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8:6-22 대홍수 이후
노아의 대홍수는 지구촌의 어느 부분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전 지구적인 사건이었음을 증명하는 흔적들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홍수 설화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 중 수메르인이 가지고 있는 토판에 홍수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습니다.
노아 대 홍수에 대한 흔적들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나 거대한 협곡이나 높은 고지에 있는 호수에 염분이 함유되어 있는 것이나 고지대에서 바다생물의 화석이 발견되는 것은 노아홍수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노아대홍수는 정확히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 큰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으며 물이 150일 동안 있었고 그 이후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 그와 함께 방주에 있었던 가축을 생각하시고 하나님께서 땅위에 바람을 불게 하시므로 물이 줄어들었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들을 닫으시고 하늘에서 비를 그치게 하셨습니다. 물이 점점 물러가서 150일 후에 줄어들고 7월 17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줄어 10월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습니다.
40일이 더 지난 후에 노아는 창을 열고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 놓아 육지의 물이 어느 정도 감했는지의 여부를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저는 이 시간 노아 대홍수 이후에 대한 사건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까마귀를 내 놓았습니다.
창세기 8장 6-7절에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보내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난 이후 40일 지나자 노아는 방주의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바깥세상으로 내 보냈습니다. 노아가 까마귀를 내 보낸 이유는 땅에 물이 어느 정도 말랐나 알아보기 위함 이었습니다.하지만 까마귀는 방주로 돌아오지 않고 방주 주변에만 머물다가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가 곤 하였습니다.
즉 까마귀는 주인인 노아가 왜 자신을 바깥세상에 보냈는지 알 지 못하고 방주 안으로 돌아오지도 않고 주변에서 배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방주는 오늘 날 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까마귀 같은 신자가 교회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완전히 들어오지 않고 세상에서 맴도는 신자입니다.
까마귀가 방주 안에 들어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방주안보다 바깥세상이 자유롭게 때문입니다. 교회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성령 받지 못한 신자에게 있어서 하나의 구속이 될 수 있습니다.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생활 하는데 있어서 신앙이 제약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거추장스럽고 때로는 자신이 출세하는데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신자들은 직장이나 사회생활하면서 자신이 교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적당하게 잘 어울려 줍니다. 술잔도 기울이고 노래방이나 룸싸롱도 가면서 주일이면 어김없이 교회에 출석을 합니다. 교회에서는 누가 보아도 분명한 신자입니다.
이런 신자들이 한국 교회 안에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세상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양심에 거리 낌 없이 생활하는 소위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3장에서 고린도 교인을 향하여 ‘육신에 속 한자’ 라고 말했던 영적 어린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어린 신자들은 교회보다 세상에서 즐기는 것이 더 좋습니다. 교회생활은 하나의 취미생활이나 교양수준에 머물러 하나의 악세사리에 불과 합니다.
얼마 전 여의도에서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 난 것을 기억하십니까? 길 갖던 사람을 갑자기 칼을 휘둘러 중상을 입혔는데 알고 보니 범인은 전 직장 동료였습니다. 범인인 이 사람은 신용정보회사의 직원이었는데 이 사람이 그 직장에 있을 때 자신에 대하여 험담하고 비방한 사람에 6명에 대하여 앙갚음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동료직원들에 의한 비방과 험담을 견디지 못해 직장을 그만 두고 이리저리 직장을 구하려 하였지만 구하지 못하고 결국 고시촌에 들어가 월세 생활을 하는 지경에 이르러 자신의 어려움이 전 직장 동료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으로 인해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렇듯 과도한 경쟁사회와 시기와 질투와 비방이 많은 사회에서 우리 크리스챤이 성숙한 사람이 된다면 우리나라와 사회는 밝아 질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챤은 직장생활에서 남의 흉을 보는 험담이나 뒷 담화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자리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까마귀가 방주에 돌아오지 않은 이유는 까마귀는 죽은 시체를 먹는것을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바깥 세상에 나가면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많이 있는 데 답답한 방주에 돌아 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까마귀가 밖으로 나갔을 때 까마귀가 발견한 것은 물위에 떠 있는 각종 동물의 썩은 시체였습니다. 까마귀는 썩은 시체 고기를 좋아합니다. 까마귀는 썩은 시체 위에 앉아 굶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까마귀가 썩은 고기를 즐거워하듯이 까마귀 같은 신자는 썪어 없어질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신자의 모습입니다.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보다 여전히 세상에 욕심을 가지고 세상적인 명예나 물질에 관심을 가지고 옛 자아가 변화지 않고 세상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사람,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에 대하여 무관심한 사람, 까마귀 같은 신자입니다. 즉 완전히 거듭나지 못한 신자요 영적 어린아이입니다.
까마귀가 밖으로 내어 보내진 이유는 땅의 상태를 알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까마귀는 썩은 시체에 정신이 빼앗겨 자기 사명을 망각하였습니다. 까마귀는 다른 동물들보다 먼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특혜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까마귀는 옛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자기 사명을 망각하고 오직 먹고 마시는 일, 세상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2. 비둘기가 같은 신자가 있습니다.
까마귀는 주인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망각한 채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비둘기는 까마귀와는 달랐습니다. 까마귀가 세상과 방주만을 왕래 하고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자 이번에는 비둘기 한 마리를 먼저 날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비둘기는 아직 지면에 물이 마르지 않으므로 발붙일 곳이 없으므로 곧 방주로 돌아오자 노아가 손을 내밀어 방주로 들여보냈습니다.
물로 가득한 땅위를 피곤하게 날아 다녀 본 비둘기는, 이전보다 방주를 더 사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방주 안에서 한없는 안식을 느꼈을 것입니다. 비둘기는 온유하고 순결하다는 점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비둘기가 방주 밖에서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방주 안으로 돌아와 거기서 평안을 누렸다고 하는 것은, 참 성도는 세상에서는 어떠한 만족이나 평안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또한 비둘기는 온유 겸손, 그리고 성령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비둘기 같은 신자는 성령 충만한 신자를 상징합니다. 성령 충만한 신자는 세상에 아무리 다녀도 피곤하기만 하지 세상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합니다. 까마귀 같은 신자는 세상이 좋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술 먹고 화투하고 여행하면서 즐기는 것이 좋습니다. 거기서 인생의 기쁨과 즐거움을 얻습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한 비둘기 같은 신자는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서 참 기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그리고 7일후에 또 다시 비둘기 한 마리를 내어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돌아 왔는데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입에 감람나무 새잎을 물고 왔습니다. 감람나무 새 잎을 물고 왔다고 하는 것은 이제 물이 아주 저지대까지 많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이 비둘기를 통해서 물이 많이 빠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비둘기는 노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감람나무 잎을 입에 물고 옴으로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물러가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왔음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는 교회에 좋은 소식을 전해 줍니다. 기쁨의 소식을 전해 줍니다. 그래서 매 주일 마다 그냥 오지 않습니다. 복음 빚진 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다합니다. 새 신자도 물어오고 ... 좋은 소식, 하나님의 마음이나 주의 종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소식을 가져 오는 신자가 비둘기 같은 신자, 성령 충만한 신자입니다.
지난 8월 25일 자 국민일보에 나가수 2서 8월의 가수로 등극한 소향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일명 나는 가수다 프로에서 연일 1위로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는 8월의 가수로 선정되면서 올 12월 열리는 .슈퍼 디셈버 2012 가왕전, 네 번 째로 출전권을 따냈다. ‘한국의 머라이 캐리’로 불리울 정도로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였지만 엄청난 스트레스와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CCM 가수로서 일반 대중가수로 첫발걸음 하는 과정에서 안티들이 그녀를 ‘개독가수’ ‘노래를 찬송가식으로 부른다’ ‘CCM 가수가 왜 대중가요를 불러‘ 등의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댓글을 다는 분도 그렇고 방송을 보는 이들 중에 상처 입은 영혼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니 그렇게 얘기 할 수 있어요 여기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건 그런 댓글에 반응하기보다 그들에게 사랑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소향 본인 역시 지나온 삶이 상처 투성이였습니다. 부모님이 고3 때 이혼하셨고 당시 자신은 막 신앙생활 하던 때여서 이길 수 있었고 20살에 선교단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결혼 한 이후 산부인과 처음 갔는데 자궁암이라는 판단을 받고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대중가수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세계적인 록밴드U2의 보컬 보노의 기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록계의 목사로 통하는 보너는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대중음악을 한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꿈을 가졌으면 해요. 저도 꿈을 키워 여기 까지 왔거든요. 일반적으로 꿈은 현실성이 없다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제 노래가 절망에서 희망으로 모두를 바꿔 놓는 아름다운 장막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크리스챤은 교회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이어야 합니다.
벧전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또 7 일 후에 세 번 째 비둘기를 내어 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 하였습니다. 귀소본능이 강한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마른 땅에서 새로운 둥지를 찾아 정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 인해 노아는 땅에서 물이 완전히 물러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까마귀 신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비둘기 신자, 성령 충만한 신자,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신자, 은혜에 보답하는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노아는 먼저 제단을 쌓았습니다.
601년 1월 1 일에 땅위에서 물이 걷히고, 2월 27 일에 땅이 마르니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16절에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노아와 그 가족들과 땅위의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제일 먼저 한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요즈음 폭우나 집중호우가 퍼 부으면 그 지역은 엄청난 재산피해와 함께 인명피해는 물론이고 도로가 유실되고 논과 밭이 침수되고 비닐하우스가 가라앉아 과실 농사를 망치게 되어 장마 뒤에 얼마나 할 일이 많습니까? 가재도구부터 시작해서 청소를 해도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노아의 대 홍수가 지나가고 난 이후의 지구는 엄청난 재난이 임하여 홍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모되었을 것이고 먼저 할 일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당대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는 먼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무너진 집을 먼저 짓는 것도 아니요, 가재도구를 치우고 주변정리를 하는 것 보다 이 엄청난 재난 속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수많은 짐승과 새들의 생명을 보존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는 일이 우선임을 알아 감사의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노아는 먼저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정결한 것을 택하여 제물로 하나님께 온전히 태워서 번제로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번제로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 마음의 자세는 항상 우리는 죄인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구속의 은혜를 맛볼 수 없습니다. 구원의 감격을 누릴 수 없습니다. 노아도 모든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무너진 모습을 보고 그 가운데서 자신의 가족과 방주 안에 짐승과 새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제사를 흠향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 임을 고백하는 그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푸셨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은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했습니다.
노아의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진노의 잔을 내려놓으시고 9장 1절에 보면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땅에 기는 들짐승과 기는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을 다 너희의 손에 붙이겠다고 하십니다. 모든 산 동물을 채소같이 주겠다고 하십니다.
노아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를 드리니 하나님의 마음이 완전히 바뀌어 노아와 그 가족들을 축복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렇듯 예배가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흠향하시는 예배를 드리며 저주가 물러갑니다. 가난이 물러갑니다. 병마가 물러가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제사란 하나님을 기억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중요한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먼저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기억한 노아에게 복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기억하는 자를 잊지 않으십니다. 예배시간은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때입니다.
우리가 축복받는 최대의 비결은 예배를 우선하며 사는 생활 입니다. 삶의 중심에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 주의 성령이 임하시고 찾아와 주시고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명을 망각하고 세상을 배외하는 까마귀처럼, 까마귀 신자는 되지 맙시다. 세상에서 자기사명을 발견하고 매주일 주의 종과 하나님께 기쁨소식을 전하는 성령 충만한 비둘기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기억하여 예배를 중심한 삶을 살아 이 땅에서 번성하고 축복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2년8월 26일 청주 벧엘 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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