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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장 1-9 바벨탑 사건이 주는 교훈

gkffpffndi 2012. 9. 7. 15:32

창세기 11장 1-9 바벨탑 사건이 주는 교훈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에 의하면, 바벨탑은 노아의 대홍수와 같은 재난을 피하게 위하여 높이 쌓았으며 그리고 제단 정상에는 하나님 대신 이 엄청난 역사를 일으킨 니므롯 자신을 숭배하도록 하는 제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시날 에서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 왕국을 건설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최초의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하나님을 대적한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하나님이 다 심판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교만과 불신앙을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지 않으시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혼잡케 하셨으며, 더 이상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하여 함께 악을 도모하지 못하게 하므로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으며 인류 최초 집단적인 하나님에 대한 도전은 무산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바벨탑 사건이 주는 교훈 이러한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늘에 닿게 하여

 

노아의 홍수가 난 이후 사람들은 땅에 편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까지만 하여도 인류의 방언은 하나였습니다. 1절에 온 땅의 언어가 하나 요 말이 하나였더라. 그리고 이들은 점점 동방으로 옮겨 가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에 아주 비옥한 땅이요 거대한 평원인 시날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도시국가를 건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 중앙에 구운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을 발라서 튼튼하게 탑을 쌓기 시작하였는데 ‘지구라트’라 불리 우는 바벨탑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현존 최대 규모의 지구라트 유적은 엘람 왕국의 초가잔빌 유적(오늘날 이란)이며,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는 수메르인의 도시인 우르 유적(오늘날 이라크)이 있습니다. 우르의 지구라트는 벽돌을 쌓아 만든 높은 기단 위에 신전이 세워져 있으며 그 규모는 세로 60m, 가로 45m, 높이 25m입니다. 이러한 건축물 가운데는 210m 이상의 높이를 가진 약 70층의 높이의 건축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구라트의 정상에는 제단이 있어서 그곳에서 자신들이 섬기던 신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지구라트를 축조할 때에는 속에는 햇볕에 말린 벽돌을, 겉 마무리 쌓기에는 구운 벽돌을 쓰고, 역청(瀝靑) 등을 모르타르로 사용하였다고 하는 것은 성경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건축기술로는 별것 아닐지 몰라도 수천 년 전에 돌로 건축을 짓지 않고 구운 벽돌에 역청을 발라 높이 쌓았다고 하는 것은 획기적인 건축기술인 것입니다. 자연석인 돌로 건축을 하는 것보다 구운 벽돌과 역청을 발라 쌓은 구조물이 훨씬 단단하고 오래 보존된 다고 하는 것은 오늘 날 알려진 사실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왜 이렇게 높은 탑을 쌓았을 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아 홍수 이후에 사람들이 자신의 조상들로부터 엄청난 홍수 설화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무지개 언약을 믿지 못하고 또 다시 물로 심판 할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높은 탑을 쌓아서 피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 또 다른 불신앙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신앙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거역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 없는 세상, 즉 인본주의를 싹트게 한 것입니다. 즉 바벨탑 사건은 하나님 없는 세상, 최초로 하나님 없이 인간중심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시도한 악한 자의 시도였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 없는 세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4절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고 한 것은 인간의 교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하는 오만함이 숨어 있습니다. 이러한 유혹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는 사탄의 유혹이 오늘날도 끊임없이 인간을 교만하게 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있었던 선악과는 하나의 경계선이었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경계였습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 영역에 대한 도전이요 침범인 것입니다.

 

이러한 교만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7일(금) 국민일보에 인간 게놈 세밀 지도가 9년 만에 완성되었다고 나왔습니다. 2만 1000여개의 유전자로 구성된 인간게놈(genome. 유전체) 지도가 완성되었다고 영국 BBC 인터넷 판이 보도 하였습니다. 게놈세밀지도는 ‘유전 스위치’ 400만개도 찾아냈습니다. 앞으로 이 스위치들은 심장병에서 정신질환에 이르기 까지 각종 질병의 위험도를 조절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과학지식의 발달은 결국 인간이 하나님의 고유영역인 생명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1997년 2월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의 복제양 둘리를 시작으로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복제 송아지가 김대중 정부 시절에 탄생하여 ‘진이’(jean-ie) 라고 하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은 나아가 인간은 앞으로 복제 인간을 만들 것입니다. 아니 인간과 동물이 하나 된 동물 체세포가 결합된 괴물인간(Beast Man)도 출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괴물인간은 영혼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계시록 13장에 보면 이러한 짐승이 나타나 하나님을 훼방하고 성도를 핍박하고 자신의 우상을 만들어 절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 지 다 죽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늘 꼭대기 까지 오르려는 과학 절대주의는 사람들에게 신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과학이라는 우상 앞에 하나님이나 예수 구원자, 교회나 십자가는 미신이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과학 절대주의를 신봉하는 현대인은 과학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 우리 이름을 내고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의 이름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당연히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알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의 영광과 이익만을 생각했으니 얼마나 섭섭하시겠습니까?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유명한 관광지에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남겨 놓는 것을 보게 됩니다. 로마, 런던, 그랜드 캐년등 가는 곳마다 한국인들의 낙서가 있습니다. 영어로 하지 않고 한글로 해 놓았습니다. 한글로 자기 이름을 새겨 놓았습니다. 전남 해남의 땅 끝 마을의 기념탑에도 온통 이름을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유명정치인이나 장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 나오는 이유도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요즘 유력한 야당의 대통령 후보자로 서울대 융합대학원장인 안철수 교수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여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자인 박근혜씨와 지지율이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선이 100일도 남지 않았는데도 공식적으로 대선 출정식을 하지 않아서 사람들로부터 우유부단한 인상을 주기도 하고, 대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타이밍을 찾는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 후보자로 나온 다는 것입니다.

 

왜 나오냐 하면 그가 오래 전에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이 심사숙고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인생에 발자취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철수 씨는 이번 대선에 분명히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사업을 벌이기보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들을 했어야 했습니다. 즉 자신의 임기 동안에 업적을 쌓기 위해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급하게 사 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다 보니 불통이라는 부정적이미지와 함께 ‘명박산성’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된 것입니다. 물론 사대 강 사업이 저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부터 ‘치산’ ‘치수’라는 말이 있듯이 물관리가 21세기에 중요한 사업임에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사 대강 사업에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다 보니 중소기업과 자영업 하는 서민들의 경제가 위축되어 경제의 불황이 가속화되어 국민들의 불만이 터진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 까 곰곰이 생각하면 자신의 임기 안에 자신의 치적을 쌓고 자기 이름을 내는 사업을 급하게 밀어 붙인 결과 인 것입니다.전임 대통령들이 재임 기간 동안에 큰 업적을 쌓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를 성공시켰으며, 전두환 대통령은 물가를 안정 시켰고,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외교를 성사 시켰고, 김영삼 대통령은 금융실명제로 투명하게 하였고 김대중 대통령은 금모으기로 IMF를 극복하였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수도권과 비수도권과의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은 다른 것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사 대강 사업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함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표차이가 500만표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표차이는 그 이전 대통령과는 8배 이상의 큰 표차였습니다. 이렇게 큰표차는 국민들이 이 대통령에게 기대치가 높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도와 주셨으며, 기독교인들의 표가 그 때만큼 결집된 적도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자신의 이름을 내기 보다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다면 겸허하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했습니다. 나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국가를 경영하고 지혜를 구했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당선 되고 나서 촛불 시위가 있었습니다. 야당과 좌파 불교세력에 일어났습니다. 또한 청와대에서 목사님 모시고 예배드린다고 불교계가 딴지를 걸었을 때 왜 담대하지 못하고 물러서냐고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불교계의 ‘종교자유연구원’ 이라는 단체가 국가 인권위원회의 지원 아래 기독교계의 미션 학교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학생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기독교학교에서의 선교활동을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종자연이 불교단체이어서 공평한 판단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의를 교계에서 종자연에게 용역을 맡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하고, 현직 국가인권위원장의 처신이 적절치 않다는 국민적 요구가 많았고, 교계에서도 이의를 제기 했음에도 이번에 또 다시 그 자리에 반 기독교적인 인사를 임명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보실 때 어떻게 생각하였겠습니까? 자신의 이름과 명예만을 생각했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는 생각지도 않고 국정을 운영했으니 이런 결과가 오는 것은 필연 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드러내었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해도 주인의 영광, 즉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목적도 이와 같습니다. 사업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를 경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지난 2000년 동안 20여개의 문명이 역사를 주도 했지만 그 문명들은 다 몰락했습니다. 하나님을 배제시킨 개인이나 국가나 문명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 흩어짐을 면하자

 

창세기 9장 7절 에서 주님은 노아의 후손들에게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 번성하라”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온 땅에 가득하여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인구가 늘어나자 동쪽으로 이동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가장 비옥한 땅인 시 날 이라는 지역에 정착을 하고 이곳에서 도시를 형성하고 국가를 이루면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땅에 편만하여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역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도시국가를 이루면서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벨탑을 세운 목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에 의하면 시 날 에 자리를 잡은 니므롯의 후예들은 노아 홍수로 심판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대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심판하신 하나님 대신에 니므롯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영웅시되어지자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면서 자신들의 조상을 심판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악평을 하고 하나님을 악신이라고 하면서 배반의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집단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대적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들을 심판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들의 생명을 보존하려면 흩어지지 않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은 원수라도 하나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이단 신천지기관지 천지일보와 불교계인 종자연이 손을 잡고 지난 달 24일 서울 프레스 센타에서 ‘종교인권 증진을 위한 국가와 언론의 역할’ 이런 제목으로 포롬을 개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이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와 사상과 지식으로 가득 차 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는 기독교학교에서 월급을 받고 학생을 가르치면서 교회와 하나님에 대하여 수업시간에 힐난하고 폄하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치 인기 없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정부를 깍아 내리면 자신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인기가 상승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처럼 교회나 목사,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비하함으로 반 기독교적인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여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달성하려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가 만연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더 이상 인간의 반역을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가 되었던 언어를 혼잡케 하므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하여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 끼리 살길을 찾아 떠났고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땅위에 편만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최근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라는 ‘뮤직 비디오’ 가 조회 수가 일 억명을 돌파했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가수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대한민국의 인지도를 높이고 소위 K-Pop의 열기를 전 세계에 확산 시킨다는 의미에서 문화산업을 일으키고 문화의 변방에서 중심에 속했다는 자부심이 커지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신앙적인 면에서 보면 이러한 현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로 하나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인터네 상에서의 기독교를 공격하고 폄훼하고 비하하는 댓글을 볼 때 섬뜻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할 정도로 대한민국이 하나님에 대하여 적대적인 사회가 되었습니다. 유력 일간지나 유명포탈 사이트에서는 타종교의 부정과 치부는 숨기면서 기독교에서의 선한 일과 삶에 대하여 보도하는 것은 인색하다 못해 아예 취급도 하지 않고 있으며 부정적인 기사만을 내 보내 교회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2편 4절에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9절에는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며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교훈 받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개인이나 국가는 심판 당한다는 것입니다. 늘 겸손하여 자신의 사명과 본분을 알고,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영광보다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개인과 가정과 국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2012년 9월 9일 청주벧엘성결교회정영진목사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