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스톤 3, 고전3:10-17
저는 지난 두 시간에 걸쳐서 모퉁이돌(CORNER STONE), 즉 예수 그리스도 터 위에 세워진 국가나 개인이나 교회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세 번 째로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 터 위에 세워진 건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전3:16-17절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사도베드로는 교회란 우리 안에 신령한 집, 성전을 지어 가는 거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 신령한 집인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지지 않는 교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으며 신령한 집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터 위에 세워지지 않는 교회는 신령한 집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는 단체나 집단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교주, 예를 들면 전도관 박태선, 통일교 문선명, 신천지 이만희, 하나님의 교회 안산홍,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안식교 등 이외에도 많은 종교나 교파가 있습니다. 이러한 단체나 집단을 우리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산돌 같이 신령한 집이 세워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고전3:5-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아볼로가 하나님 말씀으로 잘 가르치고 먹여 주어 그들의 믿음이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의 사역자로써 그 때 마다 하나님이 필요해서 쓰신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교회를 이끄시고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하나님의 사역자 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이 사역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하나님의 신령한 집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집, 즉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사역자들은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지 못하면 나중에 집을 건축하고 집이 모래 위에 세워진 집처럼 크게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을 건축할 때 그 건축 자재가 중요한 것입니다. 건축 자재가 좋지 않은 걸 사용하면 나중에 비가 오고 태풍이 불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지 않고 나무나 풀, 짚으로 지으면 불속에 들어가면 다 타고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심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령한 집을 건축할 때 불에 타지 않는 재료 금, 은 보석으로 지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헌신할 때 금, 은 보석 같이 귀중한 것으로 바치고 드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나무나 풀, 짚으로 지으면 공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신령한 집, 교회를 지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는 우리가 신령한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기에 앞서서 교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 9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택하신 족속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의미를 압니다. 그들은 많은 민족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했다고 하는 거룩한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민족이라는 거죠? 더 나아가 그들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입니다.
죄지은 인간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뿐만 아니라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마귀가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빛의 세계에 들어가게 하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말씀에 가슴이 뛰고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야 나 같은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되어 천국에 들어 갈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나라의 구성원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은혜를 입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연합하여야 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연합의 당위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엡4:4-6에서 “몸이 하나이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여기서 우리는 한분 하나님아버지와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세례는 죄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주의 피와 살을 먹는 성만찬 식은 우리를 하나 되게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로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예수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신령한 공동체를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고 교회 공동체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연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퉁이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모퉁이돌에게 붙어서 건축물을 세워나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하여 교회 공동체를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되기 위하여서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지체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고 할 때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 즉 손과 발이 되어야 하고 눈과 귀와 코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지체가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고 한 지체가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고 유기체적인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벽돌 하나하나가 따로 떨어져 있으면 건축을 할 수 없습니다. 벽돌 하나하나가 제자리에 있어서 모퉁이돌에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건축물이 완성되는 것처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모퉁이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벽돌 하나 하나가 이어지듯이 성도들은 서로 서로 사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 공동체를 세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엡2:20-22에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교회는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
교회란 ‘에클레시아’란 말로서 구별된 모임이라는 뜻이다. 다른 많은 공동체와는 다른 구별된 공동체란 뜻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다른 공동체 가운데 오직 그들만이 하나님 안에 세워졌고 존재함으로 그들은 구별된 삶과 예배 가운데 공동체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교회공동체는 예배하기 위하여 모인다. 이 공동체가 유대교 회당과 구별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 하다는 사실이다. 이 교회공동체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고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는 아들을 기다린다.(살전1:9-19) 이 공동체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일에 동참한다. 신자들은 모든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다. 이 신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이 에클레시아란 말을 ‘이스라엘 백성’이란 말과 동일시 한다.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만민 중에서 불러낸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으로 묘사한다. 신명기10:15에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4:7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너희를 부르시는 분이시다(살전5;24) 데살로니가에서 그 공동체가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은 하나님 나라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교회는 세상과 달리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바울은 교회가 기다리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설명한다. 데살로니가 신자들은 다른 신자들을 위로 해 줄 수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종말론적 목적을 믿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데살로니가 교회 공동체가 거룩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3:13)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심한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룩함으로 부르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택하심은 거룩함으로의 부름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 공동체의 마음을 거룩함 속에서 굳건하게 해 주셔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 흠이 없게 되기를 간구한다. 성도는 부정함이 아닌 거룩함(하기아스모스)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함은 이방인들의 음행과 성적 행위들을 피할 때 실현된다.
사도바울은 이방인들의 부도덕한 삶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4장21절 이하에서 육체를 따라 난 하갈의 자녀 이스마엘과 사라에게서 난 약속의 자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을 가리켜서 육체를 따라 났다고 말하고 자유 있는 사라에게서 난 이삭을 약속을 따라 났다고 말함으로써 이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난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오직 아브라함의 씨로부터 낳아야 약속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후에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에클레시아 떼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는 ‘거룩함’입니다. 이방인들처럼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거룩함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떠난 자의 삶에 대하여 롬3:10-18이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꼬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이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6:9-12절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바울은 고린도 인들에게 고린도 사회의 성적 부도덕을 삼가라고 권고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화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성도로 부름 받은 모든 자들이 이미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었기에 이제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거룩함이란 과거로부터의 철저한 분리를 의미한다. 이 분리는 주위의 둘러싼 모든 문화로부터 구별된 삶을 내포한다. 바울은 거룩함을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불렀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교회역시 거룩함으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국민일보에 제주 중문교회 원로장로님이신 원응두 분과 김춘년 권사님의 기사가 보도 되었습니다. 이 두 분은 제주도에서 감귤 농사를 약2500평을 가지고 농사를 지어서 6남매를 아주 훌륭하게 키우셨습니다. 31살에 장로가 되어 50년 동안 중문교회 장로님으로 섬겼는데 이 분이 고등학교에 갈수 없어서 중문교회 성경구락부에서 성경을 공부하셨답니다. 이 분이 누구냐 전국 학력고사 1등, 사법고시 수석을 한 원희룡 제주도지사 아버지이십니다. 첫아들은 목사님이십니다. 이 분은 6남매 전부를 새벽기도를 시키고 가정예배로 키웠고 주일예배는 당연하고 예배 후에는 외식을 삼가고 집에서 성경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원 장로님은 어디 가든지 전도지를 가지고 가서 전도를 하고 원 장로는 한국 국제기드온협회 회원이다. 협회에서 발행하는 ‘신약전서와 시편·잠언’ 성경책을 직접 구입해 전도 대상자들에게 선물한다고 합니다. 원 장로님의 가훈은 ‘주의 영광’과 ‘인류 평화’가 가훈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참으로 우리나라에 이렇게 거룩한 모습을 살아가는 가정을 축복해주시는 실례를 보고 듣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위에 세운 개인이나 가정, 교회 국가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른 소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집, 신령한 집 교회를 우리가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자녀로써 하나 됨으로 연합하여 거룩함에 이르는 공동체 되어 주의 오심에 구원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9월29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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