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웨를 기다리는 자 복되다 사30:18-26
주전8세기에서 주전7세기로 넘어가는 세기말의 상황, 즉 유다가 국가적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통치하던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한 두 명의 선지자가 있다. 바로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다. 이들은 주전 8세기 말엽에 나라가 위기 사태임을 끊임없이 외쳤다. 이들을 언급하지 않고는 이 시대의 유다 역사를 매듭짓는 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확실히 유다의 어느 왕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는 앗시리아의 그림자가 유다 땅을 뒤덮고 북이스라엘이 비틀거리다가 결국 멸망했을 때 설교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비극적인 시대를 살았다.
유다의 이 위기는 앗시리아의 외부적인 침략과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그에 수반되어진 정신적인 위기 까지 동반한다. 이 정신적 위기 사태는 유다민족의 특성과 민족의 종교인 야웨 신앙을 그 토대로부터 흔들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우상 숭배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사1장2-3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이로 인하여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였으며 이제는 유다 예루살렘까지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도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고 한탄 하시는 내용입니다.
4-5절에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10-12절에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숫 송아지나 어린 양인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5-17에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 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며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유다가 멸망 직전의 상태는 유다 백성이 야웨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함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가 무너지고 부패하고 탐욕이 가득하고 종교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섬기지 않고 형식적인 종교행위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향해서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에 태어난 선지자가 이사야였습니다.
이사야의 주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제시된다. 1-39장에서 이사야는 유다의 죄에 대해 묘사하면서 만일 이러한 죄가 계속된다면 백성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여기에는 유다 주변 국가들에 대한 경고도 포함되는데 그 시간적 배경은 이사야가 살던 때가 된다.
40-66장에서 이사야는 위로의 말과 함께 메시야적 예언을 전하다. 여기서의 시간적 배경은 이사야의 관점에서 볼 때 먼 미래의 시점에 속한다. 이사야는 유다의 심판이 이미 임했다고 말하는 동시에 그러한 심판으로부터 구원이 임할 것을 예언하며 백성을 위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메시야가 임하여 백성을 죄와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 위로를 강조한다. 이사야가 나라가 곤경에 빠진 것은 다윗에게 주신 여호와의 언약이 참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백성이 그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선포했다. 그러나 이사야는 백성 사이에 만연해 있던 통속적인 번영신학은 확실히 배격했다. 이사야는 다윗 언약 속에 내재되어 있던 징벌의 가능성을 강조했는데 기존의 통속적인 신학은 정기적인 제의 활동만으로 모든 징벌을 피할 수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유다민족이 당하는 굴욕을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로 해석 했다. 그는 유다의 굴욕은 여호와께서 행한 일로서 유다의 죄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이며 또한 그분의 약속이 실현될 수 있도록 백성을 깨끗게 하는 연단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사야는 앗시리아로 인한 국가적 위기를 유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선포했고 앗 시리아는 하나님에 의해 지명된 징벌의 도구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후 위기 상항에도 예루살렘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다백성이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에서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서는 징계 중에 있는 유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부패하고 타락하고 탐욕적인 유다 백성들이 야웨께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5:8에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며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 진저” 11-12에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있을찐저, 그들의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이사야 시대에 멸망 직전 유다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우리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 보다는 오직 물질적 탐욕을 쌓고 노아시대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쾌락을 쫒는 삶을 살았지 야웨 백성으로서의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바알신앙에 물들어 물질적 쾌락을 따라가는 종말론적인 생활을 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활에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물질적, 영적으로 풍성하게 하시고 회복시켜 주신 다는 것입니다. 야웨께서는 유다 백성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무 나에게서 멀리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눅15장11-32절에 아들을 기다리시는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 집을 떠난 탕자가 멀리 외국에 가서 허랑 방탕 하다가 갖고 있던 돈이 다 떨어지자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는 비참한 인생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을 때 아버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버지 집은 풍성한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 구나. 그러나 그가 아버지 집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아버지 집에 돌아 왔을 때 아버지는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오는 아들의 모습을 바로 알아차리고 아버지는 집 나간 아들을 뛰어가서 입을 맞추고 안아주면서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어다가 다시 얻었다고 말하면서 아들을 목욕시켜주고 새 옷을 입혀주고 새신을 신겨주고 가락지를 손에 끼워 주면서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 타락한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께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품어 주시고 아들로서 대우를 해 주십니다.
유다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 탕자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하나님은 유다가 돌이키기만 하면 그들이 비록 당신을 배신하였었다고 해도 그들을 당신의 자녀요, 백성으로,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 누리는 축복의 사람들로 회복시키려는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야웨께 돌아오기만 하면 말입니다.
18절 하반절에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시라. 그를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는 말은 ‘회개’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아니하시고 회개하면 유쾌한 날이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용서해 주십니다. 하지만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자는 20절에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예외 없이 환난이나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고난을 피하여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다 고난을 받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동방의 의인은 그도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다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연단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들이라고 해서 우리가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 이상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연단의 과정이며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는 ‘회개하는 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순간적인 실수나 죄를 저질렀다 해도 우리가 회개하면 은혜의 통로가 열립니다. 축복의 샘이 터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회개해야 합니까? 22절에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참된 회개란 죄에서 슬퍼하고 죄를 쳐다보지도 않고 죄된 곳에 가지도 않고 죄와 결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회개하면 무슨 복이 있는 것입니까? 23-24절에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며 밭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시23: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25절에는 개울과 시냇물이 흐른 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생명의 젖줄인 물이 층분하게 공급되는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속에 풍족하게 넘치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26절에서 “야웨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회개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처가 싸매지며 맞은 자리가 고침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달빛은 햇빛 같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빛 가운데 찬란한 광명 가운데 거하며 영광스런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을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회개함으로입니다. 성도들의 회개는 원수들을 무너뜨리는 힘이 됩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오늘날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께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짐승에 이르기까지 금식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 것처럼 하나님께 돌아와서 회개함으로 앗수를 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악한 자들을 쳐서 이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도 청와대 앞에서 노숙하면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기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공산주의로부터 구원 하실 줄 믿습니다.
삼상7:3에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마음을 여호와께로 항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야웨를 기다리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심어린 회개를 한다면 아무리 견고한 성벽이라 할지라도 허물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회복시키시며 복되고 아름답게 하시며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이 영광스럽고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2019년 10월27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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