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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화목하려면(2) 마5:9

gkffpffndi 2015. 9. 8. 18:16

하나님과 화목하려면(2) 5:9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8복 가운데 7번 째 복인 하나님과의 화평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과의 화목하기 위해서 첫 번 째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모세가 호렙산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자신을 성결케 하고 백성들을 성결케 하도록 명령하신 대로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자신을 먼저 성결케 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구약성경에는 이렇게 모세와 같이 특별한 사람에게 호렙산으로 올라오라든지 그 이후에는 성막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만나셨는데 오늘날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교회에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기에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마치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호렙산에 자신과 백성들을 성결케 하였듯이 모세가 옷을 빨고 자신을 성결케 한 것처럼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교회에 올라와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구약의 말라기 시대의 사람들을 예를 들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제사드릴 때 좋은 것은 자신들이 다 빼놓고 저는 것, 병든 것만을 드린다고 진노하시면서 너희들은 내가 주인이라고 하면서 나를 두려워 한 적이 있느냐, 나를 아버지라고 하면서 공경하는 마음이 있느냐, 더러운 떡을 드렸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매우 진노하셨습니다.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아라. 받겠느냐, 그리고 나에게 와서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는데 내가 그 기도를 받겠느냐 너희가 드린 것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드린 것 내가 받지도 아니하겠다고 진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진노를 받은 것은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반드시 예물을 정성껏 드려야 합니다. 시편96,8절에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 지어다

 

제사에 소나 양이나 염소 등 제물이 반드시 필요하듯이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정성껏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희생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려면 이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준비된 예물을 드림으로써 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인간은 위로부터 오는 각양 좋은 은사와 선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과의 화목하려면 두 번 째로 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화목을 깨는 것입니다. 보통 신학적으로 라고 하는 것을 정의 하면 하마르티아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화살이 목표를 적중시키지 못하고 빗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즉 화살이 날아가는 것은 과녁을 명중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어떤 사물이든지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각자의 사명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녔을 때. 그 때는 국민 학교라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국민교육헌장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 첫머리가 이렇게 시작합니다.“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그 당시 나라가 너무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박정희 대통령께서 국민들에게 이러한 국가중흥의 사명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이런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어서 국민들을 정신적으로 무장하고 사명감과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서 하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각자의 존재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존재의 사명에 어긋나게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장로교 교리문답 가운데 첫 번 째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일체의 삶이 ,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최초의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이 간교한 뱀의 유혹을 받아서 사탄에게 넘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의 모든 과실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좋지만,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금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뱀의 말을 더 신뢰하므로 하나님이 금하신 금단의 열매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류는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아담의 후손인 인류가 죄에 종노릇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오늘날 까지 많은 질병 속에서 고통을 받고 사망의 저주아래 놓인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결과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3장에서의불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순종이 아담에게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불순종은 아담의 후손에게 계속 유전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인 가인의 후예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를 양산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하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이인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간에 불편하면 그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은 것입니다. 서로가 마음이 맞고 통하는 것이 있으면 오래 머물고 있고 자고도 싶지 않습니까? 하지만 형제간이라도 마음이 안 맞으면 오래 있고 싶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라고 하는 것이 머물러 있으면 거룩하신 하나님이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오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는 모든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죄가 들어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또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도 깨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고 사람과도 원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내가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었느냐? , 하나님이 만드신 하와가 따먹으라고 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만드신이라고 하는 조건을 붙임으로서 자신의 잘못이 아닌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전가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와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하와야 너는 왜? 그랬느냐, 하와 역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뱀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을 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결국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파괴시킬 뿐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도 파괴되어 땅이 저주를 받아서 가시와 엉겅퀴만을 내고 여자는 해산하는 고통을 당하고 인간에는 사망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만약 이 때 인간이 사탄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라왔다면 인간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영생불멸의 세계 속에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를 지음으로써 낙원을 상실하게 되었고 고통의 세계 속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죄가 모든 좋은 것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5,25“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죄는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주고 관계를 파괴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과 화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종교개혁자들인 칼빈, 루터, 웨슬레 모두가 죄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고 죄의 문제를 안고 그 영혼이 씨름하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인간의 영혼은 자유를 얻습니다. 마치 창공을 힘차게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올라가게 됩니다.

 

이런 찬송가가 있지 않습니까? 268장에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면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니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369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538죄 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네 맘속에 주 영접하며

 

위대한 사도바울도 이 죄에 문제로 인해서 자신의 영혼이 괴로워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7장에서 죄로 인해 고통과 번민에 빠진 자신의 영혼의 괴롬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과 화평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나 갈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자신을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 안에 거하는 라고 말합니다. 717-21“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니라.”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 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그러면서 자신이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렇게 바울이에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다가 8장에 와서 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합니다. 81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아니하고 더 이상 죄에 종노릇 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죄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을은 로마서 8장에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하면서 절대로 육신에 속한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에 속한 자란 죄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사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자신의 정욕을 위해서 살아가면 안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우리의 공로나 노력이나 선행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써 우리를 구원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엡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8세기 미국의 대 각성 운동을 주도했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예일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미국의 코네티컷 강 동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다섯 번 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미 31살에 유명한 설교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통해서 변화되고 충만한 은혜를 체험하였다. 에드워즈 목사 역시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그도 역시 인간이었다. 그도 사람이었고 죄인이었습니다. 그도 자신 안에 내재하는 죄의 문제로 고뇌했고 싸웠으며 때로는 지기도 하였다. 에드워즈가 싸운 문제는 자기만족, 교만, 질투 등 자신 안에 악함이 뼈속 깊숙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도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자녀를 화나게 만들었으며 교인들에게 매몰찬 언행을 보여 주었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 죄에 대하여 물으신다면 한 사람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어둠과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영적으로 매우 고양되었던 시절에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이 마을에 살게 된 이후, 나는 내 자신의 죄와 악에 대하여 심각하게 깨닫는 일이 많았다. 매우 큰 소리로 오랜 시간 울었다. 내 마음의 더러움과 완고함을 크게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나를 취조하신다면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람 가운데 나를 가장 악한 사람이라고 하실 것이다그가 이렇게 회심한 이후에 그의 사역에 큰 부흥이 있었는데 173412월 하나님의 영이 비상하게 임하였다. 그리고 아주 갑자기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회심을 체험했다. 그곳에서 한 특별한 간증이 있었는데 이 여자는 대단히 품행이 나쁜 여자 였다. 그런데 그녀에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이 임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과 영광이 임하여 그녀가 새로운 마음, 참으로 깨어지고 거룩해진 새 마음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회심된 무리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몰려왔다. 무시무시한 함정에서 빠져나와 그들은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믿는 다고 하는 것은 죄와 불신앙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와 신자가 하나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회심한 사람들은 죄에서 벗어나 더욱 더 하나님을 찬양하고 진리를 분별하고 그들의 마음이 더 절실하게 하나님의 의를 간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때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이제는 자신의 육신의 욕망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가 무엇입니까? 인간의 본분과 사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일체의 모든 일에 인간사에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것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 부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탐내어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 일생을 회개의 눈물을 지내야만 했으며 그 죄 값으로 자기의 자식이 자기의 왕의 자리를 넘보어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간은 가나안 땅 첫 번 째 성의 모든 가축과 금과 은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지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다가 가족이 몰살당하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 째 사울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자신이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드리는 교만을 떨다가 하나님께로부터 왕의 자리로부터 끌어내림을 당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삿비라는 하나님의 종인 베드로에게 땅값 얼마를 감추고 거짓말 하다가 그의 생명이 떠나갔습니다.

 

바울은 갈1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울은 롬14:7절에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고전10: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끼? 그렇다면를 멀리하시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015년 9월 13일 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