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세기26:12-25)
미국의 3재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의 정치가요 교육가요 철학자이다. 버지니아 주에서 출생 정치에 관심이 있어 정계체 진출 1800년에 미국의 3대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으로 정계를 은퇴한 후로는 고향 몬티셀로에 돌아가 버지니아 대학을 설립합니다. 또한 철학 자연과학 건축학 농업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국 독립선언의 기초자, 버지니아 신교자유법의 창시자, 버지니아 대학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 여기에 잠들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의 학교에는 예배당이 있습니다. 그가 생전에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았는데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저희 시골 마을에 가면 뒷산 높은 곳에 아름다운 교회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당을 지을 때 우리 할아버지께서 그 산을 교회에 바쳐서 교회를 지을 수 있었고 밭을 팔아서 건축비를 조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은 교회 목사님이 할아버지를 축복해 주실 때 자손들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수없이 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오늘 내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게 된 것은 바로 이 아름다운 교회당을 지어 바친 할아버지의 헌신 때문입니다. 그래서 버지니아 대학에 가면 제퍼슨 동상이 있는데 그 손에 두루마리 성경이 들려져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과 사람을 하나님은 반드시 번성하게 하고 창대하게 하면 축복해 주십니다.
1. 이삭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네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하셨을 때 즉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먼 길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또한 100세에 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였을 때 자신의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드림으로 그의 신앙이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의 아들이삭도 예외가 아닙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는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신앙을 곁에서 보아온 아들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 신앙의 대를 이어서 믿음의 생활을 해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나 혼자 예수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자자손손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손들이 번성하며 축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길을 갈 때에도 누어있을 때에도 일어날 때에도 말씀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손목에 매고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순종하면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어 토지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성케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버지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삭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아브라함의 신앙을 곁에서 보아 왔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는지 알고 있습니다. 또한 어렸을 적부터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법에 대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창세기 26장에 1절에 보면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고향 땅을 떠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입니다. 축복의 땅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 아버지 아브라함 시대에도 흉년이 있었는데 아들이삭의 시대에도 똑 같은 흉년이 이르자 이삭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치않습니까? 자신이 살던 땅에 흉년이 와서 살 수가 없으니 당연히 더 좋은 곳으로 이주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삭이 이주 하려고 했던 곳은 그 당시 최고의 문명과 문화를 이룬 애굽 이었습니다. 오 늘 날로 말하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유럽이나 우리나라로 이주 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 하는 것처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이주하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 지 모릅니다. 이삭의 판단으로 봐서는 올바른 판단입니다. 애굽은 그 당시 최고의 문명과 함께 나일 강을 끼고 있어서 곡식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야곱 때에 이르러서도 흉년이 찾아와서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에 가족전체가 이주 하였습니다. 왜요? 애굽은 그 당시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해 곡창지대 여서 굶주림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애굽에 내려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하십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다시 말하면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약속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삭은 최고의 문명이 발달한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랄에 거주 하였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곳에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농사를 짓던 그 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어 100배의 축복을 받았고, 이삭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양과 소가 심이 많고 종도 많았고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을 누가 주셨습니까? 12절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였더니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심치 않고 믿고 따를 때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은 100배의 축복을 받았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의 축복을 받은 것을 시기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의 블레셋 족속이었습니다. 이들은 원래 지중해 크레타섬에 있었는데,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대에 가나안 땅에 이주하였습니다. 이들의 수장인 아비멜렉이 와서 그 지역을 떠나라고 협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습니다. 이삭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랄 골짜기에 거하여 아브라함이 팠던 그 샘을 다시 파서 물을 얻었는데 그랄 목자와 이삭목자들이 다투어 그 이름을 에섹이라 하고 다시 우물을 파고 싯나라 하였더니 또 다투어 다시 옮겨 다른 우물을 파서 르호봇이라 하고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라 하였습니다.
그 당시 우물을 하나 파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수고와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판 우물을 블레셋 사람에게 여러 번 양보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의 사람은 사람들과 다투지 않습니다. 온유합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자는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 하지 않았습니까? 이삭이 그 사람들과 다투지 아니한 것은 그가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는 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5장10-11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이삭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주변 불레셋 사람들과 다투지 아니 했습니다.
2. 이삭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살아왔던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큰 흉년이 찾아 왔기 때문입니다. 흉년이 오니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려가지 말라하십니다. 그 이유는 애굽의 문화는 죄악의 문화요, 우상의도시요, 쾌락의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나 믿음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일시적인 고난이 왔다고 해서 물질적으로 궁핍하다고 해서 축복의 땅, 약속의 땅을 떠나면 안 됩니다. 아무데나 취직하면 안 됩니다. 요즈음 학생들이 아르바이트하는데 술집이나 룸싸롱, 노래방 이런데 취직해서 쉽게 돈 벌려고 하다가 인생을 망친 학생들이 있습니다. 학생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돈 많이 준다고 주일도 못 지키는 직장이나 회사에 취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직장이나 일을 선택해야 합니다. 물질을 따라가고 세상을 따라가면 영혼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믿음을 떠나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소알 지역 까지 돈 벌러 갔다가 자식들도 망치고 자기 부인은 소금기둥이 되고 자신은 씻지 못할 죄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떠나지 말라 하십니다. 성도는 축복의 땅이 어디 입니까? 교회입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성도가 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교회생활을 잘할 때 여호와께서 복을 주십니다. 범사가 잘되고 만사가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가나안 땅에 있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불레셋 사람들이 괴롭혔습니다. 우리가 이것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려고 하면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손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끝까지 붙들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창세기 26장 29절에 이삭을 괴롭혔던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화친을 맺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삭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로다.” 얼마나 멋있고 축복의 말씀입니까? 너를 옆에서 쭉 지켜보았는데 너는 진짜 신앙인이야, 당신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삭은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고 지시하심에 순종하였기에 이방인들이 그의 신앙을 인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흉년이 올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든지, 병마가 찾아 왔다든지,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남모르는 고통이 왔을 때 시련의 도가니를 통과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명기 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은 그들을 “낮추시고 시험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의 인생을 낮추시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지 아니 듣는지 알고 싶어 하십니다. 출19:7-8에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아멘”했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 실제로 “아멘‘으로 받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여리고 성도 하루에 한번 씩 돌고 마지막 날에 일곱 번 돌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외쳤더니 무너졌습니다. 아람 사람 나아만 장군도 엘리사의 말씀에 순종하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었을 때에 문둥병이 어린 아이 살처럼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가득히 채우고 갖다 주었더니 물이 변화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2008년 허리케인 아이키가 미국의 휴스턴을 집어 삼켰을 때 둘레가 1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떡갈나무들이 수없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더 없이 강해 보이는 이 나무들도 시속 150 킬로미터가 넘는 강풍에는 상대가 못되었습니다. 높이가 40미터가 되는 소나무들이 줄줄이 쓰러졌습니다. 크고 작은 소나무와 떡갈나무, 느룹나무 목련나무가 죄다 허리케인의 위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졌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종류는 이 무시무시한 허리케인 아이키의 피해를 그나마 적게 입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연약해 보이는 종려나무입니다. 하나님은 종려나무가 거센 바람에 부러지는 대신 구부러지게 창조하셨다. 그래서 비록 가지가 땅에 닿을 정도로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는 않습니다. 강력한 허리케인이 오면 종려나무는 서너 시간이나 구부러져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금방이라도 툭하고 부러질 것 같지만 종려나무의 탄력은 실로 대단합니다.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허리케인으로 종려나무가 구부러져 있을 때 그 뿌리가 오히려 강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허리케인을 이겨낸 종려나무는 보통 종려나무보다 훨씬 더 크게 자란다고 합니다. 순종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순종하면 죽을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순종할 때 여호와께서 복을 주십니다. 이후에는 엄청난 은혜와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3. 삶의 중심에 예배가 있었습니다.
이삭은 그랄 지역을 떠나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블레셋 왕 아비멜렉과 평화의 조약을 맺은 브엘세바로 올라가습니다. “브엘‘은 히브리어로 우물이란 뜻이고, ”세바“는 일곱이란 뜻입니다. 이 뜻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이삭이 판 우물이 일곱 개가 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에셀 나무를 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창세기 21장3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 올라가려고 하였을 때 그 밤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이에 이삭은 하나님이 나타나신 바로 그 장소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 모두가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단을 쌓았다고 하는 것은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광야 같은 곳에서 어떻게 하나님 없이 살 수가 있겠습니까?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시간입니다. 예배란 뜻의 영어 Worship은 최고의 가치를 돌려드린 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가치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시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내가 가장 최고의 옷을 입고 정결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1860년 12월20일 링컨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남부7개주가 연방을 탈퇴하면서 전운이 고조 되었다. 남과 북은 4월12일 사우스케롤나이주에 있는 섬터요새를 두고 포격을 시작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14일 남군의 승리로 끝나자 링컨은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링컨 대통령은 뉴욕에비뉴 장로교회 걸리 목사님을 백악관에 모시고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걸리 목사께서 주일예배를 마치고 특별광고를 하였습니다.“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전쟁이 치열하다 보니 사상자가 많아서 교회를 병원으로 개조할 수 밖에 없고 예배를 중단합니다. 이 광고를 들은 링컨 대통령은 크게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걸리 목사님, 지금 이나라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때 일수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저는 교회를 병원으로 개조하는 것은 반대입니다“링컨 대통령의 뜻대로 전쟁하는 동안 예배를 쉬지 안했고 교회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북군이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기도의 사람 아브라함 링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종전 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북군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이러한 신념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이 되기까지 예배를 계속 드려 왔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생명보다 귀한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그런 것입니다. 문재인이 교계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예배가 마음의 평화를 줄 수 있으나 바이러스로부터 지켜 주지 못한다“고 말한 것은 그가 무신론자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예배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노아 홍수 시대에도 노아는 홍수가 지나가고 날이 개자 방주에서 내려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배가 먼저였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바쁠 때에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예배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고의 가치를 예배에 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일 보다 예배를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살아야지 후순위에 놓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삭처럼 100배의 축복을 받아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왕성하고 창대해지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복을 누가 주십니까?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삭처럼 왕성하고 창대하여 거부가 되려면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더 나아가 예배를 삶의 최우선으로 삼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21년 2월21일 새믿음교회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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