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히 쓰는 그릇 딤후2:20-22
이번 명절은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5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으로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가족 간의 따뜻한 만남을 가져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식사도 5인 이상 안 된다 해 식당에 가도 가족 아닌 것처럼 식사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설 명절이 되면 저는 무슨 기억이 떠오르는 가하면 저희 할머니께서 1년 동안 천정 대들보에 올려놓았던 제기들을 꺼내어 깨끗하게 씻고 제사를 준비한 것을 보았습니다. 또 대청마루에 있던 그릇찬장에서 사용하지 않고 진열해 놓은 귀한 그릇, 그 당시에는 놋그릇 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명절에 그릇들을 다 꺼내 놓고 일을 벌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그릇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룻’이란 비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도바울을 향해 행9:15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하였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의 그릇으로 비유한 것이 있습니다. 롬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 즉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인생을 천히 쓰는 인생, 귀하게 쓰는 인생으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큰 집에는 금 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을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과학이 발달하여 많은 그릇이 있습니다. 사기그릇도 있고, 스탠 그릇도 있고, 놋그릇도 있고 쓰임새에 따라 종류가 다양합니다. 주발, 종발, 종기그릇도 있고 항아리도 있고 양푼도 있고 바가지도 있고 참으로 그릇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자주 사용하는 그릇이 있습니다. 밥그릇, 국그릇, 간장 종기 고추장 종기, 사발 등 말입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릇이 귀하던 시절이라 귀한 그릇은 귀한 손님이 올 때 내 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그릇의 비유를 통해서 이 세상에는 귀하게 쓰임 받는 인생이 있고 천히 쓰임 받는 인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귀한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 의사가 되고 싶고, 교수가 되고 싶으면 총장이 되고 싶고, 정치에 뛰어들면 국회의원이 되고 싶고, 요즈음 국회의원을 비하하는 말로 국개의원이라고 부르는데 그래도 국회의원 하려고 하고 국회의원 하면 대통령 하고 싶은 겁니다. 사법고시 시험에 합격해서 판사, 검사 하고 싶은 것은 그만큼 사회에서 어디 가든지 귀하게 대접받는 귀한 인생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요즈음은 특별한 사람들이 귀하게 대접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소위 빅테크 CEO들입니다. 일본의 손정의, 미국의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 고인이 되었습니다만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만든 이건희 회장, 아마존, 구굴 페이스북의 창업자 등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근에는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한 카카오톡의 김범수 회장 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위대한 인물, 귀한 인물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21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여기서 이런 것이란 무엇인가요? 22절에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바울은 믿음의 아들 청년 디모데에게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사는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성경은 육체의 욕망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죄의 덩어리입니다. 육체의 욕망을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해서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삼손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삼손은 어렸을 때부터 나실인으로 머리를 깍지 않고 포도주를 되지 않고 시체를 만지지 않고 자란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삼손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셔서 엄청난 괴력을 가진 사나이였습니다. 사자를 염소새끼 찢듯이 죽이고 나귀턱뼈로 일천명을 죽이고 건물의 기둥을 혼자 뽑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대로 적국 불레셋 나라의 미인계인 들릴라에 빠져서 자신의 힘의 원천인 머리에 있다는 비밀을 알려주어 결국은 자신의 두 눈이 뽑히는 수치를 당하고 비참하게 죽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왕도 자신의 군사들이 모두 전쟁에 나가 있는 한적한 시간에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달빛에 목욕하는 자신의 부하 우리야의 아내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음욕이 일어나서 자신의 부하가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서 전투하는 그 시간에 부하의 아내를 침실로 끌어들여 결국은 우리야를 전쟁에 내보내어 맨 앞에 내세어 적군의 총알받이가 되어 죽게 하는 살인죄와 간음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이런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가문에 피의 숙청이 끊이지 않고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 의해 도망가는 수치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42대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은 1978년 32세의 나이로 최연소로 아칸소 주지사로 선출되었고 1992년 미국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고 부시 대통령과 맞붙어 46세로 대통령이 되었고 1996년에 재선에 성공 미국 경제의 호황을 이끌었지만 자신의 비서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으로 인해 미국 최초로 의회의 탄핵을 받는 수치를 당하여 그의 생애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고 퇴임하였습니다. 미국 정치계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문 정권 들어서 미투 사건이 실 사이 터져 나와 유력한 대선후보인 모 도지사는 자신의 여비서와의 성추문으로 인해 낙마하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 4월에 부산과 서울에서 보권선거가 있는데, 이것도 전직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이 여성 성추문으로 인해 한 사람은 감옥에 들어가고 한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었습니다.
얼마 전 2012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피에타’로 최고상을 받은 유명한 모 영화감독인 사람이 외국에서 코로나객사 했는데 영화계에서 추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 영화감독이 모 영화배우와 추문으로 인해 아무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고 문상 가기를 꺼려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데 실패하고 정욕에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성경에 나온 요셉은 어떠했습니까? 자기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은20에 미디안 상인에 의해 넘겨지고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가정총무로 일하고 있을 때 그의 주인이 출장하고 없을 때 보디발의 아내가 젊은 청년 요셉을 유혹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니 요셉은 창39:6절 하반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이러한 요셉에게 젊은 부인이 자기 남편이 출장 나간 사이에 자신의 침실에 끌어 들여 유혹하였지만 요셉은 이렇게 말하며 거절 합니다. 8-9절에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이렇게 말을 하였지만 보디 발 아내는 듣지 아니하고 날마다 유혹하니 요셉은 함께 하지도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요셉이 가정총무로 일을 하러 갔더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때를 이용하여 이제는 노골적으로 유혹하자 요셉은 옷을 벗어놓고 그 방을 빠져 나오자 당황한 보디발의 아내가 역으로 공격하여 요셉에게 뒤집어 씌어 종이 주인이 없는 사이에 자신을 겁탈 하려 한다고 사람들과 그 주인 보디발앞에서 말하고 거짓 누명을 씌워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이 씌워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은 이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이기어 마침내 그 당시 세계 최강국에 총리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습니다. 요셉은 내가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리까.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애굽의 역사를 보면 요셉이라는 인물이 있었고 그가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예언하여 곡식창고를 만들어서 수많은 애국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줬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만약에 요셉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못하고, 청년의 정욕을 이기지 못했더라면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그릇이 되지 못했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 더 나아가 자기 민족과 국가를 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청년의 정욕을 이기었기에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였고 요셉은 늘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그리하여 요셉의 생애는 형통한 생애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성추문에 연루되어 그동안 쌓아온 명성과 신뢰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인생이 파국으로 끝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사탄은 오늘도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이 정욕의 수렁에 빠지게 해서 파탄에 이르게 하고 지옥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그야 말로 성적으로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성범죄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 뿐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가 늘어나고 심지어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는 이것을 합법화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해마다 동성애 축제를 전국 곳곳에서 벌이고 심지어는 서울 시청 앞마당에서 허가를 내 준 장본인이 전 서울 시장 박oo입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표가 된다면 도덕적 기준이나 전통적 가치관이나 양심을 무너뜨리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미 영적으로 마지막 때에 도덕적 타락에 대하여 2000년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로마서1:21-27이하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리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리라”
그러므로 정욕으로부터 자신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해야 주인의 쓰임에 합당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러운 그릇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정욕의죄와 싸워야 합니다.
타락한 시대에 이런 청년의 정욕에 물들지 않으려면 22절에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이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말합니다. 믿음의 형제를 말합니다. 경건한 자들입니다. 거룩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 청년들이 말씀과 기도로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119:9-11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 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 안에 있어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교회를 떠나면 이 더러운 세상에서 죄로 오염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기에 하나님을 떠나 살면 자연적으로 타락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기 위해서 22절에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주님의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른 세상에서 먼저는 ‘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올바른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서 바른 것입니다. 믿음을 따라 가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이것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남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사회는 양진영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좌파와 우파, 경상도와 전라도. 노동자와 재벌, 동,서와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젊은이와 노인들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화평을 따르라. 평화의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말세 마지막 사람들의 특징에 대하여 바울은 딤후3:1-5절에서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오늘날 교회를 비평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비방합니다. 물론 교회가 비판받을 일도 있겠지요.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주님이 거룩한 피로 사셨습니다. 코로나가 확산 되면서 공영방송들이 마치 교회가 코로나 주 감염원 인 것처럼 보도 하고 대통령이 콕 찍어 국민을 편 가르기 하여 교회를 공격했지만 질병관리청의 발표에 의하면 교회 대면 예배를 통해서 확진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 하였습니다. 교회는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있고 거리두기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마녀 사냥 식으로 교회를 매도하고 공격했지만 교회가 감염원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레위기11:45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고 하셨습니다. 벧전1:15-16절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하셨느니라” 사람들은 금 그룻을 사용하고 은그릇을 사용합니다. 다시 말하면 학력이 좋고 스펙이 좋고 가문이 좋은 사람을 선호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깨끗한 사람, 거룩한 그릇을 귀한 그릇으로 사용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 손자 손녀들이 하나님이 쓰시기에 깨끗한 그릇, 거룩한 그릇이 되어 귀하게 쓰임 받은 그릇,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마지막 때 하나님의 선한 일에 준비된 그릇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년 2월14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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