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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기나무(2) 출3:1-10

gkffpffndi 2016. 3. 3. 14:56
떨기나무(2) 출3:1-10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해서 떨기나무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꺼지지 않는 가시 떨기나무를 본 것은 그가 평범한 목부로서 40년의 세월이 흐르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 80이었습니다. 한 참 혈기 왕성하고 뭐든지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이 넘치는 젊은 때가 아닌 80의 고령의 나이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을 애굽의 바로 왕의 압제에서 구원할 지도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애굽의 왕자로서 애굽의 문화와 학술과 지식이 녹슬지 않은 때에는 하나님께서 부르지 않으시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80의 고령의 나이에 하나님께서 그를 사명자로 부르신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때는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십니다. 자신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정말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까지 하나님은 가만히 계십니다. 즉,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한 이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능함을 철저히 깨닫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BC 8세기경 유대나라의 열강들이 부상하고 있을 때 군사적, 경제적으로 탁월한 리더쉽을 발휘했던 웃시야 왕이 갑자기 죽자 유다나라는 뒤숭숭해 졌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천상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은 주님이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데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 위로는 스랍들이 서 있었는데 스랍들은 저마다 여섯 날개를 가지고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둘로는 날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화답하였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다.” 천사들이 그 옆에서 수종들고 있는 것이다. 이 우렁찬 소리에 문지방이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위엄을 본 그 순간 이사야 선지자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자신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고, 죄인인 자신을 보고 이제 여기서 자신은 죽겠구나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순간에, 즉 자기 부정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때 한 스랍이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들고 이사야에게 날아와서 그의 입에 대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그 순간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이사야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도 역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정함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철저히 자신을 부정하도록 하는 과정을 밟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겠다. 그러니 나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해내라. 그랬더니,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올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두 번 째 모세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다”고 말할 때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합니까? 그 때 하나님께서 말하기를 “나는 곧 나다” “나”라고 하는 분이 너를 보냈다고 말해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고 말해라. 세 번 째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아놓고 얘기하기를 주 너의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하라 하면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고난 받은 너희를 이끌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기로 작정하였다하고 이제 광야 사흘 길을 걸어가서 주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니 허락하여 달라고 하여라. 그리고 너희가 애굽을 떠날 때 빈손으로 떠나지 않게 하겠다. 하여라. 

그런데 모세는 그래도 저들이 저를 믿지 않고 저의 말을 듣지 않고 주님께서는 너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모세가 끝까지 머뭇거리고 불순종하자 지팡이를 던지라고 말합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고 뱀 꼬리를 잡자 다시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의 손을 품에 넣어 보아라. 다시 꺼내보니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되었습니다.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니 그의 손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이러한 이적을 믿지 못한다면 나일 강 물을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이렇게 말했는데도 모세는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합니다. 4:10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주께서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회피하자 하나님께서 역정을 내십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그런데도 모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4: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노하여 이르시기를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하는 것을 내가 안다.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 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모세가 언제부터 나약하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애굽의 공주의 아들로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는 자신만만했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궁중에서 화려하게 생활하였습니다. 

사도행전7장22절에 보면, “모세가 애굽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애굽의 왕자로 부족한 것이 없고 말과 행사가 능한 모세가 광야 40년간의 연단과 고통을 통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더구나 자신은 왕자가 아닌 평범한 목부로서 장인 이드로의 양떼나 치면서 하루하루를 처가에 의지해 살아가는 힘없는 80세의 노인으로서 갑자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을 애굽의 바로의 압제에서 구원하는데 자신이 선택 받았다고 하는 것이 사명감보다 두려움이 더욱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나약한 모세를 호렙산 가시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 모세가 여느 때처럼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칠 때 하나님의 산에서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보통은 광야에서 가시떨기나무들이 광야의 뜨거운 바람과 태양빛에 의해서 서로 부딪쳐서 불꽃을 피우다가 사라지는 광경은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호렙산에서 불붙은 떨기나무 광경은 계속해서 타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가까이 다가가 보았습니다. 그것은 분명 가시 떨기나무가 분명했지만 가시 떨기나무에 불붙은 불꽃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불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라지지 않은 불꽃’에 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이 가시 떨기나무는 무엇을 가리키며, 이 불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이다. 

우리는 출애굽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그리고 3장에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 작고 마른 떨기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을 히브리인들이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는 ‘강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온 사람들로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도는 유목민들입니다. 지금은 애굽 땅에서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비참한 민족입니다. 그들은 강대국의 횡포에 삽시간에 사라져버릴 정말 가시떨기와도 같은 연약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은 고통 받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시 떨기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아무도 눈여겨 주지 않은 볼품없고 관심도 없는 가시 떨기나무와 같은 이스라엘 나라이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에서 고통받고 있는 네 민족 이스라엘의 고통을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마치 뜨거운 불속에서 타고 있는 가시 떨기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백성의 고통의 소리를 다 듣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바로의 폭정에서 고통 받고 있는 네 민족 이스라엘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3장7절에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9절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두 번 째 의미는 이 가시 떨기나무는 ‘모세’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 자신이 여기 타고 있는 가시떨기나무와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가시 떨기나무는 분명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카시아 나무입니다.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고 희망 없이 살아가는 그런 모세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호렙산 가시 떨기나무에 불붙은 나무는 계속해서 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불’이 붙었기 때문입니다. 이 가시떨기나무에 붙은 불은 예사로운 불이 아니고 하나님의 불입니다. 가시떨기 나무 같은 보잘 것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불이 붙으면 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처럼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레위기10장1-2 절에 보면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이 명령하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다가 하나님의 불이 나와 그들 삼켰다고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왕상18장에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 사 백오십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모으고 누가 참신이냐, 하고 대결할 때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신이라고 시합을 하게 되는데 바알을 섬기는 자들은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를 기도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자 엘리야가 정오에 이르러 이렇게 조소를 보냅니다. 야. 너희가 믿는 바알 신이 묵상하고 있는 거냐,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느냐, 혹은 잠깐 자고 있느냐고 말하자 그들이 큰 소리로 자신을 칼로 자해하기를 시작하고 저녁까지 미친 듯이 떠들어 댔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백성들을 가까이 오도록 명령합니다. 그리고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쌓도록 합니다. 

그리고 야곱의 12아들들의 지파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12개를 취하고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위에 놓고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물이 제단에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였더니 하늘에서 여호아의 불이 내려와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핧은지라.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서 다 태운 것입니다. 

이 불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에게 내려 온 것입니다. 이 불은 성령의 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불을 붙이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24:32절에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이 불을 받으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이 불이 떨어지면 우리의 죄악을 다 태우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불이 붙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주님의 일에 열심을 갖게 됩니다. 이 불을 받으면 뜨겁게 기도하게 됩니다. 이 불은 전도의 불입니다. 사랑의 불입니다. 이 불을 받으면 찬양이 뜨겁습니다. 이 불을 받으면 주님을 뜨겁게 사랑합니다. 교회를 사랑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도 이 불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광야에서의 모세는 이 하나님의 불을 기다리던 시기였습니다. 

 눅12:49절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나니 이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떨기나무 같은 보잘 것 없는 인생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위대한 일생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불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마음이 뜨거워져야 하겠습니다. 이 하나님의 불을 받아 이 시대에 모세처럼, 엘리야처럼 사명 감당하고 쓰임 받은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6년 3월6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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