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사야 43장15-20)
어느 덧 2010년 한 해가 바람처럼, 화살처럼 지나갔습니다. 지나간 한해를 돌이켜 보면,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 했던 한 해였습니다. 2010년도 한 해를 시작할 때는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시작 했지만, 오늘에 와서 돌이켜 보면 주님 앞에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는 빈 손 인 것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요구하시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쥐어 드릴 수 없음에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벨론 포로생활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기쁨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기대하지도, 기대할 수도 없었던 일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70년 포로생활에서 해방과 자유를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저는 본문 말씀 속에서 2가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과거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남 왕국 유다는 BC 586년 바벨론 느브 갓네살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많은 왕족과 귀족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바벨론의 포로정책으로 인해 자치권을 가지고 상권을 형성하여 유다 공동체를 형성 하였습니다. 다니엘처럼 높은 관직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남의 나라에서 포로생활이 편안 할 리가 없습니다. 시편137편1-31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서 어떤 슬픔과 모욕과 그리움 속에 세월을 보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조국이 멸망당하고 자신의 언어와 문화와 전통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그 아픔이 얼마나 큰지, 8절에서 바벨론을 멸망 시킨 자가 복이 있도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일제 36년 동안 일본에 의해서 국권을 침탈당하고 우리 문화와 강산이 유린당한 그 고통을 잊지 못해서 기금도 일본과 축구경기나 운동경기를 할 때는 다른 국가와는 달리 좋지 않은 민족적 감정이 표출되지 않습니까? 억압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억압당한 자의 고통을 알 수 없습니다. 자유를 빼앗겨 보지 않은 자는 자유의 귀중함을 알 수 없습니다. 가난한 자가 되어 보지 않고서는 가난한 자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는 거와 같습니다. 그러기에 약자는 항상 원한과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그만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고통스러워 합니다. 과거에 대한 고통이나 상처가 너무 크게 자신에게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과거 바벨론 포로 훨씬 이전에 이집트에서 그들의 조상이 무려 430년 동안 노예생활 했던 아픈 기억이 그들의 뇌리 속에 DNA처럼 남아 있습니다. 출애굽기 1장 14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 할 당시 그들은 흙이기기와 벽돌굽기 등 고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3장 7-8절에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라는 지도자를 보내시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그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여 광야로 인도해 내십니다. 하지만 이들은 광야생활에서의 불편함을 참지 못하여 그들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16:2-3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 도다.
민수기 11:5-6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애굽에서 노예생활 할 때는 고통스럽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호소하여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광야로 인도하자, 그들은 현재의 고통과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포로생활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보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죄 된 생활을 하더라도 편안함 삶을 택하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죄 성을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아예 차단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3장 17절과 18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심리학자 사무엘 죤스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가를 조사했습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를 가장 많이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어두웠던 과거, 실수했던 과거, 창피했던 과거와 같이 불필요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40%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능성이 없는 허무한 생각이나 공중에 흩어져 버릴 불필요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30%나 됐습니다. 또한 남의 말 때문에 상처가 된 일, 답답한 일, 분노하고 흥분된 일들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12%, 건강에 대한 지나친 염려를 하며 사는 사람이 10%나 된다고 조사결과는 말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밝고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겨우 8%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빌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8절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무슨말입니까? 과거에 억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상처 받았던 일, 고통스러웠던 일, 죄악 가운데 살았던 삶, 실수 했던 일, 쓰리고 아픈 과거를 떠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용서하시고 감싸주시고 치료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상처나 아픈 경험에 매어 있으면 앞으로 전진 할 수 없습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둘베는 말하기를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능력이다”고 얘기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자꾸 과거의 상처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래서 좌절과 절망을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우리에게 환상을 주고 꿈을 주고 목표를 주고 희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매이지 말고 -의 삶에서 +로 바꾸는 새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2.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합시다.
15절에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한마디로 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요,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길을 만들어서 왕래하고, 무역도 하고 문화도 교류 하였습니다. 그런데 길을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엣 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말이 있듯이 로마는 길을 잘 만들어서 세계 모든 자원과 문화가 어우러져 로마문명을 만들었습니다. 로마는 길을 잘 뚫어서 군사적으로 이용하여 세계를 지배하였지만, 하나님은 바울로 하여금 이 길로 복음을 급속하게 전파하게 하셨던 것이다. 오늘날도 문명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도로망이 잘 뚫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도로가 사방팔방으로 동서로 잘 뚫려 있어서 전국이 얼마 있으면, 2시간대로 단축된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각종기계나 장비가 있어서 사막에 길을 내는 것이 쉽습니다만. 수 천 년전에 어디 상상 할 수나 있었겠습니까? 불가능 한 일입니다.
또한 사막에 강을 낸다. 하였습니다. 사막에서는 평상시에는 모래언덕을 이루다가 비가 오면 강줄기를 형성하는 데 이것을 와디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비가 안 오면 말라버려서 물줄기만 남아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강을 내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막에 강을 내실 뿐 아니라, 바다가운데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나라 도로건설 토목공사는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습니다. 1984년 리비아 대수로는 남부 사하라 사막의 지하수를 끌어올려 북부 지중해안 도시들에 공급하기 위해 건설된 수로 지름 4m 길이 7.5m 총길이 4,000㎞에 이르는 거대한 송수관을 사막을 가로질러 지하에 매설해 그 속으로 하루 650만t의 물을 북부 지중해 연안에 공급하는 이 공사는 지금도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대수로가 끌어들이는 리비아 남부 사하라 지하의 수자원 규모는 나일 강의 200년 유수 량에 달하는 약 35조t 인데 현재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사막에 강을 내는 것입니다. 얼마 전 군산 김제 부안의 앞바다를 메 꾼 새만금 방조제를 다녀왔습니다. 인간의 기술과 지혜와 힘도 엄청난 일을 해 낼 수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우리는 찬양해야 합니다. 20절에 보면 장차 황폐하고 거칠은 땅에 사는 승냥이와 타조가 존경할 것이다. 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막에 강을 내심으로 그곳에 사는 들짐승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할 뿐이다.”
과거의 아픈 상처나 고통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나, 기독교는 과거에 매어있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미래지향적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한 체조 선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루마니아 출신의 나디아 코마네치(Nadia Comaneci)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체조경기 역사에 길이 남는 기록을 올렸습니다. 비록 키가 153Cm, 체중이 39Kg 밖에 되지 않는 10대의 작은 소녀이었습니다만, 체조경기 사상 처음으로 이단 평행봉에서 10점 만점을 받는 등,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1977년, 197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980년 구소련의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는 소련 심판들의 편파 판정에도 불구하고 2관왕에 올랐습니다. 그 선수는 체조경기 사상 모두 7번이나 10점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가 그렇게 엄청난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6살 때, 벨라 카롤리 코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벨라 카롤리 코치는 어린 코마네치를 만나자마자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3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첫째로 개인적인 평안을 포기하고 코치의 훈련방향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것. 둘째로 생활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체조를 제1순위에 둘 것. 셋째로 지나간 모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체조에 헌신할 것.” 결국 어린 소녀 코마네치는 카롤리 코치가 제시한 세 가지를 잘 지켜 세계적인 체조선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나간 모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잊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해를 믿음 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광야나 사막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 되셔서, 우리를 천국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십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답답한 가슴에 목이 타는 것처럼 여겨집니까?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43: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 성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앞에 놓여있는 홍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과거에 억매이지 말고, 과거의 상처와 아픔과 고통 속에 주저앉지 말고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2011년 전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2010년 12월 30일 송구영신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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