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의지하여 (눅5;1-11)
오늘 본문 말씀은 한낯 갈릴리 바다의 어부로써 살아가는 베드로에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인생의 대전환을 하는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고기를 잡는 것으로 보아 겨울은 아니고 봄이나 여름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잡던 이 갈릴리 바다는 구약시대에는 긴네렛 호수라고 불리 졌습니다. 누가복음 본문에는 게네사렛 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하프’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호수, 혹은 갈릴리 바다로 불려지는 이곳이 하프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네사렛 호수는 남북의 길이가 20키로 동서의 폭이 12키로이고 연 면적이144제곱키로미터입니다.
게넷사렛 호수는 우리나라 백두산보다 더 높은 북쪽 헬몬산에 쌓여 있던 눈이 녹아 흘러서 이 갈릴리 바다로 들어와서 이 호수에는 200여종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어부들에게 이곳은 고기를 잡아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삶의 젖줄인 셈입니다. 베드로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 날에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배를 정리하고 그물을 씻고 맥이 죽 빠져서 낙심과 절망과 한숨을 쉬면서 그 자리를 정리하고 떠나려고 했을 때였습니다.
한 젊은 청년 예수가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서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1절에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수가에 서서”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잠언 16: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사도행전17:11절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새 번역 성경에는 ‘간절한 마음’을 ‘기꺼이 받아들여“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지 한 번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베뢰아 교인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말씀을 받는 태도를 종합해보면 이들은 모두가 주의 종이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그냥 대충 듣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새기는 말씀으로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유대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까요? 느헤미야8:5-6절에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이상에서 찾아 본 바와 같이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말씀을 받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누구의 말씀으로 알고 믿는 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의 태도가 달라지고 삶의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잘 들어야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겨야 교회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수가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호수가에 두 배가 정박해 있었는데 이들이 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그 중 한 배에 오르시어 육지에서 조금 띄우시고 앉으사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디다케’라는 말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하고는 좀 다릅니다. ‘선포’라는 말은 ‘케리그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디다케’ ‘가르치다’는 상세히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한다는 뜻입니다. 그야 말로 ‘교육’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가르칠 때에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랬더니 시몬 베드로가 뭐라 했습니까? 5절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자,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의 순종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가 여기서 이렇게 항변 할 수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바다에서는 베테랑입니다. 소위 이 어부세상에서는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이곳의 바다 어느 곳에 고기가 며시 쯤에 있는 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 날 따라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가 있을 만한 곳은 다 그물을 내렸는데도 허탕을 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배를 바다에 정박하고 그물을 다 씻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 배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 할 수 없이 배에서 전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제 발길을 막 돌리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 말을 들었을 때 베드로는 납득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부의 상식으로는 낮에는 고기가 얕은 곳에 있지 깊은 곳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고기가 있을 만한 곳은 다 뒤져서 그물을 내렸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예수님의 말씀에 끌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성과 경험과 상식이 맞지 않지만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한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베드로가 순종하는데 있어서 주저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망설이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 갈 수 있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순종을 귀하게 봅니다. 왠 줄 아십니까? 이 시대의 사람들이 불순종의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불순종은 사탄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거절하거나 거역하거나 불순종하는 것은 배후에 보이지 않는 사탄이 역사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창세기3장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하였는데, 뱀은 그것을 먹으면 너는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함으로 인류에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예수님도 요한복음10:26-27에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베드로가 말합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 헛수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주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으니 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밤새 한 마리 잡지 못했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리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선의 기쁨을 누린 것입니다. 어부들이 먼 바다에 나가서 풍어 떼가 많이 잡히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선상에서의 말씀을 잘 듣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있다 보니 믿음이 생겼고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내가 그대로 하리라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물이 찢어지는 그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 이것이 믿음이요 신앙인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기적을 불러일으킨 기적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고기가 많이 잡혔는지 다른 배의 동료들을 불러서 고기를 나누어 두 배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여러분을 통해서 여러분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이 그의 자녀와 온 이스라엘 족속에게 확장 된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기적을 눈으로 체험하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8절에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런 기적이 있기전에는 ‘선생’이라 하였는데 ‘주님’이라고 바꾸어 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여기 ‘죄인’이라는 말의 뜻은 ‘죄로 물든 남자’말입니다. 어떤 사람도 주님을 만나면 사람이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고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자신이 남의 것을 도적질 한 게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세리는 성전 뒤에 서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 자신을 가르켜서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6:5절에서 성전에서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 인 것을 크게 깨달은 자가 크게 은혜 받은 자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구원케 하기 위함이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오신 것은 나 같은 죄인 구원하기 위하여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의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사람 낚는 어부’로서 예수님의 제자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위대한 헌신자로 위대한 사도로 살아 오늘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2019년도를 기적의 한 해로 만들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물이 찢어지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에 얶매어 살지 않고 더 크고 위대한 사명을 위해 구경꾼이 아닌 주님의 제자로, 협력자로 동업자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1월13일 새믿음교회 정영진목사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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