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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신앙 (로마서 4장 16-25 )

gkffpffndi 2011. 2. 5. 20:42

아브라함의 신앙 (로마서 4장 16-25 )

 

인류 역사상 3대 종교를 말한다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입니다. 이 3대 종교를 믿는 인원을 합하면, 40억 인구가 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많은 인구가 존경하는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속 사업을 이루기 위해서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복을 주어 그 이름을 창대케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축복 하는 자에게 축복하고,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의 신앙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는 인류최초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형성했던 지역으로 도시문화가 발달 했던 곳이다. 이 지역은 오늘날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지구랏트가 있는 곳입니다. 지구랏 정상에서는 아브라함 당시 사람들은 난나 라고 하는 달신을 섬겼으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이러한 우상을 만드는 기술자로서 생활의 터전이 되었던 것이다. 영국의 레너드 울리(1880-1960)경은 1923년부터 성서에서 언급된 우르를 발굴해 아브라함 시대의 주거지와 도시의 생활상을 밝혀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우르에 살았던 사람들은 우아하고 호화스런, 번영된 도시생활을 누렸으며, 우르의 한 잘사는 사람은 14개의 방이 갖추어진 커다란 2층집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운하가 발달했으며 농업및 목축업, 상업및 공업이 발달된 도시문명이 발달 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곳을 떠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의 안정된 직업을 바탕으로 안락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편안하고 안정된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계시가 아브라함에게 떨어졌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를 설득 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형제는 나홀과 그의 아내는 나오지 못했고 데라와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 그리고 하란의 아들 롯만이 따라 나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믿고 정처 없이 순례자의 길을 선택 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고 무모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도착 한 것이 오늘날 시리아인 하란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 하란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원인이 아버지 데라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데라의 이름은 “지연 시키다”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즉 아버지 데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에 들어가는 데 지체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데라는 하란에서 205세가 되어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가나안 땅 에 들어가는 데 방해 요소가 없어지자 하나님께서 창세기 12장 1-2절에 다시 말씀 하십니다.

창세기 12장 1~2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다시 한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약속의 땅을 향하여 전진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말씀으로 확인 시키시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조카 롯이 자신을 떠나, 마음이 외롭고 상심해 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 나셔서 자신의 약속이 변함없음을 재확인 시키십니다. 창세기 13장 14-17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후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따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아브라함의 고향은 그 당시 최고의 문명과 문화생활을 할 수 있었던 반면에 하나님이 지시하신 약속의 땅은 황무지에 불과 했습니다.하지만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그곳은 그 당시 세계최고의 수메르 문명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그 민족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은 전쟁의 폐허속에 황폐하게 남겨져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떠났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대로 그 후손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 된 것입니다.그리고 영적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영적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 졌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신 말씀을 반드시 실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약속을 붙드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자 세실 머레이(Cecil Murray)가 어느 날 딸의 방으로 갔습니다. 딸은 누군가에게 받았다며 목걸이를 자랑합니다. 세실은 말합니다. "목걸이를 난로 불 속에 던져버려라.”딸은 망설입니다. 그러자 계속해서 말합니다. "강요하지는 않겠다. 너에게 맡기겠다. 이유는 말하지 않을 테니 네가 나를 믿는다면 그렇게 해라." 딸은 고심을 하다 순종을 택하였으며 목걸이를 불 속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딸에게 휠씬 더 아름다운 목걸이를 사다주며 말했습니다. "딸아,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네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신뢰하도록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인생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여러 차례 이유를 모르는 가운데에 네게 포기하고 버릴 것을 요구하실 것이다. 그때 네가 나를 믿었듯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너는 언제나 그것이 최선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고 납득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에서 나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는 믿음으로부터 옵니다. 순종은 축복을 가져오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축복은 우리의 것입니다.

 

2.절대절망을 절대희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이름을 창대케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신 때가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였습니다.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하나님은 응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여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 이라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7장18절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그가 절망 가운데 빠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속이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주기 위하여 이름을 바꾸십니다. 너의 이름을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 즉 여러 민족의 아버지, 그의 부인 사래를 사라, 즉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바꾸십니다. 그러면서 너를 심히 번성케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사라가 낳을 아이 이름까지 지어 주십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살, 사라의 나이가 90세 였으므로 ,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8장에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찾아 오셔서 내년 이맘 때 쯤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을 받을 때 아브라함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창18:11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고 했습니다. 여기 “늙었고”라는 말의 의미는 “생명의 날들이 지나갔고”라는 의미로서 더 이상 생식 능력이 사라져 버렸음을 말합니다. 특히 사라의 경수가 끊어졌다고 했는데 이 말은 여성으로서의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는 도저히 자녀를 생산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지혜나 지식이나 능력으로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으로써 약속하십니다.

 

렘32:27을 보면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눅18:27을 보면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4장 17절에 하나님은 죽은자를 살리시며, 18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19절에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 하였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절대 절망 가운데서 절대 희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절망이란 없습니다. 복음은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들의 이성과 생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가능 하십니다

 

미국 전역에 JC 페니 백화점이 있습니다. 창설자 페니(J. C. Penney)는 은행과 부동산에 투자하였으나 대공황이 일어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고 부동산값이 폭락해 하루아침에 무일푼이 되었습니다. 그는 파산 후 심한 우울증으로 죽음을 생각하며 절망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삶의 희망을 잃고 요양원에서 좀처럼 절망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식사를 위해 복도를 걸어가는데 어릴 적에 즐겨 부르던 찬송이 들려왔습니다.

소리 나는 곳을 향해 무심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찬송 382장입니다. 소리나는 방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문 앞에 다가갔을 때 성경말씀이 들렸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이 말씀이 그의 심령에 울려 퍼지는 순간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마음을 누르고 있던 실패와 절망의 무거운 돌이 굴려지고 주님의 평안이 임했습니다. 그는 즉시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습니다. 마음에 꿈과 희망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그 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생을 바꾸는 기적이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영광스런 하나님을 보았고 교회에 나가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절망을 디딤돌로 삼은 그는 다시 백화점을 세우고 1,700여개의 점포를 갖게 되었습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아브라함은 이미 자기 몸이 죽었고, 사라 역시 태가 죽은 것을 알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될 줄로 믿고,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더니, 100세에 이삭을 낳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3,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면 나에게 현실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귀한 아들이삭을 주셨습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이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할 일이 생겼습니다. 창세기 22장에 이삭이 한창 나이에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는 것입니다. 번제로 드리라는 것은 짐승을 태워 드리듯이 인신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지방 이교도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일들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이러한 인신제사를 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 당신이 주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전도양양한 총명한 청년을 산제사로 드리라고 합니까?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다음날 아침 일찍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에 제 삼일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종들과 나귀는 아래에 두고, 번제에 쓸 나무를 이삭에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 하더니, 이삭이 그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아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아들과 함께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나무를 벌여놓고 그의 아들이삭을 결박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나이는 120세 가까이 되었고, 이삭은 청년의 나이입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결박할 때 능히 떨쳐 버리고 도망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이삭은 아버지 하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성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의 모습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내려치려 할 때에 성부 하나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 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눈을 들어 보니 수풀에 한 숫양이 걸려 있어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리고,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신앙적 체험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 17-19절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삭을 통해서 창대케 하신다고 약속 하셨으므로, 믿음으로 이삭을 하나님께 바쳐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의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음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느 교회에 유명한 대학의 생화학자이며 의학박사인 교수가 나왔습니다.

그는 예수 믿으러 나온 것이 아니라 부인을 감시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의처증이 심해서 부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데 교회까지 따라 나왔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 설교를 듣는데 믿으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그 교수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으라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제가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 목사님 참 불쌍하다. 생긴 것은 멀쩡한데 설교는 늘 바보 같은 말만 하는구나. 생화학적으로 의학적으로 볼 때 어찌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어떻게 죽은 예수가 사흘 만에 부활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죽어서 사흘이면 세포가 와해되고 피도 썩는데 어떻게 다시 산단 말인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한심하다. 제가 이런 생각하고 앉아 있습니다.’ 의학박사다운 말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그 교수님은 그날도 아내를 감시하기 위해 여전히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날 목사님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설교하였습니다.

그 교수님은 아예 믿지 않을 것이므로 관심도 두지 않고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예배 후에 사무실에 가보니 그 교수가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부부싸움을 했느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목사님, 오늘 설교를 듣고 있으려니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말씀이 믿어졌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는 가운데 믿음과 확신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 후 교수는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의심하던 교수가  동정녀 탄생을 증명하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처녀가 아기를 낳을 수 있습니다. 생화학적으로 제가 증명할 수 있습니다. 양서류인 개구리나 뱀은 수컷이 없어도 바늘로 알을 찔러주든지 전기로 쇼크를 주면 새끼가 되어 나옵니다. 하물며 성령이 임하셔서 쇼크를 주면 처녀도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나 지식이 과학적이 아니라고 해서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이세상은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것만을 인정합니다. 과학을 뛰어넘는 초월적 세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초월적인 세계가 있습니다. 신앙은 과학을 뛰어넘는 세계입니다. 동정녀 탄생,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사건이라든지, 오병이어의 기적,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사건은 초자연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 하셨습니다. 사 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 45: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아브라함은 어떤 신앙을 가졌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 결과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절대 절망 가운데서도 절대 희망이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올 한해 어떤 어려움과 절망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승리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2월 6일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