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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 37-47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

gkffpffndi 2011. 10. 30. 08:54

 

사도행전 2장 37-47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저는 지난 두 시간에 걸쳐서 성령을 선물을 받으려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해서 성경말씀을 근거로 해서 말씀해 드렸습니다. 첫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도들의 말씀을 잘 들었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좋은 태도는 경청하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경청이란 잘 들을 뿐 아니라 따르는 삶, 즉 순종하는데 까지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 째 시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음으로 인해서 성령의 역사로 인해 마음에 찔림을 받아, 죄에 대한 자각과 함께 자신의 잘못된 삶을 돌아보며 회개할 때, 즉 과거의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인간적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요, 이 참된 회개가 성령을 선물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더 나아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선 사람은 반드시 공적인 표지인 세례를 통해서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한 자임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례는 교회의 중요한 예식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공적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을 통해서 친히 세례를 받으심으로 세례의식의 중요성을 알리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설교를 듣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베드로 사도는 세 번 째 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성령을 선물로 받으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세례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3. 그러면 세례라고 하는 뜻은 무엇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입니다. 즉 자신을 장사지내는 것입니다.

 

세례(洗禮)란 Baptism으로 '담근다, 물에 빠뜨리다, 목욕하다' 뜻으로 기독교에서 행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이 세례의식은 예수님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례예식을 통해서 기독교로 귀의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2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성에서 자신이 어떻게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는지 자신의 성장과정과 회심과정,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경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여기에서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한 주님을 만나 주님의 강한 광채로 눈이 멀어 아나니아 라는 사람에 이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다가 아나니아에 의해서 눈이 뜨였는데 이 때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6절에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여기서 죄를 씻는 다고 하는 것은 세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회개한 사람은 공식적인 표시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개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례의식이 우리는 약식으로 물을 머리에 뿌림으로써 죄를 씻기는 의식이지만, 원래는 물속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의식입니다. 그러니까 물속에 자신을 완전히 잠기는 의식인데 이의식의 의미는 자신을 물속에 장사지낸다는 의미입니다. 즉, 옛 사람은 과거의 나, 하나님 없이 방탕하며 살아왔던 나, 욕심을 부리며 살아왔던 나가 죽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나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나의 죽음이 2000년 전에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입니다. 내가 지은 죄로 인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할 인생인데 예수님께서 내 대신,우리의 죄로 인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입니다. 이 죽으심이 나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우리가 세례를 받는 다고 하는 것은 그의 죽으심이 나의 죽음과 연합되어 그분이 장사지낼 때 나도 그분의 장사와 함께 내 옛사람이 장사되었다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란 내가 완전히 죽었다는 표입니다. 내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도 자신이 죽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 성격이 그대로 나오고, 쉽게 분노하고, 자신의 육신의 정욕대로 탐욕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례받기 전에 세례의 의미를 알고 자신에게 잘 적용할 때 진정으로 구원받은 세례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뉴질랜드의 원주민 피지 족들의 생활을 연구한 선교사의 기록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사는 동네 한 가운데에는 Killing Stone이라는 바위가 있다고 합니다. 이 바위는 우리나라 단두대라는 것과 역할이 비슷한 것입니다. 이 Killing Stone은 죽이는 바위로서 아주 무서운 사형 방법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죄가 많은 사람을 이 큰 바위에 묶어 놓고 머리를 짓눌러서 죽이며 흐르는 피를 닦아내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 참혹한 광경을 보여줌으로써 죄에 대한 경고를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온 선교사가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서 예수를 믿게 하고 세례를 줄 때, 이 죽이는 바위 앞에서 주었습니다. 그 바위에서 피를 보게 하고“자, 옛 사람들은 이렇게 죽습니다.” 라고 하며 세례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이 죽음이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옛사람 즉 자신만을 신뢰하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 온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서, 사탄에게 종노릇한 삶을 말합니다. 죄를 지으면서 살아온 삶입니다. 로마서 6장 6절에 말씀하시기를“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했습니다.

 

어느 회사에 다니는 신자가 목사님을 만나서 하는 말이“목사님! 예수 믿기가 참 힘이 드네요.”“왜요?”“점심시간마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여러 사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계란이 매일 하나씩 나옵니다. 기도하고 나면 계란을 누가 가져가버리고 맙니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자네가 기도하는 시간에 계란이 병아리가 되어 도망갔어.’합니다. 그래서 다음날에는 계란을 붙들고 기도했더니 또 하는 말이‘자네는 기도는 하지 않고 계란 생각만 했지?’하면서 놀립니다.”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 까닭에 놀림의 대상이 될 때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좋아하던 습관을 고치는데 적지 않은 고통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로마서 6장 4절에“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하셨습니다. 세례를 가리켜“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함이라”는 것입니다. 죄의 사람이 죽고 의의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세례입니다. 교만한 옛사람이 죽고 겸손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사람이 죽고 순종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탐욕의 옛사람이 죽고 나눔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죽고 하나님을 위해 산자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어느 시골교회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세례를 베푸는 주일에 한 남자 성도가 일찍 교회에 와서 종탑 밑의 땅을 파고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목사님이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이 대답하기를 “지금까지 세상에서 즐기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던 것들을 다 청산하고 세례를 받고자, 술병, 화투, 담배, 라이터를 여기에 묻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곧 세례자의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 5:24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했습니다.

 

로마서 6장 3절에"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말합니다.

 

② 세례란, 그리스도와 함께 산 것이고, 즉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갈 3:26-27절에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세례는 죄인이었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옷을 덧입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새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례와 함께 그리스도와 연합한자가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세상과 하나였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와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합니다. 옷이라고 하는 것은 신체의 일부를 가리거나, 보온효과로 입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족과 하인의 신분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니까 옷은 신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와 함께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세례 받기 전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탄의 종이 되었습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례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가 되었으므로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사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늘나라를 위해서 새 마음으로,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지난 4월 29일 영국에서 윌리엄 윈저(29)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29)이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은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3시간에 걸쳐 성대한 혼례를 치렀습니다. 평민 사업가의 딸로 윌리엄 왕자와 처음 만나 9년 동안 교제하고, 350년 만에 영국 왕실이 받아들인 평민 출신이어서 주목 받았습니다. 평민 출신이 케이트가 윌리암 왕세손비가 되어 왕족으로 신분이 상승이 되어, 왕족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평민이 아니기에 왕족의 까다로운 법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평민으로써 편하게 살아왔지만 이제 왕족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왕실의 법도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일반인처럼 외출할 때도 짧은 바지 입고, 편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전에 살아왔던 대로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왕족이 되었고,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전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는 마귀에 종노릇 하면서 사탄이 이끄는 대로 내 정욕대로 살아왔습니다. 이제 신분이 바뀌고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사탄이 하라는 대로 끌려 다니면서 죄 아래 살았지만, 이제는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이 세상의 옷은 더럽고 누추하고 얼룩이 져 있는 죄의 옷을 벗어던지는 것입니다. 대신 거룩한 옷, 정결한 옷, 겸손한 옷, 사랑의 옷, 의의 옷인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입니다. 전에 귀하게 여겼던 것들이 하찮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전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은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전에는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주님과 이웃을 위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인식체계가 바뀌어 졌습니다. 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새롭게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작게 보이던 것이 더 크게 보이고 귀하게 보이기 시작 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본 사람은 땅의 욕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늘을 보면 죽었다 깨나도 못할 일을 거뜬히 해냅니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 버릴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하늘을 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하늘을 본 사람에게는 땅의 소유를 버리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비웃어도 얼마든지 버리며 살 수 있는 것은 남이 못 본 하늘을 나만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버린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 작은 것 하나를 놓았을 뿐입니다.

 

사탕을 쥐고 놓지 않는 어린아이의 손을 펴는 방법이 있습니다. 더 큰 사탕을 보여주면 됩니다. 우리 모두는 사탕을 쥔 어린아이와 꼭 같습니다. 놓으라 해도 죽어라 욕심을 가지고 세상 것을 놓지 않는다. 왜요? 놓으면 손해보고 죽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큰 사탕을 볼 필요가 있다. 바로 더 큰 사탕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례란 옛사람, 옛 가치관이 깨지고 새로운 가치관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다 그러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런 사람 아닙니까? 자신은 로마의 시민권자요, 당대 최고의 학자인 가말리엘의 제자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의가 충만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하신 주님을 만나고 자신의 죄 성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자신의 전 생애를 주님께 헌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귀하게 여겼던 세상적인 명예와 지식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어 지중해를 중심한 선교로 결국 로마까지 가서 선교하다가 단두대에서 자신의 목이 잘리는 순교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가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그가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빌 3:8절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라고 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에 관한 일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분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그에게서 피해를 입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그를 보면 슬그머니 피해 버립니다.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사람이 된 것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그는 자신의 부고장을 직접 작성해서 사람들에게 돌렸습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던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괴롭혀드렸던 것을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그는 매일같이 동네를 돌면서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서 놀라서 서로 묻습니다. "아니, 저 사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깡패였지 않은가?" 그 소리를 들으면 김익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여기 있는 저는 과거의 김익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으세요." 한 번은 어느 집 괄괄한 아주머니가 김익두를 시험해 보고자 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중 김익두가 나타났습니다. 김익두는 부엌밖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아주머니,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그러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그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가지에 찬 물을 가득 담아 그의 얼굴에 확 뒤집어씌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어디, 정말로 김익두가 죽었나 살았나 보자."그때 김익두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아주머니, 내가 죽었으니까 아주머니가 그곳에 그대로 살아계시지요."자기가 죽지 않았다면 그 길로 그 아주머니는 장례식을 치르고 말았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김익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삶,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찬송 가운데 하나가 새214/349장입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우리가 언제까지 이 찬송을 부르면서 그저 눈물이나 흘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제는 바뀌어져야 할 것입니다. 새289/208장의 가사처럼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 이제는 변해서 새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벧전 3:21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영원히 씻으신 사실과 우리가 예수님께로부터 중생의 생명을 받았다는 것이며, 세례 받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을 부여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 때 나는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났습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라고 말할 때 구원과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습니다. 막 1:10-11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디도서 3장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진정한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이 시간 세례의 참된 의미를 아셨습니까? 세례란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입니다. 옛 사람과 결별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날입니다. 주님나라를 위해서 살기로 다짐한 날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이 나의 죽음이며, 주님이 부활이 나의 부활임을 믿고 주님의 자녀로 거듭난 날입니다. 새사람이 된 날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2011년 10월 30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