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기다림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다린 다고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일 것입니다. 많은 종류의 기다림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빨리 커서 어른이 되는 것을 기다립니다. 직장에 이력서를 낸 청년들은 회사에서 합격 통지서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결혼을 약속한 연인들은 결혼식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봄에 씨앗을 뿌린 농부는 가을의 풍성한 열매를 기다릴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퇴원 할 날을 기다릴 겁니다 기다림에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내하지 못해서 낭패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2021년 12월 마지막 달에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눅2장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나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대강절 절기에 예수님의 초림을 기억 할 뿐 아니라 다시 오실 재림을 준비하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끝까지 잘 견디고 인내하다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 있는 가 하면 반면에 기다리지 못해서 낭패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먼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였지만 그 약속을 믿지를 못하고 자신의 부인 말고 여종 하갈을 취하여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그게 이스마엘입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해서 낳은 아들인데 오늘날 아랍의 조상이 이스마엘입니다. 그 결과 배다른 형제가 나와 오늘날 까지 유대인과 아랍 사람들 간의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한 결과로 이 얼마나 지금까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아는 예루살렘에 가면 황금 사원이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돔이 황금을 입혀서 그렇게 불려 진 곳인데 그 안에 저도 성지 순례 때 들어가 보았습니다만 그 안에 커다란 바위가 있습니다. 그 바위는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친 그 장소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성지라고 하는데 반대로 아랍 사람들도 그곳을 성지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그 장소에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을 하나님께 바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이스라엘과 아랍의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이게 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한 결과입니다.
또 한 사람은 구약성경 사무엘상 13장에 나와 있는 이스라엘 초대와 사울 이야기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기 전에 상당히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만 그가 전쟁터에 나가서 싸울 때 마다 승리하자 그는 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번은 블레셋 군대가 병거가 3만이요, 마병이 6천명이요 해변에 모래처럼 쳐 들어와서 믹마스에 진을 치고 있자 이스라엘 군대들은 겁을 먹고 수풀에 다 숨어 있고 사무엘이 오기를 7일 동안 기다렸으나 오지 않자 사울은 조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쟁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제사를 먼저 드려야 하는데 정시에 오겠다고 약속한 사무엘 선지자가 늦어지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차도 없고 걸어서 오는 것이기에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일주일은 너무 한 것입니다. 사울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선지자가 해야 할 일을 자신이 대신해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자 사무엘은 사울에게 망령된 일을 행하였다고 하고 이 일로 인해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고 이새의 아들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기다렸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한 것입니다.
반면에 기다리다가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25:1-13절에 보면 열 처녀의 비유가 나와 있습니다. 옛날 유대나라는 결혼식을 밤에 했습니다. 지금도 밤에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밤에 하는 이유는 아마도 날씨가 낮에는 더웁기에 서늘한 밤에 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신부들러리들은 신랑이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생각지 않게 늦어지게 되자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관계로 꾀를 내었습니다. 그것은 가게까지 가서 기름을 준비할 수 없으니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게 기름을 꾸어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름을 주었다가는 우리도 기름이 떨어져서 신랑을 맞이할 수 없으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기름을 사라고 하고 주지 않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가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온 것입니다. 끝까지 기름 충분하게 준비하고 기다린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되고 후에 온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충분하게 준비하지 못하여 혼인잔치에 참여 하지 못하였습니다. 기름을 충분하게 준비하고 끝까지 기다린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이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뱃세다 광야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끝까지 들었던 군중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은 기적을 체험하고 그들은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 했으며 예수를 메시야로 삼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다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기다림입니다. 눅15장11-32절에 아들을 기다리시는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 집을 떠난 탕자가 멀리 외국에 가서 허랑 방탕 하다가 갖고 있던 돈이 다 떨어지자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는 비참한 인생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을 때 아버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버지 집은 풍성한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 구나. 그러나 그가 아버지 집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아버지 집에 돌아 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이 집나간 이후 아들을 줄기차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오는 아들의 모습을 바로 알아차리고 아버지는 집 나간 아들을 뛰어가서 입을 맞추고 안아주면서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어다가 다시 얻었다고 말하면서 아들을 목욕시켜주고 새 옷을 입혀주고 새신을 신겨주고 가락지를 손에 끼워 주면서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 타락한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께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품어 주시고 아들로서 대우를 해 주십니다.
이사야 30장에 나와 있는 유다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 탕자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돌이키기만 하면 그들이 비록 당신을 배신하였었다고 해도 그들을 당신의 자녀요, 백성으로,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 누리는 축복의 사람들로 회복시키려는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야웨께 돌아오기만 하면 말입니다.
사30:18절 하반절에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시라. 그를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는 말은 ‘회개’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아니하시고 회개하면 유쾌한 날이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자는 20절에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예외 없이 환난이나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고난을 피하여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다 고난을 받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동방의 의인은 그도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다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연단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들이라고 해서 우리가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 이상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연단의 과정이며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순간적인 실수나 죄를 저질렀다 해도 우리가 회개하면 은혜의 통로가 열립니다. 축복의 샘이 터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회개해야 합니까? 22절에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참된 회개란 죄에서 슬퍼하고 죄를 쳐다보지도 않고 죄된 곳에 가지도 않고 죄와 결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난 1년 동안의 삶을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왔습니다. 대강절을 지내면서 우리는 털어야 할 것들을 털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버릴 것들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앞에서 불의 하고 합당치 못한 습관이나 죄를 끊어야 하겠습니다. 서먹서먹한 이웃과의 관계도 바로 하고 서로 사랑하고 너그럽게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23-24절에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며 밭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시23: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25절에는 개울과 시냇물이 흐른 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생명의 젖줄인 물이 층분 하게 공급되는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속에 풍족하게 넘치고 풍성하며 기쁘고 즐겁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바벨론과 로마로부터 해방 시킬 다윗의 자손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강절을 지내면서 초대교회 교인들처럼 유대인들처럼 우리는 다시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기다리고 있다면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시편130편5-6절에 보면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 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기다리나니 참으로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우리의 영혼이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마치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군대에서 전방에서 철책 근무할 때 그 추운 날에 밖에서 근무할 때 밤새 바깥에서 경비 할 때 병사들은 그 밤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립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주의 오심을 얼마나 사모하는지 그들은 성도들을 만날 때 이렇게 인사 했습니다. “마라나타!”아멘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듯이 환자가 의사를 기다리듯이 간절하게 주님을 찾고 기다려야, 꽃들은 봄을 기다리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는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주님을 간절히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친척입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에 집에 들어서자 성령의 감동을 받은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큰소리로 말합니다. 42절에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에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나에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메시야이신 아이가 복중에 있음을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메시야를 가진 마리아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46절에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성령이 말씀하신 것처럼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기다린 사람은 육신이 어머니 마리아 일 것입니다. 자신이 잉태 한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그로부터 10개월 동안 뱃속에 있는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였겠습니까? 주변 사람들의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그토록 이스라엘이 기다렸던 다윗의 후손 예수라고 천사가 고지 해 주었을 때 그의 마음은 기쁘고 예수가 잉태되기를 간절히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친족 엘리사벳을 방문할 때 성령께서 여자 중에 네가 복되고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라고 하였을 때 크게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마리아의 입을 통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46-47절에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의 찬가가 나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계시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지루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가운데 마리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400년의 긴 암흑기를 거치고 새벽별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한 성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기다리는 대강절 절기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을 기다렸던 안나와 시므온처럼 의롭고 경건함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구주를 임신하고 잉태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던 마리아처럼 주의 오심을 기뻐하며 찬양하며 다시 오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년 12월12일 새 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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