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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인 증거 /요5:30-47

gkffpffndi 2013. 10. 23. 11:54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인 증거 /요5:30-47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20:31절에 기록된 대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인 것과 그 아들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하려 하는데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 사도는 예수가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증명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 요한복음 5장에서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동안 움직일 수 없었던 환자를 일으키심으로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예수는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의 초자연적인 기적을 나타내시고 물위를 걷는 사건을 통해서 예수의 신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계속해서 전하는 말씀에서 자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면 자신에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림이 없으며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이 땅에 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자로서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증거 ‘를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 이러한 믿음 속에서 흔들림 없이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예수는 ‘하나님이 자신을 증거’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 유대인들이 문제 삼은 것은 예수의 신성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고 그 분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그 분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하늘에 계신 분으로 우리 인간과는 다른 거룩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을 읽을 때도 ‘야훼’ 라고 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읽지 않고 건너뛰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버지의 이름을 죄인 된 인간이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 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라고 젊은 청년이 나타나더니 갑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38년 된 환자를 고치신 사건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율법을 어긴 죄로 인하여 예수를 고발 하려고 예수가 행한 일과 말들에 대하여 꼬투리를 잡기에 충분한 빌미를 제공한 것입니다.

 

그것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병을 고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는 하나님 이라고 말할 뿐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됨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혹은 요한복음 10장에 가서 폭발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젊은 청년 예수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돌로 쳐 죽이려는데 까지 이르게 됩니다. 22-30절에 수전 절이 이르러 예수님은 솔로몬 행각에서 거닐고 계셨습니다. 수전 절이라고 하는 것은 하누카(Chanukah) 로서 빛의 절기라고 하는데 이 절기는 유대인들이 그리스(헬라)제국 알렉산더대왕이 가나안일대를 점령하게 되었고 BC168년 이 일대를 다스리게 된 시리아왕 안티오크스 에피파네스는 유대교 말살정책으로 유대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체의 제사행위를 못하게 하고 대신 제우스신을 성전에 세우고 우상 앞에 절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분조한 마카 비 가문의 형제들이 일어나서 BC165년에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것을 기념하는 날을 수전 절이라고 하는데 강단위에 촛불이 켜져 있는 것은 이러한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날이 빛의 절기라고 하는 것은 성전을 봉한 하는 날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메노라 황금촛대에 겨우 하루정도 쓸 기름만 넣었는데 8일 동안 계속 꺼지지 않고 타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꺼지지 않는 불빛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2013년도 하누 카는 11월 28-12월5 일 까지 인데 공교롭게도 ISON 혜성이 가장 지구에 근접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이 수전 절에 예수님이 솔로몬 행각에 거닐 때 유대인들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 즉 하나님이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야이거든 밝히시오! 이 때 주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 했어도 너희들이 믿지 아니하는 구나!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나에 대한 것이거늘 너희들이 믿지 아니하는 구나 너희들이 믿지 아니 하는 것은 내양이 아니어서 그렇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면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실 것인데 영원히 멸망치 않을 것이며,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예수는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를 동일 시 하면서 자신을 증거 하는 이가 계신데 그 분은 자신 안에 계신 성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 자신을 증거 하는 이는 자신이 아니고 자신 안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자신이 스스로를 증거 하면 그 증거가 타당성이나 합법성이나 객관성을 갖기가 어렵지만 자신을 증거 하신 분은 너희들이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내 증거는 참되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올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막1:11절에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음성이 들이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공적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즉 신성을 가지신 분이라고 하는 증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37-38 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2. 세례요한의 증거입니다.

 

33절에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 하였느니라”

 

세례요한은 그 당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은 덕망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세례요한은 그 가문이 제사장 가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가랴이고 어머니는 엘리사벳 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은 상당히 부유한 가정입니다. 유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세례요한은 자신의 부유하고 넉넉한 삶을 버리고 사막의 수도사처럼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이만을 먹고, 낙타 털옷을 입고 광야에서 궁핍한 가운데 ‘ 광야의 소리’가 되어 그 당시 좌절과 절망과 질병과 가난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었고 그들에게 부모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의 메시지에 들으려고 광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먼저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세례요한의 메시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에 메시지에 감동을 받고 하나 둘씩 세례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요단강에 모여 들었습니다. 세례요한의 말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의 말씀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의 말씀에 사람들은 공감을 표시하였고, 그 당시 세례요한은 존경받은 선생이었습니다.

 

그런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 하였습니다. 어떻게 증거 하였습니까? 많은 사람들 사이에 묻혀 나사렛 예수가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러 올 때,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3:7-12절에 보면, 자신은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 즉 예수는 불로 세례를 줄 것이며, 그 분은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 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고 말씀하시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렇치 않으면 하나님이 도끼로 찍어서 불에 던지신다, 고 말씀하시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례요한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예수에 대하여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세례를 받기 위해서 요한에게 나아오자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당신이 나에게 나오십니까? 라고 말하자 예수는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는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예수에게 자신은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비하하면서 예수님에 대하여 존중을 표시하였습니다. 자신은 주의 길을 곧게 하라는 자의 안내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예수는 흥하여야 하겠고 자신은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한다. 자신은 빛이 아니요, 빛에 대하여 증거 하러 온 자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예수는 세례요한의 증거가 참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튿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심을 보고 그가 예수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1:29절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하면서 자신이 분명히 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음에도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기를 자신보다 먼저 계신 자 라고 말하면서 자신도 알지 못하였지만 성령께서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셨는데 그 분이 예수님이셨으며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자 이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증언이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증언이라고 하는 것이 거짓 증언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증언을 이야기 하신 것은 다른 사람보다 세례요한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이 말씀을 하는 것은 세례요한의 말을 듣고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예수님의 사역과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35절에,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 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노라. 36절,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증언은 세례요한의 증언보다 더 크고 확실한 증언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과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증거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는 예수의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에 있어서 38 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6장에서 물고기 2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12 광주리가 남은 기적을 일으키심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도저히 행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가 신성을 가지신 분이라고 할 때, 그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뒤어서 제자들이 가버나움에 가기 위해서 배를 타고 건너가다가 배가 풍랑에 위태롭게 되어 두려워하자 주님께서 바다위로 걸어 오셔서 그들의 배위에 올라 무사히 목적지 까지 도착하는 장면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트만 같은 학자는 ‘비신화화’라는 말을 사용하여 예수님이 성경에 기록된 이러한 사건을 신화로 치부하여 믿지 않고 신화적인 요소로 배제시키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서 기적이나 이적 사건은 하나의 신화로 취급하는 우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사건도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거기 뱃새다 광야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은 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식사를 하였고 그리고 먹고 남은 것이 12광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니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증거는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고치신 사건, 11장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에서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두 번 째는 성경의 증거입니다. 39절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 하는 것이니라”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으며, 우리를 위해 고난 받았으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고,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9장에서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하고 난 이후에 13장에 보면,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러, 거기에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고 난 이후에 회당장이 할 말이 있으면 말하라 하니, 바울이 일어나서 손짓하며 말하기를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하고 이스라엘 역사를 이야기 하며,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이가 바로 예수라고 말을 하며 이 구원의 소식을 우리에게 보내셨는데 너희들이 그렇게 성경을 안식일 마다 읽으면서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삼일 동안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살리셨으며, 누구든지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해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으면 의롭다 하심을 얻는 다고 설교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 에 대한 예언이고, 신약은 오신 메시야에 대한 사건의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그 곳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는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1세기 초부터 기독교는 렉시오 디비나 (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를 하면 서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성경이 흔치 않아서 회당에 비치된 성경말씀을 듣기만 하였기에 그래서 먼저는 잘 듣고 (Lectio), 2)이 말씀을 묵상하고(meditatio), 3) 그리고 이 말씀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하고(oratio)4) 말씀과 주님의 현존 안에서 관상기도, 쉼(contemplatio)의 4단계를 거치면서 영성생활을 거쳤다고 관상기도를 대중화 시킨 토마스 키딩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재 신자들이 많이 하는 큐티를 하고, 나중에 침묵 가운데 머물러 말씀의 능력과 주님의 현존 속에 머물러 말씀의 능력이 머리에서 가슴 판에 새겨지는 시간을 보낸다면 참으로 생명력 있고 생수가 풍부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의 관상의 단계를 실천하기 위해 관상기도 훈련을 하고, 이를 위해 관상기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도의 내용은 죄의 정화, 예수님의 예루살렘까지의 입성의 묵상,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묵상을 집중적으로 묵상하여 예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기도하였다.

 

초대교회의 교회와 사도들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날 교회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해서 성공과 부와 명예를 얻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변질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교회에 다니고, 성경을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난 세월의 신앙생활이 올 바른지 되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온유, 겸손과 자기 비하와 자기희생과 타인을 위한 봉사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주님은 1) 40절에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 하는 도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을려면 밥상에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2) 42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필요할 때만 찾지, 필요치 않으면 부르지 않습니다. 3) 44절에,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자신의 이익과 영광을 구하지 하나님의영광은 구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4) 46절에 모세의 말을 믿지 아니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성경을 읽고 믿어야 하는데 성경을 읽지 않고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5) 그의 글도 믿지 않으면서 내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 말을뒤 집어서 예수를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둘째,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셋째, 인간의 영광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십시오. 넷째,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지 말고 구약 성경 모세오경의 메시지를 들으십시오. 다섯째,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리고 묵상하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러면 예수님의 신성이 믿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흔들림이 없는 신앙의 뿌리를 내리게 되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실이 믿어질 것입니다. 2013년 10월 27일 청주벧엘성결교회 정영진목사 주일 설교