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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7절)

gkffpffndi 2011. 3. 3. 18:54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7절)

 

토마스 왓슨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은, 하나님의 품속에서 나란히 살아가는 의좋은 세 자매다.”라고 하면서 사랑은 그 대상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데 “우리보다 높은 사람에게는 존경으로 나타나고,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친절과 우정으로 표현되고, 그러나 우리보다 못한 불행한 사람에 대해서는 긍휼로 나타난다. 고 했습니다.

 

긍휼은 영어로 “sympathy”:라고 합니다. ‘sym'은 “같이”, “함께”라는 말과 'pathy’라는 말 ‘경험’, ‘고통’이라는 말이 합쳐서 'sympathy‘라고 합니다. ‘고통을 함께 한다’, ‘고통을 함께 경험한다.’는 말입니다. 사자성어 중에 동변상린 이라는 말이 그런 뜻입니다.

자식의 아픔이 내게 느껴지는 것 바로 그것이 긍휼입니다. 상대방의 고통, 상대방의 아픔이 내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긍휼이라는 것입니다. 긍휼이야 말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은 8복 가운데 5번 째 복인 긍휼의 복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긍휼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사역 가운데 하나가 환자를 고치시는 치료의 사역입니다. 이 치료의 사역의 대 부분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긍휼의 마음에서 시작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35-36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마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실 때도,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중풍 병자를 고치실 때 또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였던 동기에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외아들을 붙들고 통곡하며 장사지내는 나인성 과부를 긍휼히 여길 때 그 아들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아십니다. 인간의 절망과 상실감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외롭고 쉽게 상처받는 존재 인지 아시고 우리를 끌어안으십니다. 긍휼의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거기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9-34에 보면 예수님께서 여리고을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따르는데 맹인 두 사람이 앉았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를 질러 이르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나, 주변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핀잔을 주어도 계속해서 소리를 높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므로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우리가 눈뜨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그 뒤에 예수님이 그들의 눈을 만지므로 곧 보게 됩니다. 그런데 눈을 뜨게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시니” 주님이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출33: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한 마태복음 26장 47절 이하에 보면 가롯 유다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와서 가롯 유다가 예수님께 배신의 입맞춤으로 왔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자신의 제자로서 3년 동안 먹고 자고 한 자가 은 삼십에 자신의 스승을 파는 배신자에게 어찌 이렇게 부드럽게 얘기 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옆에서 화가 나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자른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말하면서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기도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 아느냐, 하시면서 만일 그렇게 하면성경에 주님이 십자가에 인류의 대속을 위해 죽으신다는 이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군병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끌려가실 때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갈대를 쥐어 주면서 침 뱉고 무릎을 꿇리고 희롱을 당하실 때 그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들을 불쌍히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마지막 십자가위에서 저들이 알지 못해서 그러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든지 자신의 물리력을 동원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다면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주님의 용서와 긍휼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우리는 긍휼을 입은 자입니다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한다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18장 2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는 어떤 임금과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결산 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자가 임금앞에 나오게 됩니다. 이 사람은 주인에게 말하기를 자신의 능력 으로는갚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인은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도록 하자 그 종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해서 라도 갚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빚은 평생을 일해도 갚을 수 없는 빚임을 알고 주인은 불쌍히 여겨 그 빚을 다 탕감해 줍니다. 이 엄청난 빚을 탕감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요즈음 우리사회도 빚으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지난 3월 2일 부산에서 20대 직장 여성 명품에 중독되어 카드빚이 1억이 넘어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빚 독촉이 무섭습니다. 이자만 조금 늦게 내어도 문자 메시지로 독촉이 쉬지 않고 옵니다. 그런데 이건 한 두 푼이 아니라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돈을 탕감 받았으니 얼마나 기쁘게 겠습니까? 그러면 자신에게 조그만 빚진 것은 자신도 탕감해 주어야 하지요? 그런데 이 종은 그렇지 않했습니다. 아마 휘바람을 불면서 나갔겠지요? 그런데 나가다가 저만치 자신에게 빚진 자가 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자신에게 빌려 간돈을 갚으라고 요구합니다. 이 사람이 사정사정 합니다. 조그만 참아 달라고 요즈음 돈 쓸 일이 많아서 그런데 조금 지나면 여유가 생기니까, 그때 까지만 참아 달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야단을 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다 보았습니다. 이 사실을 그 동료가 보고 그 주인에게 다 알리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주인이 대노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같이 네 동료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 했느냐 하면서 그 빚을 다 갚도록 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임금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종은 우리를 상징하고 백 데나리온 빚진 종은 우리에게 잘못을 범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져서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죄 사함을 받았고 천국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4절 이하에 보면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고 말씀합니다.

성도들이 긍휼한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3.그러므로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레위기19장9-10절에 보면 “ 너희 땅에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라고 말씀한다.

 

신명기에 보면 “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여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

 

출애굽기 22장 21절에 보면,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과부와 고아는 사회적 약자입니다. 여자가 혼자 힘으로 자녀들을 먹이고 가르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요즘은 가정불화나 이혼 등으로 부모가 없이 할머니나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또는 가장 노릇을 하는 아이들이 1600여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부와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고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68편 5절에 보니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22장 25절 이하에 보면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 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한 교포의 아들이 하버드 의과대학에 지원하였는데 불합격하였다고 합니다. 자식 교육에 목숨을 거는 한국 어머니가 그 학교에 가서 전 과목 All A를 받은 아들이 왜 떨어지냐고 항의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학교 당국에서는 ` 당신의 아들은 고등학교 성적은 미국에서 최고입니다. 성적만으로는 당연히 합격입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다니는 3년 동안 한 번도 헌혈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의사가 되겠다는 사람이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없이 지식만 가지고 의사가 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불합격 시켰습니다. `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의과대학에 들어가려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긍휼이 없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약2:13절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뉴욕 역대 시장 중 가장 명 시장으로 알려진 사람은 라과디아 (Laguardia) 씨였습니다. 그가 뉴욕시의 즉결재판부 판사로 있을 때 하루는 가게에서 빵을 도둑질하다가 붙잡혀온 노인이 기소되었습니다.

노인은 "배가 고파 빵에 손을 댔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행위는 10불의 벌금형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 지갑에서 10불을 꺼냈습니다. "그 10불은 내가 내겠습니다. 이토록 배고픈 사람이 뉴욕 거리를 헤매고 있었는데 내가 그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은 벌금으로 내는 것입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그 유명한 넓은 중절모자를 재판부 서기인 베일리프씨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이 재판정에 계신 불들도 나처럼 너무 잘먹은데 대한 벌금을 내고 싶으면 이 모자에 넣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가난한 노인은 오히려 47불을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며 재판정을 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사실 긍휼히 여기는 것 그 자체가 복입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자가 행복합니다.

 

4. 긍휼은 베푼 자에게 다시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이 땅에서 사람들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면 그 긍휼의 은혜가 언젠가는 자기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세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포셔의 입을 통하여 긍휼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긍휼은 고요히 내리는 빗방울처럼 긍휼을 베푸는 사람과 긍휼을 받는 사람을 다함께 축복한다.”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그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이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결정적으로 마지막 날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은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무리로 가르는 최후 심판 비유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영광으로 오실 때에 최후의 심판이 있게 됩니다. 이 때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듯 사람들을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임금이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25:34)는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때 임금이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합니다.

 

한림의대 교수였고, 사랑의 클리닉 원장이요 국제 사랑의 봉사단 단장요, 의사요 목사인 그는 그의 책 킹덤 드림에서 자신이 생식사업을 시작한 배경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암 환자를 돌보면서 그 환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그들이 식사로 인해 고통스러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암의 70% 정도가 먹는 것과 직간접적으로 연결 되어있다. 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이요법’은 아주 절박한 문제인데 이 문제를 생각하다가 ‘비지니스’를 생각하게 되었고, 황성주 생식이 나온 배경입니다. 그러니까 물질 때문에 아니라, 환자들을 아끼고 긍휼이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한 사업이 그 해 1억 매출, 다음해 18억, 그 다음해 100억, 그 후로도 180억, 300억으로 성장하여 지금은 한국 중국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2020년 까지 12개 본사 (인도, 일본, 인도네시아, 터키. 이스라엘) 확충하려고 합니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는 사랑이 점점 식어져 가고 있습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 하십니다.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는 뜻은 이 세상의 철학이나 사상 문화 유행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긍휼은 주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합니다. 괴로워하는 자들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2011년 3월 4일 특별새벽기도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