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2:10 ‘우리를 부르신 목적’, 사랑의 실천(2)
지금까지 저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운데 8복의 7번 째 복인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는 말씀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위해서 4번 째 시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간절한 부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 하고 자신의 목숨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사랑의 실천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사도는 요한일서4장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 난 바 되었으니” 이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10:25-37의 선한 사마리아의 비유에서 이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율법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더냐? 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고 그러냐, 네 대답이 옳도다. 그렇다면,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셨습니다. 이 때 이 사람이 예수님께 옳게 보이려고 그러면 네 이웃이 누구이니이까?
예수님께서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이 사람이 너무 맞아 가지고 거반 죽게 되었는데 그냥 길거리에 두고 떠났다. 그런데 조금 있다고 제사장이 지나갔다. 이 사람은 아마도 제사장이니 시간 맞춰서 제사 드리러 가야 했기에 그냥 지나쳤다. 두 번 째 사람은 레위인이었다. 이 사람도 예배 시간에 맞춰서 성전에서 성가대로 봉사하던지 사명이 있기에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하던 중에 그리고 지나가게 된 것입니다. 거반 죽은 상태에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그를 불쌍히 여겨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붓고 주막으로 옮겨서 그를 잘 돌보아 주도록 부탁하고 그 이틑날에 비용을 계산해서 주고 자신이 더 들면 후에 와서 갚겠다고 하고 떠난다. 예수님은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만나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율법사에게 물었습니다. 율법사가 대답하기를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지 주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사에게 교훈하시고자 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삶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말로써 다합니다. 말로써 착한 일도 하고 말로써 화려하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입에 달콤한 말들을 산더미처럼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막상 삶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신앙이란 바리새인처럼 많은 지식을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가슴으로 뜨거워져야 하고 그리고 그 뜨거움이 손과 발로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즉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자란 사랑의 실천 즉, 손과 발을 옮기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활에서 사랑의 실천이 실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한 사마리아 비유에서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이 시대에 강도만나서 낙심가운데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 않아 있는 네 주변의 이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cts 창사 20주년 기념으로 특별방송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해외 로케로 해서 탈렌트 정애리 씨 등 여러 사람들이 준비해서 11월 23일과30일에 두 번에 걸쳐서 625전쟁 때 피난 나와서 부산 피난민 촌에서 빈민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그리스도의 참 사람을 실천한 천재의사요. 바보의사 장기려 박사에 대한 영화입니다. 이 분에 대하여 고 장기려 박사는 예수님처럼 살다 가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장기려는 일제시대 일본과 조선을 통틀어 간 설상절제수술을 처음으로 성공해내는가 하면, 1959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간 대량절제수술에 성공했을 만큼 실력 있는 의사였다. 또한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효시인 청십자 의료보합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존경받는 이유는 이러한 의사로서의 성공적 업적 때문만은 아니다. 송도고보 시절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서원기를 한 한 이후 순간순간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진료하는 데 열과 성을 다했으며, 성공을 보장받는 자리보다는 낮은 곳에서 병든 사람과 함께 하기를 자처했다. 그는 자신이 뇌경색으로 힘이 다하는 그 순간 까지 예수사랑으로 환자를 돌 본 작은 예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아픈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아프면 더 힘들다. 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다.” 1995년 12월, 86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부산 복음병원 원장으로, 복음 간호대학 학장으로 20년을 근무했지만 그의 옥탑 방에는 낡은 의사가운과 부인과 함께 찍은 액자 속 사진뿐이었다. 참으로 이 시대에 작은 예수로 살다간 성자입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말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강도만나 고통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이 오해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서로 상반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치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세상에 대한 사랑이 커지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작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은 세속성이나 타락함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난 이후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아더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은 악이라고 조금도 없는 선한 세상이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고 조물주인신 하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전히 피조물을 사랑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을 ‘헬 조선’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대한민국이 ‘지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이 나온 배경은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요즈음 청년 실업 율이 정부 발표와는 다르게 체감 실업 율이 10%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힘들게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정규직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옛날 부모님 세대는 성실하게 일해서 월급 받은 사람들이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즈음 월급 받아가지고는 천정부지로 오른 집을 마련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포세대니 오포세대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삼포란 결혼 출산 연애를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너무 자신의 기준치를 높은 곳에 두다 보니 인생을 쉽게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비하면 요즈음 젊은이들은 아주 행복한 것입니다. 마트에는 온갖 과일과 생활용품들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청주시내를 잠시만 돌아다녀도 외국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요즈음 공장 뿐 만 아니라,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사람들, 음식점에서 서빙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우리의 부모 형제들이 이억 만리 아랍나라에서 건설노동자로 독일에서 광부나 간호사로 가족과 생이별하면서 달러를 벌어들여야 했던 가난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요즈음 젊은이들은 행복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들이 많이 있고 전쟁과 질병 속에서 고통당하는 우리의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종교지도자들을 비판하셨던 것 중의 하나는 그들이 성공에 대해 잘못된 정의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에서 가장 중요한 요직에 앉아 있는 것이 성공하는 것이라는 믿음, 존경받은 선생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은 것을 좋아하느니라.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종교지도자로서 높여 주기를 바랐고 훌륭한 사람이고, 성공한 종교지도자로 알아주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평판을 좋게 하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에게 맞쳐져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관심가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관심이 모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외형적이 것이 아닌 내 안에 내면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22장37-40절에서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3장34-35절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네 제자인 줄 알리라”
베스트 셀러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 까의 저자인 짐 콜린스는 기업의 몰락이 외부요소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내부의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오만함 말입니다. 성경도 잠언16:18에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겸손하고 사랑이 충만해진다면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저희 청주 지방 회에서 연합성회로 너무나 잘 알려진 밥퍼 목사로 이 시대에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시는 최일도 목사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tv이나 지면을 통해서 청량리에서 오갈 데 없는 빈자들을 모아가지고 사역을 하는 정도로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집회를 통해서 가까이서 그 분과 식사도 하고 대화를 하면서 느낀 것은 참으로 이 시대의 작은 예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된 목자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1988년에 밥퍼 사역을 청량리에서 시작한 배경에서부터 오늘날 세계 10여 개국에 가난한 나라들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등 그곳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매일 한 끼에 약 1000명정도의 식사를 제공하고 전 세계적으로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이 밥퍼 다일 공동체를 통해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600만 그룻의 식사를 제공했는데 거기서 봉사하시는 분들이 다 자원봉사자들인데, 이 다일 공동체를 통해서 필리핀의 언챙이 어린이 수많은 아이들이 언챙이 수술을 무료로 수술 받아 정상적인 아이가 되어 돌아갔고 그로 인해 필리핀에 반한 감정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많이 눅으러 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문이 필리핀 외교부에 알려져서 정부에 들어가 외교부 직원들은 다 알려져서 전 세계에 나가있는 외교부 직원이 1500명 정도인데 그 중 800여명 정도가 밥퍼 다일 공동체에 와서 봉사활동을 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밥퍼 사역을 하면서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깡패가 와서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 되기도 하고, 노숙자들을 교회에다 숙소로 재웠더니 하루 먼저 온 사람과 하루 늦게 온 사람들이 패를 지어 교회에서 유혈이 낭자하도록 싸움을 하고 어떤 이는 교회 계단에 똥을 싸놓고 어떤 사람은 토해 놓고 또 다른 사람은 병을 깨어 서로 찍어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누워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본인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자신의 아내가 이혼장을 써 놓고 이혼하자고 하고 어머니는 밥퍼 사역 그만 두지 않으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나가버리시고 아들은 아버지가 진짜 목사가 맞냐고, 아이들이 너희 아버지는 니어카만 끌고 다니면서 거지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거지 대장 아니냐 면서 말할 때 손과 이빨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어디 살아계시냐고 항변하면서 돈 한 푼 없이 청량리에서 무임승차를 했는데 차장이 차료가 없다고 하니 멀쩡하게 생긴 놈이 무임승차 했다고 열차 칸칸이 돌아다니면서 면박을 주더니 네 번 째 정거장에서 떨어뜨리더라는 것입니다. 그 길로 사흘을 먹지 못한 채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울다가 의식이 들어 보니 밥냄새가 나서 가보니 웬 할아버지가 밥을 짓고 있어서 밥을 얻어 먹으려고 하니 공짜 밥은 없다고 하면서 매몰차게 내 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청량리에 가면 밥퍼 주는 최일도 목사가 있는데 거기에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할아버지의 음성을 하나님의 목소리로 알고 청량리에 가는 기차를 타려 했더니 돈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장한테 돈이 없다 했더니 이 분이 최일도 목사님을 알아보시고 tv에서 두 번 나왔을 뗀데 알아보더니 김밥하고 사이다를 주더랍니다. 그 김밥을 먹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오다 보니 청량리 까지 왔는데, 거기에 가니 자신을 기다리는 거지 노숙자들이 목사님을 기다리면서 환영하더랍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이 안 계셔서 사흘 동안 굶었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그 분 들 할아버지 한 사람 한 사람을 뜨겁게 포옹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뜨겁게 한 사람, 한 사람을 포옹해주고 다시 밥퍼 사역을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러 1004명의 후원자들을 통해서 무료천사병원을 세워서 집 없고 돈 없고 자식 없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안식처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똥이 나오지 않는 할아버지의 똥을 꺼내 주면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이 다시 빈자사역을 시작하자 어머니도 협조해주고 이혼하자고 했던 아내도 다시 돌아와서 오늘날 전 세계 10여 나라에 지금까지 60개국을 돌아다니면서 이 밥퍼 사역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이 시대의 성자요. 성 프란시스나 중국에 선교하러 가서 가난한 중국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미국에 호소해서 중국의 빈민사역을 했던 밥 피얼스 같은 목사님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신 목사님이십니다. 이번 집회에서 여러 주제로 말씀하셨는데 먼저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말씀,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고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말보다도 사랑의 실천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정작 바꿔져야 할 사람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뀌니까 세상이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원망하고 증오하고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마디 인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는 “당신의 얼굴을 보니 살맛납니다. 느낌이 좋습니다. 하는 일마다 잘 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가장 훌륭한 작곡가 중의 하나인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신실한 기독교인었습니다. 그의 인생의 모토는 “모든 재능은 주님으로부터,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이것은 그의 인생의 모토였습니다. 그는 매곡의 시작 부분마다 바흐는 jesu Juda. 즉 예수님이 나를 도우신다고 적었습니다. 모든 악보의 마지막에는 자필로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줄여서 S.D.G.라고 서명했습니다. 이러한 간단한 펴기를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재능, 혁신 근면함이 자기의 것이 아님을 선언한 것입니다.
벧전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낯선 사람이든 이웃 사람이든 불신자이든 외국인이든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가서야 하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선한 일에 앞장서 ‘사랑을 실천’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5년 11월1일 청주 벧엘 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 설교
'.........은혜의 말씀 > ...새믿음의 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의 하나님아버지께 감사하라. 시136:1-26 (0) | 2015.11.13 |
---|---|
눅14:15-24 “내 집을 채우라” (0) | 2015.11.07 |
베드로전서 1:24-25 낙엽 떨어지는 가을에 (0) | 2015.10.23 |
하나님과 화목하려면(4), 사랑의 실천, 봉사의 삶을 살아야 마5:9 (0) | 2015.10.10 |
하나님과 화목하려면(3), 하나님과 교제가 있어야 마5:9 (0) | 2015.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