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떡이신 예수 요6:22-51
요한복음 6장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물위를 걸으신 사건, 그리고 본문은 생명의 떡에 관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나는 ····· 이다’ 라고 하는 표현이 7차례나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은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이것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독특한 표현으로, 예수님이 자신을 분명히 계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사건 이후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바다 건너 편 가버나움에 가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이후에 무리들은 예수님을 찾아 다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장소에 갔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이 보이지 않자 가버나움에 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가버나움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발견한 무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랍비여!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오늘 이 시간에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 이런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은····
이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을 맛보고 난 이후에, 자신을 쫒아온 배고픈 무리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뱃세다 광야에서 굶주려 있는 군중들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셨다” 라고 하는 말씀하고는 조금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주님은 민중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떳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셨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찾아온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은 그들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 것이다.
26절에 보면, “예수께서 진실로진실로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이어서 27절에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 인치신자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아온 무리들에게 오병이어 때와는 다르게 그들에게 가혹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정말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로 인하여 빵문제, 의식주문제, 경제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은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문제는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외국인들이 보면 우리나라 수능처럼 과열현상을 보이는 것은 이상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학이 서열화 된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대학이 미래를 보장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통 인간의 삶의 문제는 빵의 문제요, 경제에 문제입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온 빌클린턴의 대선 구호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로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건강을 빼고는 돈 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최저 수준인데 이렇게 된 것은 양육비, 교육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결혼 할 생각도 못하고 결혼해도 아이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추세로 가면 앞으로 수십년 후에는 대한민국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힘당에서는 18세이하까지 매달 100만원씩 지원 2억여원을 지원한다는 정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전라남도 강진에서는 아이 하나 낳으면 5000만원을 준다고 합니다. 둘 나으면 1억을 준다고 합니다. 셋을 낳으면 1억5천만원의 돈을 준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종교적인 분야, 즉 신앙에 있어서도 관심도 빵문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내용도 빵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설교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님의 삼박자 축복인 요삼1:2절인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하기 보다는 예배참석이나 기도가 세상 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에 다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은 먹는 문제 입는 문제, 의식주 문제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도 주님은 “너희가 나를 따르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고 궁핍해 있을 때 가장 절실한 빵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먹는 문제, 경제문제가 중요하지만 그게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왜 보지 못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생들에게 빵문제가 시급한 과제이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3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빵문제, 경제문제 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요, 삶과 죽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영생의 문제입니다. 이 영생의 문제는 육신의 빵문제만을 해결해서는 해결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떡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보이는 빵문제, 경제문제를 가지고서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왜 교회를 나오십니까? 빵문제, 경제문제입니까? 아니면, 질병의 문제나 자녀의 문제입니까? 그 보다 더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 즉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관심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2. 나는 생명의 떡이니···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고 찾아온 무리들에게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럴때 무리들은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까? 물었을 때 주님은 29절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무리들이 그러면 당신을 믿을 수 있는 표적인 무엇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출애굽기 16장에 있는 만나 사건을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16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거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고기 가마 곁에 있을 때는 떡을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황량하고 추운 광야에서 먹지 못하고 배고파서 죽어가고 있다고 하면서 그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르자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려 줄 것인데, 매일 마다 가서 거두어들이데 각 사람이 한 오 멜씩 자신의 식구대로 거두되, 여섯 째 날에는 두 오멜씩 거두어 안식일에는 거두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들, 그러니까 약은꾀를 부려서 한꺼번에 많은 양식을 거두어들인 사람은 다 썩었고 일곱 째 날에 나간 사람도 거두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말씀과 주의 종에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은 헛수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나는 무려 40년 동안 내렸고, 가나안 접경에 이르기 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고 그들이 광야 생활을 하였지만. 하지만 그 만나를 먹은 사람도 결국 다 죽었지 않았느냐?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떡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가리켜 35절에 “····나는 생명의 떡이나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4장13-14절에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에게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길러 온 여인에서 물을 좀 달라 하면서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묵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님은 먹는 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고 영생에 문제 땅의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문제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였습니다.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 “이데아”가 있다는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형이하학이 아닌 형이상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고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인 예수를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떡은 잠시 배부른 육신의 떡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사는 생명의 떡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생명의 떡은 예수님이 세상을 위해서 주실 자신의 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53절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56-58에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그러면 이 떡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입니까? 로고스입니다. 즉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살이 되고 피가 되어서 내 육체 속에 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영혼이 살려면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고 관상하면서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육신의 떡을 먹음으로써 육신의 건강과 생명을 유지 할 수 있듯이 우리가 영적생명을 유지하려면 하늘양식을 매일 먹어야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그들이 나가서 광야에서 주어 와서 양식을 삼아 듯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에너지가 나고 힘이 생겨서 선한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 말씀의 떡을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리 할 때, 우리 안에 영적 생명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요한복음6:47.48.5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58절에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운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안에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으로써 사랑과 온유, 겸손과 희생으로 가득 채워져 주님이 내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시므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3.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38절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절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 이니라” 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보내셔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옥으로 가는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주님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십니다. 자신은 유대인들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온 자 만이 아버지를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입니다. 공자나, 소크라테스나 어떤 종교의 교주나 성인도 다 땅에 속한 자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십니다. 그래서 51절에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을 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하 내 살 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예수가 세상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써 속죄제물이 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인류는 하나님께서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인 버틀란트 러셀이나 중국의 임어당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최근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인 리처드 도킨슨의 <만들어진 신>이나, 현존하는 세계최고 이론 물리학자인인 스티븐 호킹은 천국과 사후세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최근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기독교에 반대하여 무신론 동아리를 결성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이런 일들은 그다지 놀랄일도 아니다. 중세 때는 이런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하여 안세름이라는 학자는 그의 책<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라고 하는 책을 써서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하나님을 변증하였다.
세계적인 희망의 신학자인 몰트만 교수가 한국에 온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차대전 중에 영국군에 포로로 끌려가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왔는데 포로 생활 가운데 희망만이 자신을 살렸다고 한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 신학을 공부하여 신학자가 되었는데 그의 책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 보면 희망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경험할 수 없고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희망은 신앙의 대상이요 믿음의 대상이라고 말하면서 미래란 두 가지로 설명하는데 하나는 Futurum 으로 장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현재의 가능성을 미래에 투사하는 것과 또 하나는 Adventure라는 말로 ‘도래’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것을 미래가 현재로 나아오는 것으로 현재에서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에 궁극적인 새로움을 말하는데 이것을 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죄와 사망에 놓여 있는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궁극적 새로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죄와 죽음, 질병과 전쟁과 고통과 환경오염과 생태계파괴, 인간경시와 도덕적 부패와 타락, 소득의 불평등 구조적인 병폐와 정치의 타락과 세계경제의 침몰, 갖가지 범죄와 날로 흉악해지는 청소년들의 범죄는 더 이상 이상한 일도 아닌 것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 세상은 아인슈타인의 제2열역학 법칙에 의해서 엔트로피가 증가하여 점점 무질서하고 혼돈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악을 위해서 죽으셨으며 그분이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알고 그 살과 피를 마시는 자에게 영생에 주어지고 그에게 부활의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이 세상의 낡은 것은 철거되고 없어지고 영원한 하늘나라가 궁극적인 새로움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무궁토록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 당시 무리들처럼 육신의 떡만을 구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생명의 떡인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먹고 묵상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깊이 교제하며 그분의 생명 안에 거하십시오. 그리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희망하며 영원토록 주님과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2023년 4월16일 청주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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