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 마 5장 5절 )
노자’가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노자는 스승인 ‘상용’을 평소에 존경했습니다. 스승이 노환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마지막으로 남길 교훈을 부탁
했습니다. 스승은 갑자기 입을 짝 벌렸다가 다물었습니다. 그리고는 노자에게 물었습니다. “내 이가 아직 있느냐?” “다 빠져서 없습니다.” 스승은 다시 입을 벌렸다가 다물면서 물었습니다.
“내 혀는 남아 있느냐?” “예, 있습니다.” 그때 상용 스승이 말했습니다. “그대는 내 말을 이해하는가?” “강한 것이 먼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이 남는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노자의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네. 세상의 이치가 그와 같네. 이것이 내가 자네에게 해 주고 싶은 마지막 말일세.”
그 후부터 노자는 ‘부드러움의 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가르침을 모아놓은 노자 평전에서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성경학자인 윌리암 바클레이는 이 “온유를 분노할 만 할 때 분노하고, 분노하지 않아야 할 때 분노하지 않으며, 자기의 본능과 충동과 정욕을 하나님의 다스림에 따라 억제하며,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겸손한자” 라고 말합니다. 오늘 이 시간은 8복 가운데 3번 째 복인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 에게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온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특징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이 사나우며 라고 말합니다.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노아시대의 특징도 그 시대 사람들이 창세기 6장 11절에 포악하다고 나옵니다. 이 말의 뜻은 법이 그 사회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폭력이 그 사회의 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동물의 왕국처럼 힘 있는 사자나 호랑이가 약육강식, 약한 자는 강한자의 밥이 되는 원리만이 지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사회를 심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리비아 사태로 인하여 그 곳에 살다가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무정부의 상태, 군인이나 용병들이 물리력을 동원하여 수 천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여러분! 1993년 12월쯤 기억하는데 미국 LA에서 폭동나신 것 기억 하십니까? 그 당시 흑인 들이 한인 상점에 들어와서 폭행을 하고 남의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웃으면서 들고 나가는 것을 화면으로 보았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즐기는 운동경기 가운데는 무자비하게 때리고 잔인하게 피범벅이 되도록 경기하고, 거기서 사람들이 쾌감을 느끼는 것을 봅니다. 작년으로 기억하는데 서울의 그 유명한 강남에서 새벽에 젊은이들이 길거리에서 지나가다가 어깨를 부딪쳤다고 같은 또래의 한 청년을 집단으로 구타해서 귀한 생명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청주에서 새벽에 산행하고 내려가던 원로 목사님들이 이름 모를 청년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참으로 청소년들이 무섭고 사람이 무서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대학병원의 젊은 의사가 새벽까지 게임 하고 들어오는 남편이 부부 싸움 끝에 자신의 부인을 죽음으로 까지 내 몰았습니다. 배속에 아이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서로가 조그만 참았어도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재판의 결과를 떠나서, 참지 못해서 일어난 결과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이 시대의 특징을 성경은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절제하지 아니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온유함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운명하시기전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기전 가롯 유다가 군병들을 데리고 주님을 잡으려고 칼과 몽치를 가지고 왔을 때 성질 급한 베드로가 대 제사장 말고의 귀를 내려쳐 땅에 떨어 졌을 때 주님은 귀를 붙여 주시면서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일찍이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 받으시되, 위협하지도 않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셨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자신이 인류의 대속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아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시므로 온유하신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의 목표는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며, 예수님을 닮은 것이라고 할 때 주님의 온유한 성품을 가질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 안에 있는 죄 된 성품이 변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인 온유한 마음으로 바꾸어 져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성령의 아홉까지 열매 가운데서 8번 째 열매로 온유를 말씀합니다. 온유한 성품은 그리스도의 성품이요, 성령의 9 가지 열매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성품을 가졌기에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당연히 온유함의 성품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납니다. 그러나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자는 온유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온유와 겸손함으로 날마다 허리를 동이고 사는 자가 바로 행복한 사람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 있는 자입니다.
2. 모세의 성품입니다.
또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온유함의 대표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과거의 모세를 보면 절대로 모세가 온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2장 11-12절에 보면 모세가 장성하여 하루는 자기 히브리 민족이 노역 하는 곳에 나갔다가 자기 동족이 애굽인에게 맞는 것을 본 이후 이리저리 살핀 후에 애굽 인을 쳐 죽여 모래에 묻었다가 이 일이 누설된 것을 알고 미디안 광야에 피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물이 없다고 원망할 때 하나님은 지팡이로 바위를 가리키라고 했지만 바위를 혈기로 힘차게 내리 침으로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을 때 모세는 내가 이 백성을 낳았습니까? 라고 항변했습니다. 이런 모세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자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성품이 성령의 열매가운데 하나 인 것을 압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온유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온순함과는 다른 것입니다. 나약한 모습이나, 연약함만을 의미 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나약한 모습으로 연약한 모습으로 어떻게 수백만의 사람들을 가나안 땅 까지 인도 하겠습니까? 오히려 이스라엘을 인도한 모세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인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향한 강한 믿음과 함께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때로 부드러움과 겸손함이 필요 했습니다. 애굽의 왕궁에서 세상의 학문과 지식이나 문화를 익히므로 강한 지도력을 배운 반면에, 하나님께서 광야 학교에서 인내와 온유 겸손한, 부드러운 지도력을 배웠습니다. 왕궁에서 생활하다가 광야에서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하고 힘들었겠습니까? 거기에서 혈기왕성하고 자신감으로 충만한 모세가 자신을 깨뜨리는 온유함을 배우는 시간 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위대한 지도자로 사용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온유한 성품을 만드시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훈련이 강하게 받은 사람일 수 록 큰 지도자가 나옵니다. 군대 처음 들어가면 훈련병으로써 4주, 내지는 8주의 훈련을 받습니다. 이 훈련이 마치면 이등병이 되어 자대에 배치됩니다. 그런데 훈련 받을 때는 자신들이 받는 훈련이 제일 힘들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 보다 한 단계 높은 훈련이 있는데 하사관 훈련입니다. 6개월 훈련을 받습니다. 하사관들도 분대를 이끄는 지휘관입니다. 그러기에 병사보다 더 강한 훈련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사관 보다 더 강도 높은 훈련이 있습니다. 육군사관학교나 삼 사관학교, 광주 보병학교 고된 훈련을 마치면 드디어 소위나 중위로 임명되어 소대장이 되어 소대를 이끄는 지휘관이 되는 것입니다. 고된 훈련을 받아야 지휘관이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는 영적 전쟁터에 나와 있는 주의 군사입니다. 세상은 마귀가 이 세상의 임금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 직장에서 일터에서 쉴 사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건강해야 마귀의 꾀임에 빠지지 않습니다. 마귀의 싸움에서 패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채 방치 되어있는 사람들을 패하게 만드는데, 되게는 우리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가 우리의 약점이나 실수를 공격할 때 우리가 참지 못하므로 절제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하는 것입니다. 한 번은 제가 오래전에 경기도 북쪽에 한탄강에 자리 잡은 수도원에 가서 강줄기 주변에 있는 바위들을 보고 깨달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강 주변에 있는 모두가 날카로운 바위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같이 둥글둥글 했습니다.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도 수많은 인고의 세월로, 물줄기로 인해서 마치 목수가 연장으로 갈아놓은 것 같았습니다. 모세의 온유함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이요,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의 성품이 온유하지 못하다고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 자신을 맡기면, 토기종이의 의지대로 우리를 빚으시고 우리의 인생을 빛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온유한 자에게 땅을 주십니다.
온유한 자의 세 번째 인물은 이삭입니다. 이삭은 사실 성서학자들이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그의 나이 17-18세 되는 청년이었기에 얼마든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묶고 칼을 들어 치려 할 때에 자신의 아버지를 밀치고 도망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순순히 제물이 된 것을 보면 이삭이 참으로 온유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흉년이 들게 되자 블레셋 왕인 아비멜렉이 거주하는 그랄에 이르게 됩니다. 그 곳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100배의 축복을 받아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그 땅을 떠나도록 요구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때 그의 종들이 판 우물을 다 돌로 막습니다. 그래서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에 거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 다시 우물을 팝니다. 그런데 그랄의 목자들이 찾아와서 자신의 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삭은 우물의 이름을 에섹- 다툼이라 하고 다른 곳에 가서 다시 우물을 팝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그것까지 자신의 우물이라고 생떼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싯나-대적함 이라 하고 또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팝니다. 여러분! 그 당시에 우물을 파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팔레스틴 땅이 거의 돌 밭 이나 다름이 없는 데 장비도 없이 힘들게 파놓으면 무력으로 빼앗으니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한마디 말없이 다투지 않습니다. 싸움을 걸어와도 피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손실이 막대한 대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양보 했더니 후에 아비멜렉이 먼저 화친을 제의 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창 26장 9절에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결국은 이삭이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온유한 사람 이삭의 손을 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맛본 이삭이 우물을 파고 이름을 붙입니다. ‘르호봇’-여호와께서 넓게 하셨다-입니다. 온유한 사람 이삭에게 하나님은 마침내 넓은 땅을 차지하게 하시고, 번성케 하십니다. 온유한 자 이삭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고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결국 온유한 자는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온유함은 예수님의 성품이요, 성령의 열매입니다. 모두가 사나워지고 폭력이 가득한 이 세상에, 온유는 하나님의 자녀의 성품입니다. 온유한 자가 되도록 힘쓰십시다. 이 온유함으로 이 땅에서 이삭처럼 거부가 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상속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1 년 3월 2일 특별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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