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 예수 (행3:1-10)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대에 유명한 철학자가로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과학자로는 아인슈타인 음악가로는 베토벤이나 바하, 모차르트, 미술가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다 천지창조를 그린 미켈란젤로, 조각가로는 프랑스의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로댕, 이 외에도 많은 위대한 이름들이 이 땅에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위대한 인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 가장 귀한 이름은 누구이겠습니까?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건져내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셔서 이 우주와 삼라만상을 붙잡고 계십니다.
요한사도는 그가 없이는 이 세상이 있는 모든 것이 하나도 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은 죄 많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분은 죄 없으신 분이지만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그 분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9-11절에 보면,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실 때 흰옷 입은 천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11절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 하시고 난 이후에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이 모여서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세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기 시작하였는데 오순절 날에 모여서 같이 기도할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더니 그들이 앉은 곳에 가득하여 마치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처럼 각 사람위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게 되어, 모두가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지상에서 떠나서 하늘로 승천하시고 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하게 되어지자 제자들에게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담대해졌고 사람들에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면 첫째로 담대해집니다. 비굴하지 않습니다. 담대해진다고 하는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사람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만을 의식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갈1:10절에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요6:38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8:29절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아버지의 기쁘신 일을 위해서 일하셨습니다.
예수 믿고 성령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기쁘신 일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세상에 3년 공생애 사시는 동안 각색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12해 동안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을 고치시고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그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죄로 말미암아 육체와 영혼이 죽어가는 인생들을 고치고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육체와 영혼이 병든 인간을 치료하시고 고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요즈음 이단들이 자신들이 믿는 교주를 예수님의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행 4:12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하나님의 교회 안0홍이나 신천지 교주 이00가 구세주가 될 수 없음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요한복음17: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러기에 예수의 이름이 가장 위대한 이름인 것입니다.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마1;21에 “이는 자기 백성을 죄 에서구원 할 자”라는 뜻입니다.
누가복음1:26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가 사는 가정에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났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입니다. 처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28절에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 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 도다.” 처녀가 깜짝 놀라 이 무슨 일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30절에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을 지어다” “보라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 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리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이 때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합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35절에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리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이렇듯 예수의 이름은 그 어떤 이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름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아무리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가 이 땅에서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 공자나 맹자나 마호멧트나 안00이나 이0희 문0명이나 박0선이나 이런 이름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모두가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죄인입니다. 죄인이 죄인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하늘에서 내려 온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인간의 정욕으로 잉태된 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히4:14-15절에서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 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은 대제사장으로서 성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정욕으로 태어나지 않으셨기에 ‘죄’가 없으십니다. 따라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은 ‘죄’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위대한 철학자나 도덕자나 정치가나 군주나 종교를 창시한 자가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고 천국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성전 미문에 있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이 사람이 고침을 받은 사건은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였다고 하는 것은 그의 절망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중간에 어떻게 잘못되었다고 하면 혹 고칠 수 있는 길이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과학이나 철학, 과학과 의술로도 해결할 수 없는 우리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21세기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사람들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갈수록 현대문명은 이미 인간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현대과학문명에 최첨단을 달려 인공지능 알파고가 천재바둑기사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4:1로 대승하였습니다. 이런 대국을 보고 사람들은 과학이 과연 인간을 평화롭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이 어디까지 발달한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미 과학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기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 적그리스도를 짐승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이 짐승이 권세를 받아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말하게 하고 그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는데 저가 큰 자나 작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는데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인데 그 짐승의 수가 666이라고 계13:15절 이하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짐승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이 짐승이 켬퓨터라고 생각합니다. 슈퍼 컴퓨처라고 하고 싶습니다.
여기 계시록에 보면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로봇에게 생명이 부어졌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도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생기를 부어 생령이 되게 하니까 이제 사탄은 기계에다 생기를 부어 로봇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말하게 하여 사탄이 조종하여 하나님이 만든 인간들에게 자신이 만든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켬퓨터입니다. 사탄은 인간이 만든 켬퓨터에 생기를 불어넣어 결국 인류를 파멸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지구의 종말이 멀지 않았음을 깨닫게 합니다.
인간이 만든 현대문명은 시날 산에 쌓은 바벨탑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바벨탑이 결국 무너졌듯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와 문명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징후들은 기상이변과 심각한 가뭄, 세계도처에서 일어나는 이슬람 세력인 IS로 인한 테러활동과 끊이지 않는 전쟁, 그리고 지구온도의 상승으로 인한 온난화 현상, 그리고 인한 자연재해의 심각성이 날마다 증대해가고 있고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인한 치솟는 실업율과 날마다 흉악해지는 살인사건과 인간관계의 파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도덕적 존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타락한 모습은 마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처럼 좌절과 절망 속에서 체념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이 병든 문명과 타락한 세상을 고칠 수 있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앉은뱅이를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를 ‘보라’ 그랬더니 이 앉은뱅이는 언제나 지나가던 사람이 자신에게 동전 한 잎을 던 져 주기를 바라보고 그의 손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동전 대신에 절망 속에서 체념하고 땅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그에게 위를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위대한 정치가나 철학자 과학자 성인군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이름을 가지고는 천국과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누가 이 병든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시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사도는 거기에 모여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3:16절에,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첫째, 예수의 이름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28:15절에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둘째, 행10:43절에 예수의 이름을 힙 입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셋째, 구원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4:12 로마서 10:13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습니다. 넷째,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요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다섯째,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병 고침을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요3:16절에 예수의 이름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고 영생과 천국을 주십니다. 2020년 4월26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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