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닛시 출17:8-16
430년간의 애굽의 노예생활을 하나님의 은혜로 청산하고 영적 지도자 모세와 함께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는 기적을 체험하고 마라에서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고 엘림에서 안식을 취하고 난 이후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또 다시 원망하기를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아침에는 만나를 저녁에는 메추라기 떼를 보내시어 저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르비딤에서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자 또 다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석을 치자 기적 같이 반석이 쪼개지면서 생수가 터져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 2백만 명과 가축의 목을 축여 주었습니다.
바로 이곳 르비딤에서 물을 마시면서 안식하고 있을 때 아말렉이라고 하는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해 왔습니다. 아말렉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후손으로 이스라엘과는 형제였지만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은 육에 속한 자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자녀로서 장차 가나안 땅을 차지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가나안 땅은 장차 믿는 자 들이 가야 할 천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천국 이라면 애굽은 이세상을 가리킵니다. 애굽, 즉 이 세상을 나와서 홍해를 건너야 하는데 이 홍해는 세례를 상징한다고 사도바울이 고전10:1-2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재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홍해 바다를 건넌 것을 세례받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례는 바울은 롬6:4 우리가 그의 죽음심과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새생활, 새생명 가운데 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인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광야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7:38절에서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에서 사도바울은 광야를 ‘광야교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광야 같은 교회생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교회 생활은 광야 생활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 즉 천국에 들어가려면 광야 교회 생활을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교회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광야 같을 수도 있습니다. 광야에는 언제나 추위와 더위와 각종 사막의 들짐승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 같은 교회생활에서 승리 할 수 있는 비결은 말씀의 불기둥, 구름기둥 그리고 모세와 같은 영적 지도자의 말씀에 따라야 안전하고 평안하고 행복한 교회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광야 교회에서 연단과 훈련을 잘 받아야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광야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인 군사로서 훈련하셨던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광야교회에서 연단과 훈련을 받아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광야 생활에서 맞닥뜨린 첫 번 째 적은 아말렉입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과는 형제지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말렉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영적인 전쟁터에서 맞닥트린 적은 다름 아닌 자신의 형제나 다름없는 아말렉이었습니다. 언제 공격하였습니까? 르비딤에서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쉬고 있는 동안에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입니다. 아말렉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적입니다. 우리가 영적생활, 교회생활, 신앙생활을 하다가 좀 쉬고 있으면 가차 없이 우리를 공격하여 시험에 빠뜨립니다.
그러므로 광야교회에서 우리는 영적인 긴장을 늦추고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을 때 마귀는 찾아와서 공격하여 시험 거리를 주는 것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날 때부터 택함을 받은 사사가 있습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삼손입니다. 삼손은 경건한 부모님 밑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삼손이 이방지역인 불레셋 지역의 여자를 보고 좋아 하다가 그곳에 자주 출입하다가 결국 들릴라 라고 하는 여인의 꼬임에 빠져서 자신의 힘의 근원인 머리카락이 잘리고 두 눈이 뽑히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결말을 보게 됩니다. 삼손이 비참하게 된 것은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육신에 져서 자신이 나실인 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타락한 삶을 살았기에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마19:16-22에 부자청년의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는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물었을 때 예수님은 계명들을 지키라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묻자 예수께서는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적질 하지 마라, 거짓증거하지 마라, 네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하니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다 지키었다고 말하며 아직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느냐 되묻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쫒으라 하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이 부자청년은 돈을 사랑하므로 영생을 잃어 버린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딤전6:7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막13장에서 마지막 말세의 현상에 대해서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시기 직전의 세상에 대하여 전쟁과 지진, 기근, 그리고 거짓 선지자가 많이 나타나서 자신을 그리스도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시면 33절에 “주의 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34절에서도 “깨어 있으라” 35절에도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7절에도 “깨어 있으라”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이 오실 때 우리가 영적으로 자는 모습을 보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무엇에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기도생활입니다.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성도의 호흡입니다. 숨쉬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기도생활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일단 몸이 얼음장 같이 차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차갑습니다. 하지만 기도생활 하시는 분은 마음이 따뜻합니다. 온유합니다. 여유가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대합니다. 항상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합니다. 삶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왜요? 하나님과 교통하기 때문입니다. 봄이 되면 줄기에 가지에 싹이 파릇파릇 올라오는 것처럼 기도하는 사람은 생기가 있습니다.
둘째는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40년 동안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하루도 빠짐없이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양식은 이틀 식 거두면 나머지는 썩거나 벌레가 먹어서 먹을 수 없고 내다 버렸습니다. 이 하늘양식을 먹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오늘 이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매일 만나를 먹듯이 여러분의 영혼이 배고프지 않고 건강하려면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양식인 ‘하나님의 말씀’ 사도바울은 이것을 ‘도의 젖’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이가 엄마의 젖을 매일 먹어야 아이가 성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생활에 적용, 실천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셋째는 전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뭐라 하셨습니까? 당신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전도’하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지옥 갈 영혼을 건져내어 천국으로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4월 21일부활절에 총동원 전도주일로 지킵니다. 여러분들이 한 사람이 5명을 위해 기도하고 3명을 반드시 인도하는 153운동에 협력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아말렉 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이스라엘이 이겼는가입니다. 아말렉이 갑자기 공격하자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백성들과 함께 전장의 최전선에 나가서 백성들과 함께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론과 훌이 가만히 보니 이스라엘이 이길 때는 모세의 손이 높이 올라갔을 때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밀릴 때는 모세의 손이 지쳐서 내려 올 때 였습니다. 이 광경을 본 아론과 훌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얼른 올라가서 모세가 편안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반석 같은 돌을 깔아 놓았습니다. 아마 모세가 불편한 가운데서 기도한 것 같습니다. 자리가 불편하면 기도를 오래하지 못합니다. 이 사실을 안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받쳐 주었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론은 영적지도자인 모세에게 순종하고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고 잘 보필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세는 주연이고 아론과 훌은 조연입니다. 여호수아도 조연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전쟁에서 이기면 빛이 날 수가 있습니다. 아론과 훌은 모세의 손만을 받치고 있기 때문에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손이 피곤하여 내려 왔을 때 대신 모세의 두 손을 양쪽에서 들어 주지 않았다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패배 하였을 것입니다. 사실상 이 전쟁의 성패는 모세의 손, 기도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기도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론과 훌은 하나님의 일에 좋은 협력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방해자가 아니라, 협력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한 사람은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겪는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전쟁의 최전방에서 자기의 목숨을 바쳐서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지목하여 아말렉과 싸우라고 했을 때 여호수아는 불평불만 하지 않고 최전선에서 자기의 생명을 걸고 싸웠습니다.
여호수아는 어떤 사람입니까? 여호수아는 후에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10명의 정탐군은 백성들에게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보니 그것은 아낙 자손으로 키가 아주 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과 갈렙은 이렇게 보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 틀림없습니다. 심히도 아름답고 기름진 땅입니다. 우리가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자고 긍정적인 보고를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충성된자를 사용하십니다.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알고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이런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모세가 죽자 그 뒤를 이어서 후계자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데 있어서 여호수아가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 곁을 떠나지 않고 항상 모세를 도와 충성되이 일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말렉과의 첫 번 째 전쟁은 모세의 기도와 아론과 훌의 협력, 그리고 최전방에서 여호수아의 활약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기도하고 아론과 훌은 협력해서 모세의 손이 내려 오지 않도록 안정된 돌을 구해 모세를 그 위에 있게 하고 아론과 훌은 모세의 두 손을 붙들어 주어 해가 지도록 손이 내려 오지 않도록 하였고 여호수아는 최전방에서 병사들과 함께 전쟁을 치렀을 때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전쟁역사를 기록하고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모세는 전쟁에 이긴 다음에 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이렇게 불렀습니다.
이 뜻은 ‘여호와는 내 승리의 깃발’이라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입니다. 승리의 동력이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세와 아론과 훌. 그리고 여호수아가 싸워 이긴 것 같지만 실상은 여호와가 승리의 동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 재주와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전쟁에 개입하셨기에 승리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을 앞세우기 바랍니다. 사실상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전쟁터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곳에 사탄이 숨겨 놓은 지뢰밭이 있습니다. 자치 잘못하면 지뢰가 터져서 죽을 수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우고 나갈 때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영생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2019년 3월10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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