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시험 2 (눅4:1-13)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난 이후 하늘이 열리며 음성이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저를 기뻐하노라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리시어 예수님은 마귀에게 3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예수님이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다고 해서 마귀가 시험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하면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성도들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성령 충만함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예수님께 시험한 3가지 시험은 태초에 사탄이 하와에게 한 시험과 같습니다. 사탄은 오늘 날도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을 유혹해서 영생을 얻지 못하도록 하여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창세기3:6절에 보면 하나님은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지만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반박하면서 오히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고 죽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사탄의 말을 듣고 보니 하나님말씀보다 사탄의 말이 더 유혹적이고 매력적입니다. 이 사탄의 말을 듣고 보니 선악과가 달라지게 보인 것입니다. 6절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요한사도는 이것을 육체의 정욕과 안목이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먹음직’도 하다는 것은 육체의 정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첫 번 째 시험이 육체의 정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굶주린 것을 알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이 떡이 되게 하라”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빵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2011년에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한 자스민 혁명은 바로 높은 고물가로 빵을 구할 수 없었던 대중들에 의해서 촉발되었습니다. 튀니지 혁명은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 카다피 독재자를 몰아내고 아랍권의 민주화 물결을 이루어 냈던 것 역시 빵문제였던 것입니다. 빵문제, 경제문제만 해결 해주면 대중들은 절대로 소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경제문제, 빵문제는 우리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머슬로우는 인간은 다섯 가지 기본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하위의 욕구에서 상위의 욕구로 점차 요구 한다고 했습니다. 최하위의 욕구가 생리적 욕구입니다. 생리적 욕구가 만족하면 그다음 욕구인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요구, 자존의 욕구, 맨 위가 자아실현의 욕구입니다.
인간의 기본욕구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인 생리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기에 첫 번째 생리적 욕구가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첫 번 째 욕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말씀 하시기를 떡이 되게 하라는 사탄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니라. 이 말씀에 동의하시면 큰 소리로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의 떡을 먹어야 하는 것은 인간은 육체적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 영혼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빵을 먹으면 인간의 생리적 욕구가 해결될 수 있지만 인간의 근본적 만족, 참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인간이 행복하려면 영혼이 만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육체적 만족, 즉 빵만 가지고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21세기 이렇게 풍요로운 나라에 살면서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많은 유명인들이 최고의 부와 권세와 명예를 누리고 있었으면서도 마지막이 좋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장관을 해도, 재벌을 해도 심지어 대통령을 해도 마지막이 안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영혼이 만족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육체적 만족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이 만족을 얻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만족을 누리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산 떡이신 예수를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생하리라 말씀하시면서 이 떡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내 살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보암직’도 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안목의 정욕입니다. 자꾸 보다 보면 욕심이 생깁니다.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은 다 가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을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여 주면서 말하기를 ‘이 모든 권세와 영광 네게 넘겨 줄 터이니 나에게 절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세상의 아름다움과 세상의 영광과 부귀와 권세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좋아 보입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뭐합니까? 그 돈으로 명예와 권세를 사는 것이 아닙니까?
사탄은 세상의 화려함을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공시켜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유명인이 되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세상)에게 절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절하면’이라고 번역된 ‘프로스퀴네세스’는 예배하면이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이나 어떤 영적 존재를 대상으로 사용할 때 완전한 복종과 숭앙을 의미하는 경배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은 자신이 하나님처럼 경배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 경배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에도 끊임없이 돈을 사랑하고 돈을 섬기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경배하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오직 절대자이신 야훼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자신이 권세자인 것처럼 거짓말 하는 사탄에게 진정으로 섬기고 경배해야 할 분은 오직 야훼 한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피조된 우리들은 오직 야훼 한분에게만 경배하고 그만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느브갓네살 신상에 절하지 않고 하루에 세 번 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다가 사자 굴에 들어갔지만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지혜롭게 할 만큼’입니다. 이것은 ‘이생의 자랑’입니다. 예수님의 세 번 째 시험에서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명하사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보호해 주실 것이다. 이 말에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니 마귀가 모든 시험을 마치고 얼마 동안 떠나니라.
여기서 사탄은 예수님을 성적 꼭대기에 세웠다고 했습니다. 꼭대기 TOP에 세웠다고 하는 것은 높은 곳에 올렸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니 자기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찮게 보이는 것입니다. 높은 지위에 올라 있어 보면 아래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높은 귀족이나 왕족으로 생각하기 싶습니다. 정상에 올라가 보십시오. 정치인으로서 정상, 대통령이 되어 보십시오. 경제인으로서 재벌에 되어 보십시오. 스포츠 스타로서 세계적인 정상의 자리에 올라 보십시오. 학문적으로 두각을 나타내 보십시오. 아래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국민의 소리를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히틀러 같은 독재자 나오는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나라 고위층 자녀가 3주 인턴 하면서 소아과 의사들도 쓸수 없는 논문을 영어로 써서 그것도 논문 제1저자로 등재되어 천재가 나타났다고 비아냥거리지 않습니까? 사탄은 탑에 올려놓았다가 수직하강으로 떨어뜨려 박살을 냅니다.
사탄이 원래는 천사장이었다는 것을 아시지요. 그런데 왜 이렇게 땅에 떨어졌습니까? 이사야14:12-15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지우리로다”
사탄은 하나님이 계신 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자신의 보좌를 세우겠다고 한 것입니다. 사탄이 이렇게 된 이유는 자신의 위치와 본분을 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장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게, 빼어나게 만들었습니다.
에스겔28:13-17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 되었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은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 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좆아 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사탄은 이렇게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가장 아름답게 창조되었고 지혜로왔으며 가장 피조물 가운데 완전하게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교만하여 하나님과 비기리라 하다가 천상의 세계에서 쫒겨나 이 땅에 내려와 오늘도 많은 영혼들을 이 교만을 통해서 사람들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자기 혼자 가기는 너무나 억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아마도 루시퍼한테 당하셔서 거기에 대한 분노가 있으십니다. 성경을 보세요. 성경에 삼상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폐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상11-15장 사이에 보면 사울이 제일 처음에는 겸손하였습니다. 하지만 암몬과의 전쟁, 블레셋과의 전쟁, 그리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교만해지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아니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가기 전 사무엘이 늦게 오자 자신이 제자상 대신 제사를 들였습니다. 그리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남녀노소, 짐승 할 것 없이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고 하였지만 좋은 것은 남겨 두었다가 들통이 났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뿐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자 하나님의 기념비가 아닌 자신의 기념비를 세워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한 것입니다. 전쟁에서 사울의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블레셋 진영에 지진을 내어 이겼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을 자랑하고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고 자신의 지혜를 나타내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야웨께서 하셨습니다. 야웨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내안에 있습니다. 자신을 나타내고 자랑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사탄의 덫에 걸리는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오직 야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4장 16절에 보면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직 야웨 하나님만을 자랑하고 그 분만을 높이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해서 지음 받은 자임을 기억하고 세상을 자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함으로 육체적 욕망,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사탄의 시험에서 승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8월25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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