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말씀/...새믿음의 강단

고통에서 축복으로 창35:1-15

gkffpffndi 2011. 6. 11. 21:14

 

고통에서 축복으로 창35:1-15

 

오늘 본문 말씀은 야곱이 세겜 지역에 머물렀을 때 그 가정에 큰 고통과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야곱의 딸이 하몰의 아들 추장인 세겜 에게 강간을 당하였고 이로 인해 그의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모든 재물을 빼앗아 옴으로 인해 가나안 족속들이 야곱과 그 가족들을 멸문 시킬 풍전등화와 같은 위험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험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에 뜻하지 않은 고통이 왔을 때 어떻게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언약을 이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관계는 언약으로서 이루어진다. 구약성경을 old testament (옛 언약) 라 하고 신약성경을 new testament (새 언약) 이라고 부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경은 언약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시내산 언약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은 인간과의 언약을 중요시하시며 언약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0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자손이 없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의구심을 품을 때 하나님께서 언약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성실히 이행하시는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의 의식은 동물이나 새를 쪼갬으로써 언약의 당사자 들이 언약을 어길 시는 쪼갠 고기처럼 죽음을 감수해야 함을 의미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 질 것을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줄 것을 약속 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언약의 당사자에게도 충실히 이행 할 것을 요구 하십니다.

 

본문 35장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 고 말씀하신 배경에도 20 여 년전 야곱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 약속을 이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아버지를 속이고 형에서의 장자권과 축복을 빼앗고 자신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던 시절에 창세기 28장 10절-22절에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것의 한 돌을 취하여 베게로 삼고 거기 누어 잠을 자다가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에서부터 위로 하늘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어, 나는 여호와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야곱이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실 뿐만 아니라 야곱의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하시며 너와 네 자손들로 인하여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임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 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으며 내개 네게 행한 것을 다 이루기 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라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야곱이 꿈에서 깨어난 후 두려운 가운데 그 곳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명하고 베게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 엘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20절에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고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행 하였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칼날을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의 서원을 들으시고 함께 하므로 20년 만에 자신의 고향의 집으로 돌아올 때 야곱은 거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라반이 인색하게 하고 품삯을 깍았지만, 양 중에 아롱진 것이나 점 있는 것과 검은 것들을 많게 하시어 야곱의 소유가 되게 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튼튼한 양이 야곱의 소유가 되게 하시어 30장 43절에 야곱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소유가 많아지자 외삼촌 라반이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외삼촌 라반을 떠날 것을 명령합니다. 창세기 31장 11-13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하나님과 서약했던 벧엘로 돌아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에 태우고 그가 모은 모든 소유물과 가축을 끌고 라헬은 그의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강을 건너고 길르앗 산을 넘어 야밤에 도주하듯 외삼촌 라반이 양털을 깍으러 간 사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도망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라반이 칠 일 길을 쫒아 야곱이 있는 길르앗 산에 이르렀습니다. 야곱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해하지 말고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므로 야곱은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야곱은 자신의 쌍둥이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야곱의 목숨을 기다리고 있다는 상황을 들은 야곱은 에서에게 보낼 선물 암염소가 이백 숫염소가 이십 숫양이 이십 젖나는 낙타 삼십 암소가 사십 황소가 열 암나귀가 이십 그 새끼 나귀가 열을 네 차레에 걸쳐 보내고 자신은 홀로 남아 천사와 밤새 씨름하여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도둑놈 사기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라고 하는 새 이름을 받게 됩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 동안 모았던 재산의 일부를 형에서 에게 선물하고 자신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므로 30 년 동안의 원한이 하루아침에 사랑으로 화해하는 축복을 가져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네가 어디로 가든 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으며 내가 네게 행한 것을 다 이루기 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라 하리라고 하신대로 약속을 이행 하셨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자신의 한 약속을 하나님께 지키지 않았습니다. 원수된 형 에서와 화해를 시도하기 위해서 자신이 고생하면서 쌓았던 부를 아낌없이 주어 형제애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에게 20년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축복하시고 재산을 외삼촌 몰래 가지고 나와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을 때 구원해주시고 원수된 형 에서와의 화해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과 약속했던 언약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야곱과 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축복받음과, 성공 했슴에 주변사람들에게 이웃에 대하여 감사를 표시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대하여 잊어버리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냥 지나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과의 한 언약이나 서원 약속에 대하여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야곱이 20년 전에 무슨 약속을 했습니까? 창세기 28장 20절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고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어디에도 야곱이 하나님께 자신이 얻은 부에 대하여 하나님께 십분의 일을 드린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우리는 약속하고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호세아 6장 7절에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언약의 책입니다. 우리 역시 언약의 백성임을 기억합시다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강과 물질과 행복을 주십니다.

 

2.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자신의 아버지 이삭의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31장 13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리라. 하지만 야곱은 외삼촌 라반과의 분쟁, 형 에서와의 조우를 통한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곤 한 나머지 자신의 목적지로 바로 떠나지 않고 가나안 땅 세겜 에서 땅을 사고 장막을 치고 거기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그 땅 세겜에 머무는 동안 야곱의 가정에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둘째 부인인 레아가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갔다가 그 땅 하물의 아들인 추장 세겜 에게 강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위기가 야곱에게 왔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씀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세겜 에서 한두 해 머무른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 머물렀습니다. 세겜은 동서남북으로 통하는 사마리아 지방의 교통 요지로서 세겜은 강우량이 적당하고 물이 많아 곡식과 포도, 무화과나무, 감람나무 등 과일을 경작하기에 좋았고 목축하기 좋은 풀밭도 많았다(창37:12-13). 헤브론에 살던 야곱의 아들들도 그곳까지 와서 양치는 일을 하였다(창37:12-15). 그러니까 이 세겜은 오늘날로 말하면 도시문화가 발달한 세속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오래 머르는 동안 세상문화에 오염된 것입니다. 디나가 34장 1절에 그 땅의 딸들을 보려 나갔다가 강간을 당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젊은 남녀들이 모이는 축제 였으리라고 짐작이 됩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술과 춤이 어우러져 방탕한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유혹의 손길이 닿아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지만 이방 땅에서 이방 문화 속에 있으면서 자신의 딸 까지 신앙인으로 양육하지는 못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는 넉넉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지만 신앙적으로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의 가정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는데 그것이 딸 디나의 사건입니다. 자신의 딸 디나의 강간 사건을 통해서 야곱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생각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을 것입니다. 내가 너무 오래 머무렀구나,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다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위기 때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어김없이 나타나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그리고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십니다. 제단을 쌓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전에 정리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는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나올 때 자신의 아내 라헬이 가족수호신 드라빔을 가지고 왔습니다. 자신의 아내 뿐 아니라 식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 이것들을 섬겨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야곱이 제재 하지 않했습니다만, 디나 사건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신을 섬기면 안 됩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여전히 사주팔자 보고 미신을 섬기고 다른 것을 의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화를 불러 올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이 분명해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는 삶을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는 잘못된 신앙,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을 더 사랑하고 세상 것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는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둘째는 “자신을 정결케 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서 예배하기 위해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고 했다. 내 마음과 생각에 잘못된 생각, 욕심과 정욕, 좋지 않은 생각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깨끗한 삶을 의미합니다. 부정한 삶, 부도덕적인 삶을 청산해야 합니다.

 

셋째는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의복은 그 사람의 신분을 말합니다. 예식장에 가려면 거기에 맞는 옷 정장을 입고 갑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작업복을 입습니다. 운동할 때는 츄리닝 복을 입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는 이브닝드레스를 입습니다. 귀한 사람을 만날 때는 평소에 입던 옷을 벗고 새옷, 좋은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서 마음가짐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여기서 옷을 바꾸어 입으라는 말씀은 삶의 태도를 바꾸라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에 태도나 양식, 습관 정신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옷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으로 바꾸어 입으라는 것입니다.

 

35장 4절에 그들이 결단했습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과거의 죄 된 삶을 청산 한 것입니다. 죄악을 끊으니 야곱일행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원수가 물러간 것입니다. 사탄의 역사가 끊겼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멀리 하자 신기하게도 원수들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3.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세겜 에서 큰 환난을 당한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은 창세기 28장에서 말씀하신 벧엘에 올라가서 그곳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벧엘이 어떤 곳입니까? 야곱이 형에서의 칼을 피해 광야에서 돌 베게 하고 자다가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곳에 기름을 붓고 벧엘 이라 하고 하나님께 언약을 맺었던 장소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장소요 언약의 장소요 은혜의 장소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 야곱이 지금 당하는 환난이나 고통, 총체적인 가정의 위기를 벗어나려면 다른 방법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방 신상을 버리고, 부정한 삶, 부도덕적인 삶, 삶의 태도를 바꾸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처음 만났던 그곳에서 말입니다. 벧엘 (하나님의 집) 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단이 무엇입니까? 제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제물을 바칠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단은 돌로 잘 쌓아 올려야 합니다. 단을 쌓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단을 쌓는 것은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벧엘 (하나님의 집) 에 올라와서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예배를 회복하자 창35장 9절에 복을 주시고 이름을 바꾸어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할 뿐 아니라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시편 50: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그리스도인의 365일”이란 묵상집에서 “예배는 집에서 예배하러 오기 위해 화장할 때부터 시작된다.”

 

일제시대 서양화가로 유명한 이중섭(1916~1956) 화백의 일화입니다. 한번은 그의 절친한 친구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문병을 가질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내심 섭섭해 있었는데, 며칠 후에서야 이 화백이 나타났습니다. 친구는 반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무척 기다렸는데, 왜 이제야 오는가?” “미안해. 벌써 찾아오려고 했지만 빈손으로 올 수 있어야지” “그게 무슨 소리야! 빈손으로 오면 어때서. 자네가 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당시 이 화백은 아주 궁색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들고 온 꾸러미를 친구에게 멋쩍은 듯 내밀었습니다. “이게 뭔가?” “내 정성일세. 실은 이걸 갖고 오느라고 늦었네. 별거 아니지만 받아주게나.” “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고맙네.” 친구는 꾸러미를 풀어보고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림이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그림인가?” “천도(天桃)를 그린거야. 천도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마음으로라도 이걸 먹고 얼른 일어나게.” 과일을 사다 줄 돈이 없어서 복숭아를 그려 갖고 온 것입니다. 그 마음은 천도복숭아 몇 트럭보다도 더 아름답고 귀중한 것입니다. 분명히 그것은 친구의 마음에 영원히 남는 최상의 선물이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주고받음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만일 마음의 주고받음이 결여되어 있다면 남남과도 같을 겁니다. 예를 들어 한 지붕 밑에 살아도 가장 가깝다고 하는 부부 관계나 부모 자식 관계라 할지라도 마음을 주고받지 못한다면 멀고 먼 사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을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간단히 표현하면 하나님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나의 사랑으로 하나님께 응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받고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게 곧 예배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정성껏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토요일이 되면 주일날 입을 옷을 준비하고 헌금도 준비하고 저녁에 일찍이 자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 전에 와서 성가연습도 하고 기도로 준비해서 말씀에 은혜 받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중요한 행사나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 어떤 마음가짐 입니까? 사람을 만날 때도 그냥 만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인데 그냥 만날 수 있습니까? 예배가 회복될 때 우리의 고통이 변하여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예배가 인생의 실패와 성공을 좌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고통에서 축복으로 바꾸시기를 원하십니까? 먼저는 우리는 언약의 백성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약백성으로서 언약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죄악을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우상, 부정하고 부도덕한 삶을 청산해야 합니다. 이전의 삶의 양식이나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므로 고통과 슬픔이 성공과 축복으로 바꾸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2011년 6월 12일 졍영진 목사 벧엘성결교회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