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1:1-12 거듭난 사람
서기 64년 7월 18일 밤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 전차 경기장 근처 상점가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불길은 바짝 메말라 있던 도시를 빠른 속도로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좁고 구부러진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집들이 차례차례 불길에 휩싸였고 놀란 사람들은 그저 불길을 피해 이리저리 뛰어다닐 뿐, 화마의 맹폭에 속수무책 이었습니다. 당대의 역사가 타키투스 (55-117)는 “흉한 들이 불을 못 끄게 막았고, 마치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는 듯 횃불을 던지고 이 때 네로 황제는 로마를 보면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는 소문이 돌았다‘ 고 기록하였습니다. 당시 로마는 인구 200만 명이 넘는 대제국의 수도, 화재는 9일 동안 계속되어 거의 전 도시를 불태웠다. 14개 행정구 가운데 10개구가 불에 탔고 그중 3개구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네로는 이 화재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어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체포 명령이 내려져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십자가형과 화형과 그리고 짐승의 밥이 되는 박해가 시작 되었습니다. 그들은 박해를 피해 로마시내를 벗어나 외곽지역 <카타콤 지하 동굴> 로 숨어 지냈습니다. 이 박해는 AD 313년 밀라노 칙령을 내려 박해를 중지시키기 까지 10차례의 대 박해가 조직적으로 감행 되었다. 베드로 전서는 이런 조직적인 박해가 시작된 네로시대에 기록되었던 것이다. 당시 로마는 교회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고 기독교인들을 무조건 죄인으로 인정하고 사형에 처했다. 이러한 외적 박해에 대해서 신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박해를 피해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라는 말은, 바로 이 박해로 인해 흩어진 디아스포라에게 소망을 주기 위함이다. 이 '디아스포라'라고 하는 말은 유대지역을 떠나서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용어이지만, 영어로 ‘디아스포라’라는 뜻은 scatter 인데 이것은 농부가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하나님께서 흩어 놓은 천국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악하고 불순종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이 세대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씨앗으로 심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거듭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산 소망을 가진 자이다
사도 베드로는 극심한 박해를 피해서 심신이 나약한 성도들에게 너희는 죽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과는 다르다. 라고 말합니다. 먼저는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은 자임을 상기 시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그냥 희생 없이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제물이 되시므로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아는 신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2절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즉 순종함입니다. 순종은 신앙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요, 성숙한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마크입니다. 비기독인은 절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1장 30절에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벧전 2: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연세대 초대 총장을 지내신 백낙준 박사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 분의 아버지가 백집사 였는데 그 당시 생활이 어려워서 선교사 집에서 생활 하였다고 합니다. 하루는 선교사님이 이제 겨울이 다가오니 땔감을 2달치를 해서 앞마당에 쌓아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집사는 몇날 며칠을 손이 부르트도록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해서 쌓아 놓았습니다. 선교사님이 보시더니, 앞에 있으니 보기 싫다고 하시면서 뒤쪽에 쌓아 놓으라고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앞마당에 있는 나무를 뒤쪽에 쌓아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일하는 식모가 선교사님에게 말하기를 너무 멀어서 나무때기가 힘드니 다시 원래 자리로 놓아 달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또다시 지게로 온종일 그 자리에 갖다 놓았더니, 선교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무래도 미관상 좋지 않으니, 뒤뜰 중간쯤에 갖다 놓으라고 하더랍니다. 백집사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고 또다시 옮겨 놓았습니다. 이런 아버지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그 아들 낙준이도 선교사님이 순회 예배를 드리면서 뒤뜰에 장작을 패라고 시켰습니다. 선교사님이 밤 10시가 되어 돌아 왔는데 뒤뜰에서 장작 패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가보니 낙준 이가 손이 부르트도록 장작을 패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늦게 까지 하냐고 했더니 선교사님이 언제 까지 하라고 말씀안 하셔서 이렇게 하고 있노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이런 아이는 앞으로 훌륭한 인물이 될 거다. 그리고 그 아이를 미국에 데려가서 공부를 시켜 나라와 민족 후진 양성을 위해 큰일을 하신 연세대 초대 총장이신 백낙준 박사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성령의 역사로 순종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순종입니다.
순종은 내가 하고 싶은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기 싫어도 주님이 원하시면 순종해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박해 속에서도 물질적인 손실이 와도, 나에게 유익이 안 되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기꺼히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그러니까 순종은 아무나 할 수 있는데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 즉 성령의 역사로 가능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도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찬송가 488장 은 '에드워드 모트'가 작시한 곡입니다. 영국의 가난한 한청년이 예수를 믿고 사업에 성공해서 사장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바위에 올라 앞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날 자신을 있게 해준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든든하게 받쳐준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종이 한 장을 꺼내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 시가 바로 찬송가 539장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받은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인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지하무덤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내세에 대한 신앙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로의 박해 속에서도 원형경기장의 짐승의 밥에서도 믿음을 지켰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것을 6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도 천국만큼은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천국은 유토피아이고, 이 땅에서 누리고 사는 것, 부와 명예와 권세와 존귀만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까? 우리가 천국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다면 우리의 믿음이 조그만 시험이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넘어집니까? 쉽게 배반 합니까? 천국에 소망이 확실치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드로 사도는 분명히 말합니다. 3-4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 하신 것이라.
2.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가진 자
주일학교 아이들 찬양 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맘 착해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약에 천국에 가려면 돈 1억을 가져와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못 갈 사람 많이 있겠지요? 여기 서있는 돈 없어서 못갑니다.
성경에도 금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 400번 정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확하게 영어성경 NIV에는 GOLD 란 단어가 403번 나온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이 나오는 것은 금 (돈) 이 우리 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금값이 얼마나 비싼지 1돈에 24만원 이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금에 투자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런데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어야 하는가? 7절에 믿음의 확실함은.. 즉 확실한 믿음, 분명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조그만 환난이나 시험에 넘어지는 믿음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불속에 들어가서도 변하지 않는 금처럼, 아니 이 보다도 더 극심한 환난과 연단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 믿음이 주님 앞에 섰을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수 있는 믿음이요.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야고보 선생은 행함이 없는 믿음,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믿음이 우리를 구원 할 수 없습니다. 고전 3장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우리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오는 고난이나 환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어 더 큰 믿음을 주시고 더 크게 사용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교육학자인 존 쉐드는 ""병들어 고통스러워하는 조개 속에라야 값진 진주가 있다.""고 했습니다.
몽골지방에 가보면 산에 에델바이스가 많이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에델바이스는 작지만 강한 꽃입니다. 고산식물인 에델바이스는 아주 추운 겨울에 눈 속에서 탐스러운 꽃봉오리를 맺습니다. 훈훈한 봄바람에 눈이 녹으면 에델바이스는 청초하고 앙증스런 자태를 드러냅니다.
에델바이스는 시련을 극복해낸 인고(忍苦)의 꽃입니다. 이 꽃은 폭설과 강풍을 견뎌냈기 때문에 더욱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일교차와 추위가 심할수록 에델바이스는 신비로운 색을 발한다고 합니다. 바이올린은 만드는 명장들은 일부러 북풍을 맞아 남쪽으로 구부러진 나무를 재료로 선택한다고 합니다. 모진 북풍과 혹한의 밤을 견디어 낸 나무가 보통 나무보다 훨씬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신앙과 인격을 단련하는 통로입니다.
70년대 통기타 가수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 중에 이종용 씨가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 할머니의 등에 업혀 새벽기도를 다녔습니다. 할머니는 손자가 목사가 되기를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교회에서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회장을 역임을 했지만 그는 건성으로 교회에 다녔습니다. 성인이 된 다음에 "너" 라는 노래로 방송국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낙엽 지던 그 숲 속에 파란 바닷가에 떨리는 손 잡아주던 너 / 별빛 같은 눈망울로 영원을 약속하며 나를 위해 기도하던 너 …." 너무너무 인기를 많이 끌어 결국 1975년 말 가요 시상식에서 1등 상을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상식 당일 대마초 소지죄로 구속을 당합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깊은 절망감과 좌절감으로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감옥 안에서 한 사형수로부터 전도를 받게 되고, 결국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감옥에서 나온 뒤 4년 만에 세상의 재물과 인기와 쾌락을 좇던 자신의 모든 삶을 회개하며 그는 이런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 그냥 덧없이 살아버린 /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을 / 음∼ /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 늦어 버린 것이 아닐까 / 흘러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 난 참 음∼ /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 오우우∼」
이종용 씨는 이 노래에서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고 고백합니다. 그의 고백대로 그는 한때 세상의 인기와 유행과 돈을 좇아 마약을 먹고 쾌락에 빠진 바보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실하게 만나고 난 다음 그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목사가 되어 미국 LA에 있는 코너스톤교회 담임목사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바보처럼 살고 있는 인생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목사가 된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14장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그렇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끝까지 어떤 환난이나 시험 가운데서 금보다 더욱 귀한 믿음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3.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 구원이 옛적에 선지자들에게 미리 알리시고, 이선지자들이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펴본 바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나타나고 사도들에게 알려져 오늘 성령을 힘입어 복음이 이제 너희에게 알여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선지자에서 사도로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 이렇게 해서 오늘 우리에게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전하는 자 없이는 이 기쁜 구원의 소식이 전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1-2절에서 자신이 이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불순종하여 타락하여 그 영혼이 죄와 사망의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을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통해서 구원과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지옥으로 갈 인생을 천국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인류에게 이 보다 더 기쁜 소식이 없기에 Good News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슈퍼나 마트에서 좋은 물건 세일하면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습니까? 어디에 가면 좋은 물건이 있다고 말입니다. 수학이나 영어나 언어를 잘 가르키는 좋은 학원이 있으면 서로들 정보를 주고받지 않습니까? 좋은 병원이나 좋은 의사가 있으면 서로 소개 하지 않습니까? 내과는 어느 병원이 좋고, 치과는 어디 병원이 잘하고 가격도 저렴하고 허리디스크는 어느 병원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와는 비교할 수없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먼저 받았으면서 왜 입을 닫고 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2장 7절에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걸음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선택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심장과 마음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최초로 전하여 준 토마스 선교사는 1840년 9월7일 영국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24살에 고향인 하노버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후 1863년 8월 런던선교회 파송 선교사로 아내와 함께 중국 상해 도착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풍토병에 걸려서 죽고, 2 년 뒤 조선에 대한 정보를 듣는다. 조선에 꼭 가보고 싶었던 토마스 선교사는 작은 목선을 타고 1865년 우리나라에 들어온다. 그러나 서울 쪽으로 내려오다 큰 풍랑을 만나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중국 땅에 머물게 된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던 토마스 선교사에게 조선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미국 제너럴셔먼호가 조선과 통상을 시도하려고 통역관을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조선어를 배우고 있었던 토마스 선교사는 자원하여 그 배를 타고 우리나라에 들어온다. 성경책을 가지고서 말이다.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9월2일, 우려했던 대로 조선군과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서양의 최신식 화포와 불화살의 대결은 싸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배가 유유히 사라지는가 싶더니 대동강 모래톱에 걸려서 꼼짝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조선 군인들은 작은 배에 장작을 싣고 불을 질러 그 배를 전소시켜 버렸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선원들 대부분이 불붙은 선박위에서 화염에 휩싸여 죽고 말았고, 목숨이라도 부지 하고자 바다로 뛰어든 사람들은 생포되어 그 자리에서 처참하게 몽둥이로 맞아 죽든지 목 베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 배의 이름은 ‘제너럴셔먼 호’였다. 그러는 중에 한 사람이 강물에 뛰어든다. 조선 군인들은 곧장 그를 생포했다. 그때까지 그는 가슴 속에 성경책을 꼭 품고 있었다. 조선 군인들은 그런 그를 잡아 대동강 변에서 목을 베어 죽였다.
내가 서양 사람을 죽이는 중에 한 사람은 지금 생각할수록 이상한 감이 있다. 내가 그를 찌르려고 할 때에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무슨 말을 한 후 붉은 베를 입힌 책을 가지고 웃으면서 나에게 받으라 권하였다. 그럼으로 내가 죽이기는 하였으나 이 책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서 받아왔노라 <도마스 목사전> 중에서...
그 사람의 목을 친 박춘권이란 사람의 말이다. 그런데 한낱 조선군인의 이름이 어떻게 기록으로 세세히 남아 있게 되었을까? 그의 목을 친 이 박춘권이란 사람이 훗날 예수님을 믿고 요즘의 장로님과도 같은 영수라는 직책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토마스 선교사는 죽는 그 순간 까지도 복음을 전했다. 1866년 8월9일 제너럴셔먼호에 동승하여, 성경을 가지고 들어오다가 대동강에서 27살의 나이로 순교했다. 27살의 나이… 순교의 피를 흘렸던 평양 대동강 변에 수많은 교회가 세워졌다. 위에서 말한 박춘권 뿐 아니라 장사포의 홍신길은 서가교회의 설립자가 되었고, 만경대의 최치량은 평양교회의 창설자가 되었다. 또한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종이가 너무 좋다고 그 성경을 한 장 한 장 뜯어 벽지를 바른 박영식의 집은 널다리교회의 예배처소가 되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26살, 언더우드 선교사는 25살꽃다운 나이에 이국땅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졌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01년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한국에 온 여섯 명 선교사들의 중의 한 사람인 윌리암 블래어 선교사는 그가 도착한 부산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도시에는 오수 처리 시설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오물들이 천천히 흘러서 초록 색깔의 도랑을 이루고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은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러운 흰 옷들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흐트러진 머리를 더러운 띠로 매고 있었다. 아이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거리에서 놀고 있었고 늙은 여인네들은 가죽처럼 탄 쭈그러진 얼굴을 지니고 우리들을 보려고 집으로부터 서둘러 나왔다. 많은 사람들은 겉옷을 입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당시 조선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좋은 차 다닌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이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명품을 걸치고 다닌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큰 집에 산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삶의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고전10장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마태복음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제가 묻습니다. 진정 거듭났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이 땅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 살지 말고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사십시오. 그리고 어떤 고난과 역경, 시험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위해서 살고,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9월 18일 청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세상 모든 민족이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주의 심장 가지고 우리 이제 일어나 주 따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육체가 주의 영광 보도록 우릴 부르시는 하나님 주의 손과 발 되어 세상을 치유하며 주 섬기게 하소서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 덮음같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보리라 그날에 주의 영광 가득한 세상 우리는 듣게 되리 온 세상 가득한 승리의 함성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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