥을 먹어야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음반 작업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하나님 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할 수 없을 까 하면서 이 음반을 내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배설물처럼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그것들을 꼭 끌어안고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8절 ‘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3) 부르신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자입니다.
바울은 12절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4절에도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알고 난 이후 그의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달려갔다고 말합니다. 달려갔다고 하는 말은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위해서 살아왔음을 의미합니다. 그가 최선을 다한 이유는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상 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은 우리의 인생이 마치고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지난 생애에서 삶에 대하여 결산할 날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하여 말입니다. 칭찬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심판 받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처럼 하나님 앞에 상 받기 위하여 수고해야 합니다. 노력해야 하고 주님나라를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 하실 때는 우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4: 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겨우 오른 편 강도처럼 자신의 몸만 구원 얻는 자가 아니라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인생, 상 받는 인생이 되어라 는 것입니다.
사실 고린도 전서 15장 35-41절 에 보면 몸의 부활과 영광에 대한 비밀이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우리의 구원이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오른 쪽 강도의 구원하고 평생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한 사도바울이나 베드로와 같은 사람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40-41절에 보면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의 영광이 다르고 별과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그러니까 해의 광채가 다르고 달의 광채가 다르고 또 수많은 별들의 광채가 다 다르듯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다 똑 같은 것이 아니고 이 땅에서 주의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헌신하고 수고했느냐에 따라 그의 영광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개털모자만 겨우 쓸 사람도 있고 의의 면류관, 금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쓸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세도 알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 23-26 절에 보면 모세도 장성하여 공주의 아들로 궁중에서 호화롭게 생활하였지만 그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는 공주의 아들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께서 장차 상 주실 것을 바라보고 자신의 인생에서 주어진 사명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들도 신앙생활에 머뭇거리지 말고 나태하지 말아야 합니다. 걸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날 까지 상 얻기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선교사 스탠리 존스(E. Stanley Jones)가 인도에서 복음을 증거 했으나 사역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하나님, 너무 힘들어요, 열매가 없어요. 이제 지쳤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존스에게 물으셨습니다. “존스야, 네 앞에 사과나무가 있는데 지금 사과가 있느냐?”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아직 철이 아니기에 사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아라. 사과나무 뿌리가 땅 속에 깊이 박혀 있고 사과나무 잎이 태양 빛을 받는다면 언젠가 사과 열매를 맺지 않겠느냐? 너의 사역에 지금은 열매가 없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열매가 맺혀질 것이다.” 하나님은 스탠리 존스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는 그 후 포기하지 아니하고 사역을 계속한 결과 많은 영혼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때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낙심 할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주어지지 않아서입니다. 하지만 염려 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가면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응답이 있습니다. 주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육체를 자랑하지 맙시다. 예수님만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살지 말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시기 바랍니다. 부르신 사명을 위해 끝까지 달려 상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2012년 9월 23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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