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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기나무 출애굽기3:1-10

gkffpffndi 2016. 2. 26. 17:34
떨기나무 출애굽기3:1-10
 
하나님이 선택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생애는 3기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 제1기는 애굽의 왕자로 40년, 제2기는 애굽에서 광야로 쫓겨나서 목자로서의 40년, 그리고 제3기는 마지막 80세에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유다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곳까지 40년, 도합120년의 삶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갔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모세는 죽음 가운데서 구원받아 애굽의 왕자로서 생활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히브리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자기 민족의 고난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시작하였고 결국, 그는 애굽의 군사를 죽임으로서 광야로 좇겨 나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두 아들을 낳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목자로서 생활하게 되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광야로 도망 나온 모세가 40년 동안 목동생활을 하면서 양을 치던 평범한 목부로서 생활하고 있었던 때이다. 이미 애굽의 왕자로서의 화려하게 궁중생활을 하던 모세는 아닌 것이다. 그저 광야에서 양떼를 몰고 다니면서 왕궁이 아닌 초라한 천막생활로 짐승들의 똥, 오물을 옷에 묻치며 생활하던 평범한 목부인 것이다. 애굽에서 나온 지40년의 세월이 애굽의 왕자로서의 모세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누르스름한 염소털로 만든 겉옷을 입고 광야의 모래바람을 맞으면서 작열하는 태양 빛을 따라 그의 장인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면서 광야 서쪽으로 가다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의 나이 여든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모세의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2-4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느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 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모세가 80세의 나이로 양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것은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신기하게도 떨기나무가 타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나무는 불이 붙으면 결국 타서 재가 되는 것이 자연의 현상입니다. 모세는 이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이 떨기나무는 광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나무입니다. 아니 나무라가 보다는 넝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떨기나무는 볼품이 없습니다. 목재로나 관상수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보잘 것 없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이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서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자가 보였습니다. 

 다니엘3장에 보면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두라’평지에 높이가 27미터, 넓이가2.7미터가 되는 황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모두가 그 앞에 절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느브갓네살이 만든 황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갈대아 사람들이 유대사람들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절하지 않은 것을 고발했습니다. 왕이시여, 당신의 신상 앞에 절하지 않은 자는 누구든지 뜨거운 풀무 불에 집어 던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절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냐, 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입니다. 그들을 데려 오너라. 왕 앞에 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말합니다. 지금이라도 내가 만든 신상에 절하면 생명을 살려 주겠다. 하지만, 세 사람의 대답은 확고했습니다. 왕이시여,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풀무불 속에 던져 진다하여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불타는 풀무불속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만약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시지 않아도 우리는 결코 왕이 세운 황금 신상에 절하지 않겠습니다. 화가 잔뜩 난 왕은 풀무불을 평소보다 7배나 뜨겁게 하도록 하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옷을 입은 채로 묶어서 불속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라는 사건이 왕 앞에 펼쳐 진 것입니다. 분명히 세 사람을 집어 던졌는데. 네 사람이 풀무불속에서 풀려진 채로 왔다 같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 번 째 사람은 ‘신의 아들’과 같다고 말합니다. 왕이 불타는 풀무 입구 가까이 가서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이리로 나오너라” 그들이 풀무불 가운데서 나왔는데 머리털이 그을리지도 아니하였고 옷도 타지 아니하였습니다. 구역성경에 ‘하나님의 사자’라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란 단순히 ‘천사’만을 가르키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본문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서 불꽃가운데서 나타나셨는데 바로 이 땅에 오시기 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고난과 고통과 질병 가운데 있을 때 바로 거기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폭풍 가운데 있을 때, 비바람이 무섭게 몰아칠 때 거기 주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모세를 호렙산에서 부르신 이유도 애굽에서 노예생활로 고통 가운데 있는 당신의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출2:23-25에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고통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들으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모세라고 하는 지도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때가 차서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모세가 이 이상한 광경을 보려고 떨기나무 가까이 다가갔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출3:4절에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새 힘을 얻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두려움과 함께 경외감을 가지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다메섹에 예수 믿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제사장 공문을 가지고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사람들을 잡으려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비추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행9:4절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이 주님의 음성을 듣던 사울은 복음을 핍박하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 원망과 불평의 소리, 욕하고 분쟁하는 소리에서 벗어나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복된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새 희망을 갖게 됩니다. 용기를 얻습니다. 위로와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를 좌절과 절망에서 일어서게 합니다. 세상의 소리는 우리에게 부정적이고 낙담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주의 음성은 우리의 상처 난 심령을 치료하고 회복시켜줍니다.

 열왕기상19:11-12절에 보면 이세벨의 칼날을 피해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육체적으로 매우 피곤하고 영적으로 곤고한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산에 서 있으라 하여 서 있었는데 그 때 하나님이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지나는데 거기에도 안 계시고 바람이후에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고, 또 지진 후에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 가운데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고 있느냐, 예, 이세벨에 의해서 주의 종과 선지자가 다 죽고 나만 남았는데 저도 지금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습니다. 나약한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지금 곧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도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아벨마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가가 되게 하라. 의기소침한 엘리야, 낙심한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가까이 갔을 때 또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 5절에 “모세야,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는 의미는 두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신’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더러운 것을 밟고 다니는 물건입니다. 모세는 이 신을 신고 광야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을 것입니다. 양무리와 갖은 오물을 밟고 다녔기에 깨끗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자는 성결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19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시내 산에 올라 갈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내가 나타 날 것인데 내가 너를 만나는 동안에 백성에게 가서 이르기를 오늘과 내일 성결케 하고 그들의 옷을 빨게 하고 삼일을 기다리라. 삼일에 나 여호와가 시내 산에 강림할 것이다. 그리고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라. 백성들이 자신들을 성결케 하고 옷을 빨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시내 산에 불 가운데서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자는 먼저 성결해야 합니다. 

두 번 째는 ‘신’을 벗는 다고 하는 것은 종의 모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종은 자신의 권리가 없습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주인만 신을 신었지. 종은 신을 신지 않았습니다. 간혹 멀리 가는 경우에는 신을 신었습니다만, 평소에는 종은 신을 신을 수가 없었습니다. 종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인을 위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천한 목동으로 낮은 자로 살았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기에는 버릴 것이 많았던 것이다.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의 바로에게 보내겠다고 하자 다섯 번 씩이나 거절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할 백성의 지도자로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모세의 신을 벗겨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네가 신발을 신고 네 자신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 부터는 당신의 종으로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을 벗는 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주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라고 하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출애굽 후 광야생활 40년 동안 출애굽1세대는 다 죽어다. 요단강을 건넌 후 할례산에 이르러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에게 부싯돌로 할례를 행하게 하여 정결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 진입 전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게 하십니다. 

여호수아 5장 15절에 “여호와의 군대장관이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고 했습니다. 

 성도여러분! 신앙의 시작은 신을 벗는 것입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종의 자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종입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자신을 주인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의 인생은 실패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 종이 되라고 말씀 하십니다. 지금까지는 네가 인생의 주인으로 살았지만 이제 네 인생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떨기나무 가운데서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알고 그 분 앞에서 겸손히 더러운 신발을 벗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주인으로 알고 ‘종’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모세처럼 크게 하시고 위대하게 하실 것입니다.2016년 2월28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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