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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장 8-11 서머나 교회

gkffpffndi 2011. 6. 3. 10:49

요한계시록 2장 8-11 서머나 교회

 

오늘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예수님께 칭찬받은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서머나는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이스탄불 앙카라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소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환난 과 핍박을 많이 받은 교회였습니다. 8절 말씀에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9절에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당시 서머나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환난과 핍박을 넘어 순교까지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서머나에는 로마황제를 섬기는 신전이 있어서 그곳에 가서 충성 맹세를 해야 했습니다. “가이사는 나의 주인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증명서를 받았습니다. 이 증명서가 없으면 사고파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종교적 박해와 함께 경제적 고통, 그리고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엄청난 시련을 겪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경제적인 궁핍함이 말할 수 없이 컸지만 주님은 이러한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고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질적으로 비록 고달프고 궁핍하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개 우리가 하나님을 언제 찾았나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적으로 넉넉하고 풍요롭고 모든 것이 잘 될 때는 별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환난이나 물질적인 고난이 올 때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습니까? 평안할 때 형통할 때 주님을 찾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돌이켜 보면 우리한국 교회도 60-70년대 가난했던 시절에는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하나님을 등한히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핍박과 환난속에서 그들의 신앙은 깊어지고 부요해진 것입니다.

 

반대로 소아시아의 7곱 교회 가운데 라오디게아 교회가 나옵니다. 그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계3:17)”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라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경제적인 풍요함보다 영적인 부요함을 더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많이 배웠냐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 그것 보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여러분은 주님 앞에서 어떤 인정을 받기 원하십니까?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육신적으로는 부요한데 영적으로 가난하다면 책망을 받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처럼 육신적으로는 가난해도 영적으로 부요함을 추구하는 교회, 성도라면 칭찬을 받습니다. 영적인 부요함을 추구하므로 하나님께 칭찬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서머나 교회 안에는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의 비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모임이라고 말씀합니다. 집요하게 성도들을 핍박하고 고통을 안겨주는 자들입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10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당시 서머나 기독교인들이 당한 핍박은 다섯 가지 종류로 나타났습니다.

사회 공직에서의 박탈, 직장에서 쫓겨났습니다. 재산 몰수, 감옥에 투옥되고, 마지막에는 처형되었으며 한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면 8촌까지의 일가친척까지 이런 핍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기들까지 고난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가문에서 예수를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10일동안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하루를 1년을 계산하여 10년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사단은 로마제국을 통하여 그리스도교를 이 세상 지면에서 말살시키려고 모든 수단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로마황제 디오클레시안의 말년인 서기 304년부터 콘스탄틴 황제가 즉위하는 해인 313년 사이의 10년 동안에 가장 혹독한 핍박이 있었습니다. 이 10년 동안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무리가 붙잡혀 로마 축제일에 밤을 밝히는 화형과 원형극장에서 굶주린 짐승의 먹이가 되는 교살형을 당했습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폴리갑이라는 교회 감독입니다. 바로 서머나 교회 감독이었습니다. 서기 155년 2월 23일 총독에게 끌려갔습니다. 그에게 총독이 간단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너희 책임은 아주 간단하다. 지금 이 공개된 자리에서 ‘가이사는 우리의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하라. 그리고 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가르치지 말라. 그러면 너는 평생 복되게 살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네 옆에 쌓아놓은 저 장작더미 위에서 불에 태워 화형을 당할 것이다.”

그 때 폴리갑 감독의 나이 86세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86년 동안 주님은 단 한 번도 나를 버리는 일이 없으셨습니다. 저 장작더미는 주님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주시는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화형 당해 죽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믿음의 길에는 분명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길은 평탄한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좁은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요, 고난의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영광의 길이요, 축복의 길이요, 승리의 길입니다.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0-21)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고난 받는 길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전도하지 않으면 욕먹을 일이 없습니다. 혼자 조용히 믿으면 누가 핍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핍박 받는 것이 두려워서 조용히 믿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입술로, 우리의 삶으로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복음 전하다가 핍박을 받고 능욕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5:41-42)

 

서머나 교회는 환란과 가난 가운데서도 충성한 교회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한 부분의 원어를 보면, 계속해서 믿음을 신실하게 지키되 죽음에 이르기까지 충성되게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충성의 원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하기 때문에 일하는 것입니다. 내 위치나 직분 때문에 하는 것은 온전한 충성은 아닙니다. 나는 무시를 당하고, 손해를 보고, 욕을 먹어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일이라면 죽을 각오를 하고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충성입니다.

충성이란 내가 좋을 때는 하고 나쁠 때는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불이익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라면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다 할지라고 초대 서머나 교회만큼 어렵거나 고난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다. 극한 환난과 궁핍,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충성한 서머나 교회처럼 믿음의 부요한자 되어 생명의 면류관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6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