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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벧전 4:7-11)

gkffpffndi 2010. 11. 20. 15:51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벧전 4:7-11)

 

중국이 유전 확보를 노려 남중국해에 대한 주권을 선포하고, 침공당한 베트남은 미국에 지원을 요청합니다. 미국이 남중국해에 항공모함을 배치하자, 중국은 미국을 공습합니다. 이 틈을 타 인도는 파키스탄을, 아랍국가는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중립을 지키던 일본은 중국 쪽으로 기울어 미국과 교전하고, 러시아는 반(反)중국 대열에 합류해 시베리아로 진군합니다. 중국은 보스니아와 알제리 등에 핵미사일을 배치하고 유럽의 중립을 강요합니다. 동유럽에서는 인종 폭동이 재연되고, 알제리의 미사일이 프랑스를 강타함으로써 세계는 핵전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른바

새뮤얼 헌팅턴이 1996년 『문명의 충돌』에서 그린 21세기 묵시록입니다. 세계적인 석학이 한 얘기니 망발로 치부할 수도 없다. 전쟁의 원흉은 중국이다. “중국이 21세기 초반의 국제 안정에 막대한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중국이 패권국으로 떠오르는 건 미국 국익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도 합니다. 중국에 대한 반감이다. 하지만 눈길을 가장 끄는 대목은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시기다. 헌팅턴은 바로 올해2010년을 가상했다. 종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주적 종말이요, 또 하나는 우리 각자 개인의 종말이다. 우주적 종말이란 만물의 마지막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최후의 그 날에 대해서 성경 말씀은 300회 이상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의 순간 맞이하게 될 이 우주적인 종말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반드시 다가올 순간이다. 분명한 사실은 오늘 하루가 그 마지막 최후의 순간을 향해서 한발자국 더 가까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 당하게 될지 모르는 개인적 종말을 향해서도 매일 매순간 달려가고 있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이 개인적 종말 앞에 놓여 있다. 이 개인적 종말은 순서가 없고, 남녀노소도 가리지 않는다. 어느 순간 홀연히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공격한다. 그 때 우리는 개인적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 오실 날이 어쩌면 오늘 일 수 있다는 생각,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어쩌면 오늘 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배드로 사도는  마지막 때에 관하여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사도는 자신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 기도하지 못하므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스승이 가야바 법정에서 외롭게 재판받을 즈음에 자신의 안일과 평안만을 생각한 나머지 자신의 스승을 세 번 씩이나 부인한 일이 다른 데 원인이 있지 않고, 그 전날 스승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두 번 씩이나 오셔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는 주님의 말씀에 소홀이 여긴 결과임을 경험한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 서신을 쓸 당시는 로마 네로 황제 때로서 교회가 핍박당하고, 박해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안으로는 거짓선지자, 거짓교사들에 의해서 기독교 신앙이 위협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박해와 이단으로 인해 믿음이 약한 신자들은 주님을 부인 할 수도 있었고 교회를 떠날 수도 있는 시대 상황이었기 때문에 믿음을 든든히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사도는 베드로전서 5장 8절-9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원수 사탄 마귀가 굶주린 사자처럼 우리를 엿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동물의 왕국에서 보면 굶주린 사자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코뿔소를 낚아채는 장면을 보셨을 것입니다. 코뿔소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사자들이 있는 곳을 지나게 됩니다. 코뿔소들도 늘 경계하고 주의를 기울이지만 무리에서 떨어진 새끼 코풀소가 사자의 목표가 되어 사자의 밥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코풀소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무리공동체에서 벗어나면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고, 영혼을 지킬려면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생활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오실 때 까지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생활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배우며 닮아가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벗어나면 신앙을 지킬 수 없습니다. 사자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므로 가인이 안색이 변하자 7절에 보면,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 말은 죄가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즉 마귀가 기회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그리스도인이 기도생활 하지 않으면, 죄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시험에 빠지고 어려움에 처합니까? 기도를 쉬고 있을 때 인 것입니다. 우리가 악하고 죄 많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기도생활을 멈춰서는 안됩니다. 때로 우리가 세상일로 분주하여 아무리 바쁘다 할지라고 기도시간을 줄이거나, 등한히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마귀에게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기도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첫째는 정신을 차리고,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뜻은 맑은 정신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적진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보초처럼 말입니다. 둘째는, 근신하여, 입니다. 이 말의 뜻은 자제하여, 균형잡힌 생각과 행동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깨어 기도하라. 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수도원에 큰 돌이 있는데 그 표면에 "Watchweel"이란 말이 불규칙적인 글자로 큼직하고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 뜻은 "깨어서 잘 지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로 하여금 졸지말고 깨어서 적군이 오는가를 잘 지키라는 말로 사용한 것인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깨어서 잘 지켜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으므로 수도원 큰 돌에 새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1.성도들은 말세에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해야 하고,

2. 우리의 구세주요 친구이신 주님이 오심을 영접하기 위하여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2-43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 이니라…” 하셨고, 누가복음 21장 24절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생애 중에 오신다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복된 성도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요청되는 것은 기도입니다.

사실 어떤 위기에 처할 때, 그리고 인생의 짐이 무겁고 힘들 때,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그리고 바쁠 때 일수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닫게 되고, 기도할 때 우리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우선순위를 깨닫게 됩니다. 이세상을 살면서 여러가지의 유혹과 시련,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기도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지막 때에 더욱 열심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2.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로마 황제 네로에 의해서 박해를 받고 있는 성도를 향하여 뜨겁게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신앙을 위해서 환난을 당하고, 집과 재산을 잃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잃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말세 마지막의 세상에 대하여 딤후 3:1-2을 보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즉 극단적인 이기주의 와 자기사랑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참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성행할 때 입니다. 어느 농장에 조라는 충성스런 노예가 주인에게 신임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조는 정직하고 지혜로우며 아주 충성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조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겼습니다.

어느 날 주인과 조는 노예를 하나 더 사러 노예 시장에 갔습니다. 주인은 젊고 힘센 노예를 사려고 했으나 조가 한사코 늙고 병든 노예를 사자고 고집하였습니다. 주인은 이상하게 생각되었으나 평상시 믿을만한 사람이었기에 조의 말대로 그 노예를 사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조는 늙고 병든 노예를 데려다가 정성껏 치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노예가 할 일은 자기가 다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은 조를 불러 묻습니다.

"네 아버지냐?"

"아닙니다."

"그럼 누구이기에 그렇게 최선을 다해 돌보느냐?"

"저를 잡아다 노예로 판 제 원수입니다."

"그런데 왜?"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날 노예시장에서 그를 본 순간 주님께서 그를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대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하며 교육과 문화 사업 등 자선사업에 몰두하여, 2,509개의 공공도서관과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각종 평화 재단 건립에 전 재산의 90%를 기부한 앤드루 카네기는 그가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은 좋은 대인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인관계에 있어 그의 성공 비결은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데일 케네기는 “카네기 인간관계론”에서 성공적인 인간관계의 3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원칙은 “꿀을 얻으려면 벌통을 걷어차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난이나 비평, 불평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판은 종종 원한을 사게 되고, 이러한 원한은 직원들과 가족, 친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그러면서도 비판한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난이란 집비둘기와 같아 언제나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법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칭찬은 무쇠도 녹인다”라는 것입니다. 솔직하고 진지하게 칭찬하라고 말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있듯이 칭찬은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며, 칭찬할 때 성적도 향상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약점이 있는가 하면 장점이 있습니다. 나쁜면 보다는 좋은 점을 칭찬할 때 좋은 관계를 유지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라”라는 것입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일즈도 잘하고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즈음 말로 표현하면 감성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즉, EQ 가 높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일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좋은 인간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윤리의 차원이 아니라 신앙의 차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뜨겁게 사랑하는 일입니다. 기존교회에서 이단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면 교회가 사랑이 없다고 말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말한다면, 사랑은 사람들과의 수평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 사랑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주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었을 때에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발설함으로 저주 받아 지금까지 그 후손이 비참하게 살지만, 아버지의 허물을 뒷걸음쳐 덮어준 셈과 야벳의 후손은 번창한 것을 봅니다. 덮어준다는 말은, 사랑에 눈이 멀어서 보아야 할 것은 못보고 넘어가는 분별력의 상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와 허물이 너무 분명하게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감추어 주고 보호해 준다는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 죄와 허물을 덮어주시고 용서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덮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남의 허물과 죄를 덮어주고 용서하고, 감싸주고 뜨겁게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선한 청지기 같이 이웃을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소록도의 두 수녀님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두 수녀는 아무도 모르게 반세기 가깝게 낯모른 이방인의 나라에서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다가 사랑하는 은인들에게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 개만 들고 반세기 가깝게 예수님의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다가 떠났습니다. 이 수녀의 이름은 마리안느와 마가레트였습니다.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 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차례로 소록도에 왔습니다.

이 수녀들은 20대 꽃다운 나이에 고향 오스트리아를 떠나 수천 나환자들의 손과 발이 된지 40년, 이젠 육신이 노쇠하여 할머니가 되어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새벽 5시에 일이나 환자들에게 분유를 타 주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는데 소록도 사람들은 ‘수녀님’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할머니’라고 부르길 더 좋아한답니다.

이 수녀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언론사 인터뷰이고, 무슨 상이라도 주려면 번번이 거절하는 바람에 주는 쪽에서 되레 고생을 한답니다.

일례로, 94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소록도까지 찾아와서야 겨우 수여할 수 있었습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되어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졌다고 합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레트의 삶에서 뭔지 모를 뿌듯함과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남을 위한 섬김과 봉사입니다. 남을 위해 섬기고 봉사할 때 인생은 최고의 행복과 기쁨을 느낀다고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마지막 때에 우리 성도가 힘써야 할 것은 선한 청지기가 되어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라고 말씀합니다. 먼저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청지기라는 말은 주인의 집을 일정기간동안 관리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 물질 재능은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라 생각할 때 선한 청지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청지기 의식, 즉 Lord Ship 이 분명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 재능 물질, 기술을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고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이웃을 위해 사용할 수 없고, 아까운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진정 다가올 마지막에 대한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러한 모든 것을 가치 있는 일에 쓰려고 할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때가 가까운 것을 아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인 헨리 포드(Henry Ford ; 1863~1947) 그는 “상업은 오직 이익이 목적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상업의 목적은 이웃 사랑과 봉사에 있다. 이른바 상업윤리는 숭고한 직업정신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경제나 상업은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어떻게 사회에 봉사하느냐에 따라 상업에 승패가 좌우됩니다. 그래서 요즈음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브리주를 실천하는 기업의 경우 사회적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도 카네기의 기업정신을 이어 삼성 LG SK 등도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유명 연예인들의 섬김과 봉사활동, 가수 김장훈, 최수종 하희라 부부, 차인표 신애라 부부 최근에 마더라는 영화로 국제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켜 연기상을 수상한 김혜자씨 등의 아프리카 오지의 봉사활동등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감동을 줍니다. 아직도 지구촌 인구 60억 가운데 12억 인구가 하루 1 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고, 1억 5천만 명의 아이들이 거리에서 자고, 먹고 ,일하고, 뛰어 다닙니다.

로마의 휴일과 전쟁과 평화등 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세기의 요정으로 알려진 오드린 햅번은 기아에 시달리는 제 3세계 어린이들을 위해서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유니세프 회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1993년 6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래 글은 죽기 일 년 전 남긴 메시지입니다.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라

아름다운 머릿결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아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 되어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 돠어야 하며,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 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고 버려서는 안된다.

기억하라....만약 도움의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 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나폴레온 힐은 ‘성공을 위해서는 봉사를 하라’ 고 말합니다. 섬김과 봉사의 삶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며, 사회를 아름답게 만듭니다. 오늘 사도 베드로는 무슨 봉사를 하든지 하나님이 힘의 원천임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섬김과 희생과 봉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청지기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닙니다. 바울은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고 말씀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주의 종말과 함께,인생의 종말이 언제 올지 알 수 없습니다. 항상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서로 뜨겁게 사랑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0년 11월 21일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