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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1:1-16 자는 자여 어찜이뇨! 교회여, 일어나라!

gkffpffndi 2018. 9. 7. 11:10

요나서는 지금부터 약2800년 전 북 왕국 이스라엘이 통치하던 시대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당시 최고 강대국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성이 죄악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경고하기 위해서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니느웨 성에 가서 그곳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렀음을 경고하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니느웨 와는 정반대인 다시스로 가는 배에 타고 올랐습니다. 이로 인해 요나가 바다 한 가운데서 큰 풍랑을 만나서 바다에 던져지고 물고기 배속에 들어가서 수난을 당하고 그 곳에서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한 이후 다시 니느웨에 가서 하룻길을 행하면서 이제 니느웨 성은 사십일이 지나면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베옷을 입고 금식하고 심지어 왕까지 굵은 베옷을 입고 있으면서 니느웨 백성들에게 소나 양이나 입에 대지 말고 물이나 어떤 음식도 먹지 말라고 말하고 모든 백성들이 베옷을 일고 하나님께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혹시 진노를 거두어들이지 않겠느냐 하고 명령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거두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오늘 이 시간 자는 자여, 어찜이뇨. 깨어 일어나라!” 이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 자신의 사명을 잊은 요나를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에게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너는 앗수르의 큰 성 니느에 가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정반대 다시스로 가는 배편에 삯을 주고 올랐습니다.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만 그렇치를 못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로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했습니다. 요나의 사명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이 도성이 악이 하나님께 도달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왔다고 그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명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사명이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411-1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워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셨습니다. 바울의 사명은 그 당시 세계의 수도인 로마에 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사명은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사회의 부패와 악에 대해서 지적하였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의 범죄를 지적함으로써 다윗이 회개하도록 하였습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라는 사명을 망각하고 정 반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올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시겠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니느웨의 악이 하늘의 하나님께 도달하였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니느웨의 성읍에서 저질러진 각종 악독과 부당한 억압과 박해를 당한 사람들의 억울한 호소가 하늘에 닿아서 하나님께서 방관하시기 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까지 악이 성읍 전체에 창궐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악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6:5-7절에서도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사람 들을 심판 하실 때 사람들의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부터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마지막 종말의 때에 대해서도 마태는 2437-42절 이하에서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주가 임할 는지마지막 종말의 때에도 하나님은 악에 대해서 방관하시지 않고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니느웨에 가서 전하라고 요나에게 말씀하셨지만 요나는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기 위하여 욥바 항구에 이르게 된다. 마침 거기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기에 배를 타고 요나는 배 밑에 들어 누워 코를 골면서 자고 있을 때 바다에 하나님께서 큰 풍랑을 일으키시어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되자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다 바다에 던지고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들을 풍랑에서 구원해 달라고 비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겁에 질려서 당황하고 있을 때 배 밑창에서 코를 골고 깊이 잠들어 있는 요나를 발견한 선장은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그리고 이들은 누구로 이 재앙이 온 것인지 알고자 그 당시 방법으로 제비뽑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각기 제비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갖다 놓고 그리고 제비를 뽑았는데 제비가 요나에게 덜컥 뽑힌 것입니다. 고대에는 이 제비뽑기가 하나의 신의 계시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당신의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는지 고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대답합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다. 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지금 다시스로 도망하는 중이라고 말하니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런 일을 하였느냐, 하는데 점점 바다가 흉흉해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요나에게 묻습니다. 제비를 뽑혔으니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12절에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아노라 하니라하지만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려 하지 않고 노를 저어서 육지로 가고자 하였으나 더욱 바다가 흉흉해지자 할 수 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이 사람 때문에 우리를 죽이지 마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당신 뜻대로 행하시는 줄 압니다. 하고는 요나를 바다에 내 던지자 바다의 풍랑이 곧 그쳤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요나가 바다의 제물이 되자 파도가 곧 멈춘 것을 보면 풍랑이 온 것은 요나의 불순종 때문인 것입니다. 요나의 불순종을 보면 먼저 하나님이 가라는 니느웨 하고는 정반대 지중해 서쪽 끝 다시스로 가게 됩니다. 아마도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될 수 있으면 멀리 피하고 싶어서 정반대 방향을 선택 했습니다. 다시스는 당대 최고의 도시로 화려하고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3절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5절에 요나가 내려 간 곳은 배에서도 밑창에 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요나를 배에서 바다에 내 던지자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있게 되었습니다. 물고기 뱃속이 얼마나 답답하고 죽을 지경이겠습니까?

 

그때 요나는 21절에서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였습니다. 어떻게 기도하였겠습니까? 무슨 기도를 하였겠습니까? 무슨 생각을 하였겠습니까? 요나는 회개 하였겠지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이런 죽음의 길을 가고 있구나. 자신의 지난날의 잘못을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2절에 보면, 스올의 뱃속에서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다고 고백합니다. 기도는 이렇게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천지에 충만하십니다. 요나가 들어 간 곳은 바닷 속 깊은 곳입니다. 주의 파도와 물결이 자신의 위에 넘쳤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은 깊은 곳에 떨어졌고 바다풀이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나가 6절에 보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욥바로 내려갔습니다. 욥바에서 어디로 내려갔습니까, 배 밑창까지 내려갔습니다. 배 밑창에서 이번에는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산의 뿌리 까지 내려갔다고 말합니다. 바다 속에는 산의 뿌리 까지 내려갔으니 더 이상 내려 갈 수 없는 데 까지 내려갔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인생은 내려 막길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깊은 스올 까지 내려 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이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기 위하여 욥바에 갔을 때 마침 배가 있어서 올라 탓을 때만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요? 배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 했으면 배가 기다리고 있지 않았서야죠? 근데 그게 아니 잔아요. 그래서 다시스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겁니다. 모든 것이 다 잘 풀린 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 그의 가는 길을 풍랑을 일으키어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다에 큰 바람을 일으키신 것은 잠자는 요나를 깨우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큰 풍랑이 있습니까? 잠자는 여러분을 깨우기 위함입니다. 요나는 선지자로서 배 밑창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선지자의 사명은 중 차대합니다. 선지자는 그 시대의 죄악을 경고 하여야 합니다. 그 시대의 타락과 부패함에 대하여 말을 해야 합니다. 그 시대의 불순종과 악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경고해야 합니다. 그것이 개인이 되었든 어떤 단체이든지 어떤 국가이든지 어떤 이념이든 사상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에 대하여 잘못을 지적하고 경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사명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이사야 예레미야 선지자들이 다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니느웨 성이 멸망이 40일 밖에 남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는 긴급하게 요나를 보내 저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요나를 보냈지만 요나는 선지자의 사명을 망각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고 깊이 잠들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바다에 큰 풍랑을 일으키어 요나를 깨운 것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27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영혼이 피곤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뻐서 기도할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바쁠수록 힘들수록 더욱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특하게 생각할 것이 아닙니까? 만사가 평안하고 형통할 때 기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기도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도 9절에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랫더니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육지에 보내어 토해 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서 네게 명한 것을 그들에게 선포하라.

 

요나가 3일 길을 가서 니느웨 성에 이르고 하루 길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 큰 성 니느웨는 앞으로 40일이 지나면 무너질 것입니다.” , 이렇게 하루 종일 다니면서 앞으로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질 것입니다. 여러분, 속히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랬더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둘씩 돌아오기를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아이들로부터 시작해서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왕은 보좌에서 일어나서 자신의 왕의 옷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잿더미에 그냥 앉았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조서를 내려 선포하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고 곧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고 힘이 있다고 폭력 휘두르 폭력을 그쳐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재앙을 돌이키지 않겠느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백성의 이런 잘못을 뉘우치고 나쁜 길로 가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지 않자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가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자 니느웨성의 60만 명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서를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선지자인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과 환란을 당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린 요나가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을 때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그 풍랑으로 인해 요나가 배에 탓던 많은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 갔었습니다. 하지만,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니느웨로 가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 때 니느웨 성 사람 60만 명이 회개함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 선지자 요나가 자신의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는 그와 그가 탄 배, 즉 공동체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지만 그가 영적으로 깨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니 수많은 니느웨성 사람들이 구원 받은 것입니다. 즉 요나가 깨어나고 순종하였더니 많은 사람을 구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깨어 있고 순종하는 삶을 살 때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깨어 있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시간에 깊은 잠에 빠지면, 즉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나치 시대를 살았던 한 지식인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마침내 그들이 나에게 덮쳤을 때,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과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이 시대의 요나는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담대하게 이 시대의 선지자로서 이 세상의 부패와 죄와 타락과 악에 대하여 분명히 전하는 자기의 사명과 본분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99일 새 믿음교회 정영진목사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