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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처녀의 비유. 마25:1-13

gkffpffndi 2019. 3. 23. 17:29

열 처녀의 비유. 25:1-13


오늘 본문 말씀은 열 처녀의 비유로 알려진 것인데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 일어 날 사건을 말씀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자신이 재림 하실 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슬기로운자 이고 다른 하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를 보면 마24장에 보면 주님의 재림과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40-41에 보면 두 사람이 밭에서 일하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림을 당합니다. 또 맷 돌질 하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림을 당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양과 염소를 가른다고 말씀하십니다. 25:46절에 보면 영생에 들어갈 자가 있고 영벌에 들어 갈자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주님의 심판 때는 심판 받을 자가 있고 벌 받을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 받을 자가 있고 구원 받지 못할 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본문의 비유에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신랑을 맞이하러 간 신부의 들러리 인 열 처녀는 성도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열 처녀 모두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랑이 생각하는 시간에 오지 않고 더디 왔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본문 1절에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이 세상 이야기 아닙니다. 다가올 천국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땅에 것만을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입니다. 땅에 속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땅에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관심을 끌 수 있고 인기가 있을 것인데 예수님은 하늘에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이 시간 열 처녀의 비유에 대하여 설교 할 때 여러분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축복 받는 설교를 하시지 왜?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먼 나라 이야기를 하시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아예, 귀를 막고 잠자는 시간으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죽음이 찾아옵니다.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되는 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성경은 인간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 처녀의 비유가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1절에서 천국은 ... 이런 것이니라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하시면서 천국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13장에서 천국은 마치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또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 또한 천국은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다 좋은 것은 그룻에 담고 못된 것은 버린다고 하면서 세상 끝에도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넣으리니 거기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천국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지옥이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결국 지옥에 들어가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이야기를 하시는 것은 예수 잘 믿어서 제대로 믿어서 천국을 가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1절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로 나간 열처녀와 같다 하리니하였습니다. 열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러 나가기 위해서 가지고 간 것이 무엇입니까? ‘입니다. 결혼식에 무슨 등을 가지고 간다는 말이냐, 이렇게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문화를 이해하면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루의 시작이 아침이 아니라. 해가 떨어지는 저녁에 하루가 시작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유대나라는 아주 더운 나라이기에 한 낮에는 결혼식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중동지역에서는 밤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전에 전기불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횃불 같은 것에 기름을 묻혀서 어둠을 밝혔을 것입니다.


자기의 등이 없으면 같이 행진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결혼식에 참여 하는 사람들은 등을 다 들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슬기로운 처녀는 등만 준비 한 것이 아니고 충분한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였지만 미련한 처녀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신랑의 혼인 잔치에 참석 할 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신랑이 제 시간에 도착했더라면 이런 결과가 주어지지는 안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언제나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랑은 제 시간에 맞춰서 올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다가 갑작스럽게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훨씬 늦게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던 열 처녀는 이제나 저제나 오려나 하면서 기다렸지만 기다리던 시간이 늦추어지자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5절에 보면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잠도 설은 잠이 아니라 깊숙한 잠에 빠진 것입니다.


얼마나 한 참 잤을 까, 6절에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성경에서 밤은 어둠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13:30절에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할 때 나갔을 때도 밤이었습니다.“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 이러라이렇듯 밤이 의미하는 바는 낮과는 대조적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도들이 낮 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3:13 “낮 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의 세상이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죄악의 홍수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죄악의 깊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종교적으로 타락하고 인간이 부패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 한 복판에서 해마다 동성애축제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음지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언제부터 인가 자신들의 삶이 떠떳하다고 공개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겁잡을 수 없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소수 인권이라는 허울아래서 자신들이 인권을 침해당하는 것처럼 위장해서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동성애에 대해서 성경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의 현상에 대해서 롬1:24-27절에서 여인들은 순리대로 남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의 그룻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이들이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 뿐 아니라 이 시대가 어둠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또 하나는 젊은이들이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점을 더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도시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타로라고 점치는 집이 있는데 젊은이들이 많이 드나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뿐 아니라, 요즘 인기 연예인이나 축수선수나 운동선수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문신입니다. ‘타투라고 불리워지는 문신은 오래전부터 일입니다. 예전에는 조폭들이 자신의 조직의 힘을 상징하고 남에게 위력을 가해 보이는 문신을 해 왔습니다만, 요즘은 거의 많은 젊은이들이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몸에다 동물이나 식물, 글씨를 새겨 놓는 것을 봅니다. 유행처럼 번지는 이 문신은 성경이 엄격히 금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은 고대 사회에서 이방인들의 문화였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별하기 위하여 금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문화는 의문화요, ‘어둠의 문화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롬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영적으로 밤에 신랑이 오신 다는 것입니다. 6절에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이 음성에 허겁지겁 열 처녀들이 등을 밝혔습니다만, 웬일입니까? 신랑이 늦게 오는 바람에 기름이 떨어진 것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준비한 기름을 채워서 불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이 다 떨어져서 불을 밝힐 수 없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게 기름을 좀 빌려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대답은 차갑게 들려 왔습니다. 우리도 쓰기에 부족할 것 같으니 미안 하지만 기름을 줄 수 없으니 차라리 파는 사람들에게 가서 부족한 기름을 사라고 하면서 기름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미련한 다섯 처녀가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도착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미련한 다섯 처녀가 와보니 혼인잔치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11절에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안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12절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분명히 주여,’주여부르짖는 것으로 보아서 예수를 믿었던 사람입니다. 신자입니다. 그런데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12절에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기서 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열 처녀 모두다 등을 준비하였지만, 기름을 준비못해서 혼인잔치에 참여 하지 못하고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일이니까 교회 나오는 것이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으로, 의무적으로 종교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 내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주님을 만나고 싶어서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배에 대한 감격이나 감동을 받아서 날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할 때 눈물을 흘려 본적이 없습니다. 감동이 없는 사람입니다. 등은 형식적인 교회생활을 하는 신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름은 무엇인가? 기름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셔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불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의 감격이 있고 찬송할 때 그 분의 사랑과 긍휼이 느껴지고 자신을 죄에서 구원하신 주님을 마음속에서부터 찬양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번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기 때문에 거룩한 심령 속에 거하십니다. 거룩한 성령이 내안에 거하십니다. 고전3:16-17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성령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찬송과 기도로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고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기름이 없으면 자동차가 갈 수 없듯이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충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해야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기쁨이 충만합니다. 성령 충만 하면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충만하게 하려면 항상 기도와 말씀 찬양으로 내 심령을 가득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할 때 우리 안에 악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한 번 닫힌 문은 열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가 기름을 사가지고 와서 문을 두드리며 열어 달라고 애걸복걸 하였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노아 홍수 때 노아가 홍수가 올 것이라고 120년 동안 외쳤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홍수가 내리기 시작 할 때 방주의 문은 닫혔습니다. 이 문은 구원의 문입니다. 한 번 구원의 문이 닫히면 열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닫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는 구원의 문이 닫히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문이 아직은 열려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자녀들에게 일가 친족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4:2“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누가복음 21:36“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가복음 13: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이것은 천국을 가고자 하는 자, 천국을 얻고자 하는 자는 주님의 재림을 기억하면서 영적인 어두움이 이 세상을 지배 할수록 어둠이 깊어 갈수록 믿음과 성령의 불을 밝히고 정결한 신부로써 다시 오실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서 항상 기도함으로 깨어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21:34 “너회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연 방탕함과 술 취항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갈이 너회 에게 임하리라" 16:15 “보라 내가 도적갈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쳐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올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의 오심이 매우 가까웠습니다. 슬기로운 다섯처럼 기름 준비하여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낙오자 없이 천국 혼인 잔치에 참여 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324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