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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자의 삶 눅18:35-43

gkffpffndi 2017. 7. 7. 16:35

변화된 자의 삶. 18:35-43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생애 한 주간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도중에 여리고 지역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여리고 지역은 여러 가지 열대과일이 풍성하고 광야에서 오아시드와 같이 수목이 풍성하여 초록이 무성한 지역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 둘러 쌓여 있지만 각종 나무가 많습니다. 향나무를 비롯해서 뽕나무, 장미나무, 종려나무가 무성한 도시입니다. 성지순례 때 보니까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였습니다. 이 지역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첫 번 째 성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지역이었지만 이 곳에 살면서도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흑암 속에서 살아가는 안타까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 입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맹인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을 마가는 바디매오라고 했습니다. 이 바디매오는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자 그의 직업은 거지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힘으로 살아 갈 수 없는 처지이기에 남의 손에 의지할 수 없는 불쌍한 사람인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거리의 노숙자를 눈 여겨 보지 않습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지 않습니다.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멸시와 천대와 경멸을 받으면서 그가 살아 왔던 삶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리고 지역의 가장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히 움직이는 지역에서 구걸하기 위하여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고 있었을 때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고 무리가 지나갈 때, 사람들에게 묻기를 왜 이리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시끄러운 것은 무슨 일이냐묻자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하는 듣자 이 거지 바디매오인 맹인은 즉각 이렇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사람들은 여리고 지역을 지나가는 예수를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반면 이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를 나사렛 예수가 아닌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불렀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한 낱 나사렛 시골 지역의 한 청년으로 안 것이 아니라, 예수의 여러 가지 이적과 행한 일을 듣고 나사렛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날 메시야, 즉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맹인인 거지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가 평범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누구로 아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예수를 단순히 랍비 정도로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맹인 바디매오가 나사렛 예수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로 오셨다고 하는 것은 예수가 누구인지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소원을 들어 줄 수 있고 자신의 눈을 뜰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을 발견하였습니다.

 

전혀 소망이 없었던 이 소경 거지 바디매오에게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사실 이 거지 바디매오는 거지가 되고 싶어서 거지가 되어 구걸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신체적인 약점으로 인해 거지로 밖에 살아 갈 수 없는

처지 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만남으로써 자신은 이런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절호의 기회가 찾아 온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여리고 지역에 다시 들르신 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절하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39절에 보면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앞서 가는 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마가복음에는 많은 사람들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본문을 잘 묵상하면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는 것죠?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당하시고 죽으시기 위하여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이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권력에 저항하고 로마로부터 유대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올라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을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면 한 자리씩 줄 것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앞선 자들이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 혹은 예수님과 함께 로마로부터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욕심에 빨리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는데 왠 거지가 자신의 왕의 발걸음을 지체하게 만들자 꾸짖은 것입니다. “거지 주제에, 지금 우리 예수님이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는데하면서 제지 하였습니다.

 

세상일에는 쉬운 것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무도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여름에 땀을 흘려야 가을에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서양속담에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을 만나는데 거저 쉽게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천국도, 영생도, 축복도 절대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도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믿음도 쉽게 얻은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가 쉽게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이 되는 것 원하지 않습니다.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환난을 이겨야 합니다. 배고픔을 이겨야 합니다. 가난도 이겨야 합니다. 환난 풍파를 이겨야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12-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예수님의 발걸음이 보통 발걸음 입니까? 자기 에게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주변 사람들이 눈총 준다고 포기 하겠습니까? 별나게 예수 믿는다고 멈추겠습니까? 광신자라고 하는 말을 듣기 싫어서 적당하게 신앙생활 하십니까? 그런 사람은 천국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 하셨습니까?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오늘 우리가 우리의 간절함과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기만 한다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은 믿은 자에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믿지 않는 자에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주변 사람들의 경멸과 멸시와 냉소를 뒤로하고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39절에 그가 더욱 크게 더욱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우리는 이러한 간절함의 기도가 요구됩니다. 하나님, 주시려면 주시고 안주셔서도 괜찮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눅11:5절에서 밤중에 떡을 달라 하는 친구에게 비록 벗됨을 인하여는 주지 안해도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요구대로 주리라 하였습니다.

이런 소경의 부르짖음이 지나가던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까이 오셔서 물어보셨습니다. 41절에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하니 소경 바디매오가 즉각 말하기를 보기를 원하나이다” 42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여기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네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이 아닙니다. 남편이나 부인의 믿음으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이 자신의 종을 고쳐 달라고 했을 때 백부장이 예수님이 자신의집에 오지 않아도 말씀만 하셔도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말할 때 예수님은 이스라엘 중에 이 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9장에서 제자들인 귀신들인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아이 속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고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3절에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예수님이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알고 누가 네 옷에 손을 되었느냐 하니 혈루병 여인이 사실을 고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히브리서 기자는 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예수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 하여도 그대로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에게 이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눈이 열렸습니다. 흑암 속에 살았던 영혼에 빛이 들어왔습니다. 고통과 저주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은 축복받은 몸이 되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을 보니 기쁨과 환희가 가득 찼습니다. 아마 이런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주님 주신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세상과 높고 푸른 저 하늘 모두가 사랑하는 우리들을 위하여 지어주신 이 세상 하나님의 놀라우신 그 솜씨를 찬양하네. 아름다운 세상과 밤과 낮을 주시고 푸른 들과 꽃나무 해와 달과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주의 솜씨 찬양하네. -를 찬양. 찬양하네. 함께 복을 누리고 살아가는 이 한 세상 행복하고 즐거운 우리들에게 주신 영원하신 복일세. 영원하신 축복일세. 영원토록 영원토록 찬양하세. 우주만물 지으신 하나님의 크신 영광 온 마음 다 바쳐서 영원토록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세. 하나님께 크신 영광 돌리세. 영원토록 찬양드리세 찬양.

 

이 소경은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가 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은혜 받은 사람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성경에 기록된 인물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주님의 제자가 되어 헌신 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다닌 다고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눈을 뜨게 되고 고침 받았으니 얼마나 보고 싶은 것이 많고 가고 싶은 것이 많고 만나고 싶은 것이 많겠습니까, 하지만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를 따라 갔습니다.

 

요한계시록 14:4절에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 하든지 따라가는 자며예수를 따르는 자입니다. 2:10절에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를 진정으로 만난 사람은 삶에 분명한 변화와 헌신이 뒤따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성 어거스틴이 탕자에서 성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습니다.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예수 만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소경 거지 바디메오가 절망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어 주님을 만남으로 기적을 체험하고 변화되어 주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듯이 여러분도 주님을 따르고 헌신하고 충성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청주벧엘성결교회 201779일 정영진목사 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