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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0장 1-3 일어나 빛을 발하라.

gkffpffndi 2011. 12. 31. 11:25

 

이사야 60장 1-3 일어나 빛을 발하라.

 

2012년 임진년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하시는 사업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누구든 새해를 시작 하면서 희망을 갖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어렵고 힘든 한 해를 지낸 사람일수록 새로운 희망과 꿈을 그리게 됩니다.

 

사실 지난 한 해 동안에는 우리나라는 서민들의 삶이 힘들고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서민들의 식탁은 고물가로 부실해졌으며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아서 학자금 대출로 인한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나머지, 다단계의 유혹에 빠져서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전 세계적인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김정일 사후 3대 세습으로 인해서 북한 정권의 붕괴내지는 권력암투로 인해서 한반도에 우리가 원하지 않는 변화가 오지 않을 까 염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일어나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사이에 놓여 있는 한반도가 마치 지금부터 2700년 전 이사야 시대에 이스라엘과 유다나라가 처해 있던 상황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북쪽의 강대국인 앗수르와 남쪽의 애굽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서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다가 결국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한 이스라엘과 유다의 운명이 오늘 강대국 사이에 처해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과 너무나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대국 앗 수르 와 바벨론에 의해서 짓밟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참담함은 그들을 좌절과 절망 속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렇게 비참함 속에서 희망을 잃은 채 낙심과 좌절과 절망 속에 엎드려 있는 그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러한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 ‘일어나라’ 말씀하십니다.

 

이사야란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BC 8C 경입니다. 이 시기는 팔레스틴을 중심으로 열강들이 패권을 다투었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북쪽은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은 유다로 나라가 분열되었던 시기였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그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의 영향아래 있었고 남 왕국 유다는 애굽을 의지 하였습니다. 앗수르의 힘의 영향력이 남쪽 유다에 까지 이르자 남 왕국 유다는 애굽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애굽은 이미 힘을 잃어 갈 당시였기 때문에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습니다. 북쪽의 앗수르는 파죽지세로 밀고와 북쪽 이스라엘을 BC 722년에 멸망시키고 이제 남쪽으로 내려와서 히스기야 왕 시대에는 BC 701년 앗수르의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와서 유다의 견고한 성읍을 점령하고 난 이후 예루살렘을 위협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18만 5천명을 죽이고 앗수르 산헤립은 자신의 아들의 반란으로 돌아가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후에 앗수르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바벨론 느부갓네살은 BC 586 년에 유다를 침공하여 멸망시켜 유다 백성들을 굴비 끼우듯이 쇠고랑을 채워 왕족들과 귀족들과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강가에서 자신의 조국이 처한 현실을 비참함 속에서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었습니다. 그러기를 70년의 세월입니다. 우리나라는 36년 동안 일본에 종살이 했지만 유다나라는 70년의 세월이니 거기에서 태어난 사람은 벌써 70 노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조국에 대해서 잊어버린 사람들도 숱하게 많았을 것이고 자신들의 생활양식이나 언어도 바벨론의 문화가 더 익숙해 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조국인 유다 나라에 돌아갈 생각은 이제 포기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유다가 어쩌다가 이렇게 이방나라인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당했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죄는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가로 채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강대국 간의 패권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이스라엘은 잠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경제적인 풍요를 가난한 이웃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서 사치하고 낭비했습니다. 그 당시 유다 부녀들은 오늘날 명품을 좋아 하는 한국 사람들처럼 이사야 3장 16-23절에 보면 각종 사치품과 장신구로 자신을 가꾸고 꾸몄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아모스 6장 4-6절에 이스라엘 부녀자들이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또한 그 당시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듣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인데도 그들은 무시했습니다. 아모스 2장 4절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갔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 이사야 1장 4절에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그래서 이사야 시대에 와서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형식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사야 1장 12 절에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정성을 다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사회에 정의가 없었습니다. 1장 21-23에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23절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뿐만 아니라, 도덕과 인륜이 무너진 사회였습니다. 3장 5절에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요즈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지도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여자선생님들이 아이들 무서워서 생활지도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도 중학교 여학생이 선생님하고 머리채를 잡고 학교에서 싸웠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어른들의 충고를 듣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라도 잘못했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노인을 공경하지 않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것 뿐 입니까? 자라나는 학생들이 대통령을 쥐박 이라고 놀려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사야 3장 8절에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결국은 유다나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이러한 악이 가득 찰 때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라 할지라도 죄에 대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방나라인 앗수르와 바벨론을 당신의 채찍을 삼으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무려 70년 동안 노예 살이 하였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삶이었겠습니까? 소망이 다 꺾였습니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좌절과 절망이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고 하나님의 심판은 가혹해서 그들에게 깊은 좌절과 절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좌절과 절망 속에 있지 말고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 있는데 그것은 절망’ 이라고 했습니다. 좌절과 절망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낙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슬픔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실패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고통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가난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질병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과거의 아픈 상처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패배주의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위기에서 일어나야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를 절망케 하는 것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 성도는 일어나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 어두운 세상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와 분쟁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음란과 호색과 연락과 쾌락을 즐기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죄악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됩니다. 게으르고 나태한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며 병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아니한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향하여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2. 빛을 발하라 하십니다.

 

본문 2-3절에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야훼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 직전의 상황은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어두움이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율례가 무시되고 정의가 실종되고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진 시대요, 노인과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사회였습니다. 노아시대처럼 땅이 부패하고 폭력이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무질서가 질서를 대치하던 시대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어두움의 세력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한국교회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덧씌워져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언론과 방송으로부터 뭇매를 맞았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대해서 선한일 하는 것들은 잘 보도 하지 않고 부정적인 사건만을 보도하니 교회에 선한 이미지가 심각한 타격을 입어, 마치 교회가 악한 단체인 것처럼 덧 씌워져 복음전파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기 때문에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교회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이나 집단이나 마찬가지 인 것입니다. 얼마 전 의사들의 리베이트에 대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제약업자들로부터 부정한 돈을 받았음에도 그들은 관례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자기변명 하기에 급급하였습니다만, 그로인해 약값이 높게 책정됨으로써 결국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교회가 잘못하는 일 까지 정당화 하자는 말이 아니라, 교회의 부정적인 면만을 유독 부각시켜 복음전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반기독교 세력이나 이단들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는 지난 한 해 동안 너무 위축되어 있습니다. 어깨가 축 늘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탄의 작전에 말려드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귀담아 들어야 할 소리가 있습니다. 비판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런 비판 세력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대항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선한 행실의 빛을 비쳐야 하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전도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소금과 빛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종교생활과 세상에서의 삶이 이원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너희는 교회의 빛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어두움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선한 행실의 빛을 비쳐야 합니다.

 

요일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엡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이 세상은 갈수록 영적 부분에서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모든 분야에서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도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질만능주의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경제라고 하는 문제에 빠져서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나 도덕은 실종되고 쓰레기통에 버린 지 오랜 것 같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윤리, 스승과 제자간의 도리, 친구간의 우정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오직 치열한 경쟁과 승자독식의 패권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대구에서 일어난 모 중학교 학생의 폭력으로 인한 자살 사건은 우리 사회의 큰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것은 친구가 아닙니다. 완전히 범죄 집단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 인간의 기본적인 예의나 도덕, 학문을 배우는 학교에서 자신의 친구에게 물고문을 시키고 친구 집에 가서 폭행을 하고 학습시간에 자신을 대신해서 게임을 하도록 하고, 하지 않으면 개처럼 끌고 다니면서 과자를 주어먹게 하고 이런 일들을 시키면서 양심에 가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부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학교에서는 요즈음 학생들의 인권만을 내세우니 교권이 붕괴되어 선생님의 지도를 받지 않습니다.

 

최근 서울시 의회에서 통과된 곽노현 법으로 알려진 ‘학생인권조례안’이 통과 되었습니다. 학교 안에서의 학생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으로 학생들에게 건전한 성윤리를 가르치기 보다는 성문란을 조장하는 것으로 초. 중고등학교에서 임신이나 출산 등을 허용하는 등 동성애가 제 3의 성이라 하여 학교에서 가르치고 조장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동성애 법이 통과하여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법이 통과 되지 않으리라 보장 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어두움이 온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합니다. 빛을 발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안에 계신 빛 되신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맹인이 등불을 켜들고 밤길을 나섰습니다. 자신은 비록 불빛을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자신이 들고 있는 등불 빛을 보고 부딪치지 말라는 의미에서 등불을 들고 밤길을 나섰습니다. 한참을 가는데 어떤 사람과 그만 "탁!"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맹인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눈도 없소? 나는 맹인이라 앞을 못 보지만 당신은 내가 들고 있는 이 등불도 보지 못하시오?” 그러나 부딪친 사람이 맹인이 손에 등을 들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자네가 들고 있는 등불은 이미 꺼졌다네.” 그 맹인은 등불을 들고는 있었지만, 꺼진 줄 모르고 들고 다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등불이 혹시 꺼지지 않았습니까? 아니 이미 꺼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켜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꺼진 것을 모르고사니까,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너희들이 세상의 빛이 되어라. 낙심과 좌절과 절망 속에서 움츠려 있지 말고 일어나 빛을 발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서 있는 곳에서 빛을 비추라 하십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이 어디 입니까? 직장입니까? 가정입니까? 학교입니까? 사업장입니까? 그 곳에서 빛을 비춰야 합니다.

 

에베소서 5:14에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새해에는 낙심과 좌절과 절망, 그리고 실패와 패배의식 속에 주저 않지 말고 일어납시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빛을 비추시기를 바랍니다. 입으로만 말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빛을 발하는 삶입니다. 어둠이 깊어 갈수록 빛의 사명은 막중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임진년 새해에는  내가 서있는 곳에서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실의 빛, 사명의 빛, 복음의 빛을 비추어  이 땅에 어두움을  밝히고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2012년 1월 1일 청주 벧엘성결교회 신년 주일 정영진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