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시는 하나님 /삼상7:1-12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옆에서 괴롭혔던 족속이 있었는데 블레셋이라는 족속입니다. 팔레스틴이란 말은 사실은 불레셋에서 나온 말입니다. 고대 근동지역에서 불레셋은 강한 족속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불레셋과 이스라엘과 전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앞에 내용을 보면 불레셋에게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해서 하나님의 법궤인 언약궤를 빼앗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블레셋 진영에 있는 동안 블레셋 사람들에게 전염병이 발생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재앙이 발생하자
불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이스라엘에 보내고 그 법궤는 기럇여아림에 들어간지 20년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모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의 법궤를 변방에 모셨는데 이제는 중심에 모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동안에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법궤를 잘못모셨다가는 화를 당한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저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사인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의 마음속에 주님에 대한 생각, 즉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까, 교회에 대해서 예전보다 관심과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면 좋은 징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본문2절 하반절에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라는 말씀처럼 주님을 사모하는 신자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사모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시편기자 다윗은 19편에서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금보다 더 사모하며 꿀, 송이 꿀 보다 더 달다고 고백할 뿐 아니라, 14절에서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나타내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마음을 알고 미스바에 모이도록 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모입니까?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이자 블레셋 진영에 난리가 났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전쟁을 준비하는 줄 알고 병사를 소집하고 전쟁을 준비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전혀 준비하지 안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서 제물과 제단을 쌓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전쟁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백척간두의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이때 사무엘 선지자는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제시하였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3절에 보면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은 십계명 제2계명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은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 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우리가 삶속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첫 번째는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리에 있는 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하늘 높은 보좌에 계시지만 우리 마음의 보좌에 주님이 않기를 원하십니다. 고전3;16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 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나의 구세주요, 나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 안에는 성령이 계시고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요, 나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다른 그 무엇이 그를 조종하고 그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각이 중요한 것입니다. 마귀도 하나님도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무엇이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면 그게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아파트 투기로 복부인과 치마바람이 한창 불 때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전도회 헌신 예배를 드리는데 여전도회 회장이 사회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하고 이제 찬송가를 부를 시간인데 회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찬송가285동을 하겠습니다.이게 어찌 된 것입니까? 이 여전도회 회장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 아파트투기 하러 다니다 보니 머리속에 은연중에 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뛰어 나온 것입니다. 당구 좋아하는 사람은 잘 때도 천장에 당구 볼이 왔다갔다 한다자나요. 이게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내 마음을 지금 누가 무엇이 차지하고 있나요. 그 우상을 제거하고 내 마음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야 하겠습니다.
둘째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스바로 모이라고 하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쉬지 말고 부르짖어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5절에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8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모든 문제의 열쇠는 기도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기도는 성도의 호흡이라 하였습니다. 호흡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것처럼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영적으로 죽은 성도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기도였습니까?6절에 보면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토록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지난 날 하나님만을 섬기지 못하고 우상 숭배한 죄를 회개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물이 귀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물을 길어 올 수 있었겠습니까?쉽지 않은 일입니다. 물을 쏟아 부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쏟아 부었다는 것입니다. 회개란 자기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붓는 것입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지난날의 죄를 회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종일토록 그렇게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매를 맞는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강퍅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매를 더 자초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회개하지 않는 유다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1:3절에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이사야 선지자는 회개하지 않고 드리는 예배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거듭 말합니다. 15절에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를 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우리 하나님은 회개하면 어떤 죄라도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요나서에 2장에 보면 요나가 물고기 배속에 3일 동안 있을 때 요나는 죽음 가운데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2절에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그러면서 나를 깊은 바다 속에 던지셨고 큰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으며 땅이 나를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7절에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도베드로는 3:19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회개하면 구원받습니다. 회개하면 즐거운 날이 올 것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들은 불레셋 사람들이 전쟁을 준비하는 줄 알고 그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군사력이 강하고 훈련이 잘된 군사들이었습니다. 무기도 철제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아무런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바알과 아스다롯만을 섬기면서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고 향락과 풍요 속에 살던 사람이었으니 전쟁을 하면 백전백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웠습니다.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무엘에게 기도요청을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님, 하나님께 쉬지 말고 기도해 주세요. 우리를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해 주세요. 기도하다가 쉬어서는 안됩니다. 쉬지 말고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온전한 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온전한 번제란 요즈음 버전으로 말하면 ‘온전한 예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온전한 예배를 들여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에는 언제나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제물이 없는 제사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온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온전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드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그런 시대가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말라기 시대입니다. 말라기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이제 그것을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받아 주겠느냐“ 13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하며 코웃음치고 훔진 물건과 저는 것,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 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을 온전하지 못한 것을 바치므로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성전 문을 닫겠다고 했습니다. 너희를 기뻐하지 않겠으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헌신과 제물은 기쁨으로 드리고 봉사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마지못해서 드리는 예배와 봉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고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느 목사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우리교단에서 상당이 큰 교회인데 하루는 우연히 주방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내용이냐 하면 주방에서 봉사는 봉사자들 둘이서 다라를 발로 툭차면 이쪽에서 볼 차듯이 차면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받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것을 기억합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드렸습니다. 맏물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되는대로 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첫 열매, 첫 새끼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두 번째 온전한 예배는 어떤 예배인가에 대하여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반면 유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수백년 동안 조상들의 전통대로 내려 왔에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들의 조상들은 사마리아, 당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 하는 것 아닙니까? 했더니 예수님께서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배를 드리는 당사자가 대상을 분명히 알고 그 신적인 대상인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를 참으로 드리는 자세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배의 대상이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려지는 예배는 영적 예배가 되어야 온전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영적 예배, 신령한 예배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앞두고 목욕재계도하고 헌금도 준비하고 기도로 준비하고 찬양도 영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목소리로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서울에 연세중앙교회의 성가대는 찬양대를 연습하기 전에 1시간 동안 찬양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리고 연습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한 번 들어 봤는데요. 찬양대가 참으로 은혜스럽더라구요. 지금부터 2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제물을 드릴 때 반드시 죽여서 피를 흘려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복음성가에 있는 것처럼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영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주보혈이 내영을 새롭게 하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총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의 죄 용서하시고 집나간 탕자가 돌아왔을 때 제일 좋은 옷을 내주고 반지를 끼워주고 새신을 신겨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벌여 주어 자신의 아들로 받아 주었듯이 우리 죄 용서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젖먹는 어린양으로 온전한 번제를 드렸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레를 발하시어 블레셋 군대를 다 쳐서 멸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저 사무엘 선지자의 다스림에 따라서 순종하고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고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불레셋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하였습니다.13절에 “다시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그 땅에 40년 동안 평화가 있었고 잃어 버렸던 땅 에그론에서 가드까지 도로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보호해 주시고 이기게 하십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내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둘째는 금식하고 쉬지않고 마음을 내어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는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온전한 제물, 영과 진리로 , 그리고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괴롭히는 불레셋의 위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고 잃었던 땅을 회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2019년 6월 16일 청주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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