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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의 비유 (마태복음 21:28~32)

gkffpffndi 2019. 5. 31. 10:11

두 아들의 비유 (마태복음 21:28~32)

 

오늘 본문 말씀은 소위 두 아들의 비유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 그 당시 불순종하던 유대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세 사람입니다.한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누구를 상징하는 냐 입니다.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그 현장에 누가 있었냐 하는 것입니다.즉 누구를 대상으로 말씀을 전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을 전하시기 전에 예루살렘 성전을 척결하시고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건을 보았던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서부터 왔느냐고 공개 질문하자, 주님은 그들의 주장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대신 본문의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믿지 않고 의심하는 저들의 완악함과 불순종을 지적하심으로써 잘못된 신앙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큰 아들작은 아들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 가입니다.넓은 의미로큰 아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고 하는유대인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반면에작은 아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 대상이 바리새인인 대제사장과 자신들의 유전만을 고집하는 장로들인 것을 생각할 때 여기서 큰 아들은 바로 유대종교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장로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면작은 아들은 누구냐 입니다.그것은 본문 32절에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따라서 둘째 아들은 회개한 창녀와 세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이제 분명해졌습니다.첫째아들은 회개하지 않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인 종교지도자입니다.이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자신들의 종교적인 의에 빠져서 그리스도를 끝까지 영접하지 않고 결국 불순종하여 지옥에 떨어진 인생들입니다.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민족의 배신자로 낙인찍히면서 숨죽이면서 살았지만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온 세리와 창녀가 둘째아들입니다.이렇게 놓고 해석할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두 아들의 비유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이제 본문이 주는 구체적인 교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큰 아들’,둘째아들모두 아버지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아버지의 뜻은 무엇입니까?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것입니다.포도원에 가서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가지도 쳐주어야 하지요,덩굴도 올려 주어야 하지요,거름도 주어야 하지요.포도송이도 종이로 싸주어야 하지요,큰 아들이나 작은 아들은 아버지가 왜 자신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는 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다시 말하면 하나님아버지의 뜻,선하신 의도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얘야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하였더니 하고 대답했습니다.그런데 가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이 큰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분명히 알았기에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가지 않았습니다.불순종한 것입니다. 여기서 큰 아들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인 대제사장 장로들,그리고 서기관들입니다.이들은 종교적인 사람들입니다.안식일을 되면 어김없이 회당에 나가고 절기를 지키는 사람들입니다.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 같은 곳에서 예복을 입고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식 기도를 하였습니다.이들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보이지 않은 속마음보다 눈에 보이는 외식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그래서 예수님은 겉은 번지르르한 회칠한 무덤이나 속은 탐욕과 방탕과 거짓이 가득하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이들은 세례요한의 회개의 메시지나 예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자신의 유전에 따라서 거룩하게 보이고 종교적인 형식만을 따를 뿐이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의 말씀에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보이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문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수용하지 않은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불순종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뜻을 모른 것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 분명히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를 먹을 수 있지만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는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그것을 먹는 날에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습니다.하지만 그들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배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인간에게 저주가 임하여 죽음이 오고 인간의 삶에 가시와 엉겅퀴가 나서 고통과 질병이 찾아 온 것입니다.만약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인류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과 행하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오늘 날 많은 신자둘이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사탄도 하나님을 알고 이해합니다.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진정으로 아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데 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머리에 머물러서 안 되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리고 손발로 행해야 그게 신자입니다.10:9-10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오늘 우리의 신앙이 아는 데서 그치는 것은 바리새인의 신앙에 불과 한 것입니다.머리로 아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아는 지식이 가슴에 뜨겁게 전달되고 이것이 손과 발에 전달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때 참신앙에 이를 수 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이해가 되었으면 그것이 삶으로 즉 행함으로,순종함으로 나타나야 그것인 믿음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이니라하셨습니다. 1:22-25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지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본문으로 돌아와서 이 큰 아들은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그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서 순간적인 것을 모면해 보려고 마음에도 없는 것을 거짓으로라고 대답한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왜 불순종 했습니까 사도바울에 의하면 이 사람은 육신에 있는 자인 것입니다.바울은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이런 사람은 성령이 없는 자입니다.그러기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약속은 했으나 번번히 거절하고 어기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롬8:5-8에서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 도 없음이라.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문제는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이런 종교적인 바리새인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겉모습은 신자인데 삶은 아니라는 것입니다.교회 와서 찬양도 하고 기도도 잘합니다.그런데 선한 열매가 없습니다.종교적인 생활은 하는 것 같은데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인 것입니다.그러기에 삶에 변화가 없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을 향해서 마23:33에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그들에게 책망하셨습니다.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내가 믿는 다고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행함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 째 생각해야 할 것은둘째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처음에는 싫습니다하고 아버지의 말씀에 거절했습니다.하지만 그 후에 뉘우치고 갔다고 했습니다.여기서 중요한 단어는뉘우쳤다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실수 하고 잘못할 수 있습니다.문제는 잘못한 것을 알았으면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첫째 아들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요한이 의의 말씀을 전하였을 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32절에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하였습니다.여기서 세례요한이의의 도를 전했다고 하는데 의의도가 무엇입니까?마태복음3:1-12절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1절에 그 때에 세례요한이 이르러 유대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회개의 복음입니다.세례요한은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하십니다.그렇치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맺지 않으면 도끼로 찍어서 지옥 불에 던져 지게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전파하고 있습니다.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를 떠나 둘째 아들이 먼 나라에 가서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살다가 비천한 가운데 아버지 집을 생각하고 스스로 돌이켜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21절에 보면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회개할 때, 집 나갔다가 돌아온 탕자에게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발에 신을 신겨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 상을 차려 주셨습니다회개란 먼저 죄를 뉘우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향을 바꿔서 아버지 집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처음에는 거역했으나 깨닫고 돌이켜서 행동으로 결단하여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포도원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회개란 삶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회개함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의 문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비로소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베드로가 주님께 고백한 것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다고 하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예수를 구세주요(Savior) 주님(Lord)이라고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를 나의 구세주요, 주님으로 인정하면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첫째는 자아관이 변화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는 허물과 죄로 죽은 인생이라는 사실 앞에 절망하고 겸손하게 되어지고 하나님의 자녀됨을 알게 됩니다. 둘째, 세계관이 변화합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모든 것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판단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셋째는 가치관이 변화합니다. 물질관이 달라집니다. 물질보다 더 귀한 것이 영적인 것임을 알게 됩니다. 물질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보다 교회 공동체를 귀하게 여깁니다.


회개의 열매가 없는 신앙은 가짜입니다. 19장에 세리장 삭개오의 회개가 나옵니다. 그는 자신의 동족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세리 장 이었습니다.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8절에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습니다.” 이 때 주님이 깜짝 놀랄만한 말씀을 하십니다. 9절에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진정한 회개, 참된 회개는 회개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마7:21절에서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회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행3:19절에(개역한글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오늘 우리는 종교적인 바리새인처럼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는 신앙을 청산하고 세리와 창기처럼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세상정욕을 멀리하고 그리스도를 진정한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9년 6월2일 청주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